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생이었거나, 아쉬웠던 인생이었거나, 또는 원망의 세월이었거나 간에 누구에게나 죽음은 기어이 한번은 찾아오고야 만다. 시인 김지하가 젊은 날 한 때 ‘어름사니‘(남사당 패거리의 줄 광대)라는 시에서 ’죽음은 좋은 것, 어차피 한번뿐일 테니까‘라고 호기를 부렸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누구의 죽음이라도 그 지역 문화에 따라 처리될 뿐이다. 볼케나우가 밝힌 내세관에 의하면 첫째 이집트 사람들처럼 죽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육체인 세트(Set)도. 영혼들 바(Ba)와 카(Ka)도 영원히 살아있다는 사상, 그래서 미이라를 만들고 뇌와 내장은 적출하여 카노보스라는 병에 밀봉하여 보관하는데도 심장만은 적출하지 않고 주술이 깃든 부적으로 덮어 소다와 향료를 넣은 수지로 만든 마포를 여러번 감아 미이라로 보관했을 것이다. 그리스의 사학자 헤로도투스의 증언이다. 물론 살았을 때의 신분에 따라 다르다. 어떤 자는 넓은 피라밋이나 마스터파에 들어가고 천한 사람들은 그냥 들판에 던져진다.
두 번째는 죽음을 수용하는 것이다. 죽으면 끝이다. 그래서 실존주의가 발달된 그리스 지역이다. 그들은 24시간 이내에 장례를 치러도 안 되고 48시간을 넘겨도 안 되는 관례를 가지고 있었다.
셋째는 기독교 문명권의 죽음이다. 그들은 죽음을 인정하지만 그 죽음을 어떤 형태로든지 초월하려 한다.
넷째가 우리나라를 비롯 동양문화권에 있는 나라들의 죽음과의 연결 사상이다. 육체는 소멸되지만 영혼만은 불멸하여 윤회를 거듭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례의 방법이나 법도가 더 복잡해진 측면도 있다. 우선 장레를 치루는 일수도 신분이나 재산에 따라 3일장, 5일장, 심지어는 광개토대왕처럼 3년장으로 치러지는 경우도 있다. 육체에 다시 영혼이 깃들기를 기다리는, 즉 예수님도 아닌데 부활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무덤의 내용도 허총(虛塚)을 비롯 혈총(血塚), 발총(髮塚), 치총(齒塚) 등이 있으며 때로는 신주(神主)만 묻기도 했다. 전쟁에 나가는 남편이나 아들에게 문신을 해 주고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전장을 돌아다니며 문신을 보고 아들을 찾거나 그도 못 찾으면 문신을 할 때 피를 닦았던 손수건의 피를 묻으며 혈총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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