김승일(본지 객원논설위원)
나와 내 아내는 요즘 매일 저녁 TV리모콘을 들고 다툰다. 시청률 1위라는 한 방송사 막장 드라마(아내의 유혹)때문이다. 내가 보기로는 이 드라마 줄거리 자체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주인공 시부모와 남편, 아내에다 정신상태가 이상한 또다른 가정의 딸까지 바락바락 악다구니를 써대니 도대체 이게 드라마인지 소음덩어리인지 구분이 잘 안간다. 그런데도 아내는 그렇게 재미있을수가 없단다.채널을 돌리려는 나와 꼭 봐야겠다는 아내는 그래서 매일 전쟁중이다. 나는 서슴없이 공해일뿐이라고 단정짓는 이 드라마 때문에 매일 화를 억누르고 사는 고역을 겪고 있다. 그런데 내 화를 돋우는 일은 이 뿐이 아니다. 악덕 사채업자들과 전화사기범들을 생각하면 머리칼이 곤두설 정도로 화가 치민다. 한 전문대 여학생이 사채 3백만원을 빌렸다가 제때 못 갚자 3천만원으로 불어났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된 아버지와 딸이 같이 목숨을 끊은 비극이 바로 엊그제 벌어졌다. 세상에 이런 악독한 X들이 있을 수 있나. 그런 자들이 발뻗고 살수 있도록 놔두고도 사회정의가 살아 있다고 할수 있을까? 전화사기범들은 또 어떤가. 주로 '되치기'조선족 범인들의 사기전화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그동안 한 둘이 아니다. 급기야 경상도 어디에서는 대학등록금을 사기당한 여대생이 고층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는 비극까지 발생했다. 그런데도 사기장치는 그런 자들을 잡아내는 당국의 그물망은 허술하기 짝이 없으니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하고 분통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로 치자. 요즘 진짜로 화나는 일은 따로 있다. 박연차·장자연 리스트에 오르내리는 권력 상층부 사회지도층의 구린내 나는 스캔들에다가 전주 덕진지역구 공천을 둘러싼 민주당의 파쟁을 보면 내 오장이 다 뒤틀리게 화가 솟구친다. 박연차 리스트 수사는 검찰의 칼날이 어디로 겨누는것쯤 누항(陋巷)의 포의(布衣)들도 다 안다. 그런데 그 칼끝이 왜 꼭 짚고 가야할 대목은 비켜 가는지 그것이 궁금하고 화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또 뭔가. 그저 가족처럼 친한 후원자의 돈이니까 '주머니 돈 쌈짓돈'인 것 처럼 생각하고 받아썼다고 변명할 셈일까? 물론 검찰이 품고 있는 혐의는 아직 혐의일 뿐이니까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할 일이고 하지만 말이다. 장자연 리스트를 놓고 벌이는 싸움도 그렇다. 인터넷으로, 구전(口傳)으로 널리 돌아다니고 있는 소문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언론들은 대체로 민주당 공천파동을 정세균대표와 386정치세력, 정동영 전 장관의 파워게임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듯하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표를 쥔 전주시민들의 바닥 정서를 보다 세밀히 살펴보면 답은 간단하리라고 봤다. 그런데도 쌍방은 제각각 '몽골 기병식'으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길'을 택했다. 왈가왈부를 '깨진 독'으로 결말지은 민주당이 오는 4.29재보선에서 무슨 찾으로 표를 구걸할지 생각할수록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아서라 만병의 근원이 화라는데 이쯤에서 참아야지.
/김승일(본지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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