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석 우석대 산학협력단장
우석대 서동석 산학협력단장(57)은 학교에서 총장보다 더 바쁜 사람이다.보통 하루에 10명 이상을 만난다. 기업인들이 제일 많고, 자치단체 공무원,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다. 그의 자동차는 "흔히 하는 말로 주인 잘못 만나서 괴롭다." 1년이면 주행 거리가 6만㎞가 훌쩍 넘는다. 그는 최근 10년 사이 자동차를 5대나 바꿨다. "웬만하면 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가는 쪽이 많고, 점심도 여러 번 먹을 때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주위에선 '우석대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라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다리가 짧아서다"라고 눙친다. 그의 키는 163㎝.산업디자인학과 교수가 본업인 그는 우석대에서만 산학협력단장중소기업산학협력센터장평생교육원장 등 직함이 여러 개다. 지난 5월 선임된 (사)한국대학평생교육협의회 이사장을 비롯해 (사)한국산학연협회 부회장전북지역대학 산학협력단장협의회장전라북도 문화재위원 등 외부 활동도 활발하다.지난달 29일 우석대 산학협력단장실에서 10년 남짓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살다가 '잘 나가는 대학 교수'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이력이 독특합니다. 전주대 미술교육학과(목공예 전공)를 졸업하고, 1983년 4월부터 1995년 2월까지 전주동암고에서 미술교사를 했습니다. 교사에서 대학 교수로 전향(?)한 계기가 있나요?- '많은 것을 해보자'는 마음이 있었어요. 제 전공과 관련된 대학생들을 지도하고 싶은 욕심도 컸고요. 틈틈이 전주대와 전주교대에서 시간강사를 했는데, 목마름이 있었어요. 인문계 고교이다 보니 일주일에 2시간, 대학으로 치면 교양과목 수준에서 미술을 가르쳤죠.▲ 산업디자인학과 교수가 중소기업산학협력센터장을 맡은 사례가 드문데요. 나중엔 산학협력단장까지 맡았고요.- 산업디자인은 중소기업 제품과 밀접해요. 한국화나 서양화는 제품과 관계되기 어렵지만. 산업디자인은 일선 생산 제품과 특허와 밀접하기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직함이 많습니다. 일과가 빠듯할 것 같은데, 보통 스케줄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노하우가 있다면.- 일정은 수첩에다가 메모를 하고 조율을 하는데, 직원들이 고생이 많죠. 항상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교회에 다녀오고, 1시간 동안 운동해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오전 9시 학교 가기 전에 밖에서 웬만한 일을 처리합니다. 가령 이경옥 전 행정부지사(현 국가기록원장) 같은 경우, 아침에 콩나물국밥집에서 만나 조찬을 함께하며 내용을 전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죠. 이런 방법이 힘든 면도 있지만 오히려 더 편해요. 사람들을 만날 때엔 가능한 한 레벨(level수준)을 맞추진 않아요. 모든 사람을 계층 없이 만나죠. 일이라는 게 한 가지 층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고, 다각적인 층에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중소기업산학협력센터장평생교육원장산학협력단장으로서 각각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직책을 처음 맡았을 때와 지금 상황을 비교한다면.- 산학협력단은 수익 사업을 하는 곳이에요. 외부 모든 프로젝트가 산학협력단으로 오죠. 계약자도 총장이 아니고, 단장이에요. 별도 법인이어서 세금계산서도 따로 발행하고, 사업자 번호도 따로 나와요. 단장은 교수라기보다 CEO에 가깝죠.처음(2006년) 인수받을 때는 사업 규모가 20억 원이 안 됐어요. 지금은 200억 원이 조금 넘어요. 1년짜리 단기 과제부터 재작년 농촌진흥청 4년짜리 프로젝트까지 과제도 수두룩해요. 특허를 내면 실제 가동될 수 있도록 실연하는 거죠. 프로젝트에 우리 학교가 선정되게끔 교수들에게 발표 연습도 시키고, 거기에 들어가는 경비도 협력단이 지원합니다. 산학협력단은 기업 대표들이 학교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방법론을 모른다고 할 때 불편함이 없도록 안내하고, 교수들이 프로젝트에 대한 프로포절(proposal제안)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울타리 역할을 해주는 거예요.중소기업산학협력센터의 핵심은 산학연 공동 기술 개발이에요. 중기센터장을 처음(1999년) 맡았을 때 사업비가 1억2000만 원이었어요. 