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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찾은 영화 '마테호른'

▲ 이상용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거의 일 년 전 일이다. 출장을 떠나기 전 배급을 담당하고 있는 양팀장이 다가와 말했다. “한 편의 영화를 구매해야 합니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은근한 부담이었다. 영화제를 앞두고 상영작을 골라내기에도 주어진 시간과 일정이 부족했는데, 거기에 국내에 배급할 영화를 계약해 오라는 것은 ‘일타쓰리피’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내색하지 않고 ‘알았다’는 말만을 되풀이 했다.

 

로테르담 영화제 관객상 수상작품

 

지난 해 로테르담 영화제는 그 동안 다녀본 영화제 중 최악이었다. 그것은 영화제 상영작들이 형편없다거나 날씨가 추워 몸살이 났다거나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차마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회의가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뒤를 돌아보기에는 앞으로 나아갈 시간도 빠듯했다. 로테르담 영화제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비디오 시사실에서 보내며 빛의 속도로 전체상영작을 관람하던 중 구비되어 있지 않는 한 편의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다.

 

〈마테호른〉의 관람은 그렇게 시작됐다.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흐르며 시작되는 이 영화는 한 마을에 외롭게 살고 있는 프레드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출발한다. 6시가 되면 기도를 하고 밥을 먹는 한 남자의 삶은 규칙을 엄밀히 준수하는 것 같지만 사정을 알고 나면 일종의 채찍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바른 생활은 경건함이 아니라 죄책감의 행동이었다. 나홀로 족인 프레드 앞에 어느날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테오’라는 남자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조그만 변화가 일어난다. 슈퍼에서 한 덩이의 고기를 사던 그가 두 덩이가 든 고기를 사면서 두 사람은 함께 일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은 비밀의 베일을 벗기는 것으로 이어지진다. 마을에서 항상 그를 지켜보는 또 다른 남자의 고통도 알게 되고, 테오의 과거 사연도 드러나면서 프레드를 포함하여 모두가 상처받은 영혼들이라는 통찰로 이어진다. 프레드는 아내와 함께 했던 마테호른에 이번에는 테오와 함께 오르기로 결심 한다.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장면은 프레드의 사슬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과 교차 편집이 되어 있다. 그때 듣게 되는 노래가 ‘This is My Life.’이다.

 

〈마테호른〉은 위대한 감독의 영화가 아니다. 〈이프〉라는 영화에서 얼굴을 익힌 디데릭 에빙어라는 네덜란드 배우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것은 오늘날 예술영화의 시장에서 보자면 최악의 조건이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최신의 영화가 있다면 바로 이 작품이라는 생각이었다. 고통 위에 살아가던 한 남자가 자신의 현실과 대면하는 과정은 누구나 겪는 인생의 보편성을 담지하고 있다. 누군가에는 사랑 이야기로, 누군가에게는 가족 이야기로, 누군가에게는 외로운 이들의 이야기로 다가올 이 작품은 실상 그 모든 것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로테르담 영화제의 관객상을 수상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시공간 초월해나눌 수 있는 마음

 

지난 주에 개봉한 〈마테호른〉의 수입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꼭 일 년 만의 일이다. 어쩌면, 지난해에 한 일 중 가장 잘한 결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극장으로 들어갈 때는 네덜란드 영화에 대한 이물감이 크겠지만 바흐와 함께 무장해제가 된다. 그리고 내가 느꼈던 가벼워지는 마음을, 극장을 나왔을 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경험이 주는 본질이란, 그런 것이다.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영화평론가로서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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