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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27. 역사를 지켜낸 곳, 사고 - 역사는 기억의 투쟁…잊히고 지워야 할 과거는 없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조지오웰의 작품 <1984>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이다. 과거의 기록은 힘 있는 자들의 기록이라는 말도 있지만, 가장 힘이 있던 왕을 중심으로 한 기록은 당대 역사의 사실을 헤아려보고 지금까지 이어오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선조는 예로부터 왕을 중심으로 한 일들을 기억하고 남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 고려시대부터 춘추관과 예문관을 상설하여 조선시대까지 이어오며 상세히 기록하였다. 대부분 전대의 왕이 죽고 난 후 다음 왕이 즉위된 초창기에 실록을 편찬하였으며 이를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에 안전하게 보관해 왔다. 그렇게 특별한 관리를 받은 사고들도 재난과 외세의 침입에 훼손되었고, 그 와중에 기록한 사람들 못지않게 역사의 저장고인 사고를 지켜낸 사람들이 있어 지금도 우리는 과거 역사를 디딤돌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왕의 곁에서 기록되는 실록은 춘추관 내 임시로 둔 실록청에 재상을 중심으로 문필이 뛰어난 대제학을 비롯한 사관(史官) 등으로 조직되어 편찬되었다. 사관은 두 명이 조를 이루어 왕이 잠이 들기 전까지 역할을 나누어 왕의 행동을 기록하고 왕의 말을 기록하는 등 모든 언행을 기록하였다. 사관이 기록한 공식적인 사초는 관장사초(館臧史草)라 하여 춘추관에 보관하였고, 미처 기록하지 못한 사항을 집에 돌아와 기억을 되살려 기록한 것을 가장사초(家臧史草)라 하였다. 가장사초도 왕이 죽고 나면 실록편찬을 위해 제출해야 했지만, 미처 제출하지 못한 가장사초는 사관이 죽으면 함께 묻었던지라 종종 가장사초가 사관의 무덤에서 발견되기도 한다.국보 제151호인 조선왕조실록은 태조에서 철종까지 조선왕조 472년의 역사의 실록이 지정되었는데, 1935년에 편찬되었으나 국보에 못 들어간 고종실록과 순종실록도 있다. 그러한 연유는 이전 왕들의 실록이 4부에서 5부만 보관돼 있는 데 반해 일제 치하에서 200부나 발간되어 역사적 가치도 떨어진 데다가, 총편집인을 일본인이 맡은 까닭에 외면을 받고 세계기록유산 등재에서도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제외되었다.집필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의 파기와 보관도 철저하게 다루었던 실록청은 편찬이 끝난 실록의 보관에 힘을 다했다. 사고에 보관된 실록은 종이로 제작되었기에 습기와 벌레의 피해를 막기 위해 3년에 1번가량 햇볕에 말리거나 바람을 쐬게 하는 포쇄 과정을 거쳤다. 또한, 국가의 제례나 행사에 과거의 전례를 참고하기 위해 사관이 살펴보는 것을 제외하고는 열람을 금지하며 엄정하게 관리했다. 실록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사고는 곧 당대의 중요한 기억을 보존하는 장소였기에, 안전한 위치에 짓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복사본을 만들어 여러 곳에 나누어 둘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궁궐 안에 내사고(內史庫)를 두고, 외사고(外史庫)를 지방에 두는 이원체제로 관리했다. 그중 고려시대의 내사고는 개성 수창궁(壽昌宮)에 있었고 외사고는 충주에 충주사고로 두었다. 이후 내사고는 수창궁의 화재, 한양으로의 천도 등에 따라 궁궐 안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조선시대 1440년(세종 22년) 경복궁 안에 세운 춘추관에 정착하였다. 외사고는 1439년(세종 21년)에 충주에 이어 경상도 성주와 전라도 전주에 새로운 사고가 설치되어, 도서관 역할을 한 내사고인 춘추관사고, 보존을 목적으로 둔 외사고인 충주사고, 성주사고, 전주사고의 4대 사고 체제가 완성되어 임진왜란 이전까지 운영되었다.춘추관(春秋館)에서 아뢰기를, 《태조실록(太祖實錄)》 15권, 《공정왕실록(恭靖王實錄)》 6권, 《태종실록(太宗實錄)》 36권을 이제 이미 각각 네 본(本)씩을 썼사오니, 한 본(本)은 본관(本館)의 실록각(實錄閣)에 간직하여 두고, 세 본(本)은 충주(忠州)전주(全州)성주(星州)의 사고(史庫)에 나누어 간직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10권, 세종 27년 11월 19일특히, 외사고가 전주에 자리 잡게 된 까닭은 전주가 조선 왕실의 본관이자, 태조의 어진이 경기전에 봉안된 것을 중요하게 여긴 것으로 실록을 차례로 옮겨가며 경기전 내부에 실록각을 설치하여 보관하였다. 초기 3곳 외사고 중 하나였던 전주사고는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춘추관, 충주, 성주의 사고가 불에 탄 후, 유일하게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남게 되면서 역사적인 의의를 갖게 되었다. 대부분 평지에 있던 사고들은 외부의 침략 등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지만, 다른 곳의 사고와 달리 전주사고가 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전주 지역 선비였던 손흥록, 안의, 승려 등이 실록을 안전한 곳에 옮겨 지켜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중 사고를 지키기 위해 분투했던 지역민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왜군이 전주 인근에 진입해왔을 때, 당시 경기전 참봉 오희길은 태조의 어진과 사고의 실록들을 안전하게 옮겨 보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실록 총 805권 614책 및 기타 전적 등을 옮기기 위해서는 말 20여 필과 많은 인부가 필요했다. 이를 고민하던 중 지역의 명망 있는 선비 손홍록을 찾아가 의논하였다. 나라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도록 보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 혼자 하기엔 역부족이오니 도움을 청하고자 합니다.고 하자 손흥록은 흔쾌히 뜻을 같이하기로 하였다. 뜻을 함께한 안의와 조카 손숭경, 하인 30여 명과 함께 태조의 어진과 실록을 정읍 내장산의 은봉암으로 옮겼다가 하루 뒤 산중 더 깊숙이 들어가 용굴암으로 피난시켰다. 그 후 태조의 어진을 따로 비례암으로 옮겨 안전하게 보관될 수 있었다.그 덕분에 전주사고의 실록은 남았지만 이후 나머지 소실된 실록의 복구와 안전한 보존이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전주사고본을 모본으로하여 2년 9개월 만에 4부의 실록을 다시 완성하였고 이를 더욱 안전하게 보관할 장소로 깊은 산속 험한 장소들을 고려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강화도 마니산, 오대산, 태백산, 묘향산이 채택되었고, 이에 따라 전주사고의 실록은 마니산으로 옮겨졌다가 인근의 정족산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묘향산사고는 한반도의 북방에 위치한 탓에 중국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관리 소홀이 지적되어 논의되다 묘향산사고의 실록이 1633년(인조11년) 무주 적상산(赤裳山)으로 옮겨졌다. 이로써, 4대 사고에서 춘추관, 정족산, 오대산, 태백산, 적상산의 5대 사고의 시대가 되었다.하지만, 이후 적상산사고의 실록들은 1911년 일제 강점기 창덕궁 내 장서각으로 옮겨졌다가, 6.25 전쟁 때에 북한으로 옮겨졌고, 다른 사고의 실록들도 조선총독부로 옮겨지고 일본으로 반출되는 등 나라의 운명과 같은 풍파를 겪게 되었다. 북한으로 넘어간 적상산사고의 실록은 1980년도에 번역되었고, 강화도로 건너간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은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적상산사고는 1992년 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될 위기에 놓이자 적상산 위쪽으로 옮겨졌다. 현재, 4대 사고와 5대 사고 중 전라북도에 있는 전주사고와 적상산사고만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당시 사고의 역사성을 전해주고 있다.역사는 기억의 투쟁이다. 한쪽에서는 기념해야 할 것들을 간직하여 소중한 미래의 발판으로 삼고 다른 한편에서는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피눈물을 삼키며 지난 과거를 곱씹는다. 민족이나 공동체와 연관된 기억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교훈을 전달한다. 우리 선조들이 사고를 여러 곳에 나누어 두면서까지 역사를 지키려 했던 까닭이다. 그 애쓴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의 면면도 다시 살려 돌이켜 보아야 한다.역사 안에서 잊히고 지워야 할 기억은 없다. 당대 왕의 기록물인 실록을 두려워하고 귀히 여기며 봉안에 힘썼던 선조들의 지혜를 다시 보게 된다. 디지털 세상이 도래하면서 역사의 기록과 저장의 수단이 달라져 보관에 대한 개념의 차이가 있지만, 오히려 또 다른 오류와 변종의 폐단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2018년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지나온 역사를 복기하며 지난 시간과 작금의 기억들을 유산으로 잘 남겨내는 것 또한 과거를 잘 이어갈 사명일 것이다.

