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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치일을 잊지 말자

▲ 윤철 전 진안부군수
며칠 전 광복절 제68주년 기념식이 성대히 열렸다. 8월15일은 일제치하에서 해방된 날이기에 이를 경축하는 성대한 잔치가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 모든 일은 원인이 없는 결과가 없다. 나라를 되찾았다는 것은 나라를 빼앗긴 사실이 있기 때문에 되찾은 것이다.

 

1910년 8월29일은 나라를 빼앗긴 국치일(國恥日)이다. 광복의 원인을 제공한 날이다. 103년 전 8월 29일 한일병합(韓日倂合)은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상 처음으로 민족의 정통성과 역사의 단절을 강제로 당한 국가적인 치욕 사건으로 1910년 경술년에 일어난 나라의 치욕이라 하여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부른다.

 

103년 전 일이지만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날이다. 국권을 강탈 당한 우리나라는 그 후에 모든 것을 빼앗겼다. 광복이 될 때까지 34년 11개월 16일간 자유와 인권은 물론 우리말, 우리글을 빼앗기고 성(姓)도 빼앗겼으며 조선의 딸들은 위안부로 끌려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 국민 중 8월29일이 국치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광복절은 기념하면서 국치일은 잊고 살아가고 있다. 역사는 반복적으로 굴러간다. 부끄러운 실수를 덮어두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더 치명적인 실패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수치스러운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은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5대 국경일과 45개의 기념일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광복절은 최대의 국경일이다. 하지만 국치일(國恥日)은 아무리 찾아봐도 어디에도 없다. 국치일은 아예 기념하지 않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 너무나 부끄러운 사실이기 때문에 잊고 싶고, 감추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국치일을 아예 빼 버린 것이 일본과의 외교적 관계에서 눈치 보기 때문이라면 더 큰일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치일은 1931년 9월18일이다. 일본이 선양의 남만주철도를 파괴하고 만주를 침공한 날이다. 중국은 매년 국치일에 대규모 반일시위가 벌어진다. 일본과 영토분쟁이 심각했던 작년에도 국치일에는 9월 18일을 상징하는 9시 18분에 베이징(北京)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만주사변 희생자를 추모하는 사이렌을 일제히 울리며 엄청난 규모의 반일시위를 벌였다. 몇몇 단체에서 국치일을 잊지 말자는 조촐한 행사가 열렸을 뿐 너무도 조용한 우리나라의 국치일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국치가 기념할 만한 일이 아니며,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날을 기념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나마 달력에 조그만 글씨로 달려있던 국치일(國恥日)이라는 표기마저 언제부터 인지 슬며시 없어져 버린 것 같다.

 

기념(記念)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뜻 깊은 일이나 사건을 잊지 않고 마음에 되새김'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역사에 경술국치만큼 뜻 깊은 일이나 사건이 어디에 있는가. 경술국치만큼 잊지 않고 마음에 되새길 일이 무엇인가.

 

소설가 김종록의 소설 '달의제국'에는 국치일에 상중(喪中)임을 표시하는 나비 상장 달기 운동을 하자는 대목이 있다. 픽션인 소설을 통한 작가의 웅변이지만 공감이 간다.

 

이제라도 8월 29일을 정부가 법으로 정하는 기념일로 규정하고 역사의 귀중한 교훈으로 되새겼으면 한다. 부끄러운 역사일수록 감추지 말고, 오히려 더 상기하고 반성하며 교훈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경술국치라는 부끄러운 역사의 원인과 결과를 후대에 올바로 알려주고 깨우쳐 주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의 몫이라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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