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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소리축제를 즐기며] 전통, 관광상품 넘어 일상에서도 살아 숨쉬어야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3일 동안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온몸으로 즐겼다. 물론 연주자로 초대받지 못한 것은 안타까웠지만 관객이 되어 온전히 축제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아름다운 음악으로 가득한 전주는 행복이 가득한 도시였고 나는 기쁨으로 가득찬 전주소리시민이었다.3일간 보았던 모든 공연이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淸 ALIVE(청 얼라이브)는 개막작으로 제격이었다. 시공간적 한계 때문에 한 판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공연이 적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여러 공연을 감상했다. 모두 최선을 다해 연주했고 나 또한 그에 대해 추임새와 박수로 보답했다.축제의 성패는 날씨에 달려있다싶을 정도로 멋진 날씨였다. 일교차가 커서 힘들기도 했지만 아름다웠던 가을 날씨였다. 관객의 매너도 훌륭했다.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야외 무료 공연임에도 공연에 몰입해 무대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 덕에 나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고 아티스트들은 온 얼굴에 웃음과 땀이 가득한 채로 열정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으뜸 축제에 으뜸 소리객들이었다.소리축제와는 살짝 거리를 두고 있지만 개관 행사를 치르는 국립무형유산원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축제의 공연이 없는 아침 나절에 국립무형유산원을 둘러보며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게 됐다. 소리축제와 프로그램을 공유하면 어떨까라고 생각 했지만 관객의 이동거리가 늘어나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대한민국의 문화 전반에서 소리축제의 위상은 대단히 높고 중요하다. 당연히 준비하는 관계자나 소리축제를 아끼는 사람의 여러 의견이 있다. 소리축제조직위 측의 마무리 모임이 있다면 꼭 그 모임을 방청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그 모임에 젊은 기획자와 아티스트와 많은 시민이 참여하길 바란다. 소리축제가 걸어온 그 모든 발걸음이 어떤 형태로든 잘 정리되고 기록되어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길 바란다. 더욱더 멋있을 2015 전주세계소리축제에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기를 바란다.완전한 전통의 복식은 아니었지만 검정색 두루마기를 입고 한옥마을이나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다녀봤다. 많은 이들이 정성껏 마련한 공연이니 잘 차려 입는 것이 예의라 생각했고 또 한옥에서 벌어지는 판도 많으니 이왕이면 우리 옷을 입어보자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한복을 입는 단순한 행위가 얼마나 비일상적인지를 역설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마음 한켠이 씁쓸했고 반성도 했다.그동안 우리의 우수한 전통을 소개한다며 외국에서 많은 공연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단순히 음악만 들려준다고 그 감흥이 제대로 전달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주를 포함한 문화전반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 음악인데 배경지식과 이해가 없는 상태라면 관객의 입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 난감하겠다는 생각을 했다.안타깝지만 국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가 그저 관광 상품으로서만 소비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 국민도 바다 건너 온 사람과 매한가지로 관광객의 입장에서 전통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우리들의 삶에 과연 어느 정도나 전통적인 것이 있는지 잠시 돌아봤으면 한다. 전통음악가인 나의 생활을 돌아보지만 전통적인 것은 거의 찾을 수 없다. 무엇이 한국적인지도 참 찾아내기 어려웠다. 이러한 현실에서 전통의 현대화를 외치고 세계화를 논하는 이 모순된 상황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반드시 풀어내고 뛰어 넘어야 하는 숙제이자 장애물이다. 〈끝〉※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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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17 23:02

[우리 삶 속의 음악] 인간은 음악을 만들고, 음악은 또 인간을 만든다

음악은 인간적인 현상이다. 음악을 정의할 때 먼저 고려하는 특성이 바로 음악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이다. 음악은 소리로 됐지만 자연의 소리를 음악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악은 인간의 인위적 작위가 가해진 것으로 그 자체가 문화의 일부다.음악은 문화의 일부로서 인간의 삶으로부터 발생한다. 삶을 떠난 음악은 없다. 음악은 인간의 구체적인 사회 활동 속에서 유통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음악의 향수 자체가 이미 인간의 사회적 활동의 일부다. 따라서 한국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하는 행위는 한국인의 사회 활동의 일부다. 예컨대 시조는 조선조 사회의 양반의 존재와 그들의 삶의 방식 속에서 생겨났다. 양반이 노래를 통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삶의 방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시조는 태어났고, 불리어졌다. 판소리 또한 마찬가지다. 춘향이와 같은 열녀, 심청이와 같은 효녀를 훌륭하게 생각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들으며 공감할 수 있는 한국적 사회가 판소리를 탄생시켰고, 또 발전시켰다.서양 음악도 그들의 삶의 방식으로부터 발생했다. 서양의 고전음악은 근대 유럽의 궁정과 귀족의 생활과의 관련을 떠나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재즈와 아메리카 흑인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흑인 노예의 삶과 역사를 모르고 흑인 영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공공연한 연애가 금지된 사회의 경우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가 있을 수 없다. 그런 사회적 행위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문화의 기능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사회의 재생산이라고 한다. 문화는 그 사회의 생활양식이자 상징체계다. 인간이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그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삶의 양식과 상징체계를 습득해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고, 이는 그 삶의 양식과 상징체계가 반영하는 사회의 질서와 규범, 가치를 따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는 천성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된다. 여기서 교육은 꼭 제도적인 교육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공동체 내에서 삶을 영위하면서 보고 배우는 일체를 다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교육을 통해 사회가 재생산되어 통시적, 공시적으로 동질성을 갖게 된다.이렇게 인간 속에서 태어난 음악은 또 그 자체가 문화이므로 인간을 형성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음악이 우리를 특정한 인간으로 만들어간다는 뜻이다. 만약 우리가 어려서부터 부친을 위해서 목숨을 기꺼이 바치는 심청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늘 듣고 감동을 받으면서 자랐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심청과 같은 효녀를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또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되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춘향전을 늘 들으면서 감동을 받아왔다면, 그는 틀림없이 열녀가 훌륭한 것이며, 그렇게 사는 삶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판소리의 거친 목소리를 늘 들으며 자란 사람은 그 판소리에 의해 거친 소리를 아름답게 느끼는 인간이 된다. 마치 어려서부터 김치를 먹었기 때문에 김치가 맛있지만, 김치는 또 입맛을 한국인답게 만드는 음식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그런데 우리 사회는 서양화된 지 오래다. 삶의 기본인 의식주조차도 거의 서구화되어 버려 우리 것을 찾기 힘들어졌다. 그러니 음악은 오죽하겠는가? 기반이 없으니 교육이 되지 않는다. 제도 교육에서라도 가르치면 좋겠지만, 제도 교육 속에서도 우리 음악은 홀대받은 지 오래다. 이제는 소리축제와 같은 행사가 교육 기능을 수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소리축제는 단지 우리 음악을 소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소리축제는 한국적인 인간을 재생산하는 기제로서 기능해야 한다. 그리고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앞장서서 그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다. 축제에 몰리는 인파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 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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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14 23:02