  • 기획
  • 기고
  • 2018.02.02 23:02

판소리 대중화 꿈꾸는 왕기석 명창 "판소리, 우리 시대 이야기 담는 소통과 감동의 그릇 되어야"

차고 넘치는 재담과 타고난 목, 지칠 줄 모르는 소리 공력으로 우리시대의 판소리를 이끌었던 소리꾼, 자신만의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냈던 명창이 있었다. 70여년 공력을 소리에만 들이고도 정작 득음은 언감생심이라며 하루도 소리를 입에 붙이지 않고는 살 수 없고 다시 태어나도 소리를 하겠다고 했던 명창. 2003년 작고한 박동진 명창이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15년, 아직 소리판은 그를 그리워하지만 그 뒤를 잇고 있는 소리꾼들의 대열이 그리 미약하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한국의 오래된 유산 판소리는 세계가 주목하는 유산이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의 판소리는 어디쯤 와있을까.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전통판소리와 판소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형식의 무대들은 대중들과 가까워졌을까. 오늘의 판소리 무대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왕기석 명창(55, 정읍시립국악단 단장)을 만났다. 크고 작은 창극 무대를 아우르며 자신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청중들을 기꺼이 찾아가는 우리 시대의 광대. 다른 사람보다 늦게 시작한 소리공부의 부족함을 타고난 재능에만 기대지 않고 노력으로 채워 끝내 오늘의 소리판을 대표하는 명창으로 우뚝 선 그의 길을 들여다보면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여덟 살에 연수단원으로 들어가 30여 년 동안 몸담았던 국립창극단을 떠나온 것이 2013년. 그는 이제 고향인 정읍과 전주를 중심으로 판소리 대중화를 이어내는 통로를 다양한 형식으로 실현해내고 있다. 그러나 그는 판소리가 여전히 공간에 갇혀 있고 대중들의 일상에 놓이는 음악이 되기에는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판소리를 우리 시대의 음악으로 들여놓기 위해 누구보다도 깊게 고민하고 있는 그는 3시간 가깝게 이어진 인터뷰 동안 현실적 한계에 때로 좌절하고 때로 울분을 터뜨렸으나 결국 들려준 이야기는 판소리가 지닌 가치와 힘, 그래서 포기할 수 없다는 희망과 가능성이었다. -지난 연말 바쁘셨더군요. 왕기철 명창과 창극퍼레이드까지 진행하셨던데요. 해마다 연말이면 공연이 이어지는데 작년에는 특별히 기획된 공연도 많았고 개인적인 일까지 더해져 분주했었습니다. -정읍시립국악단에 오신 후로 자체 제작 무대도 그렇지만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창극 작품 출연도 눈에 띄게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에너지 넘치는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리꾼으로 무대에 서는 일 못지않게 창작과 제작에까지 나서는 상황이니 앞으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웃음) 개인적으로 버거운 일정이 되기도 하지만 내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자리는 가능하면 가려고 합니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바빠질 수 없게 되지요. -소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집안 내력이 있나요. 부모님은 예술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다만 아버님이 농한기에 사람들이 사랑방에 모여 있으면 책을 읽으며 들려주시고 소리도 한 대목씩 하셨는데 그 소리가 구수했답니다. 그리고 작은 아버지는 상여소리를 아주 잘하셔서 동네에서 선소리꾼을 도맡아 하셨답니다. -재능은 유전적으로 타고 나셨군요. 소리는 셋째 형님(왕기창)이 먼저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형님 덕분에 저와 바로 윗 형인 왕기철 명창이 그 길을 가게 되었어요. 기창 형님이 가족들보다 먼저 서울로 갔는데 박초월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했거든요.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형님은 라면 하나를 쪼개어 끼니를 떼우며 소리를 배우러 다니셨어요. -그렇게 지난한 길을 어쩌다가 함께 가시게 되었습니까. 가족이 모두 서울로 이사를 갔는데 생계가 막막했어요. 열네 살 즈음부터 온갖 일을 다 했지요. 그러다 국립창극단 단원이 된 형님을 만나러 갔는데 거기서 남해성 선생님 권유로 소리를 하게 되었어요. 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는데 종종 들었던 형님 소리를 흉내 내 불렀지요. 선생님이 형님께 목이 좋으니 소리를 시켜보라고 하셔서 바로 연수단원이 되었습니다. 그때가 열여덟 살, 소리길이 제 운명이 되었지요. -형님이 국립창극단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가족들의 생계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형제가 그 길을 가는 것에 반대하지 않으셨나요. 아주 심하게 반대하셨어요. 바로 윗 형이 왕기철 명창인데 그 형을 기창형님이 먼저 서울로 끌어들여 박귀희 선생님 제자로 넣었거든요. 이미 두 형제가 소리를 하는 판에 저까지 나섰으니...... -늦게 소리길에 들어섰으나 국립창극단 창극 작품에 대부분 주역을 맡으셨던데요. 타고난 재능도 그렇지만 대단한 노력이 더해졌을 것 같습니다. 첫 작품은 어땠습니까. 당시 남자 단원들이 부족했어요. 덕분에 제가 일찍부터 주역을 맡을 수 있었죠.(웃음) 첫 주역으로 선 작품이 86 아시안게임문화예술축전 작품으로 제작했던 용마골 장사 인데 저로서는 잊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첫 작품 말고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천명도 그렇고 좋은 작품이 많죠. 그러나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은 첫 작품입니다. 허규 극장장님이 연출 하셨는데 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재공연할 때 제가 연습시간에 늦었어요. 하루아침에 역할을 박탈당하고 무대 뒤에서 심부름을 해야 했어요. 