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는 서른 한 개 다리가 있다
전주교대를 지나 좁은목 약수터 못 미쳐 산성천을 따라 길게 이어진 전주시 동서학동 산성마을. 한옥마을과 인접해 있고 시내와도 가까우나 오랫동안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도심 속 산동네다.
추억 속 누군가가 튀어나와 이름을 부를 것만 같은 정겨운 동네다. 이 마을엔 특별한 것이 있다. 도심구간 하천 중 유일하게 하늘을 보고 있는 산성천과 서른 한 개의 다리다.
남고산과 학봉 일대에서 모인 물이 모여 전주천으로 흘러가는 2km 남짓한 산성천에 놓인 서른 한 개의 다리. 건너편 하천부지에 이어진 비좁은 산비탈에 집을 지은 사람들이 마을길에 이어 놓은 다리다.
다리 건너 집마다의 삶이 달랐듯이 서른 한 개의 다리 또한 모양도 느낌도 크기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마을의 서정을 간직하고 있는 다리들이 사라질 처지다.
▲ 산성천 환경정비사업, 기대감과 우려 교차
전주시는 지난 6월, 산성천을 홍수에 안전하면서 문화·생태가 살아있는 공간으로 재창조하기 위한 하천환경정비사업(2.3㎞)을 사업비 124억을 확보, 추진한다고 밝혔다.
주택밀집지역에 위치한 산성천의 하상경사가 매우 심하고 하천 폭이 좁아 집중 호우 시 범람이 잦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천부지와 산성천 건너 학봉 자락의 일부 주택을 매입해서 하천 폭을 최대 12m까지 넓히고 하천 생태계 복원을 위한 수량을 확보와 수변 식생을 조성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 사업은 한옥마을 녹색 둘레길과 연계 추진된다. 한옥마을-산성천-남고산성-원당천-전주천-한옥마을로 이어지는 10㎞ 둘레길 사업 구간 중 산성천 진입부 노후주택 벽면 및 담장 벽화를 그려 넣을 예정이다.
한동안 산성천은 생활쓰레기가 너저분하게 버려진 하천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주차나 차량통행을 등 시민편의를 이유로 복개가 검토되기도 했다.
주민들은 전체적으로 기대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하천부지에 집이 있거나 값싸게 임대를 한 세대는 이사 걱정이 앞선다.
▲ 기로에 선 서른 한 개의 다리
그러면 산성천의 다리는 어떻게 되나? 이 동네에 살면서 서른 한 개의 다리에 담긴 삶과 서정을 글로 풀어 낸 최기우 작가, 하천을 낀 산동네 마을을 공공 미술과 접목한 도심 재생과 공동체 회복에 관심을 갖고 마을로 들어온 산성공작소, 전주천의 첫 도심 구간 유입 하천인 산성천의 생태와 도랑의 기능에 관심을 갖는 환경단체들은 이구동성 걱정이다.
시 관계자는 하천 폭이 현 6m에서 12m로 늘어나기 때문에 하천부지 내 주택을 철거할 수밖에 없어서 기존 다리는 사라진다고 밝혔다.
현재 계획하고 있는 6개의 다리는 개인이 놓은 아담한 다리와 달리 하천정비기본계획에 따라 홍수빈도 설계에 맞춰 건설되기 때문에 다리 높이와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근대화시기를 온 몸으로 이겨낸 지역주민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다리는 우리시대에서 사라져버리고 남은 유일한 문화일지 모른다." 최기우 작가의 말이다.
서른 한 개의 다리에 이름을 붙이자고 제안하는 그는 시가 강조하는 한옥마을과의 관광 연계 측면에서도 다리를 없애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60년 가까이 살았는디 축대가 내려앉은 적은 있어도 크게 물난리를 겪은 적이 없당게." 라는 마을 주민의 말을 인용하며 물이 급하게 불긴해도 오랜 기간 큰 물난리를 겪은 적이 없다고 강조한다.
▲ 추억으로만 남길 것인가, 재창조할 것인가
산성마을사업에 자문을 해온 전북 마을만들기센터 박훈 국장은" 다리를 없애는 것은 오랜 시간 축적된 주민들의 삶의 역사를 지우는 것" 이라며 " 한쪽에서는 전주천과 관련한 역사 문화 컨텐츠를 만들어가면서 한쪽에서는 그 역사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없애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산성천의 다리가 스토리텔링의 포인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다리와 관계된 주민들의 삶의 모습에 집중해야지 다리 자체를 보존하는 것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주민들이 원한다면 가야지요. 하지만 작가들의 이기심일 수도 있고 감정적 접근일 수도 있으나 다리 자체가 마을을 특성화 시킬 수 있는 좋은 자산인데..." 산성공작소 박진희씨는 내내 아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상징성 있는 몇몇 다리라도 살리고 철거될 집 몇 채를 작가들에게 임대를 내주거나 공예품 판매소로 활용하면 산성천을 따라 문화 공간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을 불러올 수 있는 공간일 수 있으나 다른 이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현실일 수 있다. 좀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만들어 가는 것은 주민들의 권리다. 다만 산성천의 다리와 주민들의 삶의 흔적역시 우리시대의 문화 자산임에는 틀림없다. 산성천 다리의 운명은 이제 주민들과 행정에 맡겨졌다.
/ 이정현 NGO전문기자(전북환경운동연합 국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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