[집시음악]음악문화 전달자이자 창조자인 집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다뉴브강변의 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을 때였다. 젊은 포수가 깊은 산 속에서 잡은 큰 토끼의 앞다리 살이라는 기다란 이름의 지비에(gibier) 요리를 기다리며 레스토랑 앞쪽 무대에서 집시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요리가 나온 뒤 와인 몇 잔과 지비에를 반쯤 먹었을 즈음에 집시(Gypsy)밴드가 테이블 앞에서 연주했다. 중년의 잘생긴 바이올린 연주자의 현란한 연주에 넋을 잃었다. 레스토랑을 나갈 때 계산대에서 그 집시밴드의 CD 몇 장을 구입했다. 나중에 보니 헝가리 최고의 집시밴드 연주를 코앞에서 라이브(live)로 들었던 것이었다.지중해를 끼고 있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 있는 말라가, 이 해변의 깊숙한 골목길에 위치한 작은 플라멩코(flamenco)클럽을 찾았다. 세비야나 마드리드의 큰 공연장에서 관람했던 쇼적인 플라멩코 말고 진정한 집시 플라멩코 공연을 보고 싶어 물어물어 찾은 공연장의 맨 앞줄. 바로 앞에서 검은 무용복을 입은 남녀 무용수의 비장한 얼굴 표정과 엄숙하면서도 격렬한 몸짓의 춤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날 밤의 전율스런 플라멩코 연주와 춤은 지금도 매우 생생하다.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네바(Neva) 강 위의 유람선. 강변의 유명한 건축물과 풍경을 설명하던 40대의 남자 가이드가 노래를 부른다. 웅장한 저음의 목소리로 애잔한 집시음악의 선율을 무반주로 노래하는데 붉은 노을에 물든 강물을 바라보면서 감격해했다.필자가 경험한 세 곳의 유럽 풍경은 모두 집시의 후예이거나 영향을 받은 연주자다. 집시는 일찍이 유럽전역에 그들의 음악적 DNA가 가득 찬 씨앗을 고루 뿌렸다. 인도 북서부에서 유랑의 길을 떠났던 집시는 중동을 거쳐 유럽의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끼를 지니고 있는 집시들은 떠돌며 곳곳의 음악적 자양분을 축적했고 전달했다. 중동에서 다시 유럽으로 이동한 이들은 스페인에서 기타를 주로 사용하는 연주와 춤, 노래를 발전시킨 플라멩코를 탄생시켰다. 동유럽에서는 바이올린, 발칸반도에서는 금관악기, 러시아에서는 성악을 주축으로 그 지역의 음악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집시음악을 변형 발전시켜 나갔다.이처럼 전달자(Messenger)이면서 창조자(Creater)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던 집시의 음악적 재능은 정말 뛰어나다. 중동이든 유럽이든 나라의 집시음악을 들어보면 느낌은 조금씩 다르지만 아, 이것은 집시음악이구나!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들이 새로운 음악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올곧게 지켰기 때문에 가능했다.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는 그동안 다양한 집시음악을 소개해왔다. 그 중에서 지난 2010년 축제 때 초청한 프랑스 집시기타 연주자 티티로빈(TiTi Robin)이 잊히지 않는다. 영국의 BBC 월드뮤직 프로그램에서는 티티로빈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인이며 선지자 중 한 사람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유럽에서는 잘 알려졌다. 그는 각 지역의 다양한 집시음악을 연주했다. 중동의 집시음악은 우드(oud)라는 아랍 전통악기로 진지하고 품격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티티로빈은 다른 집시음악 연주자와는 다른 차원의 아카데믹하면서도 수준 높은 연주로 한국의 집시음악 마니아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올해는 아쉽게도 소리축제에 집시음악 연주팀이 보이지 않아 티티로빈(TiTi Robin)이 더욱 그리워진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 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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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10 23:02

차세대 명창 발굴하는 '젊은 판소리 다섯바탕'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중심인 판소리 관련 프로그램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나라 판소리를 대표할 만한 중견 소리꾼이 출연하는 판소리 다섯 바탕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래를 짊어질 젊은 소리꾼들이 출연하는 젊은 판소리 다섯 바탕이다.판소리 다섯 바탕에 출연하는 소리꾼은 장문희를 제외하면 다 1960년대 출생인 반면에 젊은 판소리 다섯 바탕에 출연하는 소리꾼은 유태평양을 제외하면 다 1980년대 출생이다. 1960년대 출생 소리꾼들이 판소리에 아무런 희망도 없던 시대에 스스로를 불태워 길을 찾아온 소리꾼들이라면, 1980년대 소리꾼들은 88올림픽과 영화 〈서편제〉(1993)의 성공으로 크게 일어난 판소리 붐을 타고 어려서부터 판소리를 시작했다.젊은 판소리 다섯 바탕에 출연자는 상대적으로 풍요 속에서 자란 세대다. 경제적으로나 판소리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조기 교육을 받으며 순탄하게 소리 공부를 해온 세대다. 그러기 때문에 젊은 소리꾼은 기본 바탕이 탄탄하다. 어려서부터 기초를 잘 닦아왔기 때문이다.젊은 판소리 다섯 바탕 출연자들은 소리축제 조직위가 발굴한 소리꾼으로 구성했다. 이들은 아직 명창으로서 입지를 완전히 다지지는 못했기 때문에 판소리 다섯 바탕에 출연하는 소리꾼처럼 대부분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의 소리를 접할 기회조차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골라냈으니 기대를 해봐도 좋을 것이다. 소리축제가 장래 판소리를 책임질 신인을 발굴소개할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그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이 공연은 전주 전통문화관 혼례마당에서 펼쳐진다. 실내가 아니라 야외라서 공연 조건이 좋은 것은 아니다. 공연 시간은 90분 내외로 충분히 공력을 쌓지 못한 소리꾼들이 감당할 수 있게 하였다.젊은 판소리 다섯 바탕은 9일 오후 2시 이소연 씨의 적벽가로 막을 연다. 이 씨는 현재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날 부를 적벽가는 송순섭으로부터 물려받은 박봉술 바디로 가장 핵심이 되는 대목인 군사설움타령부터 새타령까지를 부를 예정이다. 이날 오후 6시 유태평양 씨가 심청가를 부른다. 유 씨는 지난 1998년 최연소 최장 시간 흥보가 완창 기록을 가진 소리꾼이다. 올해는 전주 소리문화관에서 매주 토요일에 펼쳐지는 마당 창극 아나, 옜다 배 갈라라에서 맹활약 중이다.10일 오후 6시에는 한나리 씨가 수궁가를 부른다. 한 씨는 전남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국립민속국악원 준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11일 오후 6시에는 조희정 씨가 춘향가 중에서 이별가부터 신관사또 부임하는 대목까지를 부른다. 조 씨는 조소녀 명창의 딸로 현재 전주예고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지난해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한 바 있다.12일 오후 2시시에는 이나래 씨가 흥보가를 부른다. 이 씨는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정가악회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젊은 판소리 다섯 바탕 출연자 가운데 남자는 한 명뿐이다. 남성 소리꾼이 원래 적기도 하고, 남자는 아무래도 좋은 목을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떻든 판소리가 점점 여성 중심으로 흘러간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본래 판소리는 남자가 불렀다. 그래서 판소리는 남성 중심의 미학으로 구성돼 있다. 이제 남자들이 점점 줄어 판소리계를 여성이 주름잡다시피 하고 있어 판소리의 미학도 여성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한 변화의 현장이 바로 젊은 판소리 다섯 바탕이다.한편 소리꾼의 나이가 젊다고 해서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깜짝 놀랄 만한 소리 실력을 갖춘 이들이 우리나라 판소리의 미래를 자신 있게 펼쳐보여줄 것이다.※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 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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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07 23:02

[북촌뮤직페스티벌] 거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공간에 녹아드는 축제

지난 9월12~14일, 서울의 도심 한복판 북촌 일대에서 제3회 북촌뮤직페스티벌이 개최됐다. 전야제를 포함해 사흘 동안 눈부신 가을 하늘을 가릴 정도로 반짝반짝 빛나는 40여아티스트가 참가한 공연이었다. 물론 관객의 성원도 대단했다.북촌뮤직페스티벌은 전주세계소리축제를 후원하고 있는 (재)수림문화재단에서 주최하고 있는 민간페스티벌이다. 수림문화재단은 소리축제의 소리프론티어 경연에 참가한 단체 중 한 팀을 선발해 수림문화상을 수여하는데 수상자들의 창작활동과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등 젊은 아티스트들의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재단의 페스티벌 지원 사업은 결국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위한 직간접적인 후원임과 동시에 그들이 보다 많은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관객 입장에서는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활발한 문화 활동으로 인해 확대 재생산되는 밑거름으로 작용하니 그 효과는 결코 작지 않다.2013년에 이어 2회째 예술감독으로 북촌뮤직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입장에서 볼 때 북촌뮤직페스티벌은 전통예술이 어떻게 오늘의 문화로 거듭나는지 실험하고 확인하는 마당이다. 페스티벌 참가 전부터 나는 북촌이라는 지역의 특수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북촌지역에 살았고 직장생활을 했고 평소 자주 나들이를 다니며 나름 지역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북촌지역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심장부에 있는 상징적인 곳이라고 생각한다. 600년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고 오랜 유적을 가지고 있으며 현대화의 이름을 빙자한 파괴적 도시개발을 피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는 한옥들과 골목길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 세련된 주민의식을 바탕으로 첨단에 서서 유행을 창조하고 이끌어내는 곳. 바로 북촌만이 지닐 수 있는 특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페스티벌을 기획하고자 했다.일단 민가가 밀집한 지역인 만큼 소음으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하고 가족단위의 관객이 많은 만큼 각종 안전 부주의 사고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다. 북촌을 이미 멋들어지게 가꾼 주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프로그램을 짜며 최대한 반영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 좁은 통행로로 어깨가 맞닿을 수밖에 없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닐 수밖에 없는 지역의 특성에 주목해 2013년에는 밀(密)을 콘셉트로 삼았다. 담장 너머로 은근히 들려오는 소리로 요란하지 않게 북촌을 음악과 예술향으로 채워보고자 했다. 2014년은 고리를 주제로 전통과 현대, 세대간, 지역간 문화적 거리를 좁히고 서로를 이어주는데 초점을 맞춰 진행했다.북촌지역에 한옥이 많으니 전통음악으로 한 상 거하게 차려보자는 식의 접근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앞서 말했듯이 이미 충분히 멋으로 가득한 지역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자연스럽게, 느끼지 못할 정도로 공간에 녹아드는 축제로 만들고자 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축제 참가자를 공모하게 됐고 그것이 성공적인 축제를 만드는데 주효했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지속적이고 발전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선 여전히 해결해야만 하는 숙제를 남겨두고 있다.왜 북촌에서 뮤직페스티벌을 해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던진 이 단순한 질문에 대해 답을 하는 것은 쉽지 않고 지금도 찾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왜 북촌에서 국악도 아니고 뮤직페스티벌을 해야 하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생각처럼 쉽고 간단하지 않았다.아이의 손을 잡고 지나가는 부모에게 혹은 외국인에게 저게 한국의 전통문화야~라는 식의 설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럼 오늘의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설명할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그렇게 박물관의 전시품 보듯 제3자의 위치에 서있는 전통이라면 그것은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밖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안에서 전통과 하나가 될 때 진정한 가치를 갖게 되고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북촌뮤직페스티벌을 준비하며 사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확인하고자 했다. 어쩌면 전통음악은 우리음악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전주세계소리축제는 한국음악의 오늘을 보여주고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음악축제다. 매해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중이다. 음악애호가로서 전주세계소리축제에 대한 관객의 꾸준한 관심과 애정을 기대한다.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축제에 참여하길 부탁한다. 전통 안으로 뛰어들어 얼씨구, 좋다를 메겨야 우리소리가 완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남지 않은 전주세계소리축제에 나도 가서 즐기려고 한다. 아마도 다음 주에는 전주 어딘가에서 열심히 추임새를 넣고 있을 것이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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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03 23:02