며칠 지켜보시던 허규 선생님께서 내가 당장 자를 수도 있지만 네 장래를 봐서 자르지는 않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부끄럽고 자괴감이 들어 사표를 써서 일주일 이상 가지고 다녔습니다. -어찌됐건 복귀는 했겠군요. 저 때문에 속상해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았어요. 선생님들이 저렇게 가슴 아파하시는데 덜컥 그만둔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열심히 심부름을 했죠. 다행히 88년 서울 올림픽 문화예술 축전 때 춘향전을 공연했는데 그때 허규 선생님이 다시 기회를 주셨어요. 돌이켜보면 정말 감사한 일이죠. 늦게 소리를 시작했지만 어린나이에 주인공을 맡아 혹시 건방져질까 싶으니 한번 꺾어주신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그 이후부터는 비교적 순탄하게 길을 걸어 왔습니다. -창극단에서 형님과 함께 활동했다는 것도 특별한 경우 아닌가요. 좋은 일이지만 제게는 큰 아픔이기도 했습니다. 가장 먼저 소리를 시작한 형님이 아픔을 겪게 되었거든요. 당시 창극단 오디션은 대단했습니다. 열 몇 명씩 탈락하는 일도 있었는데 어느 해인가 형님이 오디션에서 탈락하신 거예요. 통보를 받고 제가 형님을 모시고 가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털썩 주저앉으시더라고요. 그때 나는 형님 덕분에 소리를 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보면 동생들에게 치어 빛도 못보고 이런 일을 당하는가 싶어 죄송하고 만감이 교차했어요. 형님은 이후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 도배일 미장일까지 했지요. 다시 복귀는 했지만 또 시련을 겪으셨는데,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50대 초반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나셨죠. -듣다보니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소리를 늦게 시작하셨고 정통 판소리가 아닌 창극 소리를 먼저 시작한 셈인데, 그 과정에서 혹시 갈등이나 개인적인 고민을 없었습니까. 왜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창극단에 먼저 들어갔으니 창극을 위주로 하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정통 소리를 공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주위에서는 왕기석 소리는 정통 소리가 아니라 창극 소리라는 얘기가 있었어요. 그 편견을 벗고 싶어 더 열심히 소리 공부를 했어요.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당시 허규 극장장님이 당대의 명창들인 정권진 박봉술 정광수 강도근 성우향 오정숙 선생님을 모셔다 단원들을 대상으로 판소리 다섯 바탕을 가르쳤어요. 그런데 단원들 중에는 스승의 유파가 아니라는 이유로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요. 다행히 저희 선생님은 여러 계보의 소리를 배우라고 권하셔서 다양한 소리를 섭렵할 수 있었어요. 저에게는 엄청난 소리가 되었죠. 돌이켜보면 제가 그나마 지금 이 소리로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때 그 선생님들에게 배웠던 소리 덕분이에요. -전주대사습 도전도 창극소리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습니까. 그 이유가 컸습니다. 창극소리만 잘하는 소리꾼이란 편견도 벗고 싶었지만 정통 판소리는 궁극적으로 제가 온전히 감당해야할 과제였으니까요. -완창은 언제부터 시작하셨습니까. 거의 2년에 한번 꼴로 완창회를 갖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1994년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수궁가완창을 처음 했어요. 지금까지 적벽가와 심청가까지 세 바탕을 완창했습니다. 세 바탕의 제가 다 다르죠. 사실 다섯 바탕을 다 배우긴 했는데 아직 완창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기회가 되면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완창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완창은 판소리가 사라져가는 시점에서 박동진 선생님이 시도하셨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판소리사가 새롭게 쓰인 셈이죠. 완창은 엄청난 시간을 쏟아야만 가능한 대상이지만 꼭 해내야 하는 과정이기도 해서 소리하는 사람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제가 생각하는 완창은 그 의미가 다릅니다. 완창을 위한 완창이라면 그 굴레에 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결국 중요한 것은 완창을 할 수 있는 능력이거든요. 그 능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와 싸우고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노력과 그 노력이 이어내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소리의 공력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완창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풍토는 바뀌어야겠군요. 소리는 평생을 해야 하는 길입니다. 죽을 때까지 공부해도 소리다운 소리를 못하고 마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득음? 그것은 정말 함부로 불러서도 안 될 신성한 영역입니다. 득음은 신이 소리꾼에게 주는 가장 값진 선물이에요. 소리는 어떤 자세 어느 만큼의 노력으로 공부하느냐는 과정이 훨씬 중요합니다. 완창,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요. -판소리가 대중화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하셨는데 가장 큰 과제가 무엇인가요. 현실적으로 벽이 너무 높습니다. 국악의 많은 부분이 시대와 소통하면서 동시대의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유독 판소리는 과거의 전통을 앞세워 다섯 바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모든 음악은 그 시대에 맞는 음악이 되어야 합니다. 