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고유정서 실종 공연 보듬기 그만
인류가 각자의 삶을 운영하는 보편적 행보에 종교가 빠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확신하는 가치에 기대어 상대를 우습게 여기며 계도와 구원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다. 헌데 적어도 사후 세계를 담보하는 종교 간의 갈등보다 더한 일들이 지금 전북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북을 대표하는 브랜드공연이 막 시연회를 끝내고 수많은 사람의 질타를 받고 있음에도 아집인지 맹신인지 모를 자기 확신에 가득 차 귀를 닫을 태세다. 문화 사대주의의 절정으로 여겨진다. 대부분의 구성원이 서울 사람들로 이루어져 지역의 고유정서와 귀중히 여겨져야 하는 익숙함과 독창성의 삼중주가 실종된 공연을 보듬기에 바쁜 것이다. 이런 공연이 전북 대표 브랜드 공연이라는 이름을 버젓이 달고 행해지는 것을 지켜 봐야하는 암울한 시점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애써 지역예술을 지키며 능력을 배양해온 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모멸감을 안겨주면서까지 내세울만한 대안의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한 지원을 해준 적도 없고 기껏 이벤트사에게나 맡겼던 짧은 시도에 실망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하겠지만, 적어도 지역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유를 묻고 싶고, 그 과정이 있었다고 대답한다면 일을 추리는 과정에서 요식행위에 해당하는 통과의례의 소모품으로 지역 예술가들을 전락시킨 이유를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주길 바란다.
지금의 선택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고 시도다. 문화 사대주의에 빠질 경우 문화 주체성은 상실되고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해당지역에 침투하려는 그들의 전략에 휘말리는 꼴을 당할 뿐이다. 더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고 더 나은 형태로 운영하고 싶은 것은 누구든 같은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관하여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주체의 문제인 것이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그것을 더 잘 이해하고, 누가 더 많은 이해를 구할 수 있는지 답은 뻔하다. 지금 대한민국 지역사회는 서울 문화의 종속자와 다른 이름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왜 고유의 문화와 능력을 가진 전북마저 굳이 그 열등한 답습의 대열에 끼어 들려하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독점현상은 문화의 표준화와 획일화를 가중시킬 뿐이다. 그건 소비의 동질화를 일으키고 지역의 고유성을 사라지게 만든다. 우리만의 정체성을 가지지 않으면 이 이상한 흐름에 우리는 구경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주체성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편견은 편견을 낳고 공감을 획득하지도 못한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의 주체성이다. 기어이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라도 비판적인 관점을 취한 다음에 받아들여야 한다. 무조건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고 최대의 지원을 한 뒤에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때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에도 우리의 것을 중심에 두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것의 소중함을 직시해야 된다. 우리 것이 없이는 우리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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