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80대 할머니 외벽 허술한 가건물서 중학생 손자 함께 생활 / 부양 의무자 기준 걸려 기초생활 수급자 탈락, 각종 지원 혜택도 제외
▲ 매일 불편한 몸으로 폐지를 모아 생활하는 김분순 할머니. 김 할머니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2년 전에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해 수급비 지원이 끊겼다고 한다. |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1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빈곤 노인일수록 소득수준이 높은 노인에 비해 자살 생각을 2.3배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5세 이상 노인을 연가구소득 기준으로 5그룹으로 분류했을 때 최하위 20%에 속하는 노인이 자살을 생각한 비율은 16.3%로 가장 높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노인이 자살을 생각하는 원인은 소득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소득 최하위 20% 계층은 경제적 어려움이 37.8%를 차지해 가장 비중이 높았고, 그보다 형편이 나은 소득 하위 20% 역시 경제적 어려움이 36.8%로 비슷했다.
소득 중위 20%는 본인의 건강이 자살을 생각케 하는 원인(42.5%)이라고 꼽았으며, 상위 20%와 가장 부유한 최상위 20%는 외로움·지인의 사망·갈등관계 등 대인관계에서 오는 고통이 각각 38.7%, 43.8%를 차지했다. 이는 소득수준에 따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고려하는 원인이 서로 다름을 나타낸다.
이처럼 양극화 현상은 노인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현상에도 나타나고 있다. 노인 자살을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고령 인구의 경제문제, 사회복지 및 사회 안전망 문제로 풀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노인의 사례를 통해 노인 빈곤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전주의 한 노인복지관 경로식당에서 매일 점심식사를 하는 김분순(가명, 84·여·전주시 인후동)씨.
김 씨는 매일 전동스쿠터에 수거한 폐지를 가득 싣고 위태위태하게 도로를 달린다. 운전자들은 운전 중 좁은 도로에서 김 씨를 마주치게 되면 운전하는데 방해가 되어 짜증스런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점심식사 시간이 되면 폐지를 가득 실은 스쿠터를 식당 앞에 대놓고 식사를 한다.
식당앞에서 만나 힘든 점은 없는지 여쭤봤다. 유난히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한 게 이상해 살펴보니 귀가 어두워 목소리 조절이 잘 안됐다. 보청기를 끼면 소리가 울려 무슨 소리인지 분간이 안되고 빼면 소리를 잘 못 듣는다.
김 씨는 겨우 힘든 처지를 토로한다.
김씨는 2년 전에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하여 수급비지원이 끊겼다고 한다. 젊은 시절 부산에서 살았는데 피붙이가 아닌 양자 6명을 호적에 올려 양육했다. 그 후로 개가를 해 전주에서 살게 되었고 남편과는 사별한 상태였다.
▲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전동스쿠터를 타고 가는 김 할머니의 뒷모습이 씁쓸해 보인다. |
문제는 양녀 넷은 출가했지만, 아직 아들 둘이 호적에 남아 있어 김씨는 수급자에서 탈락했다. 이들은 지금 연락도 되지 않을 뿐더러 사는 형편 또한 어렵다고 했다. 동사무소 관계자는 “호적정리를 하라고 하지만 김씨는 불쌍한 사람들을 호적에서 정리한다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며 거부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노인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정책과 제도는 미흡하고 빈곤노인 스스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막막하다. 84세의 어르신이 단지 용돈을 벌기위해서가 아니라 생활과 생계를 위해 날마다 폐지수거라는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하고, 그것도 수술과 질병으로 고통스런 몸을 이끌고 거리로 나서야하는 처지가 얼마나 고단할까를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김 씨처럼 수급자에서 탈락한 경우라면 상황은 더 막막하다. 김 씨의 삶은 처참할 정도다.
김 씨는 실제 30년 전 인근에 관공서를 지을 때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함바식당(현장식당)을 운영하였고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
건물벽 옆으로 수거한 폐지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건물은 등기도 없는 가건물이라고 했다. 외부로 통하는 문을 열면 바로 거실 겸 주방으로 사용하는 장소가 있다. 한눈에도 외벽이 너무 얇고 허술해 여름에는 무척 더울 것 같고, 겨울에는 너무 추울 것 같았다.
실제로 겨울에는 방안에 수돗물이 얼어서 사용할 수 없어 보였다.
김 씨는 중학교 2학년 외손자가 있다. 손자는 딸의 아들로 생후 일주일 되면서부터 양육했다고. 나이 마흔에 낳은 딸이 아버지도 없이 낳은 아이를 돌볼 처지가 아니라고 한다. 지금 딸은 병(뇌출혈로 수술)이 들어 아이를 돌볼 수도 없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죽을 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했다.
마침 이웃에 살고 있는 주민 양찬숙(가명)씨가 김 씨의 사는 형편을 대변했다.
양 씨는 “몇 년 전에만 해도 1톤 트럭 분량의 폐지를 모으면 12만원 정도를 받았는데, 지금은 4-5만원 정도 밖에는 못 받는다. 한달에 폐지를 수거해 받는 4-5만원과 9만 여원의 노령연금, 손자앞으로 나오는 수급비가 생활비의 전부”라며“두 달에 한번 동사무소에서 손자앞으로 쌀 20kg이 지급된다. 냉장고와 세탁기는 오래되어 제 기능을 못하고, 무릎을 굽힐 수 없어 청소를 할 수 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밤에 폐지가 나오는 경우가 있어 늦은 밤까지 전동스쿠터로 폐지를 수거하러 다닌다”면서 “어두운 밤길에 교통사고라도 당할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이렇듯 정부의 노인정책과 제도 밖에 있는 노인빈곤 문제에 대한 관심과 도움이 그 어느때 보다 절실이 요구된다
▲ 박귀녀(금암노인복지관 사회복지사) |
그러나 김씨처럼 손자와 함께 생활하는 경우는 독거노인친구만들기 사업 대상자 발굴에서도 제외된다.
노인 문제 전문가들은 “김 씨처럼 당장 드릴 수 있는 도움이 없다는 게 안타까워 무기력증을 느끼는 복지사들의 상담도 적지 않다”며“노인 빈곤 문제가 어르신이 처한 형편을 볼 때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이 복잡다단하계 얽혀 있는 만큼 종합적인 접근과 해결을 도울 수 있는 사례 관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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