옛것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고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법고 창신, 옛것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음악도 필요합니다. 기악만 해도 그 굴레를 많이 벗었는데 판소리는 여전히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시대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판소리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창작판소리가 많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창작판소리는 판소리의 본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가치를 살려내는 그릇입니다. 전통 판소리 다섯 바탕도 따지고 보면 그 시대를 담은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우리시대에는 우리시대의 이야기를 담는 음악이 만들어져야 당연하죠. 형식도 그렇고요. 판소리가 누구나 불러보고 싶고 감동하는 그런 음악이 된다면 대중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지지 않겠습니까. 우리 시대의 광대는 우리시대의 이야기를 담아야지요. 그가 지난 연말 대한민국예술원상 시상식 이야기를 들려줬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다 고. 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났어도 노력을 이길 수는 없다는 말씀인데, 저에게는 그러니 죽을 때까지 소리다운 소리를 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인터뷰 말미, 그에게 판소리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나에게 판소리는 즐겁게 노는 일이다. 나의 판소리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잘 놀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광대로서의 목표이고 꿈이라고 했다. 그의 노력으로 빚어지는 새로운 판소리가 우리를 잘 놀 수 있게 하는 판으로 불러낼 날이 머지않았다. ●왕기석 명창은 - 완창만 30회 돌파창작 창극판소리 제작 등 영역 확대도 왕기석 명창은 정읍 옹동이 고향이다. 6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세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병으로 잃은 큰 딸을 늘 가슴에 안고 살았던 그의 어머니는 여덟 남매를 키우느라 생계에 쪼들리면서도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교육시키고 싶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열심히 공부해 성공하면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역시 정규 교육으로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다. 그가 다니던 초등학교 졸업생 60명 중 두 명이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했는데 그 중 한명이 그였다. 그즈음 그의 가족은 서울로 이사를 했다. 중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당장 먹고사는 일이 힘들었던 가족들 사이에서 그는 어린나이로 노동판에 뛰어 들어야 했다. 열여덟 살 되던 해 소리를 만났다. 가족보다 먼저 서울로 가 국립창극단 단원이 된 셋째 형 기창씨 덕분이었다. 형을 만나러 창극단을 찾아온 그에게 남해성 명창이 너도 소리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형의 소리를 흉내내보는 것이 전부였는데, 안목 있는 명창은 목이 좋은 그를 창극단 연수단원으로 끌어 들였다. 남해성 명창의 제자가 된 그는 창극단 연수 단원을 거쳐 1983년 창극단 정단원이 되었다. 다른 사람보다 늦게 들어섰지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좋은 소리꾼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된 그는 남자 소리꾼이 부족했던 창극 무대에서 돋보이는 재목으로 성장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문화예술축전 참가작인 용마골 장사를 시작으로 춘향전 심청가 천명 우루왕 서편제 등 150여 편의 창극무대가 그를 주역으로 불렀다. 덕분에 우리 창극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배우가 되었지만 그의 이름은 언제나 창극소리 잘하는 소리꾼으로만 분류되었다. 전주대사습놀이에 도전한 것도 그 때문이었는데 그는 결국 31회 전주대사습이 배출한 명창이 되었다. 창극무대에서만 빛나지 않고 판소리 명창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도 그 이후부터였다. 한해씩 건너가며 이어온 수궁가 적벽가 심청가 완창 무대는 30회를 넘었으며 2004년 독일 함부르크와 베를린에서 가진 다섯 시간 동안의 심청가를 시작으로 이어진 여러 차례의 해외 완창 무대는 한국의 판소리와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추계예술대와 중앙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창작과 제작에도 열정을 쏟아 <어린이창극>의 영역을 확산하고 전통 판소리 다섯 바탕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해내는 작업에 참여해왔으며 논개 백범 김구를 비롯한 창작 창극작품과 전주사투리 녹두장군 비빔밥전을 비롯한 여러 편의 창작판소리를 만들었다. 2014년 전라북도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KBS국악대상(2014), 대한민국문화예술상(2017) 등을 수상했다. 2013년 국립창극단을 그만 둔 뒤 고향에 내려와 정읍시립국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가족창극> <마당창극> 등 다양한 형식의 창극 작품을 개발해 관객들과 만나는 판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 기획
  • 김은정
  • 2018.02.02 23:02