[프랑스 세계문화의 집] 명인명창 판소리, 지속적으로 지구촌에 알려

지난해 가을,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400석 남짓한 한 극장의 로비에는 토요일 이른 오후부터 사람들이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판소리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라운드테이블 시공을 초월해 생동하는 예술, 판소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들 중에는 스위스 제네바의 유명한 월드뮤직 전문가를 비롯해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참가한 전문가도 눈에 띄었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3 한국예술특집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라운드테이블에는 불어권의 민족음악학계와 월드뮤직계를 대표하는 프랑수아 피카르 소르본대 교수, 앙리 르콤트 동양언어대 연구원, 북브뤼셀 문화센터관장인 쟈크 이브 르독트 씨 등이 판소리 번역가 에르베 페조디에한유미 부부와 함께 판소리에 대한 각자의 주제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유네스코 전문위원이며 루브르박물관 오디토리움의 예술자문인 피에르 부아 프랑스 세계문화의집 예술감독은 모든 준비과정을 지휘했고, 좌장으로 참여했다.이 자리에서 동아시아 설화와 노래, 공연예술을 아우르는 판소리의 예술적 가치가 부각됐다. 또한 유럽인의 감성에 걸맞은 판소리 번역에 대한 고민과 함께 유럽인으로 판소리를 배웠던 체험담과 젊은 프랑스 소리꾼이 춘향가 중 사랑가의 대목을 시연했다. 프랑스 학자의 연구발표로 모든 내용이 불어로만 진행된 이날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판소리가 지닌 세계적인 공연예술로서의 가능성을 재확인했다.이 라운드테이블이 열렸던 세계문화의집(La Maison des Cultures du Monde)은 다양한 문화권의 음악과 무용공연, 제례와 의식 등 전통예술이 프랑스를 통해 유럽과 세계에 알려지게 된 거점으로 높은 명성을 지닌 곳이다. 오늘날 세계 문화예술계에서 주목받는 기관으로 성장한 프랑스 세계문화의집은 문화 수출입의 균형을 위해 문화성, 외무성, 파리시, 알리앙스 프랑세즈 재단의 후원으로 지난 1982년 설립했다. 설립자인 셰리프 카즈나다르 씨와, 아와드 에스베르 관장, 피에르 부아 예술감독이 모두 유네스코 위원을 겸직하고 있다. 이곳은 프랑스 내 주요 문화기관단체와 견고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세계문화의집은 공연형태의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의 발굴 및 프로그래밍, 유네스코 및 세계 음악학계와 민족공연학(Ethnoscenology) 분야 신설, 사라져가는 음악 기록 및 아카이빙과 문서화 등을 통해 프랑스의 문화다양성에 대한 관심을 견인해 왔다. 또한,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문화예술축제로 높은 명성을 지닌 상상축제(Festival de LImaginaire)를 주최하면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공연 및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민족음악 음반제작과 아카이빙을 위해 자체 음반레이블인 이네디(INEDIT)도 운영한다.세계문화의집에서 우리 전통음악을 선보이게 된 첫 무대는 지난 1982년 한애순 명창의 판소리 완창 공연이다. 이어 안숙선, 조통달, 김동준, 송순섭 등의 명창이 이 무대를 통해 판소리를 프랑스와 유럽 및 세계 음악계에 알릴 수 있었다. 1960년대 프랑스 세계연극축제에 김소희 명창이 참가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지속적으로 판소리를 공연한 곳은 세계문화의집이다. 2002년 파리가을축제에서 안숙선, 김일구, 김수연, 조통달, 김영자 명창의 판소리 다섯 바탕 완창이 진행됐다. 이는 미국 뉴욕과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로의 투어까지 이어졌던 쾌거의 시작점이었고, 판소리가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과정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비단 판소리 뿐 아니라, 세계문화의집은 우리나라의 전통음악계 명인과 깊은 인연이 있다. 진도씻김굿의 박병천 명인, 평조회상으로 갈채를 받았던 정재국 명인, 호적풍류의 깊은 맛을 처음 선보였던 최경만 명인이 세계문화의집 무대에서 공연했다.황병기, 이재화, 박현숙, 김해숙, 김영길, 안성우, 유경화 명인 등은 산조와 시나위, 창작곡을 선보였으며, 김영기 명인은 여창가곡 전바탕 공연을 선보였다. 경기민요와 서도민요를 대표하는 이춘희, 유지숙 명창의 공연은 상상축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하용부, 양성옥 명무가 소개되었고 영산재, 봉산탈춤, 국립국악원의 영산회상 등 다양한 공연이 이곳을 통해 프랑스와 유럽에 소개됐다.올해 열리는 전주세계소리축제에는 세계문화의집 아와드 에스베르 관장이 개막공연부터 폐막일까지 참가하며, 향후 협력방안을 논의한다. 세계문화의집이 그 동안 우리 전통예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중요한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했으며, 전주세계소리축제도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한 만큼 이번 만남을 통해 더 많은 기회가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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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30 23:02

[라틴음악] 세 인종이 만들어낸 창조적 음악…개성과 어울림의 세계

메스티소(Mestizo), 물라토(Mulato), 잠보(Zambo).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의 퓨전(fusion)화된 인종 이름들이다.메스티조는 스페인계 백인과 인디오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이고, 멕시코를 비롯한 중미와 남미 중에서 북쪽의 나라들에 많다. 뮬라토는 백인과 아프리카 흑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인데, 브라질과 쿠바 등 카리브해의 섬나라에 주로 있다. 마지막으로 잠보는 인디오 원주민과 아프리카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 새로운 인종들이 라틴 음악을 만들어냈다.퓨전(fusion)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것을 섞어 새롭게 만든 것이라고 쓰여 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이질적인 것들의 조화로운 섞임이다. 그래서 개성과 다양성 있는 새로운 창조적 어울림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라틴음악이야말로 진정한 퓨전음악이다. 라틴음악을 듣다보면 그 흥겨움과 신명남에서 뜨거운 열정과 강한 에너지의 분출을 체감한다. 좀더 세밀하게 음악을 들여다보면 그 신명남과 흥겨움은 타악기 연주의 리듬에서 연유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타악기의 리듬은 아프리카가 원류라는 것도 이내 알게 된다.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멜로디는 유럽의 백인과 원주민인 인디오의 선율의 영향임을 느낄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를 지배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유럽계 백인과 그들의 노예로 팔려왔던 서아프리카의 흑인, 그리고 원주민인 인디오의 진정한 섞임과 어울림의 퓨전문화에서 새롭게 출현한 음악이 라틴음악이다. 라틴음악은 그 자체가 월드뮤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라틴팝이나 라틴 재즈 같은 몇몇 장르까지 포함하기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다.라틴음악은 월드뮤직을 지구촌 사람에게 각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음악시장을 꽉 잡고 있던 주류 음악산업 회사가 있는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웠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는 히스패닉(hispanic)이라 하여 일찍부터 많은 라틴아메리카 사람이 이주했다.살사(salsa)라는 음악이 빠른 시간에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요인도 미국의 상업자본과 뉴욕의 빈민가인 할렘에 쿠바와 푸에르토리코의 가난한 라틴 음악가가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기능했다. 이처럼 많은 라틴음악은 여러 이유로 미국에 쉽게 건너갔고, 이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있었다.콜럼버스(columbus)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로 쿠바(Cuba)는 라틴아메리카의 관문이었고, 전염병으로 인디오 원주민이 전멸하다시피 한 뒤 아프리카 흑인이 그 자리를 메꾼 탓으로 물라토가 많았다. 그래서 쿠바의 라틴 음악도 스페인계 백인의 선율적인 부분과 아프리카 흑인의 원초적인 타악기 리듬이 절묘하게 섞이고 조화롭게 어울려 다양한 음악장르가 탄생했다.이러한 이유 때문에 쿠바는 라틴음악의 종주국, 보물창고, 흑진주 등의 많은 수식어가 붙었다. 쿠바에서는 손(son), 살사, 아바네라(habanera), 차차차(cha cha cha), 룸바(rumba), 맘보(mambo), 볼레로(bolero), 누에바 트로바(nueba troba)등의 음악이 탄생했고, 다른 라틴아메리카 나라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콜롬비아 그룹 베토 자메이카를 초대했다. 열정에 찬 라틴음악을 선물할 것 같아 기대된다.※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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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26 23:02

