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유 느낄수 있는 '쉼표' 같은 공간
영화 2편, 책 2권, 박물관 1차례 관람. 한 달간 문화생활을 돌아보니 빈약하기 짝이 없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이 높은 문.화.의. 힘’이라는 김구 선생님의 말을 깊이 새 사는데 어째 이리 빈한(貧寒)한 삶이 되었을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주머니가 텅텅 비어서 시간이 모자라서. 나름 핑계를 만들어 놓고 보니 이거이거 비단 내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준비했다. 가까운 곳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작품을 감상하며 허기진 영혼을 채울 수 있는 작은미술관 말이다. 전북도는 올해 전주 교동아트미술관, 완주 VM미술관, 군산 정미술관, 익산 W미술관 4곳을 작은미술관으로 선정, 지원에 나서고 있다. 작은미술관은 일반 미술관과 달리 문턱이 높지 않고 그림을 감상과 함께 다양한 체험이 진행되고 있다.
△갤러리와 미술관 뭐가 다를까
지난 2008년 익산시 어양동에 문을 연 W(더블유)갤러리. 붉은 벽돌의 웅장한 건물, 큰 창 너머로 차를 마시는 사람들, 그림을 감상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듣긴 했어도 왠지 부담이 돼 선뜻 가볼 생각을 못했다. 이런 W가 지난해 12월 정식 등록을 마치고 올 1월부터 미술관으로 태어났다.
익산 유일 미술관인 이곳은 갤러리(화랑)였을 때도 다양한 미술작품을 전시해 왔다. W미술관 홍아라 학예사로부터 갤러리에서 미술관이 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갤러리와 미술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상업성이에요. 미술관은 영리를 추구하지 않기에 작품 전시는 하되 판매를 하지 않고 연구와 교육의 기능을 가지고 있죠. 그에 반해 갤러리는 작품 판매를 목적으로 세워진 성격이 짙습니다. 미술관 등록은 W가 앞으로 시민과 함께하는 열린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걸 의미합니다.”
실제 미술관으로 바뀐 뒤부터 W는 다양한 시민참여형 교육과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W라는 이름도 궁금했다.
“W는 Wishing Well을 의미하는데 동전을 던지면 소원을 이뤄주는 우물을 일컫습니다.”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차와 식사, 문화를 즐길 수 있으니 얼마쯤 소원이 이뤄지긴 했다.
△미술과 가까워지는 시간
이제 직접 작품을 만나보자. 취재차 방문했을 때 W에서는 최석우의 ‘나무그림전’이 한창이었다. 231㎡ 남짓한 1층 전시관에는 그윽한 조명 아래 다양한 나무 그림 20여점이 전시됐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나무 빛깔과 자태를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 전시실은 청명한 숲이 되고, 숨은 감수성도 한 뼘 씩 자라는 기분이었다.
또각또각 걸으며 그림 한 점, 한 점 보며, 짧지만 작가와의 교감을 시작해본다. 나무라고만 하면 일자 기둥에 둥글게 가지를 묘사한 어릴 적부터 그런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런데 작은미술관에서 만난 나무는 사람 생김새처럼 얼굴도 다르고 몸매도 제각각이었다. 인간보다 오랜 시간을 살다보니 나무 등걸에 세세한 시간이 덧입혀져 있었다.
어르신의 손을 보면 주름과 검버섯이 세월을 말해주는데 나무도 그런 것들이 엿보였다. 책은 읽고 이해해야 하지만 미술은 느끼면 되니, 미술관이 주는 특별한 호사가 마음을 따뜻하고 여유롭게 했다.
내친김에 2층 가구갤러리도 함께 둘러봤다. 2층은 수입가구전시장으로 흔히 보지 못한 고가의 가구가 전시돼 있다. 가족, 친구와 함께 다양한 자세로 사진을 찍는 것 괜찮을 듯 싶다.
△지역 작가의 꿈이 한 뼘씩 자라다
W미술관은 직접 작가를 섭외하고 준비한 기획전, 어려운 이웃을 후원하는 사랑나눔전, 지역 작가 초대전이 눈에 띈다.
도내 예술인이 설 자리가 없어 소외당하거나 마땅한 전시 장소를 마련하기 힘든 경우도 많았는데 W가 미술관으로 탈바꿈하며 시민과 지역 작가의 참여기회가 더 넓어졌다. 작가 입장에서는 좀더 나은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일 수 있고 시민은 좋은 작품을 공유하고 학습할 수 있다.
나무그림전에 이어 28일까지는 시민 아마추어 동호회의 ‘빛. 깔. 전’이 열린다. 한지공예로 다양한 생활소품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들빛한지’ 동호회와 금마에 사시는 고령할머니들의 조각보작품 ‘황동조각보’, 지역 사진동호회 ‘호남사진연구회’의 작품 등 다양한 시민의 이야기가 화수분처럼 펼쳐질 예정이다.
전시실 옆 카페 풍경이 그윽하다. 창밖으로 노름노름 지는 단풍, 겨울의 도시색. 충만해진 문화감수성 덕분일까. 전에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전에 쓰지 못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호사스러운 오후가 부럽다면 가까운 미술관으로 나서보자. 바쁜 일상에 쉼표를 찍는 순간, 삶이 주는 묵직한 감동을 맛 수 있다.
임선실씨는 익산시청 홍보담당관에서 재직중인 30대 여성. 현재 2013 도민블로그 단으로 활동중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