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의 14대손인 조종명씨(73·산청군 문화관광 해설사). 남명의 혼이 깃든 덕천서원에서 만난 그에게서 선비의 강직함과 곧은 기상을 느낄 수 있었다. 말년에 지리산을 찾아 자신의 사상을 다졌던 남명의 모습 그대로였다.
"16세기 기호학파(율곡학파), 강우학파(남명학파), 강좌학파(퇴계학파) 등 3개의 학파가 조선의 주류였습니다. 그러다 인조 반정 때 남명학파가 몰락한 뒤 정조에 이르러서야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바른 소리를 하고 나아가 실천으로 옮기는 것을 덕목으로 하는 남명학파는 시대의 변화상에 따라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행동과 실천을 중시한 만큼 역사적 순간에 남명학파와 관련된 인물이 많았고 최근에는 '경상대 남명학 연구소'와 '서울대 남명학회' 등에서 이와 관련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또 '산천재 한국선비문화연구원'이 오는 9월 준공을 앞두고 있어 남명과 관련된 연구의 폭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진주 민란과 동학농민운동이 남명학과 연관성이 깊다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또 몇몇의 학자들은 조선 후기 실학의 단초를 열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남명의 저술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의 제자들이 불의를 참지 못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는 등 실천적 지식인의 면모를 자랑해왔다. 그리고 이런 정신은 선비들뿐만 아니라 당시 산천재를 중심으로 한 산청지역의 일반 백성들에까지 영향을 미쳐 역사발전에 이바지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양명학 노장학 불교 등 모든 사상에 유연한 태도로 접근한 남명의 철학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습니다."
그는 지리산과 결합된 남명의 철학이 현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고 나아가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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