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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레네를 추모함

▲ 이상용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2월 1일의 일이다. 로테르담 영화제의 일정을 정리하고 프랑스의 클레르몽 페랑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클레르몽 페랑 국제 단편 영화제가 있다. 기차는 파리의 북역에 정차했고, 장병원 프로그래머와 나는 짐을 끌고 지하철을 이용해 ‘베르시역’으로 향했다. 베르시에는 이탈리아로 가는 야간기차를 비롯하여 프랑스의 중부와 남부로 가는 열차편들이 출발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아는 파리 시네마테크가 있다. 지하철의 출구로 나올 때 우리는 표지판에서 시네마테크의 방향을 잠깐 바라보기도 했다.

 

90세 넘어서까지 영화감독 활동

 

베르시에서 출발한 기차는 빠르지 않은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파리를 벗어나 보이는 작은 도시들은 오히려 정감이 있었다. 느베르를 지날 때였다. 쟝(나는 자주 그를 ‘쟝’이라고 부른다)은 이 도시가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이 촬영된 곳이라고 말을 했다. 영화 속 여주인공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던 도시, 강물이 흐르던 정경이 새겨진 도시가 바로 느베르였다.

 

이 기억은 현실이 되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2014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 상영작 중에는 〈라일리의 삶〉(Life of Riley)이 있었다. 알랭 레네를 유난히 좋아하는 쟝에게 표를 양도했다. 영화를 보고 온 그가 숙소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생각이 난다. 〈스모킹/노스모킹〉처럼 연극적인 영화의 계보에 속하는 이 작품은 한 인물의 삶을 독특하게 조명하고 있었다. 90세가 넘은 알랭 레네는 베를린을 찾아오지는 않았다.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하기는 했지만 시상식 장면 어디에서도 그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분주하게 지내던 3월 1일. 알랭 레네가 타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쟝과 나는 이 영화를 올해의 영화제에서 상영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던 중이었다. 우리는 20세기 영화의 한 페이지가 사라졌다는 것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 아흔이 넘은 나이였지만 그는 현역의 감독으로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알랭 레네의 영화 중 하나는 국내에 개봉된 적이 있는 〈나의 미국인 삼촌〉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었다. 그의 실험적인 작품이라 불리는 뒤라스의 각본을 옮긴 〈히로시마 내 사랑〉이나 로브그리예의 각본을 옮긴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는 차라리 뻔하고 뻔한 영화였다.

 

〈나의 미국인 삼촌〉은 쥐를 갖고 실험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면서 프랑스의 과학자 앙리 라보리의 이론을 설명한다. 행동 이론에 관한 과학적 설명이 끝나면, 라보리의 내레이션과 함께 세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영화는 그의 이론에 따라 인물들이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진화론 혹은 진화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라보리의 이론과 그것을 영화에 적용하는 방법은 흔히 기억과 시간을 다루는 알랭 레네의 스타일의 확장이라는 식으로 설명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설득력이 없는 말이다.

 

인간 탐구한 고집스러운 예술가

 

이 작품은 최근까지 선보이고 있는 그의 연극적 스타일의 확장에 가깝다. 과학의 실험실을 인간의 삶이라는 무대로 옮겨 놓고, 그 속에서 행동하는 인간 쥐들을 관찰해 보는 것이다. 연극이라는 무대가 인생을 시연하는 실험의 장소라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레네 영화의 상당수는 이와 같은 실험을 관객에게 전하면서, 당신의 삶은 안녕한지를 질문한다. 레네는 영화예술의 혁명가라기보다는 인간을 탐구하는 고집스러운 예술가였다. 부디, 그의 마지막 영화를 5월에 만날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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