[소리축제의 중심 '판소리'] 최고 기량 소리꾼이 부르는 '다섯바탕'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가장 중심을 차지하는 프로그램은 판소리이며, 판소리가 중심을 차지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지역의 역사성에 근거하고 있음을 지난번에 말한 바 있다. 그런데 판소리 프로그램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이 바로 판소리 다섯 바탕이다. 이 프로그램은 소리축제가 시작된 이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유지됐다. 지금까지 창(노래)이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의 다섯 가지다. 이를 말이 바로 다섯 바탕이다. 그러니까 판소리 다섯 바탕은 현재까지 창이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 전체라는 말이다.이 프로그램에서는 그야말로 우리나라 판소리를 대표하는 명창이 출연한다. 물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창이라면 인간문화재가 출연하는 것이 좋겠으나, 현재 인간문화재 명창은 연세가 많아 오랜 시간 판소리를 불러야 하는 공연은 감당할 수가 없다. 그래서 40~50대 명창이 주로 출연한다. 사실 인간문화재 명창들이 우리나라 판소리를 대표하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전성기가 지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문화재의 소리는 공력으로, 관록으로 부르고 듣는 소리이다. 실제 판소리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이는 명창들은 중견이라고 불리는 40~50대 명창이다. 이들은 힘 있는 소리로 완창이 가능한 소리꾼이다. 실제 우리나라 판소리를 대표하는 이들이다.판소리 다섯 바탕에서는 본래의 소리판을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극장이 없던 시절 대갓집 대청에서 이뤄지던 무대를 재현하도록 했다. 극장을 공연장으로 택하지 않고 한옥마을에서 여러 해 공연을 계속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될 수 있는 한 전통적인 소리판에 가까운 소리판을 벌여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한옥마을 동헌으로 자리를 옮겨 소리판이 펼쳐진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완창을 주로 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완창이 전통적인 판소리 공연 방식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판소리 창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체력적인 부담이 크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소리꾼들이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면서 적당한 공연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선에서 계획하고 있다. 그래서 공연 시간도 두 시간 남짓으로 정해 자유스럽게 했다. 그렇다고 소리축제에 와서 판소리 완창 하나 듣지 못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두 사람이 연속해서 불러 완창이 되는 기획을 선보인다.판소리는 아무래도 어려운 음악이다. 판소리 이해의 기본이 되는 사설(가사)은 현대 청중이 이해할 수 없는 19세기 언어와 한문이 많다. 또 외국인도 판소리를 체험하기 위해서 오는데, 그들은 자막이 없다면 기본적인 줄거리조차도 이해할 수가 없다.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에서는 이미 국영문 자막을 만들었다. 판소리 다섯 바탕에서는 한글과 영어가 동시에 연동돼 작동되는 자막이 제공된다. 이 자막을 통해서 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판소리 이해에 훨씬 가깝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올해 판소리 다섯 바탕에서 〈춘향가〉는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을 맡고 있는 송재영 명창과 전남도립국악단 창악부 지도위원을 맡고 있는 박춘맹 명창이 절반씩 불러 공동으로 완창을 한다. 송재영은 김연수 바디, 박춘맹은 정응민 바디를 부르기 때문에 대표적인 두 종류의 〈춘향가〉를 함께 음미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심청가〉는 도립국악원 창극단 단원인 김세미 명창이 김연수 바디를 부르며, 〈흥보가〉는 역시 도립국악원에서 판소리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연 명창이 김연수 바디를 부른다. 〈수궁가〉는 광주시립국극단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윤진철 명창이 정응민 바디를 부르며, 〈적벽가〉는 도립국악원 창극단 상임단원인 장문희 명창이 박봉술 바디를 부른다. 이 중에서도 특히 정응민 바디의 〈수궁가〉는 부르는 사람이 많지 않아 들을 기회가 적은 귀중한 소리다.올해 판소리 다섯 바탕에는 도내에서 활동하는 명창이 다수 출연한다. 그동안 도내 소리꾼은 소리축제에서 소외된 경향이 없지 않았다. 익숙한 소리꾼보다는 만나기 어려운 외지 소리꾼을 먼저 출연시켰기 때문이다. 올해는 6명 가운데 4명이나 출연한다. 이 정도면 전주의 판소리 수준을 다 보여주는 것이라 할 만하다. 판소리의 본고장이라는 말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이들이 증명해줄 것이라 믿는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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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23 23:02

[스키야키 미츠 더 월드 페스티벌] 자원봉사자가 기획부터 무대 운영까지

축제가 있기에 아직도 피가 철철 끓고 있음을, 여전히 청춘임을 확인할 수 있기에 설렘과 기쁨으로 가득했던 2014년 여름. 매일 매일이 축제여서 마치 꿈만 같았던, 그래서 계속 머물고 싶었던 그 여름을 이제 조금씩 떠나보내고 있다. 여우락 페스티벌, 사천세계타악축제, 스키야키 미츠 더 월드 페스티벌 2014(이하 SMTWF 2014)까지. SMTWF2014는 8월 마지막 주말 동안 펼쳐지는 3일간의 축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관객을 포함해 모두와 뜨겁고 아름다운 순간을 공유했다. 그리고 이어진 나고야와 도쿄에서의 SMTWF2014 투어공연. 마지막으로 SMTWF2014와 프로그램을 공유한 한국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까지. 긴 축제의 여정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가을의 문턱을 넘어 멀어져 가고 있는 여름을 아쉬워하고 있다.△고참의 경험을 다음 대로 전수SMTWF에 참가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독자들께 소개하려고 한다.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축제실행위원회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물론 무대도 직접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스태프 역할을 하고있는 자원봉사자들의 능력이 프로페셔널을 능가하고 있다. 몇몇 탁월한 사람들도 분명 있지만 중요한 점은 고참 스태프들의 경험이 다음 세대로 전수되는 것이다. 한편 무거운 짐을 나르거나 다소 위험한 일, 귀찮거나 사소해 보이는 일을 하고 있는 전직 실행위원회 임원, 공무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매우 신선한 일이다. 모두가 수평적인 관계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게 된다. 나이도 관계없고 사회적인 지위도 관계없다. 축제 안에서 그들은 모두 동료이고 스태프일 뿐이다. 서로를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모습에서 큰 배움을 얻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오직 축제 참여를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행동한다. 그 어느 누구도 희생이나 무리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이 즐기고 놀아야 축제 축제의 규모와 관계없이 축제에 참여하는 것은 사실 아주 작은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관심이 모여 커다란 물줄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르와 상관없이 축제는 문화의 교류이고 한 사회의 문화수준을 잴 수 있는 척도다. 문화는 삶의 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물론 개인이나 한 사회의 물질적 풍요도와 축제의 규모가 꼭 좋은 축제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이 공통의 관심사로 함께 만나고 수평적 상태에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이 결국 축제의 본질적인 취지이며 가치이다. 음악이나 먹거리 등 각종 다양한 주제 및 화려한 이벤트들로 인해 축제의 원래의 취지가 가려지면 안될 것이다. 축제는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잘 즐겼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축제의 기능을 한다고 본다. 잘 즐기고 멋나게 노는 멋진 우리들. 바로 그것을 희망하고 있는 것이고 그런 사회라야 비로소 우리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행복은 물질적 풍요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상태를 얼마나 지속시킬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축제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믿는다. 비용대비 효과도 아주 좋다고 확신한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글을 쓰며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참여하고 있다. 섭외 과정을 포함해 벌써 몇 개월째 소리축제를 즐기고 있다. 어느정도의 비약은 인정하지만 어쨌든 또 이렇게 축제 안에서 계절을 넘나들며 잘 놀고 있다. 그리고 함께 놀아줄 관객을 기다리며 벌써부터 흥분하고 있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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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19 23:02

