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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왕의 시호와 실록의 표제

▲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
경기전내 어진박물관에서 〈조선왕조실록〉 복본 특별전이 ‘조선왕조 500년, 천년 한지에 담다’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다. 이번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비록 원본이 아닌 복본이지만 흥미로운 전시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복간된 선조실록, 광해군일기, 인조실록 등 3대 실록이 실록편찬사를 보여주는 특이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인조 실록 표제에 시호 없는 이유

 

선조실록은 서로 다른 2개의 실록이 존재한다. 광해군대 집정세력인 북인들이 선조실록을 편찬했고, 인조반정후 집권한 서인들이 이를 개수해 선조수정실록을 새로 편찬했다. 따라서 선조실록은 정권의 변동에 따른 역사기술의 차이를 보여준다. 광해군일기는 정초본 이전의 중초본이 남아 있는 유일한 실록이다. 실록은 초초, 중초, 정초 3단계를 거쳐 편찬되고, 편찬이 완료되면 초초와 중초는 세검정에서 물에 씻어버린다. 광해군일기만 중초본이 남아 있어서 중초본과 정초본의 차이를 읽어 볼 수 있다.

 

그런데 전시를 오픈하고 새로운 점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어진박물관에서 해설사로 봉사하고 있는 유정애 선생이 하루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선조실록은 표제(책 제목)에 〈선조소경대왕실록〉이라고 해 선조의 시호(諡號) ‘소경(昭敬)’이 들어 있는데, 인조실록은 왜 인조의 시호가 없고 〈인조대왕실록〉이라고만 되어 있느냐는 것이었다.

 

‘선조’, ‘인조’라는 왕의 호칭은 묘호(廟號)이다. 묘호는 임금이 죽은 뒤 삼년상을 치르고 위패를 종묘에 모실 때 올리는 존호이다. 〈선조소경대왕실록〉이라고 할 때 ‘선조’는 묘호이고, ‘소경’은 승하한 선조에게 명나라 황제가 내려준 시호다.

 

유선생의 질문을 받고 살펴보니 실제로 각 왕대별 실록명이 태조에서 선조대까지는 묘호 뒤에 시호가 있는데, 인조이후에는 묘호만 있고 시호가 없었다. 인조실록이 편찬될 때는 효종대로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중원을 지배하고 있을 때다. 그러면 인조이후 실록 표제에 중국에서 내려준 시호가 빠진 것이 청나라가 조선의 승하한 왕에게 시호를 내려주지 않아서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통문관지’를 분석한 글에 의하면, 청나라에서도 시호를 내려주었다고 한다. 청나라 황제가, 예컨대 인조에게는 장목왕, 효종에게는 충선왕이라는 시호를 내렸는데, 조선의 왕들이 이를 애써 감추고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조실록 이후 실록 표제에 중국 황제가 내려준 시호가 빠진 것도 이런 연유로 추정된다. 이전 같으면 인조장목대왕실록이라고 해야 하는데, 청나라에서 내려준 시호를 꺼려해 ‘장목’을 빼고 인조대왕실록이라고 표기를 바꾸었던 것이다. 실록에 기록된 왕의 호칭에도 신하들이 올린 시호는 있지만 청에서 내려준 시호는 없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섰음에도 사가(私家)에서 조선의 사대부들은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崇禎)’ 연호를 조선이 망할 때까지 썼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실록에도 청 황제가 내려준 시호를 쓰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이를 청나라가 알았다면 용납했을지 의문이다.

 

청나라 인정하지 않은 조선 사대정책

 

조선은 청의 힘에 굴복했지만 청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사람들에게 청나라는 임진왜란때 우리를 도운 명나라를 멸망시킨 원수이고, 무지하고 예를 모르는 오랑캐였다. 조선은 작은 나라이지만 이런 청나라를 상종할 수 없다고 보았다. 무조건 힘이 있다고 섬기지 않았다. 조선 사대정책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은 병자호란으로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지만 정신까지 청나라 만주족에게 내주지 않았다. 청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해서 발전된 문물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한 폐단이 있었다. 그리고 청에 강경대응한 데에는 인조반정의 명분 또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선 선비들의 이런 기개와 정신만은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식민통치하에서, 광복후 경제발전과정에서 조선의 선비정신은 묻히고 홀대됐지만 이제라도 되살려 계승해야할 우리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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