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상산성·산정호수…자연이 만든 전시장
가을이 절정인 요즘, 가는 가을이 아쉽다고 말하면 성급할까? 무주는 강원도만큼 추운 곳이라 겨울이 빨리온다. 최근에 우리나라도 이상기온 때문에 봄과 가을이 점점 짧아진다고 하는데 이곳은 겨울채비로 바쁜 마음이다보니 더 그런 것 같다. 단풍이 지기 전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넓고 넓은 캔버스에 울굿불긋 여러 가지 물감을 쏟아 부어 깊어가는 가을의 소경들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는 곳을 소개하고자한다.
△가을 붉은 단풍이 휘날리는 곳
무주에는 유명한 산이 두 개 있다. 하나는 구천동계곡과 리조트로 잘 알려진 덕유산, 또 하나는 단풍이 아름다운 적상산이다. 적상산(赤裳山), 붉을적(赤·치마상(裳). 예부터 붉은 치마를 두른 듯 단풍이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적상산은 한국 100경 중 하나로 손꼽힌다.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바위산으로 해발 1034m의 적상산은 향로봉(1029m)과 천일폭포, 송대폭포, 장도바위, 장군바위, 안렴대 등이 있고 정상에는 양수 발전소 상부댐인 산정호수(적상호)와 적상산성, 안국사 등 유서 깊은 문화 유적과 산 중턱에는 머루와인동굴이 있다.
△300년 동안 조선왕조의 기록 지켜
적상산사고는 세계기록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국보 제151호)이 약 300년간 무사히 보관됐던 곳으로 '조선왕조실록' 복본 34권(왕조별 1권씩 27권, 무주에 관한 기록 7권)과 왕실 족보인 '선원록' 복본 5권을 제작해 비치했다. 현재 실록의 제작과 편찬 과정, 옮기는 과정 등을 담은 22종의 전시패널이 설치돼 있다.
평지에 있던 4대 사고가 임진왜란으로 인해 소실된 뒤 조선 왕조는 춘추관,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 마니산 등에 5대 사고를 설치해 유일하게 남아있던 전주 사고의 실록을 증본해 보관했다. 이후 북방 침입으로 묘향산사고의 실록이 보관에 어려움을 겪자 무주의 적상산에 실록전을 세우고, 1634년 이곳으로 옮겼다. 그 후 1910년대에 일제에 의해 사고가 폐지되자 적상산 실록은 왕실 규장각으로 옮겨 보관해왔다. 6·25 때 북한으로 반출됐으며 김일성 종합대학 도서관에 보관 중이다. 사고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88호로 지정돼 있다.
△왜구의 침입 속에서 고려를 지킨 준험한 성
다음 그림은 적상산성이다, 고려시대 거란의 침입과 왜구의 침입 때 이미 산성이 경영돼 인근 여러 고을의 백성이 피난했던 곳이다. 성내에는 비옥한 토지가 있었고 못이 4개소, 우물이 23개소나 있었는데, 1645년(인조 23)에 세운 호국사비(護國寺碑)에는 고려의 최영과 조선의 최윤덕에 의해 산성 설치가 논의된 바 있다. 고려 말에는 삼도안렴사(三道按廉使)가 왜구를 피해 들어와 병사를 주둔 시켰던 곳이기도 하다. 1898년(고종 35)에 펴낸 '적성지(赤城誌)'에도 1374년(고려 공민왕 23)에 삼도도통사 최영이 제주를 정벌하고 개선하는 날, 무주를 지나가면서 적상산의 준험함에 감탄하여 왕에게 축성할 것을 건의했다는 내용도 전해진다.
△붉은 치마 속 고요한 휴식처
이번엔 안국사로 가보자. 안국사는 본래 보경사(寶境寺) 또는 산성사(山城寺)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1277년 월인화상(月印和尙)에 의해 창건됐다. 다른 창건설은 조선 초기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왕명을 받아 세웠졌다고 한다. 둘 다 사적(史的)인 근거는 없고, 다만 1865(고종 2년) 사찰을 중수하고 남긴 안국사중수기(安國寺重修記)에 따르면 '옛날 풍수지리학자의 건의에 따라 산성을 쌓고 승병을 모아 지키게 했는데, 안국사는 곧 승병이 거처할 영사(營舍)로 지은 사찰'이다.
△인공호수에서 사진 한 컷
산정호수는 해발 800m 분지에 위치한 인공호수다. 양수 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댐으로 적상호라고 한다. 무주읍에서 산정호수까지 드라이브를 할 수 있는데 천일폭포, 적상산성, 안국사 등을 탐방할 수 있으며 전망대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굽이굽이 방금 올라온 길을 둘러보는 즐거움도 있다.가운데 길가의 은행나무가 붉은 단풍과 어울려 누구든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적상산성 서문 아래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장도바위가 있는데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 길이 막히자 장도를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은 등산코스로만 볼 수 있다.
적상산의 남쪽 층암절벽 위에 위치한 안렴대는 거란의 침입을 맞은 고려 삼도 안렴사가 군사를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라 부른다. 조선 병자호란 때는 적상산 사고 실록을 안렴대 바위 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는 유서 깊은 사적지다.
※ 김정숙씨는 무주사진가 협회회원으로 지금은 무주 다문화가족센터의 방문교육지도사. 현재 2013 도민블로그 단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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