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산재·운조루·곡전재 전형적인 길지 입소문에 전국에서 관광객들 몰려
풍수지리는 자연이 만들어 낸 갖가지 형상과 기운을 인간의 건강하고 복된 삶에 최적화하고자 하는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냈다. 그런 측면에서 풍수지리 세계에서 지리산은 교과서적인 곳으로 알려진다. 수많은 고산준령들이 산 아래 멀리까지 수십 수백 갈래로 여인의 치마폭처럼 펼쳐 내린 산줄기와 계곡 주변에는 풍수지리에 얽힌 사연들이 즐비하다. 지리산은 험한 산세 곳곳에 인간의 터전을 허락했고, 인간은 그곳을 지혜롭게 가려내어 대대손손 삶을 영위하고 있다
비보진압풍수
남원에서 구례로 이어지는 국도 오른 쪽에 범실이라는 마을이 있다. 호랑이가 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금 더 가면 밤재터널이 나오고, 터널을 빠져 나가면 구례 땅이다. 밤재터널이 있는 산 이름은 묘하게도 견두산(犬頭山)이다. 개 머리 형상을 한 산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와 관련 풍수전문가 최낙기 교수(선문대교수)는 “견두산이 남원을 노려보는 형상이어서 남원에게 부정적인 형세”라며 “남원 광한루의 호랑이 석상이 견두산을 향해 배치된 것은 개의 기운을 물리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범실’이란 마을이름도 견두산의 나쁜 기운을 방어하기 위해 붙여진 것일 수 있다.
금환락지 명당
지리산의 서쪽 구례에는 금환락지 명당이 있다는 입소문과 함께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구례 명당으로 알려진 곳은 쌍산재(雙山齋)와 곡전재(穀田齋), 운조루(雲鳥樓)다.
구례에서 하동으로 가는 국도 좌측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에 위치한 쌍산재는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초승달형 명당이다. 노고단에서 곧게 흘러내린 산줄기가 넓은 들판 건너편 구례에서 하동쪽으로 흘러가는 섬진강을 목전에 두고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좌청룡 우백호를 형성한 곳, 바로 이 천혜의 명당에 상사마을과 하사마을이 위치하고, 그 명당의 가장 중심에 쌍산재가 있다.
최낙기 교수는 “쌍산재의 안채는 노고단에서 내려온 기가 뭉쳐 혈을 이룬 곳에 절묘하게 위치하고 있다. 혈을 이루고 난 여기(餘氣)가 안채 10여미터 앞에서 당몰샘으로 변하였다. 이와 같이 혈 앞에 여기가 만들어준 샘을 진응수(眞應水)라고 하는 데, 진응수가 있는 혈을 큰 명당으로 친다.”고 설명했다. 진응수가 풍수에서 말하는 계수즉지(界水則止-산줄기를 타고 뻗어온 기운이 물을 만나면 멈춘다)의 역할도 수행하여, 쌍산재 안채에 기가 몰려 있게 된다. 제대로 된 진응수는 물이 맑고 수량이 사시사철 일정해야 하며 물맛이 좋아야 한다. 또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야 하는데, 당몰샘은 진응수로서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그래서 인지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받아가는 당몰샘물은 예로부터 물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쌍산재 자손 오경영씨는 “터가 명당이라고 하니 기분이 좋지요. 당몰샘 물이 좋다며 전국에서 물을 떠가는데, 아마 미네랄 성분이 적당히 함유돼 있어 건강에 좋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산면 사도리의 좌청룡 건너편에 있는 토지면 오미리에는 금환락지형(金環落地形) 곡전재와 금구몰니형(金龜沒泥形) 운조루가 자리잡고 있다. 최낙기 교수는 “곡전재는 풍수지리적으로 금환락지의 전형적인 저택”이라며 “풍수지리적으로 많은 것이 고려됐다”고 분석했다. 최교수에 따르면 금환락지는 산자락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들판에 볼록한 형태로 생긴 터다. 이 때문에 곡전재는 섬진강을 따라 생긴 바람길 선상에 놓이게 됐고, 이를 차단하기 위해 일반 담장이 아닌 2m50㎝에 달하는 돌담을 둘러쳤다. 집 뒷산에서 호시탐탐 집안을 노리고 있는 규봉(窺峰-도둑 봉우리)으로부터 집을 철저히 보호하기 위해 뒷담에는 울창한 대나무숲을 만들었다. 또 대로(19번 국도)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진입로를 내지 않고, 곡전재 옆 담장길을 따라 드나들었다. 집안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뒷산 규봉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한 풍수적 조치다. 혹은 도둑(규봉)에게 인적을 확인시켜주고자 하는 의도일 수도 있다. 최교수는 “담장을 집 처마까지 높게 올려 치는 것은 상식을 벗어나지만 곡전재는 바람으로 인해 저택이 너무 건조해지는 것(습도 유지)까지 고려해 건축됐다”고 덧붙였다. 비보진압(裨補鎭壓-부족한 것은 보충하고 강한 것은 누른다) 풍수인 것이다.
곡전재 윗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또 하나의 명당 운조루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산을 등지고 물을 내려다본다.)에 금구몰니형 저택으로 분석된다. 뒷산 자락이 끝나는 지점에 멀리 들판 너머 섬진강을 두고 있다. 최교수는 “운조루는 대문 앞에 뒷산의 계곡물을 끌어 도랑을 만들고, 또 작은 연못도 조성했다”며 “이는 근본적으로 풍수지리적 조치다”라고 말했다. 즉 “풍수에서 기(氣)는 승풍즉산(乘風則散), 계수즉지(界水則止)다. 주산에서 흘러온 기가 집터를 지나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물길을 만들었고, 섬진강 바람 길을 따라 저택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러니까 집 주변의 습도를 높여줄 목적으로 도랑과 연못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명당으로서 갖추어야 할 부족한 조건을 보충하기 위해 연못과 도랑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천평마을도 금환락지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으로 꼽힌다. 시천면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지리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시천천이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는 분지 지형이다. 주민 조성배씨는 “이 곳이 금환락지 지형이라는 말이 예로부터 전해오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금환락지 명당터를 찾아서 집을 지어오고 있다. 그러나 어느 곳이 진짜 금환락지 집터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마을사람들은 10년 전 도로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나온 거대한 바윗돌에 ‘금환락지’를 새겨 마을 대로변에 세워놓고 금환락지의 고장임을 알리고 있다. 최 교수는 “시천면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 자체가 금가락지 모양을 하고 있고, 지형을 살펴볼 때 금환락지비가 서 있는 곳 주변이 명당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과의 치열한 기싸움
지리산에는 일본의 기운과 관련된 풍수지리적 사연도 많다. 얼마 전 남원문화원이 운봉읍 노치마을에서 발굴해 공개한 목돌은 일제가 민족정기를 단절하기 위해 풍수적으로 백두대간의 목 부분에 설치했던 거대한 잠금석이다.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회덕마을에는 일본으로 가는 지리산의 맥을 끊기 위해 세 개의 연못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 앞에서 3대째 바리때를 만들고 있는 목공예가 김을생씨는 “고려 말기에 한 고승이 실상사에 머물던 중 지리산 기운이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끼고 큰 솥을 만들어 부연폭포에 집어넣어 기를 막았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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