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마다 역사풍경…나를 되돌아 보다
우리 지역에도 지리산의 둘레길, 군산의 구불길, 부안의 마실길, 진안의 고원길 등 많은 자연의 길이 있다. 그중 가벼운 마음으로 사진을 찍으며 걸을 수 있는 전주 한옥마을 둘레길(숨길)을 소개한다.
△차분히 한숨한숨 길과 길이 만나
처음 숨길을 걸어야겠다 생각을 했을 때 ‘어디서 부터가 숨길이지?’라는 고민을 했다. 하지만 숨길은 ‘차분히 한숨한숨 걸어보자’ 라는 의미를 가진 길이다. 그러니 ‘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걷겠어~’ 라고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이 어디든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길이다. 한옥마을은 길 아닌 곳이 없고 어디든 뚫리고 열려 있어 이 길과 저 길이 만난다.
숨길은 공예품 전시관에서 출발해 당산나무 - 양사재 - 전주 향교 - 한벽당 - 전주천 수변생태공원 - 천주교 순교자묘입구 - 88올림픽기념숲 - 서방바위 - 각시바위 - 자연생태 박물관 - 한벽로 - 이목대 - 오목대 - 공예품 전시관으로 돌아오는 총거리 7.1㎞의 길이다. 일단 공예품 전시관 주차장 쪽으로 이동하여 숨길을 시작해본다. 역사 탐방길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따라가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
숨길을 걸으면 당산나무를 처음 만난다. 당산(堂山)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신단(神壇) 또는 신당이 위치한 산이다. 오목대로 오르는 길에 우뚝 선 당산나무는 500년 된 느티나무로 전주 한옥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왔다. 주민의 무병과 평온무사를 기원하는 당산제가 매년 음력 1월15일에 이 곳에서 열린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가족, 친구, 연인의 건강과 사랑을 기원해본다.
△가을이면 노란 옷을 입는 향교
양사재를 지나 향교로 향한다. 이정표를 따라가면 향교의 은행나무가 보인다. 향교를 향해 내려가는 내내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린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햇살도 눈부시다. 금방일 것 같은 향교는 돌담길 따라 한바퀴를 돌아야 만날 수 있다. 돌담길을 걷는 동안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주인공들은 향교에 도착하고서 만날 수 있었다. 한복을 곱게 입은 아이들이 은행나무와 함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었다.
전주 향교(鄕校)는 유학교육과 인재양성을 위해 지방에 설립한 교육기관으로, 현재는 훌륭한 성인의 위폐를 모신 대성전을 비롯해 동무·서무, 계성사, 학생을 가르치던 곳인 명륜당 등의 여러 건물이 남아 있다. 안타깝게도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기능은 없어졌으나 봄·가을에 공자 제사를 지내고 초하루·보름에는 향을 피운다. 향교를 나와 전주 천변으로 전통문화관이 있는 왼쪽으로 향한다. 전통문화관은 전통혼례, 공연, 교육체험, 전통음식체험 등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숨길은 한옥마을 내 이곳저곳을 걸어다녔다면, 이제부터는 전주천을 따라 걷는 숨길이다.
△선비의 심상이 오롯이 묻어나는 한벽당
전주천을 따라 걷다보면 한벽당(寒碧堂)이 나온다. 한벽당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호로 승암산 기슭 발산 머리의 절벽을 깎아 터를 만들어 물결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세워졌다. 남원의 광한루와 무주의 한풍루와 함께 호남삼한으로 불렸다.
바위에 부서지는 하얀 물결의 포말을 보며 전국의 수많은 음유 시인들이 이곳을 찾아 자연과 어울리며 시를 짓고 노래를 불렀다. 때문에 전주 8경의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한벽당에 앉아 그때 선비들처럼 잠시 물줄기를 바라본다.
한벽당을 내려오면 한벽굴을 만난다. 한벽굴은 일제 강점기 일본이 한벽당의 정기를 자르기 위해 만든 철길이다. 뒤에 전라선으로 쓰여 전주역을 지나 오목대 - 이목대 - 한벽굴을 거쳐 남원으로 향하는 철길이었다고 한다.
한벽굴을 뒤로하고 숨길을 걷다보면 아름다운 순례길과 만난다. 귀여운 달팽이가 그려져 있지만 걷기보다는 자전거가 더 어울리는 길이다. 조금 더 걷다보면, 전주천의 아름다운 갈대가 보인다.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수변생태공원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천변으로 내려가 갈대밭을 지나면 다시 숨길로 돌아오게 된다. 갈대밭도 숨길의 일부다.
△오목대 오르면 한옥마을 한 눈에
아름다운 순례길 시작된 그곳에서 상류쪽이 아닌 오목대로 돌아가는 길로 간다. 한벽굴을 지나 이목대를 향해 걷는다. 오목대 옆은 산을 깎아 만든 자만마을이 있다. 자만마을을 통해 오목대로 향하는 것도 좋다. 이제 숨길도 마지막으로 향한다. 오목대는 삼도순찰사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귀경도중 연회를 열었던 곳이라고 한다. 오목대에 오르면 또 다른 한옥마을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오목대를 마지막으로 다시 출발지였던 공예품 전시관으로 향하면 전주 한옥마을 둘레길, 숨길을 다 걷게 된다. 전주 한옥마을 둘레길은 정해진 길이 없고 걷다보면 이어지는 그런 길이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했던 가을도 어느덧 첫 눈 소식에 이별을 할 때다. 아쉬운 가을을 두 눈과 두 발에 담아주기 위해 한옥마을 숨길을 걸어보시는건 어떨까?
● 윤정실씨는 웹디자이너이며, 2013 전라북도 도민 블로그 명예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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