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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만 된다면야

▲ 김영 전북시인협회장·만경여고 교사
도깨비 방망이 하나 갖고 싶다. 문화예술인의 바닥난 통장에 대고 ‘돈 나와라 뚝딱’ 하고 외쳐서 통장 잔고를 무진장 늘려주고 싶다. 필요할 땐 언제든 넉넉하게 쓰고, 쓰고 넘치는 돈을 가끔 귀찮아하기도 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그리만 된다면야 정신문화를 위해 생활에는 좀 무디어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는 예술인들이 많아질 것 같다.

 

도깨비 방망이 하나 있다면…

 

도깨비 방망이 하나 갖고 싶다. 초라한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어깨에 대고 ‘작품 나와라 뚝딱’ 하면 세계인의 칭송을 받는 작품들이 재깍 튀어나오면 좋겠다. 그리만 된다면야 작품 한 편이 작가의 생전에는 훈장이 되고 사후에는 명예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창작을 위해 고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아무 짬도 모르는 아이처럼 까만 눈을 깜빡깜빡하는 컴퓨터의 커서 앞에서 더 이상 궁싯거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만 된다면야 건들장마처럼 시류를 따라가는 얍삽한 문화예술이 제대로 걸러질 것이다. 문화예술에는 일가견이 있는 듯 말하는 사람들이 막상 지역의 문화예술은 살짝 무시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도깨비 방망이 하나 갖고 싶다. ‘문화예술인 나와라 뚝딱’하면 문화예술인이 콩나물 자라듯 길러졌으면 좋겠다. 그리만 된다면야 어려서부터 문화예술에 대한 감성과 체험이 있는 환경 속에서 키우느라 긴 시간 허비할 필요가 없다. 기다려주고 격려해주며 키울 일도 없다. 당연히 국보인 문화유산을 홀랑 태워먹는 사람도 없어질 것이다. 그리만 된다면야 문화유산 복원을 잘못한 사람들과 복원비 보다 홍보비를 수십 배나 더 지출한 사람들도 문화예술은 어떻게 형성되고 성장하는가를 알 필요가 없다. 또, 문화예술은 어떻게 수용되고 변화하는가를 공부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정신적인 자생력이 돈이나 권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도깨비 방망이 하나 갖고 싶다. ‘문화경영 나와라 뚝딱’ 하면 사람들의 문화 경영에 대한 개념이 그 자리서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만 된다면야 돈 뒤에 숨어서 은근슬쩍 문화예술을 왜곡하거나 길들이려는 사람들이 없어질 것이다. 문화예술을 정량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없어질 것이고 고무줄 자를 들고 달려드는 사람도 없어질 것이다. 또, 소속 회원들의 머릿수로 단체의 역량을 계산하려는 사람들이 없어질 것이다. 그리만 된다면야 예산을 주는 사람도, 예산을 받는 사람도 딱할 일이 없을 것이고, 보이지 않는 손이 지역문화예술의 색과 방향을 결정할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문화예술인 묵묵히 창작에 몰두

 

그러나, 도깨비 방망이는 도깨비 나라에 있고 여기는 사람의 나라여서 그리 될 수가 없다.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은 지금처럼 통장 바닥을 자주 긁어야 하고 외롭고 쓸쓸할 것이다. 애면글면 내놓은 작품은 지역문화예술이라는 이유로 은근히 무시당할 것이다. 아이들은 문화예술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문화유산은 아무나 훼손할 것이다. 가시적인 효과를 위해 홍보비가 복원비를 앞지르는 행정가들의 눈속임을 견뎌야 하고, 돈을 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품 색과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묵묵히 창작에 몰두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유전자엔 그래도 인간세상을 사랑하는 신의 입김이 깃든 것일까?

 

△김영 시인은 전북시인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만경여고 교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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