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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가(智異山歌)와 종녀촌 이야기

골짜기·산자락마다 역사, 문화, 전설 가득 / 지리산 시대 개막 기대

▲ 이병채 남원문화원장
지리산은 한없이 높고 깊다. '한없이'라는 말은 이 산을 찾는 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절감하게 된다. 눈으로 경치를 보면서 그냥 걸어 오르는 지리산은 대단하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산이 인간의 오랜 역사와 숨결을 함께 해왔기 때문에 하나의 골짜기나 산자락에도 역사의 애환은 물론 인간의 영욕이 담겨있다.

 

지리산에는 지금도 수많은 인골(人骨)이 널려있지만 역사의 비극이나 국가적인 상처자국만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리산을 바라보는 눈도 한때의 사건이나 아픈 역사에 머물 수만은 없다. 지리산은 인간의 원초적인 삶부터 한없는 욕망의 현장으로 오랜 세월을 지켜오고 있다.

 

그 중 성모신앙과 관련, 피아골 종녀촌에 씨받이 여인들이 모여 살았다는 이야기를 비롯해 이태의 남부군이 뱀사골과 피아골에서 춤의 축제를 벌였다는 이야기 등 인간의 애환이 담긴 이야기들이 많다. 괴상한 차림의 남녀 빨치산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춤의 축제를 벌였다는 것은, 산짐승처럼 쫓겨 살았던 그들이 절박한 운명 앞에서 , 그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남부군의 이러한 축제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불태우는 적나라한 성(性)의 축제였다면, 이는 한국판 '소돔과 고모라'라고 말한다.

 

종녀촌을 지배하는 지리산의 성신성모신앙에 따르면 성신굴(性神窟)에서 성의 제전을 마음 내키는 대로 펼쳤다. 성신굴에서 성신상 옆에 남근을 세워놓고, 종녀들의 무궁한 생산능력을 빈다는 기원제를 핑계로 성신제단 앞에서 주문을 외웠다. 차츰 주문이 춤으로 변하고, 그러다가 시동과 욕정을 불태우는 향락을 씨받이 여인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클라이맥스로 하여 성신굴에서 펼쳐진 이성의 축제는 막을 내렸다는 이야기이다.

 

이 외에도 지리산에는 여인들의 정절 규범이 된 '지리산녀'의 아름답고 애틋한 이야기가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인물열녀항에 나오는 지리산녀는 구례현 사람인데 자색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백제의 왕이 아내로 맞아들이려 했으나 한사코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진 「지리산가」는 한 여인이 정절을 죽음으로서 맹세하고 어떠한 유혹에도 따르지 않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사 내용은 찾을 길이 없지만 지리산가는 정읍사가, 방등산가, 선운산가, 무등산가와 함께 백제 5대 가요 중 하나로 꼽힌다. '지리산녀'는 삼국사기 열전에 기록된 도미의 처이며 백제왕은 개루왕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남원행이란 글에서 지리산녀와 「지리산가」의 곡은 동일하다고 보았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백제왕은 백제 21대 개루왕이었다는 설이 지배적인 것이다. 이 설화 내용은 춘향전과 비슷하다고 했다.

 

종녀촌 씨받이 여인들이나 지리산녀 이야기가 이질적이지만 여인들의 수난이란 측면에선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종녀촌 전설은 아주 특이하여 깊은 여운을 남긴다. 축제를 벌였다는 대목은 서양의 신화를 연상케 한다.

 

깊고 깊은 골짜기 지리산을 걸어가면서 그 옛날 성의 축제 전설을 떠올려 보면 마치 지리산이 아마존의 밀림과도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지리산에는 이상과 같은 전설 외에도 아름다운 자연과 자원, 그리고 각종 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다. 최근 전북일보가 지리산을 심층 취재하는 기획보도를 시작했다. 몇 년전부터 추진되고 있는 지리산 세계복합유산 지정을 통해 아무쪼록 지리산 시대가 개막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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