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의 초가집 마루 밑에는 작은 생강 굴이 하나 있었다. 집 앞 밭뙈기에서 자란 생강은 잎이 변색하는 10월이 수확적기인데, 서리를 맞으면 동해(凍害)를 입는 까닭에 어머니는 그 굴에 생강을 저장 보관하시곤 했다. 덕분에 나는 철부지 때부터 생강과 친해질 수 있었고, 지금도 매일 아침 생강가루를 물에 타 복용하고 있다. 군청 집무실 책상 위엔 생강을 얇게 저며 만든 편강을 두고 심심한 입을 달래거나 손님들에게 권한다.
갑자기 ‘생강 예찬론’을 펼치는 이유는 며칠 전에 완주군의 ‘봉동 생강 전통농업시스템’이 국가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됐기 때문이다. 2013년부터 우리나라가 도입한 ‘국가중요농업유산’은 농업과 농촌의 다원적 자원 중 100년 이상의 전통성을 지닌 것을 보전하고 전승하기 위함이다. 전남 청산도 구들장 논과 제주 밭담이 처음 지정된 이후 봉동 생강이 전국적으로는 13번째, 전북에서는 2번째 지정이다.
희소식을 접한 직후, 나는 오랜만에 추억의 생강 굴을 떠올리게 됐다. 이번에 봉동 생강 전통농업시스템이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된 근본 배경도 바로 수확한 생강을 오랫동안 자연 보관할 수 있도록 땅을 파내 저장기능을 확보한 구조였다. 과학적이면서 독창적인 저장 시스템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하! 그때 어머니의 그 생강 굴이 대단한 과학이었구나!”라고 다시 깨닫게 됐다. 완주군수에 취임한 이듬해인 2015년에 주민여론 등을 거쳐 봉동읍 낙평리 주공아파트 옆 봉동근린공원을 ‘생강골공원’으로 명칭 변경한 것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봉동 생강의 명성을 회복해줄 이번 쾌거는 주민들이 공동체를 구성해 직접 일궈낸 성과라서 더 크고 깊은 의미가 있다. 봉동지역 생강 농업인과 대학 교수 등 30여 명이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농림축산식품부에 기본계획을 제출하고 적극 설명하는 등 지대한 공을 들였다. 민(民)이 주도하고 관(官)은 단지 지원하는 ‘민간 주도’라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완주군 봉동읍은 우리나라에서 생강이 최초로 재배된 지역이다. 이는 허준의 동의보감을 비롯한 각종 역사 서적에서 지속적으로 입증돼온 사실이다. 봉동읍에서 생강 설화인 ‘구바우 전설’이 전해지는 것도 ‘생강 메카’의 반증이다. 구바우 전설은 비봉면 봉실산(鳳實山) 아래 ‘구바우’라는 아홉 개의 바위가 있는 곳에서 신비한 약초가 발견돼 많은 사람을 구했는데, 이 약초가 바로 생강이었다는 내용이다. 이 전설은 창작 어린이 뮤지컬 ‘아홉 번 산 고양이’로 제작돼 아이들의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봉동 생강의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이를 계기로 봉동 생강의 옛 명성을 회복하고, 나아가 완주를 대표하는 명물로 육성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다행히 이번 지정으로 국비와 도비 지원에 군비를 보태 농업유산의 체계적인 정비와 브랜드 가치 증진, 농가 소득증진을 위한 연계사업 등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봉동을 중심으로 온돌식 토굴(508개)과 수직 강하식(336개), 수평식(21개) 등 다양하게 분포해 있는 생강 저장 굴을 잘 보존하고 관광 체험과 경관 농업으로 육성하는 일도 중요 과제이다. 전통이 사라지는 요즘, 작은 집이라도 매입해 농기구와 생강 사진, 생강 제품을 전시하는 소박한 전시체험관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봉동 생강이 완주군의 또다른 이름이 되도록 10만 군민의 지혜를 모아갈 계획이다.
/박성일 완주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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