[독일 최대 월드뮤직축제의 헤드라이너, 김해숙 명인] "아름답고 상상하지 못했던 근사한 명상 선사" 극찬

독일 루돌슈타트 월드뮤직축제(T.F.F. RUDOLSTADT)는 지난 1955년 민속무용축제를 기원으로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진지 10년 만에 열린 이 축제는 서독의 50개 공연단이 국경을 넘어 동독의 120개 공연단과 어울렸다. 이후 동독의 대표적인 축제로 성장했고 동서를 가르던 장벽이 무너졌던 1990년을 제외하고 계속됐다.△동서독의 문화교류 앞장루돌슈타트 월드뮤직축제가 독일 최대의 월드뮤직축제로 성장하기까지 통일 전부터 서독의 예술감독 베른하르트 하네켄과 사무국을 총괄한 동독 출신의 피터 울만의 헌신적인 노력이 지속돼왔다. 두 사람은 1991년부터 이 축제가 독일 최대 규모의 월드뮤직축제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다. △가야금 명인 헤드라이너로 초청 한국의 전통음악이 이 축제의 헤드라이너로 등장한 것은 올해 여름이 처음이다. 그동안 몇 차례의 전통음악 공연과 워크숍이 진행되기도 했지만 주요 초청자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진 못했었다. 그러다 마침내 지난 3월, 현 국립국악원 원장이며 최옥삼류 가야금 산조의 김해숙 명인이 이 축제의 헤드라이너로 선정됐다. 지난 7월3~6일 40여개국이 참가하고 160여개 공연단이 250여개 공연을 펼치는 유럽 최고이자 독일 최대의 월드뮤직축제가 관객에게 추천하는 예술가로 김해숙 명인을 선정한 것이다.김해숙 명인은 뛰어난 음악 해석을 바탕으로 매력적으로 선율을 표현하며 논리정연하고 품격 있는 연주를 펼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이미 30대 초반에 당대 최고의 고수였던 김명환 명인과 함께 국내에서 발매된 첫 가야금산조 음반을 출시했고, 2012년에는 권위와 명성을 지닌 라디오프랑스의 음반 레이블 오코라(OCORA)가 김해숙 명인의 연주를 담은 최옥삼류 가야금 산조음반을 출시했다. 이 음반은 세계적인 음반사 아르모니아 문디를 통해 60여개 국가에서 동시에 출시됐으며 산조를 월드뮤직계와 민족음악학계에 본격적으로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름이 알려졌고 2년 뒤 페스티벌 측의 초청을 승낙했다. 최옥삼류 가야금산조와 김해숙 명인이 작곡한 풍류노정, 리스트음대 스트링쿼텟과 협연하게 될 신관동별곡 협연이 공연 리스트에 올랐다. 90분의 프로그램에는 전통무용을 선보일 한명옥 명무가 흔쾌히 참여했으며 김영길 명인, 유경화 한예종 겸임교수가 동행했다. 공연 제목은 산조, 미래를 지향하는 전통음악 (Sanjo, Future-Oriented traditional Music)으로 한국전통음악에 대한 워크숍에서부터 홍보용 부스설치, 국립국악원 홍보물과 프로그램북 제작까지 무리 없이 진행됐다. △세계음악 보편성 지닌 전통음악루돌슈타트 월드뮤직 축제의 첫 무대는 극장이었다. 한명옥 명무의 살풀이로 시작된 공연은 리스트음대 스트링쿼텟과 김해숙 명인의 신관동별곡 협연을 마지막으로 관객의 환호와 갈채 속에 끝이 났다. 기립박수를 받으며 수 차례의 커튼콜을 마친 김해숙 명인은 인터뷰를 위해 대기실로 향했고 준비했던 음반은 순식간에 판매됐다. 4000여명이 관람한 시청 앞 광장의 폐막 공연까지, 김해숙 명인의 루돌슈타트 월드뮤직축제 공연은 모두 성황리에 마쳤다. 현지 언론들은 문화면 톱기사와 전면 인터뷰기사를 통해 김해숙 명인을 소개했으며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상상하지 못했던 근사한 명상을 선사한 공연이라고 극찬했다. 우리 민속기악의 정수를 담고 있는 산조를 비롯한 전통음악이 해외진출에 자신감을 갖게 만든 중요한 계기였다. 김해숙 명인이 삶의 전 과정을 통해 보여준 저력으로 다시 한 번 전통음악이 가진 세계음악으로서의 보편성을 확인받는 순간이었다. 2014 전주세계소리축제 산조의 밤은 세계적인 권위의 2013 샤를크로 아카데미에서 월드뮤직 음반상을 수상한 명인들을 초청했다. 김해숙 김영길 이재화 박현숙 명인이 깊이있는 선율의 연주를 선사할 예정이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 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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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16 23:02

[아랍음악] 끊임없이 굴절되면서 이어지는 선율·리듬 '황홀경'

아랍 음악(Arab Music)은 그 뿌리가 길고 깊다. 아랍지역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이며, 기독교와 이슬람교라는 현대 주류 종교를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아랍문화는 이처럼 풍요로운 대지 위에서 잉태됐다. 그래서 아랍음악의 뿌리는 길고 깊을 수밖에 없다. 아랍음악을 듣고 있다 보면 끊임없이 굴절되면서 이어지는 선율과, 빠르고 느린 박자의 리듬에 묘하게 깊이 빠져들어간다. 그 이유는 24음계를 기본으로 하고 아랍특유의 선법인 마캄(maqam)을 사용하는 독특한 선율과 리듬의 진행 때문인 듯 하다. 예전에 터키 내륙에 있는 도시 콘야(Konya)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이 도시에서 격조 있는 아랍전통음악을 라이브(Live)로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도 가끔 아랍음악을 들을 때면 그 당시 빠져들었던 황홀경의 연주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이 곳이 그 유명한 수피댄스(sufi dance)로 잘 알려진 도시이다. 수피댄스는 세마(sema)라는 의식을 거행할 때 추는 춤이어서 세마댄스(sema dance)라고도 한다. 콘야는 한때 셀주크 터키의 수도였고 철학자이자 시인인 메블라나 루우미가 이슬람 수피교단의 한 교파인 메블라나 교단을 만든 본거지다. 메블라나 교단에서는 신과의 영적인 교감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이 수피댄스를 만들게 된 것이라 한다. 이 수피댄스 공연을 수소문해 오후 9시께 공연을 보기 위해 어느 이슬람 사원에 갔다. 유럽 사람인 듯한 중년의 백인 남녀 20여명이 와 있었고, 그리 크지 않은 오래된 사원은 조금 낡아보였지만 정갈한 느낌을 주었다. 공연은 엄숙하게 시작됐다. 아랍 전통악기인 네이(ney, 갈대피리), 우드(oud, 기타와 같은 소리를 내는 발현 악기), 다프(daff, 방울이 달린 탬버린의 일종), 다라부카(darabuka, 항아리 모양의 북) 등의 연주자들이 차례대로 연주를 시작했다. 한참 후에 남자 무용수가 특유의 수피댄스 의상을 입고 한 사람씩 나와 빙글빙글 도는 춤을 추었다. 시간이 갈수록 연주가 빠르고 격렬해지면서 무용수도 늘어났다. 나중에는 열 두세 명의 무용수가 집단으로 춤을 추었는데, 3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깊게 몰입한 공연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신비로운 선율과 느리고 격렬한 빠름의 타악기 연주에 맞추어 계속 돌고 도는 단순한 춤사위였을 뿐인데 그 어떤 강렬한 마력에 빠져든 황홀경의 시간들이었다.지난 2005년 전주세계소리축제 때 참여했던 쿠르드족 월드뮤직 그룹 리빙 화이어 앙상블(Living fire Ensemble)의 연주도 필자에게는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는 공연으로 남아있다. 현존하는 지구상 최대의 유랑민족인 쿠르드족은 그 인구가 2200만 명에서 3800만 명까지 추산되고 있다. 터키와 이라크, 이란, 시리아, 아르메니아 등의 국경지대에 흩어져 차별과 박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주로 영국에서 활동하면서 쿠르드족 음악을 보존하고 확산하는 작업에 전념하는 리빙 화이어 앙상블의 연주는 아랍 전통의 선율과 리듬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인 새로운 음악의 시도가 돋보였다.그리고 이 그룹을 이끌고 있는 지하오니의 다프(daff) 솔로 연주는 엄청난 에너지의 분출을 느끼게 하는 전율의 연주였다. 여기서 차이고 저기서 당하는 쿠르드족의 울분을 토해내는 듯한 격렬한 다프 연주였다. 언뜻 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탬버린의 일종인 다프를 손에 들고 힘과 스피드의 강약을 조절해가면서 관중을 강렬한 엑스터시(ecstasy)로 몰아가는 연주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공연이었다.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에도 어김없이 중동의 연주팀 두 팀이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아랍음악과는 조금 다른 페르시안(이란)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그룹 시알크 앙상블(sialk Ensamble)과 아랍문화와 신비주의 종파였던 수피주의(sufism)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연주그룹 듀오 사빌(Duo Sabil)이 그들이다. 듀오 사빌은 세계 유수의 월드뮤직 페스티발에 자주 초청받는 실력 있는 그룹이다. 특히 듀오 사빌에서 우드(oud)를 맡고 있는 아마드 알 하티브(Ahmad Al Khatib)의 품격 있는 우드 연주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수피주의에 심취되어 있는 아마드 알 하티브의 라이브 연주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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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12 23:02

