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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구하기

▲ 김 영 전북시인협회장·만경여고 교사
“야아, 내가 날짜 계산 다혀서 모이도 몽땅 주고 나 없는 동안 수영도 허라고 물도 큰 함지박으다 많이 받어놓고 왔다. 추울 깨미 오리를 빈 돼지막으다 디려놓고 왔응게 갠찬을 것인디 그도 니가 한번 가봐라, 날씨가 호랭이도 잡게 생겼다.”

 

막내 이모의 투병소식을 듣고 서울에 가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리한테 한 번 가보라는 것이다.

 

시골집에 홀로 남은 오리 한 마리

 

시골집에는 어머니가 심심파적으로 기르는 오리가 한 마리 있다. 나는 오리 돌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리에게 모이와 물을 주고, 저녁이 되면 알을 거두는 일이 어린 내 몫이었다. 여름철에는 오리의 빽빽한 깃털에서 나는 냄새로 코가 문드러질 지경이었다. 또 얇은 고무신에 전해지는 오리 배설물의 물큰한 촉감은 정말이지 징그러웠다. 알을 거두다가 배설물을 손에 묻히는 일은 말 그대로 다반사였다.

 

시골집은 쓸쓸했다. 바람이 이리저리 굴려놓은 마당의 허섭스레기들을 대강 정리하고 오리가 있는 돼지막으로 갔다. 되도록이면 오리를 보지 않고 모이만 뿌려 주려고 문을 빠끔히 열자마자 오리가 푸다닥 날아든다. 반사적으로 떨쳐내니 다시 필사적으로 날아든다. 다시 밀치려다 오리의 간절한 눈빛과 마주쳤다. 세상에!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절실한 눈빛을 본 적이 없다. 할 수없이 문을 다 열고 돼지막 안을 살펴보았다. 어머니가 함지박에 담아 들여놓은 물은 꽝꽝 얼어서 커다란 빵처럼 부풀어 있었다. 일주일 내내 추웠는데 물은 진즉에 얼었을 것이고 오리는 마른 모이만 먹고 물을 못 마셨을 것이다. 마른 모이는 위장 안에서 불어 갈증이 더 났을 것이다. 내가 돼지막을 살피는 짧은 사이에 오리는 동파를 막으려고 조금 열어둔 수도꼭지 앞으로 뒤뚱뒤뚱, 그러나 재빠르게 달려갔다. 물 마시는 소리가 집안의 정적을 흔들었다.

 

아무리 마음을 독하게 먹어도 오리의 간절한 눈빛과 마주친 후엔 내게 어쩌지 못하는 책임감이 생겼다. 아무도 없는 집에 녀석을 혼자 두고 오자니 맘이 켕겨서 데려오기로 했다. 물과 모이만 주거나 아니면 살아있는지 들여다보고 바로 오려던 마음을 바꾼 거다. 녀석이 푸덕거릴까봐 날개나 다리를 묶을 생각도 했으나 오리를 만지는 것은 정말 싫었다. 그냥 돼지새끼처럼 몰고 오기로 했다. 만약 말을 듣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빈집에 두고 올 요량이었다. 오리도 내 요량을 헤아렸는지 줄로 묶거나 막대기로 몰지 않아도 나를 졸졸 따라왔다. 마당을 지나 동네 고샅길까지도 내 옆에 딱 붙어서 따라 나왔다. 심지어 뒷좌석 차문을 열어주니 차에도 얌전하게 올라탔다. 그렇게 전주에 오는 한 시간 동안 오리는 차 안에서 퍼덕거리지도 않았고 앞자리로 넘어오지도 않았다. 물론 배설물도 흘리지 않았다. 훈련받거나 사람 손에 길들여 자란 개도 아니어서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신기했다.

 

주인 오길 간절히 빌었으리라

 

간절하면 하늘에 닿는다고 했던가. 춥고 캄캄하고 기갈이 드는 겨울 한 복판에서 오리는 주인이 자기에게 와줄 것을 간곡하게 빌었으리라. 마루며 우물가에 생각 없이 배설물 내지른 것도 참회했을지 모른다. 지금 삶의 중대한 결정 앞에 선 사람들도 간절한 기도로 상대를 먼저 감동시켜야 하리라.

 

아파트에 데려와 욕조에 넣어주니 유유자적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뒤뚱뒤뚱 거실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냄새 지독한 배설물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는 오리와 한 달을 같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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