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새가 멸종된 이유를 생각하며
도도새는 날지 않았다. 땅 위에는 먹이가 풍부했고 천적이 없었다. 타고난 제 본성을 잊고 땅 위의 생활에 만족했다. 날개가 퇴화되어갔어도 걱정도 하지 않았다. 천적을 피해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쓰거나 진화하지도 않았고 경쟁도 하지 않았다. 제 환경이 저를 퇴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도도새는 지구상에서 영원히 멸종되었다.
며칠 전 아이들과 연을 날렸다. 갖가지 연들이 텅 빈 겨울 하늘을 날아오르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한 아이의 연실이 끊어져 버렸다. 뱅글뱅글 회오리치다 사라지는 연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는 외할머니와 둘이 산다. 말투와 생각, 심지어 앉는 자세도 영락없이 할머니다. 어머니는 정신 장애가 좀 있고 아버지는 바람 속에다 둥지를 튼 지 오래되었다. 또래들은 그 아이를 오차원이라고 부른다. 꾀죄죄하고 얼룩이 많은 옷을 입고 다니는 그 아이의 장래 꿈은 패션모델이다. 말이 없고 편식도 심하지만 인형을 돌보는 것과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오랜 직장 생활에 물린 사람들은 일어나고 싶은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은 때 먹는 것이 작은 꿈이다. 반면에 생활에 얼마간의 통제를 받으며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직장에 출근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몇 해 전 겨울, 전력난이 심각하여 공공기관들이 실내온도를 많이 낮춘 적이 있다. 인터넷 여기저기에 너무 추워서 업무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는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여러 사람들이 공감과 격려의 댓글을 줄줄이 달았다. 그런가 보다며 별 생각 없이 화면 여기저기를 뒤적이던 내 눈을 확 잡아 끈 댓글 하나에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나는 그 안에서 얼어 죽어도 좋으니 근무나 한번 해 보고 싶다.’
연은 묶여 있어서 하늘을 나는 꿈을 꿀 수 있다. 묶인 끈에서 풀리면 날 수 없다. 곧 진창에 처박히거나 가지에 걸려 삭아 가리라. 외할머니와 사는 아이가 인형에게 이 옷 저 옷 입혀보고 색색의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제 꾀죄죄한 입성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회색빛으로 묶인 환경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지금 직장이 없는 사람은 직장에 근무하는 꿈을 갖고, 긴 직장생활에 지친 사람은 직장을 벗어나는 꿈을 갖는다. 우리는 모두 현실에 묶여있다. 자식에게 묶인 부모, 부모에게 묶인 자식, 자유롭고 싶은 직장인, 그렇게라도 묶여보고 싶은 취업준비생, 모두들 이것저것에 묶여있어서 이런저런 꿈을 갖는 것이다.
새싹이 아름다운 건 꽃피울 꿈 때문
지금 무엇엔가 묶여서 꿈을 포기했는가? 지금 생활이 만족스러워 더 이상 꿈이 필요 없는가? 도도새를 돌아보자. 날아야 한다는 자기 본성조차 잊고 살다가 날개는 퇴화되고 몸뚱이는 박제되어 컴컴한 박물관 구석에 처박혀있다. 새싹이 아름다운 건 꽃피울 꿈이 있기 때문이다. 꽃이 아름다운 건 열매 맺을 꿈이 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이미 이룬 삶보다 이뤄가고 있는 삶이 더 아름답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