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의 피를 먹고 살아가는 흡혈박쥐는 이틀 동안 굶으면 정상적으로 체온이 유지 되지 않아 짧은 시간에 체중이 줄고 결국 죽어간다고 한다. 먹이 사냥에서 허탕을 친 박쥐는 공생하는 다른 박쥐에게 구걸해서 생명을 보존하는데, 이때 정당한 이유도 없이 부탁을 거절한 다른 박쥐는 다음에 자기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다른 박쥐들의 도움을 절대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우리들의 삶도 언제 어떤 불행이 찾아올지 모르지 않겠는가? 지금까지의 내 삶이 혹시 이기적이진 않았나 하고 돌아보자.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 꼭 물질적인 것으로만이 아니더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과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
세계적인 백만장자 미국의 록펠러(1839~1937)가 55세 때 불치병으로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가 병원 벽에 걸린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라는 문구를 보고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지 못한 여인이 의사에게 살려달라고 울면서 매달리는 애절한 모습을 보았다. 록펠러는 비서를 시켜 여인의 병원비를 남모르게 해결해 주었고, 삶의 가치와 기쁨을 찾았다고 한다. 록펠러는 그로부터 43년을 더 살아 98세에 생을 마감하면서 "내 생의 전반기 55년은 사업 때문에 늘 쫓겼으나, 후반기 43년은 매우 행복했었다."라고 회고했다 한다.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말로만 그려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라고 했던가.
현대인들은 풍족함과 자가당착에 빠져 옆과 아래를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오직 자신의 존재만 의식하며 사는 것 같다. 나의 배부름을 나누는 자세가 이 사회에 서서히 뿌리내려 어려운 이웃의 애환을 들어주고, 마음의 문을 열어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 줄 때 우리는 새로운 의미의 행복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 주위엔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이웃들이 많다. 시선을 돌려 그들이 덜 배고프고, 덜 아파하고, 덜 춥도록 배려하는 마음이나 물질적인 나눔이 절실한 현실이다. 70억 명의 인구 중 1달러(약 1,200원)로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약 15억 명에 달한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법적 용어로는 진정 죄가 아닐지 몰라도 아귀들처럼 달라붙는 파리 떼들을 쫓아낼 힘마저 없어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낸 채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언론매체에 처절하게 그려질 때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그 누구였을까?
나눔은 우리사회를 건강하고 따뜻하게 만든다. 공동사회의 이념이 가정에서부터 학교까지 이어져 나눔의 문화가 더욱 확산돼 나간다면 이기적인 양심으로 혼탁해져 가는 정치풍토와 포악하고 거칠게 변해가는 서민사회의 분위기가 시나브로 제 자리를 찾을 것이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서 있는 위치나 시각에 따라, 그 상황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물질의 풍요와 화려함만을 따라 성공과 행복의 잣대를 어느 곳에서나 돈 앞에만 들이대며, 같은 방향으로만 줄달음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외치는 양심의 소리, 지성의 소리, 인간다운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사회는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들이 봄소식을 몰고 오듯 활기가 넘쳐날 것이다. 초록빛깔 에너지가 넘쳐 흐르고, 살맛나게 풋풋해질 것이다. 이웃의 아픔, 사회의 어두운 곳에 시선을 돌려 보자. 무관심을 버리고 포근한 가슴으로 나눔을 베풀어보자. 소외받은 이웃이 바로 우리들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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