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는 조선 왕실의 본향
방송의 여파가 지역문화정책에도 영향을 준 것인지 전라북도가 이성계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한다. 도내의 이성계 관련 유적지를 재조명하고 이를 문화관광자원화 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전북은 조선의 왕도도 아니고 건국자 태조가 태어나거나 산 곳도 아니지만 태조와 관련해 많은 이야기와 유적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전주는 조선왕실의 본향이요 뿌리이다. 조선왕실의 시조 사당 조경묘가 전주에 있다. 지금은 뿌리의식이 약해져 본향의 가치를 헤아리기 어렵겠지만, 조선사회에서 본향은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였다. 조선사회의 특질을 잘 담고 있는 족보를 보면 중심이 내가 아니라 시조이고, 나는 구성원일 뿐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어른을 뵈면 처음 묻는 말의 하나가 본향이 어디냐는 것이었다. 어느 국회의원이 본관이 분명치 않아 모임에서 창피를 당하고 유명한 분을 찾아가 손이 끊긴 명문가의 후예로 본관을 삼았다는 말도 있다.
전주가 조선 왕실의 본향이라는 것만으로도 전북이 태조 프로젝트를 추진할 만한 이유가 된다. 우리가 다른 시대에 살고 있어서 조선왕실의 본향으로서 전주와 전북의 위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조선은 건국직후 태종 10년(1410) 태조 어진(왕의 초상)을 전주 경기전에 모셨다. 한양 외에 지방 다섯 곳에 모셨는데, 그 중 평양·경주·개경 세 곳은 한시대의 수도였고, 나머지 두곳이 태조가 태어난 영흥과 그 선조들이 살았던 본향 전주이다. 현재 전주는 태조 어진과 어진을 모신 진전(경기전)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태조의 고조부 목조 이안사가 전주를 떠나기 전까지 살았다는 이목대와, 태조가 황산대첩을 거두고 귀경길에 일가친지를 불러 잔치를 벌였다는 오목대도 주목된다. 태종 이방원과 맞섰던 2차 왕자의 난의 주역 회안대군 이방간의 묘소도 전주에 있다.
전북은 또한 황산대첩과 관련해 태조 이성계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남원 운봉의 황산대첩은 변방의 무사 이성계가 그 이름을 온 고려에 알리고 중앙의 핵심세력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던 싸움이다. 황산대첩은 위화도회군과 함께 태조가 새왕조 건국으로 갈 수 있는 세력성장의 발판이었다.
왜의 소년장수 아지발도가 활에 맞아 죽으면서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다는 피바위, 달을 끌어당겼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인월 지명 등 이성계의 대승을 기리는 많은 이야기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스토리텔링으로 이만한 소재도 드물 것이고 게임의 소재로도 검토될 만하다.
진안 마이산은 또 태조가 건국의 계시를 받은 몽금척의 무대이기도 하다. 태조가 하루는 금척을 받는 꿈을 꾸었는데 그 무대가 마이산이라는 것이다. 금척은 자를 말하는 것으로 통치자의 상징이다. 마이산 용암 아래에는 태조가 머물렀음을 기념하는 주필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 마이산자락에 건립된 이산묘는 이런 조선건국의 정기를 이어 독립을 쟁취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남원 운봉은 황산대첩의 무대
임실 성수산 상이암에는 태조의 글씨로 전해지는 삼청동이라 쓰여진 비가 있다. 성수산은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향해 내려오는 명산으로 고려태조 왕건과 조선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해 새왕조를 세우는 천명을 받았다는 곳이다.
순창에는 태조가 무학대사를 만나러 만일사에 가다가 고추장 맛을 보고 임금이 된후 진상해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추의 전래시기와는 맞지 않는 이야기지만 순창고추장의 유래로 전해지는 설화다.
이처럼 전북은 조선왕실의 본향이요 황산대첩의 무대로서 태조 이성계와 관련해 많은 유적과 설화들이 있다. 차제에 이런 조선 태조의 이야기와 유적들이 꿰어져 후백제 견훤과 함께 왕도로서의 전주와 전북의 자존심을 세우고 또 한편으로 문화관광자원으로 육성되어 역사와 문화의 도시 전주와 전북을 키워나가는 한축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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