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매미가 그대로 있다. 아파트 10층 창문 방충망에 매미가 사흘째 꼼짝도 하지 않고 붙어있다. 가랑비를 맞으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미동도 없다. 매미가 배고프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수시로 관찰하게 된다. 매미는 이슬만 먹고 산다더니 사실이었다.
매미의 일생은 참으로 경이롭고 동시에 애잔하다. 짝짓기 후 매미 암컷은 나무의 줄기에 알을 낳는다, 겨울을 난 알은 유충으로 깨어난다. 깨어난 유충은 나무를 타고 내려와 땅 속으로 들어가 나무뿌리에서 수액을 빨아 먹으며 오랜 기간 동안 성충이 되기를 기다린다. 성충이 되기까지 보통 7년이 걸리지만 종류에 따라 5년, 13년, 17년이 걸리기도 한단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땅속에서 살던 유충은 성충이 된 여름밤 드디어 땅 위로 나와 매미로 우화한다. 이후 매미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열흘 남짓에 불과하다. 이 짧은 기간에 짝을 찾아 짝짓기를 한 후에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래서 수컷 매미들의 짝을 찾기 위한 울음소리가 그리도 처절한 모양이다.
우리 선조들은 매미는 인간에게 일체의 해를 끼치지 않는 덕충(德蟲)으로 여겼다. 매미의 5덕인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머리 모양이 선비가 쓰는 관(冠)을 닮은 문덕(文德), 이슬만 먹고 사는 청덕(淸德), 곡식과 채소를 해치지 않는 염덕(廉德), 집을 짓지 않는 검덕(儉德), 때 되면 왔다가 때 되면 미련 없이 떠날 줄을 아는 신덕(信德)을 갖추고 있다고 여겼다. 매미가 인간에게 끼치는 유일한 해악은 소음일 것이다. 최고 100데시벨(dB)에 달하는 시끄러운 울음소리는 엄청난 소음공해다. 집회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확성기 소음 기준치가 주간 65데시벨, 야간 60데시벨인 점을 고려한다면 매미의 울음소리는 공해임에 틀림없다. 지난 1990년 미국 시카고에서는 매미 떼가 하도 울어대 중요한 음악행사가 취소되기까지 하였단다.
때 마침 경남 양산시가 공직사회 청렴문화 확산을 위한 방안으로 ‘매미의 청렴정신’을 내세웠다고 한다. 양산시는 내부 행정시스템 메인화면 상단에 ‘매미의 오덕인 청렴(淸), 검소(儉), 염치(廉), 신의(信), 학식(文)을 실천하는 청렴한 하루’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양산시장은 “조선시대 임금은 매미의 교훈을 항상 염두에 두고 정무를 맑고 투명하게 수행하라는 뜻으로 매미 날개 모양을 형상화한 익선관(翼蟬冠)을 썼다. 공직자들이 청렴한 공직생활을 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매미의 오덕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다산 정약용도 같은 생각이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지인인 군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을을 다스리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다산은 관리가 갖춰야 될 최고의 덕목으로 첫째도 염(廉), 둘째도 염, 셋째도 염이라고 하였다. 청렴함이 으뜸이라는 것이다. “염(廉)은 밝음을 낳으니 사물이 정(情)을 숨기지 못할 것이요, 염은 위엄을 낳으니 백성들이 모두 명령을 따를 것이요, 염은 곧 강직함이니 상관이 감히 가벼이 보지 못할 것이다”(박석무 편역,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다산이 살았던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미 같은 공직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 안타깝다. 앞으로 모든 장차관급 인사와 국회의원, 지방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취임식에서 익선관을 쓰고서 선서를 하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우리 인간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매미에 대한 보답으로 설사 매미가 잠을 설치게 울어대더라도 측은지심과 관용의 덕을 베풀어 주어야겠다. 우리 선조들은 더위를 이기는 8가지 일(消暑八事, 소서팔사) 중의 하나로 매미소리 듣는 것을 꼽기도 하였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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