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도 순수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을 화가 장욱진 선생께서 일찍이 이런 뜻의 말씀이 있었다.
즉, 그림을 할 때 보태는 것도 중요하지만 빼는 것은 더 중요하다는 철학적이면서 우리들에는 꼭 필요한 말씀이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언제 붓을 놓을지 몰라서 혹은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자꾸 그림을 매만진다.
대게는 아쉬운 부분을 더 손질하는데 이때 선생님의 말씀은 매우 중요하며, 빈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설계할 때부터 와 닿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지운다"와 "뺀다"의 차이를 생각한다. 지운다는 의미가 뺀다는 의미가 같은 것인지에 대하여 말이다. 왜냐하면 김철규 작가의 표현은 지우면서 완성돼가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조소 분야로 말하자면 밖에서부터 깎아내면서 완성되는 방법이기도 해서이다.
그는 작업을 할 때 이미 철저하게 계산된 형태를 바탕으로 물감을 중첩해 쌓은 뒤 건조한 다음에 정확한 형태를 근거로 샌드페이퍼로 지워가면서 완성을 해나가기 때문이다.
이제는 '주름작가'로 유명해졌지만, 나하고는 그와의 대학 시절에 인연이 있었던 것도 모르고 처음으로 그의 그림을 마주하고는 표현이 매우 상세한 민중 작가의 탄생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그가 표현해내는 작품마다 이 땅의 소외계층의 하나인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사람들의 느낌으로 그 주름진 노인들의 얼굴을 보며 프롤레타리이아 계층의 애환을 고발하고 있다 믿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그들이 생각하는 민중에게 파고들기 위해 가장 사실적인 방법으로 다가가기 때문이기도 했었기에, 같은 사고의 맥락인 줄 알았다.
그랬는데 이번에 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것만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표현을 절제하고 단순화시킬 이유가 없었는데 이번 그림들은 보는 사람들이 더 깊이 생각하고 봐야, 혹은 김철규 작가의 그림에 대한 선지식이 있어야만 비로소 느끼게 될 주름이었다.
전시실에서 잠깐 나눈 대화에서도 사람들의 그런 느낌에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일반 노인들의 주름을 통해 삶의 애환이나, 우리네 인생의 유한함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고, 그렇게 이해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번 전시는 많이 생각하고 생략하여 표현된 그림들만 전시했다.
한마디로 현대미술의 특성 중의 하나라고나 해야 할 난해성이 가미되어 일반 대중성과는 많은 거리를 두었다. 뭐가 옳은 방법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의 약력을 보다가 그의 욕심의 단면을 보고 말았다. 어디에 써먹으려는지 바로 알게 되는 '조형 예술학 박사' 취득이다.
서글프다. 이놈의 나라에선 화가로 살기에 배가 고프니까. 그리고 그들은 신분만으로도 터무니없는 존경을 받아왔으니까. 그러나 이 일화는 알아두었으면 한다.
학위를 주는 권위 있는 자들이 피카소에게 학위를 주기 위해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피카소를 찾아가서 온 취지를 고했다. 그러자 피카소가 불같이 화를 내며 "이 지구상에서 어느 놈이 감히 이 피카소에게 학위를 준단 말이냐?".
이해를 돕기 위해 전 전시회의 그림 하나를 맨 위에 소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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