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영화 뿌리 군산, 한국전쟁 이전 수 많은 작품 제작… 지금도 '촬영 핫플'로 각광
1950~60년대 영화 황금기, 2000년 전주국제영화제 개최되면서 '천만 영화' 단골 배출
천만 관객 영화인 <기생충>과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2>가 전주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북이 K-드라마·영화 촬영지로 주목받고 있다.
접근성이 좋은 수도권도 아닌 비수도권인 전북이 어쩌다 영화로 이름을 날리게 됐을까.
전북 영화의 출발은 한국전쟁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북 영화사>, <전북의 재발견> 등 자료에 따르면 전북의 영화사는 한국전쟁 이전 군산에서 시작됐다.
군산은 '항구도시'라는 특성상 많은 사람이 몰리고 외래문화까지 빠르게 들어온다. 영화 등 여가 문화가 발달하기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에 전북 최초의 공연장인 군산극장과 영화관인 희소관 모두 군산에서 문을 열었다.
또한 전북에서 처음으로 영화가 제작된 것도 군산이다.
1948년 군산신문의 편집장이자 일본대학 영화과를 졸업하고 일본 신코키네마에서 근무했던 이만흥은 16mm 영화 <끊어진 항로>를 제작했다. 지금은 필름이 소실됐지만 전북 영화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영화다.
이후 분단 상황으로 전북 영화인들이 부산, 대구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전북 영화판'도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나 이만흥 감독의 <애정산맥> 등이 촬영되면서 흩어졌던 향토 영화인들을 다시 전북으로 불러 모으는 계기가 됐다. 전북은 1950∼60년대 한국 영화 제작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한미 합동 제작 영화인 <아리랑>, 이만흥 감독의 <탁류>를 비롯해 <약진하는 전북>, <선화공주>, <피아골> 등 흥행작이 잇따라 제작됐다. 당시 영화계를 이끌던 인기 스타·대배우가 전주를 찾는 등 전북 영화의 황금기가 찾아왔지만 황금기도 잠시. 1960년대에 들어서 전북 영화인들이 서울로 상경해 영화를 제작하면서 전북 영화의 맥도 끊겼다. 1970∼90년대 침체기를 겪다 2000년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면서 전북이 다시 영화로 이름을 날렸다.
영화제는 많은 사람이 즐기는 대중적인 영화가 아니라 대안·독립적 영화를 정체성으로 삼으며 한국 영화 산업에 한 획을 그었다. 현재 많은 영화 마니아들이 찾는 전국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뒤이어 2001년 4월에는 전주영상위원회가 출범했다. 2008년에는 지자체가 설립해 위탁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촬영소인 전주영화종합촬영소도 문을 열었다. 첫 작품은 2008년 최고의 화제작인 영화 <쌍화점>이다.
최근 전주는 '한국판 할리우드'를 꿈꾸며 글로벌 영화영상산업 수도를 선언했다. 단순한 '촬영 도시'를 넘어서 영화·영상산업의 거점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전북이 영화계에 새로운 역사를 쓸지 이목이 쏠린다.
우범기 전주시장은 "글로벌 OTT의 성장, K-영상 콘텐츠 확산 등 급변하는 세계 영상산업 환경 속에서 구조 변화에 대응하고 직접적인 경제 효과를 창출하는 획기적인 산업 전환에 나서야 하는 시기다"면서 "전주에서 탄생할 제2의 오징어게임, 기생충이 100년 후에도 전주의 경제가 되고 문화가 될 수 있도록 세계 시장과 손을 맞잡고 힘차게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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