[여우락 페스티벌] '음악'과 '국악'이 하나로 포개진 순간

올해로 5회를 맞은 여우락 페스티벌은 지난 2010년에 공명, 노름마치, 들소리, 소나기프로젝트까지 네 팀으로 출발해 2014년 현재는 23일간 10개 단체, 100명이 넘는 출연진이 참가하는 축제로 성장했다. 공연 외에도 대학의 전통음악 전공자를 대상으로 하는 4박 5일간의 워크숍, 관객과 좀 더 가까운 만남의 시간인 여우토크, 어린이 대상 음악체험 프로그램인 여우락 스쿨 등 여러 이벤트가 있다. 공연계에서 비수기로 불리는 7월, 그것도 장기간 계속되는 음악축제로는 아마도 여우락 페스티벌이 유일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여우락 페스티벌은 모두 유료공연으로 진행되는데 작년에 이어 대부분의 공연이 조기 매진되는 바람에 일부 공연은 추가적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티켓판매가 어려운 전통음악계의 현실을 고려할 때 여우락 페스티벌의 성장세와 티켓판매 및 객석점유율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외국에선 활발,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은=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의 줄임말인 여우락 페스티벌. 첫 해에 참가했던 4개 단체는 한국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창작단체로 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몇 번의 페스티벌 기획 회의를 하는 동안 여기 참 괜찮은 우리 음악이 있는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즐기고 싶다라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이내 여우락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다른 한편으론 전통음악이 바탕이지만 오늘의 관객과 함께하는 바로 여기, 지금의 음악으로 자리매김 하고자 우리 음악이라는 표현을 쓰게 됐다.페스티벌의 프로그램 구성 및 홍보에 참여할 때 국악이나 전통음악이라는 낱말의 사용을 의도적으로 최대한 배제했다. 국악은 지루하다는 선입견이 거슬리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음악과 국악을 구분하지 않고 관객들이 그저 음악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옛 것 그대로의 음악과 내일을 고민하며 만들어진 오늘의 음악을 구분하되 수직적 상하관계가 아닌 양쪽 모두 존중하며 수평적인 관점에서 보일 수 있도록 했다.△국내해외음악 비교해야 진면목 알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국악은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공연을 하면서 직접 보니 재미있으시죠?라는 멘트도 많이 했다. 그런데 전통음악이 과연 재미없는 것일까? 왜 일부만 그렇게도 전통음악을 좋아하는 걸까?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이고 나름의 해답을 불과 얼마 전에 얻었다. 자기반성을 겸하자면 국악을 재미없게 연주하는 내 자신이 문제 라고 생각했다. 국악이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이미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꾸 강요하듯 사람들에게 들이밀었고 몰라준다고 불평했다. 치기어린 자아도취였다. 얄팍한 기술을 좀 할 줄 안다고 오랜 시간을 거쳐 완벽에 가깝게 다듬어진 전통음악을 마치 내가 이룩한 것처럼 우쭐댔다. 외국에서는 국악이 마치 세계 최고의 우월한 음악인듯 뽐내며 상대를 얕잡아 보기도 했다. 다행히 훌륭한 아티스트들을 만나며 이런 바보 짓은 오래지 않아 그만두었다. 모든 것이 음악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국악만이 전부인 줄 알았던 것이다. 내부에서 음악과 국악이 하나로 포개졌던 순간 세계관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오랜 시간 바깥세상과 교류하며 수입과 수출을 통해 이루어진 우리 전통음악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국내음악과 해외음악을 비교하며 만나볼 수 있는 전주세계소리축제를 통해 독자들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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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05 23:02

[축제에서 왜 판소리가 중심을 차지하게 됐나] 현재 전승되는 판소리·대회 대부분 전북서 출발

전주세계소리축제는 판소리를 가장 중심에 놓고 프로그램을 짠다. 사람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물론 말과는 달리 판소리에 가장 많은 자원이 투자되는 것도 아니고, 판소리에 가장 많은 청중이 몰리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전주세계소리축제가 판소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데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왜 그런가?전주세계소리축제가 시작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재임하던 국민의 정부 때다. 20세기가 끝나고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되는 2001년을 맞아 지방자치단체마다 각종 축제를 준비했었다. 그때 전라북도에서는 판소리를 앞세워 축제를 하기로 했다. 전북은 자타가 공인하는 판소리의 중심지이기 때문이었다.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소리는 우리 전통음악에서 민속음악 성악곡을 가리는 말이다. 판소리의 소리도 마찬가지다. 판소리 하면 전주와 전북을 떠올리게 된 것은 전주와 전북이 판소리의 역사 속에서 수행한 역할이 크고 중요했기 때문이다. 먼저 판소리다운 판소리는 전북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판소리사에서 처음으로 더늠을 남긴 소리꾼인 권삼득, 판소리를 집대성하고 한 차원 높은 예술로 끌어올려 동편제 판소리라고 하는 전통을 수립한 가왕 송흥록, 김세종 바디 판소리를 만든 김세종, 동편제 판소리에 대립되는 서편제 판소리를 창안한 박유전 등이 다 전북 사람이다. 결국 현재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의 대부분이 전북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판소리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모두 우리 지역 출신 소리꾼에 의해서였다는 점이다. 앞에서 든 권삼득, 송흥록, 박유전은 말할 것도 없고, 고창 출신 진채선은 최초로 판소리를 한 여성이었다. 현대 판소리의 특징이 된 장단의 엇부침이나 계면조 위주의 창법, 그리고 창극 등은 익산군 망성면 출신의 정정렬을 빼고 말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현대적 상황에 맞게 새로이 만들어진 연극적 판소리인 김연수제 판소리는 우리 지방 출신의 오정숙에 의해 우리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승되면서 꽃을 피우고 있다. 셋째, 각종 판소리 축제 혹은 판소리 경연대회가 우리 지방에서 출발되었고, 또 현재까지 줄기찬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판소리 축제로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이 바로 전주대사습이다. 전주는 19세기에 판소리 명창의 등용문이었던 전주대사습과 같은 판소리 축제를 만들어냈고, 이를 잘 유지해왔다. 물론 이 대회는 1975년에 전국에서 가장 먼저 복원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31년부터 시작되었던 남원 춘향제의 판소리 경연은 일제 강점기에 존재했던 유일한 판소리 축제였다. 그 외에도 전국고수대회, 학생대사습 등도 그 부문에서는 가장 먼저 시작된 판소리 축제이다. 이러한 행사들이 모두 다 우리 지방에서 시작되어 판소리 문화를 선도해 나갔다.넷째, 판소리 전통의 마지막 보루라는 점이다. 1960년대 들어 판소리가 사멸지경에 이르렀다가 요즘에 와서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은, 마지막까지 판소리에 대한 감성을 잃지 않고 있었던 우리 지역 판소리 청중들에 의해 가능했다. 전주대사습이 부활되었을 때 경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로부터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추임새는 우리나라의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산을 바탕으로 전북은 전국에서 최초로 도립국악원을 만들어 사회교육에 나섰고, 이미 수많은 연수생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까닭으로 우리 고장은 판소리의 고장, 판소리의 중심지, 전통의 도시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며 가꾸어 왔다. 이러한 역사성을 배경으로 우리는 소리축제를 만들었다. 그러기 때문에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판소리가 중심을 차지한다. 이는 판소리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린다거나, 가장 많은 자원이 투자된다거나 하는 것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서도 모든 일의 근원이 된 것이 바로 판소리이기 때문이다.※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 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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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02 23:02

