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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좋은 그림, 잘 그린 그림 2

고흐 - 별이 빛나는 밤에
고흐 - 별이 빛나는 밤에

아이린이 그림을 보는데 본인 스스로 인기가 높다고 생각하는 S 씨의 고풍스러운 옛 도자기와 가구들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을 눈길 한번 안 주고 그냥 통과해 버렸다. 그런데 원광대학교 미술대학장을 역임한바 있는 고 고화흠 선생의 그림 <백안(白岸)> 앞에서는 그림을 다 외울 정도로 보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고 고화흠 선생을 소개하자면, 전주사범학교 2학년 때 동기인 고 유경채 선생(당시 예술원 회장, 서울대학교 교수)과 함께 선전에 입선 경력을 가진 분으로 수채화·유화·인물화·정물화·풍경화 등을 자유자재로 대상도 모델도 없이 그렸고 특히 서예에 능하여 “그림보다 병풍이 많은 사람에게 소장되어 있다”고 본인께서 말씀하셨다. 선생의 유일한 추상 시리즈가 바로 ‘백안’이라는 제목으로 그려졌었다. 그리고 가히 주선(酒仙)이었다.

그래서 내가 아이린에게 물었다. 사람들 대부분이 잘 그렸다고 하는 저 그림은 무심히 지나치면서 왜 이렇게 이 그림은 열심히 보느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그렇다. 그의 그림은 잘 그렸다는 한 가지 뜻밖에 없다. 그러나 이 그림은 여러 가지 뜻이 있기에 오래 보게 된다.”라고 했다. 그때 S 씨가 자랑스레 귀띔해준 덕에 금방 알아볼 수 있었던 재벌의 회장이 다른 작가의 그림은 흘겨보지도 않은 채 그의 그림 앞에 곧장 다가가 서 있었다. 그 의미는 그 그림의 매매가 이미 성립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전시회가 끝날 때까지 고 고화흠 선생의 작품은 매매되지 않았다. 나는 이 글에서 절대로 화력이나 경력 따위를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화력이 아무리 좋아도 옛날식의 사고와 표현은 거절한다. 오히려 그런 것을 권위랍시고 내세우는 사람들을 저주한다. 다만 그런 것들이 삭혀져 그 바탕에 새로움을 받아드리는 겸허함을 말하려는 것이다.

자 이제 여러분이 판단해야 한다. 어떻게 그릴 것인지 무엇을 그릴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 어떻게 무엇을 그릴 것인지를 누가 강요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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