호영남 시·도지사 회의…상생 발전에 머리 맞대

호영남 화합과 교류협력,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제14회 영호남 시도지사 회의가 지난 31일 송하진 전북도지사를 포함해 부산, 대구, 광주, 울산, 전남, 경북, 경남 등 8개 시도 광역단체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 개최됐다.이날 회의에서는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제도개선과제 등 공동대응 정책과제 9건, 영호남 광역철도망과 광역도로망 건설 등 지역균형발전과제 2건을 발굴, 논의했다.지역균형 발전과제에는 전주~김천 동서 횡단철도, 목포~새만금 서해철도, 익산~여수 전라선 고속철도와 무주~성주~대구 동서3축 고속도로 조기 건설 등이 포함돼 논의됐다.송 지사는 이날 새만금 조기 개발과 늘어나는 물동량, 그리고 동서간 인적교류를 위해서는 새만금~전주~김천~대구로 연결되는 동서 횡단축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시도지사들은 이 사업이 추가검토 대상사업이 아닌 신규사업으로 추진되도록 국회 및 정부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송 지사는 올해 전북에서 열릴 2018 전국(장애인) 체전과 제14회 대한민국 청소년박람회시 영호남 시도에서 홍보를 비롯한 단체관람 등에 적극 협조해 줄 것과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각종 행사에 잼버리 홍보를 포함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 자치·의회
  • 이강모
  • 2018.02.01 23:02

"전북 특화산업 패러다임 변화 대응을"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전북경제가 전환점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역경제 내 비중이 높은 주력특화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31일 한국은행 전북본부는 전북 산업구조 현황과 대응방안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 따르면 전북은 고용과 부가가치에서 지역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산업의 미래 가능성과 종합적인 경쟁력을 평가해 정책을 수정 보완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먼저 전북지역과 타 지역을 비교해 우위를 보이는 산업의 아젠다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보고서는 또한 전북의 특성을 살린 스마트 전문화를 강조했다. 스마트 전문화는 EU 집행위원회에서 제시한 지역경제의 혁신 프레임으로서 기존 클러스터 전략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역 내 지식 및 자원에 집중하는 새로운 지역발전전략을 의미한다.전북이 주력하고 있는 식품산업에 대한 분석도 이뤄졌다.보고서는 식품산업 성장에 있어 혁신역량을 갖춘 다양한 제조업체가 지역에 유치될 수 있도록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미래형 자동차산업 육성 부문에서는 최근 자동차산업이 미래형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패러다임의 변화로 큰 전환기에 직면한 점을 주목했다.연구조사를 주도한 전북대학교 경제학과 홍성훈 교수는 중소기업의 연구개발과 제품화 능력을 향상시켜 독자 생존할 수 있도록 제품특화 전략이 필요하다며 첨단 탄소복합소재를 활용한 상용차특장차 부품 경량화 사업 단지를 조성하고 육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유창호 한국은행 전북본부장은 전북경제가 성장 동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주력산업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한편 이번 보고서 작성에는 전북대학교 경제학과 홍성훈최정은 교수, 원광대학교 경제학과 김민정김경표 교수, 한국은행 전북본부 기획조사팀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 금융·증권
  • 김윤정
  • 2018.02.01 23:02