[지구촌 시대의 음악문화] 각국 정서 잘 표현한 민속음악, 소리축제서 만나보자

문화는 시대의 반영이고, 삶의 모습이 투영된 무형의 의미 체계이다. 문화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질과 상충이 서로 주고받는 소통(communication)의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교류(interchange)의 과정을 거치다 어느 날 퓨전(fusion)화 되면서 세월이 흐르다보면 독특한 개성(character)을 확보하게 되고, 드디어 정체성( identity)을 획득해 하나의 문화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계속 이어지면서 새로운 역사와 문화가 생성된다. 그리고 전통이라는 옷은 이러한 역사와 문화에 잘 어울리는 모양새로 입혀지게 된다. 음악문화도 마찬가지다. 시대가 변하고 우리의 사는 모습이 바뀌면서 음악문화도 바뀐다. 지금 우리는 산업화시대보다 그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른 정보화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는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지구촌 시대라는 단어가 실감나는 시대에서 살고 있다. 인터넷과 SNS의 폭발적인 확산으로 이제는 아무리 먼 곳의 소식일지라도 방 안에서, 사무실에서 빠르게 알 수 있다. 조금만 노력한다면 자기 취향에 맞는 정보를 넓고 깊게 알아본 뒤에 쉽게 채집할 수 있게 되었다. 월드뮤직(world music)도 이와 같은 정보의 빠른 이동수단과 공유로 지구촌 사람들에게 쉽게 관심을 받게 됐다. 그러면 근래에 각광받고 있는 월드뮤직은 어떤 음악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불행하게도 월드뮤직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아직 확립되지 않은 듯하다. 지금도 계속 ing하고 있는 중이다. 월드뮤직은 언젠가 분명한 자신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한때 음악 마니아(mania)에게 인기 있었던 뉴에이지(new age)음악처럼 월드뮤직도 영미 상업자본의 마케팅 차원에서 처음 사용되었던 단어다. 제3세계음악이나 월드 비트 등 여러 용어와 혼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월드뮤직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제3세계음악이란 용어에서 제3세계는 정치적 이념(ideology)이 첨예화됐던 시절에 나온 오래된 단어다. 그래서인지 이념적 논란이 이제 구시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요즈음 제3세계음악이란 말은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이처럼 장르적 정체성 확보를 위해 계속 진화 중에 있는 월드뮤직을 그래도 가장 설득력 있게 정의해 준 문장은 심영보 씨가 낸 〈월드뮤직, 세계로 열린 창〉이란 책에 쓰여 있다. 월드뮤직이란 현대화된(contemporary) 민속음악(folk music)이다라는 문장은 월드뮤직의 의미를 짧고 간략하게 압축시킨 적절한 구절이다.전주세계소리축제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전통음악과 다른 나라들의 민족음악(national music) 가운데 민중의 집단적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는 민속음악(folk music)을 계속 소개하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민속음악을 즐겨 듣는 필자로서는 매우 반갑고 또한 소중한 기회여서 매년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여러 나라의 민속음악 그룹의 음악을 들어보면 많은 연주들이 토속적인 민속음악보다는 현대화된 민속음악 즉, 월드뮤직이었다.△채광석씨는 음악여행가다. 50여개 나라 250여개 도시를 여행하며 공연과 음악을 찾아다니고 자료를 수집했다. 대학과 잡지, 방송국에서 음악여행와인에 관한 강연과 방송활동, 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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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29 23:02

[③독일 최대 월드뮤직축제를 가다]인구 2만5000명 시골마을 축제, 유럽 전역서 8만여명 찾아

독일 루돌슈타트는 인구 2만5000명의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타고 가려면 튀링겐의 주도인 에어푸르트에서 다시 지선열차를 갈아타야 했다. 루돌슈타트 축제에는 지난 2008년 여름 처음 참가했다. 이에 앞선 2002년 여름,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와인 산지인 크렘스의 한 월드뮤직축제에서 만났던 루돌슈타트 월드뮤직축제의 예술감독과의 약속 때문이었다.10시간 넘게 4번이나 기차를 갈아타고 도착했던 루돌슈타트과의 첫 만남은 변색된 건물과 다듬어지지 않은 무성한 숲이었다. 축제가 시작되기 이틀 전, 작은 기차역 앞은 한산했다. 하지만 눈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호텔로 향하는 길이 축제에 참가하고자 유럽 곳곳에서 찾아온 하얀색 캠핑카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이제서야 제대로 축제를 만나는구나하는 안도감과 함께 매년 8만여명의 관객이 찾아오며 작은 강을 따라 4개의 캠핑장이 마련돼 있다는 조직위 직원의 설명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사실 그 작은 마을에 그 많은 인파가 어디서 묵을 것인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런 의구심이 단번에 해결됐다. 짐을 풀고 레스토랑에 앉아서 제법 두툼한 축제 프로그램북을 펼치니, 인사말에 낯익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다. 총리의 인사말이라니. 이 축제가 이렇게도 중요한 위상을 가졌었나? 프로그램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니, 독일의 월드뮤직 시상식 루쓰(RUTH)가 열리고, 총 33개의 무대가 마을 곳곳에 설치될 예정이었다. 또한, 당시 월드뮤직계의 이슈어들이 헤드라이너로 올라 있었다. 세파르딕 민요를 세계에 알려낸 야스민 레비, 집시 브라스 밴드로는 전설적인 명성을 지닌 팡파레 치오깔리아, 아프로켈틱 사운드시스템의 사이먼 에머슨이 영국 포크뮤직계의 주요 아티스트들을 전면에 재배치하면서 결성했던 디 이미지드 빌리지, 프레임드럼 연주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글렌 벨레즈 등이 그 해 루돌슈타트 월드뮤직축제를 찾아온 주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외에 다른 유럽지역의 페스티벌들과 차별되는 루돌슈타트 월드뮤직축제의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로 악기별, 국가별 특집 프로그램이다. 이 중 국가별 특집 프로그램의 경우는 유럽 각 지역의 월드뮤직 페스티벌들이 차용해서 진행하는 아이템이 되기도 했다. 1993년 핀란드 음악으로부터 시작된 국가별 특집 프로그램은 199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시작으로, 헝가리인도포르투갈영국소앤틸리스폴란드캐나다그리스브라질프랑미국이스라엘이 뒤를 이어 그 해의 주빈국이었다. 악기는 프레임드럼이 특집프로그램으로 준비되었다. 독일과 스위스 국경 마을에서 스틸드럼을 개조해 만들었고 까다롭게 판매하고 있다는 항그(Hang)를 비롯해 아랍, 아일랜드, 인도 등 다양한 문화권에서 초청받은 프레임 드럼 연주자들의 합주가 준비되고 있었다. 축제가 시작되자 마을 뒷산 정상에 수백년 전에 건축된 하이덱스부르크 고성 주변의 무대들과 시청 앞 광장과 극장을 중심으로 마을 곳곳에 펼쳐진 무대들, 작은 강 건너편의 수천명이 볼 수 있도록 높고 크게 설치된 무대들에서 쉴 새 없이 공연들이 진행되었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원이 있었고, 별도의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발칸반도와 동유럽에서 긴 여행을 했을 집시밴드들과의 조우도 즐거웠고, 서로 다른 형태의 백파이프들과 프레임드럼을 비롯한 월드뮤직 악기상들의 전시로 가득한 골목길도 흥미로웠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아티스트들과 만나는 기쁨도 잠시 있었고, 270개의 공연들 중 보고 싶은 공연들을 분주히 찾아다니다보니 4일간의 일정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앞으로 한국전통음악을 어떻게 선보이는 것이 좋을지 잠시 고민도 했고, 예술 감독과의 미팅에서는 향후 계획에 대한 구상도 교환할 수 있었다. 기대 없이 찾아온 축제에서, 유럽의 다른 축제에서는 얻지 못한 특별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이 곳이라면, 전통음악의 원형을 꾸준히 소개할 수 있는 거점으로서의 역할이 가능할 것이고, 성과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김선국 저스트뮤직 대표는 음반프로듀서다. 한국 전통음악이 2013 샤를 크로 아카데미에서 월드뮤직음반상을 수상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한국음악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 문화일반
  • 이세명
  • 2014.08.26 23:02

