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한솔 계백공 아니시오?”
“누구십니까?”
“나는 덕솔 연기신이오.”
“아아.”
계백이 다가가 앞쪽 자리에 앉아 머리를 숙였다.
“저를 알아보십니까?”
“먼발치에서 뵈었소.”
“그런데 이곳은 어쩐 일이십니까?”
이곳은 사비도성 남문에서 20리 떨어진 주막이다. 이곳 주막 앞에서 대로(大路)가 동서남북으로 갈라지기 때문에 길손들이 모이는 것이다.
“나는 현동성으로 태왕비 마마의 심부름을 가오.”
“태왕비 마마의 심부름을 가십니까?”
“예, 그곳에 태왕비 마마의 제단이 있소. 그 제단에서 신라에 계신 조상께 제를 지내는 것이요.”
“아아, 과연.”
“내가 계속해서 태왕비 마마 대신으로 그곳에 다녀오지요.”
“수고 많으십니다.”
“그런데 한산성주로 가신다니 고생이 많으시겠소.”
“아닙니다.”
그때 주막 안으로 화청이 들어섰다. 그 뒤를 문독 곽성이 따른다.
“여기 계셨군요.”
떠들석한 목소리로 말한 화청이 다가서자 계백이 물었다.
“아니, 나솔 여긴 왠일이오?”
“여기 계실 것 같아서 들렸습니다.”
화청이 수염 투성이의 얼굴을 펴고 웃었다.
“제가 한산성의 부성주로 임명되었소.”
“아니, 도성의 동부(東部)수비대장으로 임명되지 않았소?”
“제가 병관 좌평께 부탁을 했더니 바로 조치를 해주셨소.”
그때 뒤에 서있던 곽성이 다가서서 말했다.
“소인도 점구부에서 빼주셨소. 한산성주 휘하의 문독이요.”
“이런.”
계백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내가 덕(德)이 모자란데도 동행하여 주는구려.”
“우리는 기마 정찰대에서부터 생사(生死)를 함께한 사이 아닙니까?”
화청이 웃음띤 얼굴로 말하더니 연기신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밖에서 기다리시지요.”
둘이 주막을 나갔을 때 연기신이 계백에게 말했다.
“나는 문관(文官)이어서 무관(武官)들의 이런 우정을 보면 부럽습니다.”
“우정은 무관들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덕솔.”
계백이 웃음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서로 뜻이 맞으면 문무관이 갈릴 필요가 있습니까?”
“옳으신 말씀이오.”
연기신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기회가 오면 한솔을 자주 찾아 뵙도록 하지요. 한솔같은 영웅을 알게 된 것이 행운이오.”
연기신과 헤어진 계백이 주막 밖으로 나왔을때 기다리고 있다 화청이 대뜸 말했다.
“한솔, 그자가 연기신 아닙니까? 주막 하인의 말을 듣고 한솔을 막 모셔 오려던 참이었소.”
화청이 찌푸린 얼굴로 투덜거렸다.
“왜 첩자라는 소문이 난 놈과 상종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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