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것도 심상치 않은 일이겠으나 죽는다는 문제도 범상치 않다.
유언은 삶과 죽음의 마지막 갈림길에서 내뱉는 말이기에 더욱 그 사람의 일생을 돌아보게도 할 것이다.
화가 페루지노는 목사의 마지막 기도를 거부하면서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저세상에서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고 싶소.”, 시인 하이네는 “하나님은 나를 용서할 것이요. 그것은 그의 직업이니까.”, 오 헨리는 “불을 밝혀라. 어둠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긴 싫다.”라고 하였지만, 루스벨트는 “불을 꺼.”였다.
러시아 혁명가 미카엘 베스트채프의 유언은 올가미 줄이 중도에 끊어지자 “나에게 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군. 이것조차 뜻대로 안 돼.”,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교수대에 올라가면서 “실례합니다.”, 토머스 모어는 턱수염을 한쪽으로 제치면서 “이것이 왕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았으니 이것까지 자를 필요는 없소.”, 헤겔은 “나를 이해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지. 그런데 그 사람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했어, 나는 이유도 모른 채 태어나 이유도 모른 채 살다가 왜 이렇게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다.”, 피에르 가상디는 아들에게 “나를 좀 일으켜다오. 지는 해를 보고 싶구나.”, 원망으로 죽음을 맞이한 카이사르는 “블루투스 너마저.”,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아쉬움을 남긴 로트레크는 “바보 같은 늙은이.”, “아쉬움만을 남긴 당신을 사랑해. 사라 당신을 사랑해.”만 반복한 미국 대통령 제임스 포크, “프랑스 육군 사령관, 조세핀”을 되뇌다 죽은 나폴레옹 등의 유언이 있다.
신문 발행인 베른은 “오늘 뉴스는 뭐지?”, 문법 학자 도미니크 부르는 “나는 막 죽어간다. 또는 죽을 것이다. 이 두 가지 표현이 모두 가능하다.”, 의사였던 조제프 헨리 그린은 스스로 자기 맥박을 집으며 “멈췄군”, 역시 의사였던 조지 쿰은 “지금 내 느낌으로 봐선 나는 분명히 죽고 있소. 차라리 잘 되었소.”, <표본실의 청개구리> 의 작가로 유명한 염상섭은 “소주 한 잔만”이 마지막 유언이었다 한다. 표본실의>
예에서 보듯 자기 삶에 따라 유언이 나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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