[②일본 스키야키 미츠 월드페스티벌서 배우다] 축제, 더디게 가더라도 실수 되풀이 안하려 노력

지난 2001년에 당시 꽤 주목 받으며 활동하던 타악그룹 푸리의 멤버로서 일본의 한 월드뮤직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었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도시 자체가 워낙 작은 도시였고 페스티벌의 규모자체도 그리 커보이진 않았지만 10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산사에서의 공연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이후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개인적으로 2002년부터 그 축제와 관계를 갖게 되었고 올해도 여전히 그 축제가 열리는 일본 토야마현 난토시 후쿠노에 와있다. 매년 8월 마지막 주말 3일간 열리는 이 축제는 스키야키 미츠 더 월드 페스티벌(Sukiyaki Meets The World Festival)이라는 월드뮤직 페스티벌로 올해로 24회째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김치 전골, 세계를 만나다쯤 될 것 같다.△아티스트와 축제를 다리 놓는 기획자로서의 삶= 오랜 인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 페스티벌에서 Arts & Festival Network advisor로서 활동하고 있다. 페스티벌이 열리기 전에 이곳 후쿠노에 와서 학생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타악기 워크숍을 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와 일본 출신의 아티스트들과 프로젝트 밴드를 만들어 음악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외국의 다른 페스티벌에 소개를 하고 또 아티스트들을 추천하거나 하는 일들도 겸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한국의 뮤지션들을 스키야키 페스티벌에 소개하거나 브라질과 오스트리아의 페스티벌에서 만난 아티스트들을 섭외하는데 자문하거나 또 역으로 그들의 페스티벌에 스키야키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아티스트들이 참여하게 주선하는 등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해준다. 그런 일들의 결과로 올해의 경우처럼 스키야키에 출연했던 아티스트들이 나고야와 도쿄에서 공연을 하고 한국의 광주월드뮤직 페스티벌까지 장기투어가 성사되기도 했다. 아티스트들은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어서 좋고 페스티벌은 좋은 프로그램을 확보하고 일정 부분 비용도 절감할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들은 일견 너무도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일이 성사되기까지는 상호간 두터운 신뢰는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이 필요한, 간단치 않은 일이다. 여담이지만 진지하게 독자 여러분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전주세계소리축제 정도의 규모라면 준비하는 스태프분들께서 얼마만큼의 수고를 하고 계신지 저로선 감히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스태프 여러분께 응원의 말씀 전하고 독자 여러분께도 격려의 메세지를 전해주실 것을 부탁한다.△더디지만 주민 주도로 성장하는 축제= 스키야키 미츠 더 월드 페스티벌(http://www.sukiyaki.cc)은 이문화교류를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상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원봉사자와 지역민들, 그리고 축제의 취지에 공감하는 일본 국내와 해외의 아티스트들이 수 년간 관계를 맺으며 함께 페스티벌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는 당당히 일본 최대 규모의 월드뮤직 페스티벌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축제의 규모는 겉으로 보기엔 소박하다 싶을 정도로 작다. 하지만 각종 문화와 지역사회관련 상들을 수상한 것이 증명하듯 스키야키 페스티벌은 알찬 구성에 관한한 독보적이다. 초창기에는 시와 함께 수도권의 대형 프로모터회사가 협력사로서 아티스트 섭외 등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었지만 점차적으로 자원봉사자 주축의 실행위원회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고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실행위원회는 장기적 관점을 갖고 거쳐야 할 과정을 끈질기게 거쳐왔다. 다소 더디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문제점에 대해 확실하게 하나씩 해결하고 나아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이제 페스티벌은 열흘정도 앞두고 있고 나도 이 곳에 온지 열흘 가량 지나고 있다. 매일 아침 9시에 연습실로 가서 나고야와 토쿄, 광주 월드뮤직페스티벌까지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하고 밤 늦게까지 워크숍을 하고 다시 숙소인 아티스트 하우스로 돌아와 음식도 만들고 얘기도 하느라 무척 피곤한 일정을 보내고 있고 또 소화해 내야 한다. 하지만 뮤지션으로서 이렇게 음악 속에 있을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이고 큰 기쁨인지 모른다.*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공연기획자 장재효씨는 북촌뮤직페스티벌여우락 페스티벌 예술감독, 그룹 소나기 프로젝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2010 전주소리축제의 소리프론티어 무대에서 수림문화상을 수상하면서 창작 활동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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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22 23:02

[① 판소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판소리 들으면 즐거운가…내가 한민족인지 판별해주는 지표

음악은 세계를 품는 언어다. 2001년부터 이어온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이를 확인해왔다. 우리 전통음악을 중심으로 세계의 음악이 이곳에서 버물렸다. 그 축제가 다시 50일 앞으로 다가왔다. 본보는 전주세계소리축제와 함께 한국음악과 세계음악의 흐름을 읽는 기획물을 마련했다. 전문가들이 나서 우리 전통음악과 세계 각국의 음악의 특징과 매력들을 소개한다. 필진은 최동현(판소리 연구가)김선국(저스트 뮤직 대표)장재효(북촌뮤직페스티벌 예술감독)채광석(전주 재즈클럽 자코 대표)씨. 소리축제 직후까지(10월 24일) 매주 두 차례(화, 금요일) 연재할 기획물은 전통음악과 월드뮤직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자리다. 본보 연재물은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운영하는 공식블로그 소리타래에도 함께 올려진다.판소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판소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물론 판소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판소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판소리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판소리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판소리에서 잃어버린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우리 민족 문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판소리를 사랑하고 아낄 수도 있다.그런데 판소리가 참으로 중요한 이유는 판소리가 우리가 누구인지를 확인해 주는 자기 정체성의 지표가 된다는 점이다. 자기 정체성이란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말한다. 그러니까 판소리는 내가 누구인지, 나의 참모습이 무엇인지를 판별해주는 지표가 된다는 뜻이다.국문학자 조동일은 〈카타르시스 라사 신명풀이〉라는 책에서, 누가 우리 민족의 일원으로서 필요한 자격을 갖추었는가를 가리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고 하면서,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우리말을 모국어로 삼고 있는가? 둘째, 김치를 먹으면 맛이 있는가? 셋째, 판소리를 들으면 즐거운가? 첫째 관문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통과한다고 하였다. 우리말을 쓰는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기만 하면 이 조건은 저절로 만족된다. 우리말을 쓰는 환경에서 자라면 우리말이 그 사람의 모국어가 된다. 이렇게 해서 중국에 사는 조선족도 우리 민족의 일원이 된다. 둘째 관문은 인류 공통의 유아식인 젖을 떼고 자기 문화의 산물인 음식을 먹기 시작할 때 통과한다고 하였다. 부모가 김치를 즐겨 먹으면 자식도 배워 우리 민족의 일원이 된다. 맛은 사람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다르게 느낀다. 영양가를 따져서 맛이 있고 없고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어릴 적부터 먹고 살아 익숙한 게 맛이다. 그런데 세 번째 기준인 판소리에 관한 감수성은 저절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다. 음악은 생활 자체가 아니고, 생활을 근거로 해서 이룩한 고차원의 문화이기 때문에, 공동체 전체의 노력으로 지키고 가꾸어야 이어진다고 한다.조동일 교수는 또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조사해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세 번째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젊은 세대는 3분의 2의 자격만 가진 한국인들이다. 곧 고차적인 문화적 표현과 감성의 영역에서 우리는 이미 한국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판소리가 차지해야 할 자리를 서양의 고전음악이나 유행가, 그리고 서양식으로 만들어진 우리 유행가나 가곡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에 관한 한 우리 것이 오히려 낯설게 되어버렸다.10여 년 전에 필자는 연변 지역의 판소리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들은 판소리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오래 동안 고립되어 있었으면서도 판소리를 지켜왔다. 물론 그 판소리는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별것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닿는 범위 내에서 판소리를 유지해 온 것이다.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판소리를 지켜온 까닭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한 조선족 민속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 속의 조선족은 상시적인 소멸의 위기 속의 존재이다. 판소리를 지키려고 노력해 온 이유는, 판소리를 지키는 것이 민족을 지키는 한 방법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말 속에 판소리의 가치가 다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땅을 잃으면 국가를 잃지만, 판소리를 잃으면 민족을 잃는다. 국가는 회복될 수 있지만, 민족은 한 번 사라지고 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최동현 군산대 교수(국문학)는 국내 처음으로 판소리 다섯바탕을 영문으로 번역하기도 한 판소리 연구가다.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현장에서 판소리 해설 등을 통해 판소리의 대중화에 열정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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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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