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가 사실적인 묘사에 자신이 있는 자기의 손에게만 그림을 맡겼더라면 어떠했을까. 독창성이나 예술성, 생동감이 없는 그저 그런 화가로 전락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부여받지 못한 글 쓰는 것을 이용하여 노트에 분위기를 적고 다시 그림으로 번역하는 가운데 그의 그림이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꿈과 색채로 전개되고 있었음은 필연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그는 진정한 의미의 현대인이었다. 돈이 많았지만 부둣가의 허름한 술집을 순례하며 혼자 술을 마시고 그림을 사러 온 상인들을 조롱하며 쫓아버리는가 하면, 그의 명성을 듣고 그가 앉아 있는 술집에까지 몰려와 수다를 떨면 다시는 그 술집에 가지 않는 괴벽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너그러울 때도 있다. 언젠가 그가 밝은 색조로 하늘을 그린 풍경화가 있었는데, 이 그림이 전시회에서 당시의 명사인 토마스 로렌스 경의 그림 옆에 나란히 걸리게 되었다. 그러나 터너의 선명한 색에 눌려 로렌스의 그림은 완전히 죽어 버렸다. 로렌스가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자 터너는 전시회가 개막되기 전 검정색을 붓에 푹 찍어서 자신의 그림을 컴컴하게 가려 놓았다. 친구들이 놀라 묻자 그는 말했다. “괜찮아. 전시회가 끝나고 다시 닦아내면 되니까. 가엾은 로렌스가 심란해 보여서 말이야.”
말년에 그는 인간들이 싫어서 아무도 몰래 퀸앤 거리의 자기 집을 도망쳐 나와 첼시의 오두막집을 한 채 빌렸다. 보증인을 세우기 싫었기 때문에 돈을 뭉텅이로 꺼내 집세를 현금으로 선불 했다. 평생 그렇게 많은 현금을 구경한 일이 없어 기절 직전인 주인 여자가 영수증을 쓰게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자 터너가 도리어 물었다.
“아주머니 이름이 뭐요?”
“부스 부인입니다.”
“그러면 나는 부스 씨요 더 이상 묻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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