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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수석 궁정화가의 개 2

이제는 그가 그린 ‘개’를 보자. 1799년 53세의 나이로 고야는 궁정의 수석 화가가 되어 화가로서는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 그 이듬해에 자신을 신임하는 국왕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을 고전적인 방법으로 그렸다.

그런 그가 73세나 76세에 이르러 너무나 현대적이어서 당시로서는 충격으로 받아드릴 수밖에 없는 ‘개’그림을 그렸다. 온화하지만 어쩐지 음울한 색채에 간단하지만 힘차게 사선으로 나뉜 구도 그리고 거친 질감을 보인 이 그림 속의 개는 과연 무엇을 쳐다보고 있는 것일까?

마치 모래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개의 시선과 화면을 둘로 나눈 선만으로 화면에 운동감과 긴장을 만들어 내고 있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꿈쩍도 못하는 상황에서의 긴급 신호를 듣거나 보지는 않을까. 애타게 부르는 S O S.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과 공보부 장관을 역임한 소설가이자 정치인이면서 프랑스의 지성이라 불리는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 1901-1976)는 이 그림을 보면서 이것은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니라 어떤 영매靈媒가 작용하여 그린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한다.

프란시스코 고야
프란시스코 고야

고야: 에스파니아(스페인)의 화가. 마드리드의 풍속을 그리는 로코코 풍의 화려함과 환락이 스쳐 지나간 후의 덧없음을 표현하는 화가로 알려져 있으나 “나의 스승은 벨라스케스와 렘브란트와 자연” 이란 말을 할 만큼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궁정의 수석화가로 재임하였으나 1792년 귀머거리가 된 후에는 성찰적인 요소가 더욱 깊어지고 계몽사조의 영향도 있어서 세상을 풍자한 판화집 ‘로스 카프리초스’를 발간 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성 안토니오 데 라 플로리다 성당의 천정화와 같은 혁신적 대작뿐 아니라 마하와 같은 육체의 걸작도 남겼다.

그가 마음껏 그린 시대와 마찬가지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낸 고야는 인생에 있어서나 예술에 있어서 탐욕스런 만큼 대 벽화에서 소묘에 이르기까지 2,000점 가까운 작품에서 언제나 사상과 기술의 발전을 성실히 추구했다. 불우한 말년에 작성한 판화집 ’로스 디스파라데스(Los Disparates)‘나 ‘검은 그림’은 그 주재와 기법에 있어서 표현주의나 초현실주의까지도 앞지른다.

고야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비판 정신과 타고 난 반항심은 그의 변하지 않는 스페인의 서민 혼과 중년 이후에 공감한 계몽서상과의 갈등으로 인해 더욱 강화되었다. 망명지인 프랑스에서 객사, 중요한 작품들은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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