전북도 항만발전 계획 용역 결과도출 하세월

새만금 신항만의 규모 확대와 군산항의 활성화 방안을 담은 전북 항만발전 계획수립 용역 결과 도출이 늦어지고 있어 용역 본연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전북 항만발전 계획수립 용역은 2016년 12월1일부터 2017년 11월 30일까지 1년동안 사업비 2억2000만원을 들여 새만금 신항만 접안시설 및 선석 확대를 위한 타당성 확보 및 정부 부처를 설득하는 논리적 근거 마련을 위해 실시됐다.이번 용역의 애초 중간보고회는 지난해 6월로 계획돼 있었지만 3개월이 지연된 9월에 실시됐고, 용역 결과 도출 역시 지난해 11월 말 완료됐어야 하지만 오는 3월 30일까지로 연장됐다.지난해 9월 열린 중간보고회에 참석한 대학교수 및 항만청, 새만금개발청, 전북연구원 관계자들은 중간보고회 결과가 전북도가 애초 의도했던 목표나 계획을 충분히 반영시키지 못하고 변죽만 울렸다고 지적했었다.실제 용역 수행 업체인 H사가 새만금 신항만 규모확대 및 물동량 증가 논리로 제시한 한중 콜드체인 구축과 항로수심 확보, 국제농산물유통센터 조성 등의 대안은 이미 용역 실시 이전에 연구가 돼 있던 사안들이었다.하지만 H사는 또 다시 전북도에 4개월의 용역 연장을 의뢰했고, 전북도는 계약상대자가 발주기관에 유리하다고 판단될 경우 추가업무 및 특별업무의 수행을 제안할 수 있고, 계약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계약집행기준을 들어 별다른 제재없이 용역 연장 요청을 받아들였다.H사가 용역 연장 이유로 내세운 것은 해양수산부가 진행하고 있는 신항만 건설기본계획 수립용역에서 조사 중인 전국 항만 수요조사에 새만금 신항만의 물동량 증가 등에 따른 항만 규모 확대 논리를 부여하기 위함이었다.그러나 해수부는 이미 전국 신항만과 관련한 물동량 조사를 사실상 완료한 상태로 전북도가 실시하고 있는 전북 항만발전 계획수립 용역 연장 요청의 사유로는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다.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이미 해수부 자체 용역에서 물동량 등 수요조사가 대부분 완료됐음에도 새만금 신항만 물동량 증가율 등을 해수부 용역에 반영시키기 위해 용역을 연장했다는 것은 논리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이런 상황에서 H사의 용역 연기 요청과 용역 자문위원회의 의견 등을 수렴하지 않고 이를 받아 들인 전북도의 변명도 궁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행정안전부 예규인 지방자치단체 입찰 및 계약집행기준을 보면 계약상대자는 계약서에 정한 용역수행 기한 안에 용역을 완성하지 아니한 때에는 매 지체일수마다 계약서에 정한 지연배상금률에 계약금액(장기계속용역계약의 경우에는 연차별 계약금액)을 곱하여 산출한다고 돼 있다.이 때문에 전북도가 어떤 근거로 용역을 연장했는지 여부를 밝히고 용역 연장이 정당한 사유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늦춰진 날짜만큼의 지연배상금을 물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이에 대해 전북도 관계자는 수시로 해수부에 새만금 신항만의 규모 확대 및 물동량 증가 등의 타당성을 설명했고, 해수부는 상당부분 공감하고 있다며 해수부 용역에서 물동량 조사가 완료됐을지라도 향후 해수부를 포함해 전북도와 용역사 등과의 관계기관 협의가 남아 있어 논리 보강을 위해 용역을 연장해준 것이라고 밝혔다.한편 새만금 신항만 1단계 개발사업은 오는 2020년까지 접안시설 4선석(총 18선석), 방파제 3.1㎞, 호안 8㎞(총 14.4㎞), 부지조성 52만4000㎡(총 488만㎡) 등을 건립하기로 계획돼 있다.

  • 자치·의회
  • 이강모
  • 2018.02.01 23:02

"설 선물은 전북상품으로" 전북도, 우수상품 특별기획전

전북도는 지난 31일 다가올 설 명절을 맞아 전북상품 애용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품질이 우수한 도지사 인증상품 등 전북 대표상품의 특별 기획전 등 다양한 판촉활동을 추진한다고 밝혔다.도에 따르면 전주 롯데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서 지난 22일부터 2월 15일까지 25일간의 설맞이 특판행사에 들어가 도지사 인증상품 등 90여개 지역 우수상품을 판매하고 있다.또 오는 2일부터는 KTX 전주역 광장에서 도지사 인증상품 기업협의회 주관으로 귀성객과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도내 우수기업 40여 개사(200여개 제품)가 참여하는 설맞이 도지사 인증상품 특별 기획전을 진행한다.이번 특별 기획전은 설 명절을 맞이해 정상가보다 10~20%정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해 소비자들의 부담을 완화해 줄 계획이며, 판매현장에서 시음시식행사와 함께 무료 택배서비스퀵 발송 이벤트도 실시할 예정이다.소비자들의 쇼핑 선호 추세를 반영해 월 거래액이 7조원 이상에 달하고 있는 온라인 쇼핑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E-POST(우체국쇼핑몰), 위메프 등에서 도내 중소기업 100여개사가 참여해 우수상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가격 할인, 모바일 할인쿠폰 발송, 무료배송 등 전북 설 장터 프로모션도 진행하고 있다.