지금은 1년에 최소 10억 원 이상은 돼요. 옛날에는 과제를 10개 채우기도 어려웠는데, 올해는 27개를 냈어요. 초창기에는 교수들을 찾아다니면서 사정했어요. 과제를 내달라고요. 지금은 여러 업체를 섭렵하다 보니, 업체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아요. 거기에 맞는 교수와 업체를 연결해 주고, 중소기업이 대학의 우수한 인력과 장비를 활용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2002년 평생교육원에 갔을 때 1년에 1억5000만 원씩 적자를 보고 있었어요. 다가 캠퍼스와 금암 캠퍼스 두 군데가 있었는데, 가자마자 3개월 만에 구조조정을 했어요. 다가 캠퍼스를 없애고, 직원들은 금암 캠퍼스로 옮겼죠. 당시 김영석 총장이 '여기서 수익이 창출되면 인센티브를 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폐쇄하겠다'고 했어요. 첫해 수익이 2억 원 나와서 인센티브로 2000만 원을 받았어요. 그 후로 적자는 없고, 계속 수익이 올라와 지난해 평생교육원 순수입이 30억 원 정도예요. 전국적으로 봐도 우색대 평생교육원은 학생들도 1년에 3000명 이상이고, 규모와 내용 면에서 상위권에 진입했어요.▲ 각 직책을 수행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후회라기보다 일이 폭주하다 보니, 직원을 더 증원해 업무를 나눠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평생교육원의 경우 모든 직원들이 무기 계약직이에요. 본인들 입장에선 (신분상) 불안한 부분이 없지 않죠. 산학협력단도 양상은 다르지만, 프로젝트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산학협력단 교수들을 충원하고 싶습니다. 일반 과 교수들은 자기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안 하려고 하거든요. 그래야 산학협력단이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개인전을 일곱 차례나 열고, 동아공예대전 공예상 등 상도 많이 받았는데요. 요즘도 미술 작업을 하는지.- 전무합니다. 할 수가 없죠. 7, 8년 전부터 못 하고 있어요. 작업할 때는 옷도 자연스럽게 입어야 하는데, 외부 약속이 있으면 그 사람에 맞춰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복장도, 시간도 불가능하죠. 정년이 8년 남았는데, (일의) 깊은 수렁에 빠져 움직이면 자꾸 들어가요. 일이 연결, 연결 오기 때문이죠. 슬슬 다음 타자가 올 수 있도록 준비해야죠.▲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어떻게 돌파하나요?- 일을 하다 보면 100% 다 될 때가 없어요. 그럴 때는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요. 전주 중인리 쪽에 나무를 심어 놨어요. 백일홍나무산딸나무소나무 등 1200평 정도 돼요. 일이 안 될 때는 나무 밑에서 풀도 뽑고, 전지가위로 잘라보기도 해요. 마음을 비우는 거죠. 나무의 푸르름과 성장하는 걸 보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제가 목가구목공예를 하면서 산 나무를 많이 죽였어요. 죄사함(용서)을 받기 위한 것도 있어요.▲ 본인의 장점과 단점은.전 매사가 긍정적이에요. 학교에서도 그럴 거예요. 총장도, 이사장도 일을 시키면 저는 '아니오'라고 하는 적이 없습니다. 제가 교회(현암교회) 장로인데, 그것이 축복의 길이더라고요.하지만 냉정하게 끊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상대편을 배려하다 보니, 그런 부분이 어렵더라고요. 남들이 보면 저를 물 같다고 하겠지만, 물이라고 속이 없겠어요? 그래도 내가 먼저 배려하면 결국엔 서로가 협력하게 되더라고요. 시간은 좀 많이 걸립디다.▲ 인생의 스승이 있다면.동암재단 양복규 이사장님(73)이 하신 말씀 중에 지금도 머리에 박힌 게 '기둥을 치면 서까래가 움직인다'예요. 큰 일을 하려면 작은 일은 건들지 말라는 거죠. 제가 동암고에 있을 때 이사장님이 배려를 많이 해줬어요. 지금도 동암고는 친정으로 생각하고 종종 방문합니다. 고등학교에 있을 때 가장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했어요. 대한민국 공예대전에서 10번 입선을 했어요. 동아일보 공예대전 공예상, 현대미술대전 대상, 오늘(7월 29일) 가서 심사하는 전라북도 공예품대회에서도 대상을 받는 등 큰 상을 두루 받았죠. 집사람(이혜숙 씨54)의 숨은 공도 있어요. 작품 활동하는 데 돈을 많이 투자했어요. 정말 끊지 않고, 마다 않고 제가 (작업에) 전력투구하게 해줬죠.▲ 꿈은.각양각색이겠지만, 통틀어 얘기하면 학교에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길밖에 없는 것 같아요. 보직을 벗으면 제 본연으로 돌아가서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