  • 자치·의회
  • 이강모
  • 2018.02.01 23:02

'내부갈등 심각' 전북연구원 원장 재공모 시작

수장 공백사태 중 각종 투서와 표절의혹에 휘말린 전북연구원의 제7대 원장을 선임하기 위한 원장 선임 재공모가 시작됐다.전북연구원은 현재 내부 구성원간의 계파 갈등 등에 따른 내분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원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원장 재공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전북연구원은 지난 31일 향후 3년 동안 전북연구원을 이끌 제7대 (재)전북연구원장 모집 공고를 내고 공개모집에 나섰다. 모집 공고기간은 이날부터 2월 19일까지 20일간이며, 접수기간은 5일부터 19일까지 15일간 진행된다.지원자격은 △대학의 부교수 이상 경력이 있는 자 △3급 이상 공무원으로 재직한 경력이 있는 자 △정부 및 지자체가 출연한 연구기관 및 이에 상응하는 민간연구기관의 기관장 경력이 있는 자 △정부 및 지자체가 출연한 연구기관의 선임연구위원급 이상으로 5년 이상 재직한 경력이 있는 자 △연구원 경영에 대한 경륜과 지도력을 갖추고 국제 감각과 미래지향적 비전을 가진 사람으로 전북연구원을 육성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로 한정했다.이번 지원자격은 기존 공모의 자격조건과 크게 다른 것이 없지만 3급 이상 공무원으로 재직한 경력이 있는 자라는 조항이 추가돼 눈길을 끈다. 도청 고위 공직자 출신이 원장 공모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이에대해 전북도 관계자는 3급 이상 공무원의 응모 자격을 추가한 것은 원장 공모를 전북연구원이 직접 추진하면서 다른 시도 연구원의 공모 기준에 맞춰 추가한 것일 뿐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은 전혀 아니다고 강조했다.전북연구원은 공정한 심사를 위해 오는 2월 22일 서류심사가 끝난 뒤 곧바로 면접심사를 실시할 예정이며, 이사회와 전북도, 전북도의회에서 각각 3인을 추전받아 총 9인으로 구성된 원장후보자 추천위원회에서 최종 후보를 결정해 이사회에 추천할 계획이다.추천 절차가 끝나면 추천자에 대한 신원조회를 통해 3월 중 원장을 선임할 방침이다.한편 전북연구원은 강현직 전 원장의 임기가 지난해 10월 만료됐지만 1차 선임(안)이 부결된 이후 원장 선임 절차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강화시키기 위한 정관 개정신설 등을 진행하는 등 원장 자리가 석달 가까이 공석으로 남아있다.

  • 자치·의회
  • 이강모
  • 2018.02.01 23:02

새만금 대체어항 어선수용 '태부족'

새만금 대체어항의 어선 수용능력이 턱없이 부족해 가력선착장의 확장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지난 31일 전북도에 따르면 새만금 대체어항의 어선 수용능력은 지난 2015년을 기준으로 총 466척이 부족하며, 새만금 내측 어선이 모두 이동할 오는 2025년에는 총 383척(가력선착장 179척, 신시항 50척, 비응항 154척)이 부족하다.가력항의 경우 수용가능 어선은 모두 150척인데 현재 수용 어선은 360척으로 210대가 초과됐고 신시항 역시 61척이 수용 가능한데 122척이 수용돼 61척을 초과했다.비응항 역시 277대가 수용 가능한데 현재 수용 어선은 472대로 무려 195대를 초과한 실정으로 새만금 내측어선 수용을 위해 대체어항의 확장이 시급한 실정이다.특히 가력선착장은 애초 방조제 공사용 선착장으로 개발돼 해양수산부의 항만 및 어항설계기준 정온도(0.4m이내)를 상회하는 0.5~0.7m의 너울성 파도가 항내로 진입해 어선의 파손이 잦다.이에 따라 도는 사업비 868억 원(전액 국비)을 들여 새만금 1호 방조제 전면 가력선착장 확장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지난해 8월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사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전북도 관계자는 가력항 확장사업 예비타당성조사는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총괄해 약 6개월간 진행되며, 경제성 분석과 정책성 분석, 지역균형발전 분석을 실시해 사업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며 정치권과 농림축산식품부와 협력해 가력선착장 확장 사업이 조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경제일반
  • 이강모
  • 2018.02.01 23:02

최저임금 올랐는데 '누리과정 지원금' 6년째 제자리

최저임금 상승이 민간어린이집 누리과정 운영에 직격탄으로 작용돼 보육료 지원단가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전북민간어린이집연합회는 지난 31일 전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누리과정(만 3~5세 아동 대상) 보육료 지원단가 현실화를 촉구했다.연합회는 우리나라 모든 유아에게 동일한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된 누리과정이 실시된 지 7년째로 접어 들었지만 보육료 현실화는 여전히 풀지 못한 채 숙제로 남아있다고 밝혔다.이어 현행 만 3~5세 아동 보육료인 누리과정 지원금은 월 22만원으로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오르고 인건비 또한 상승하고 있는데 보육료는 6년째 제자리 걸음이라며 민간어린이집 보육료의 70% 이상이 인건비로 지출되는 데 올해부터 최저임금이 16.4%로 대폭 인상되면서 민간어린이집의 운영난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연합회는 양질의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건 당연하고 필수적인데 너무 많은 희생이 뒤따르고 있어 자칫 잘못하면 운영위기에 몰려 보육의 질보다 어린이집 현상 유지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까 두렵다며 현재 도내 500여곳 민간어린이집 가운데 상당수가 보육교사의 급여를 제때 주지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특히 작년 12월 국회는 누리과정 예산을 통과시키며 부대의견으로 지원단가가 22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그 인상분을 지방교육재정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했지만 전북교육청은 면담조차 회피하고 있다며 국회, 정부, 지자체, 시도교육청은 민간어린이집 인건비 등 각종 인상분을 보전할 수 있게 올해부터 지방교육재정으로 3만원을 추가 편성해 누리과정 지원단가를 25만원으로 인상해달라고 요구했다.

  • 보건·의료
  • 이강모
  • 2018.02.01 23:02

민평당 도당 1일 창당대회…국민 통합파-반대파 '이혼'

국민의당내 통합반대파의 민주평화당 창당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민평당 전북도당 창당대회가 1일 열린다. 민평당 전북도당 창당대회를 계기로 국민의당 전북도당내 통합 찬성파와 반대파도 완전 결별하게 됐다.민평당 전북도당은 1일 오후 2시 전주교대 황학당에서 창당대회를 갖는다고 지난 31일 밝혔다. 이날 창당대회에는 민평당 창당 발기인에 이름을 올린 국민의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통합 반대파 도내 당원들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민평당 전북도당 창당과 함께 국민의당 전북도당내 통합 찬성파와 반대파도 완전 결별한다.국민의당 통합 반대파로 당원권 정지의 중징계를 받은 정진숙 전 도당 사무처장은 민평당 도당 사무처장을 맡을 예정이며 당직자 가운데 최병철 조직국장과 구자영 총무국장, 여성위원회 홍성임 위원장과 이경희 부위원장 등이 민평당 도당에 합류한다.도내에서는 김종회 도당 위원장을 포함한 5명의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 도의원 및 시의원, 당직자 등 32명이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았다.민평당 도당은 현재 사무실을 물색중인데 전주병지역위원회 사무실을 임시 도당 사무실로 사용할 예정이다.민평당 도당 창당 추진으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전북도당도 한 집 살림 준비에 나섰다.오는 13일로 예정된 통합 정당의 도당 위원장은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과 바른정당 정운천 의원이 공동으로 맡게 될 것으로 보이며, 사무처장은 홍신 국민의당 도당 사무처장이 맡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오랜 기간 지속돼온 갈등과 분열로 지방선거 준비에 손을 놓고 있었던 국민의당 도당이 통합 정당 창당과 민평당 창당 등으로 각자의 진로가 결정되면서 설 명절 이후 민주당과 통합 정당, 민평당 도당의 지방선거 경쟁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 국회·정당
  • 강인석
  • 2018.02.01 23:02

국민의당 2·4 전대 무산…전당원투표·중앙위서 통합 결정

이중당적과 당비대납 문제 등이 불거지며 전당대회 진행이 어려워진 국민의당 24 전당대회가 결국 취소됐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지난 31일 여의도 당사에서 당무위원회를 열고 바른정당과의 통합안을 전당대회가 아닌 전당원 투표와 중앙위원회를 거쳐 의결키로 결정했다.이를 위해 당무위에서는 우선 현재 당헌에 전대를 개최하기 어려운 상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전당원 투표로 결정하며, 이 경우 중앙위 추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당헌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이어 4일 전국 23곳에서 분산 개최하려 했던 전대는 취소하고, 대신 중앙위를 열어 이 같은 당헌 개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당헌이 개정되면 전당원 투표 및 이를 추인하기 위한 중앙위를 다시 열어야 한다. 현재는 5일 전당원 투표를 하는 방안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당무위의 이 같은 조치는 대표당원 가운데 1000여명 이상이 통합 반대파의 민주평화당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려 이중당적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전당대회준비위원회에서 기한 내에 전대 준비를 마칠 수 없다며 특단의 조치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이와 관련 통합 반대파인 민주평화당 창당준비위원회 장정숙 대변인은 논평에서 불법 당규 개정도 모자라 전당대회 고유 권한인 합당을 중앙위원회에서 대신 의결하는 것은 최고 의결기구인 전당대회와 대표당원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정당법 위반이자 민주주의를 또 한 번 짓밟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국회·정당
  • 박영민
  • 2018.02.01 23:02

민주당, 기초단체장 전략공천 강행

지방분권 시대에 역행하는 시도당 공천권의 중앙당 회수를 추진해 논란을 빚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기초단체장 후보에 대한 전략공천 강행에 나섰다.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집권당이 되면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전북에서는 전략공천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중앙당이 기초단체장 전략공천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전북지역 후보들은 중앙당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민주당은 지난 31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광역단체장과 마찬가지로 기초단체장 후보도 전략공천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당헌당규를 개정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이날 의결된 당헌당규는 향후 열릴 당무위원회 의결로 확정된다.지난 2015년 12월 문재인 대표 당시 김상곤 혁신안을 통해 개정된 당헌에 최고위원회는 시도당상무위원회의 의결사항에 대해 수정의결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을 신설해 기초단체장 공천권을 시도당에 돌려준 뒤 한 번도 선거가 치러지지 않아 이에대한 장단점 판단도 할 수 없지만, 다시 당헌을 고쳐 중앙당으로의 공천권 회수에 나선 것이다.백혜련 대변인은 이날 상대 당의 후보전략에 대한 효과적 대응, 공천신청자가 없는 지역, 경쟁력이 약한 후보자의 단수 신청 지역, 전략적 고려가 필요한 지역, 심사와 경선과정에서 법률상 문제가 발생한 지역 등에 대한 대처를 위한 것이라고 당헌당규 개정 이유를 설명했다. 개정안은 해당 시도의 기초단체 수가 21개 이상이면 3곳, 11~20개면 2곳, 10개 이하면 1곳 이내로 전략공천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제주도와 세종시는 제외했다. 규정 상으로는 14개 기초자치단체가 있는 전북도 2곳에 전략공천을 할 수 있다.그러나 전략공천 선거구 선정은 시도당과 협의해 최고위원회 의결절차를 거쳐 당무위원회의 인준을 통해 확정하도록 돼있고 전북도당이 전략공천을 동의할 가능성이 낮아 실제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전북 민주당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후보들이 넘쳐나고, 경쟁력도 상당하다며 전략공천을 위해서는 당 후보가 상대 후보를 이길 수 없거나 도전자가 아예 없는 등의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전북은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그러나 지방선거 이후 진행될 총선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개혁차원의 전략공천 카드 활용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일부 있다.정치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선거에서 종전처럼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식의 평가를 받게 되면 민주당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어 전략공천 카드로 유권자들에게 개혁의지를 표명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국회·정당
  • 박영민
  • 2018.02.01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