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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과 정동영의 미래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지난달 10일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는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명 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정 대표는 총리로서 선거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우선돼야 한다. 만약 그럴 우려가 있다면 찬성할 수 없다고 답했다. 총리가 초도순시 명목으로 고향인 전북을 방문해 민주당 후보와 만나면 그게 바로 선거개입이라는 것이다. 이날 정 후보자는 더는 걱정 말라. 이번 선거가 끝나면 협치를 하려고 한다고 설득했고 정 대표도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대화가 관심을 끈 것은 두 사람의 관계 때문이다. 이들은 호남의 맹주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북정치를 양분해 왔다. 국회의원 뿐 아니라 김완주송하진 지사, 김승환 교육감 등 상당수가 이들의 도움을 받고 당선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좀 껄끄러운 관계였다. 시계 바늘을 25년 전으로 돌려보자. 이들은 1995년 제1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영입, 이듬해 치러진 15대 국회의원 선거(무주진안장수/ 전주 덕진)에서 당선돼 나란히 국회에 등원했다. 정치입문 동기인 셈이다.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 각각 산업자원부장관과 통일부장관을 지냈고 모두 열린우리당 의장을 역임했다. 이들이 악연을 맺게 된 건 2009년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부터다. 2007년 10월 대선에서 패배한 정동영은 자숙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간은 길지 않았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 을에 나와 고배를 마셨다. 때마침 전주에서 김세웅(덕진)과 이무영(완산 갑)이 선거법 위반으로 물러나자 정동영은 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이 전국 최다득표율을 자랑했던 전주 덕진 재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정세균이 대표로 있던 민주당 지도부는 정동영의 출마를 만류했다. 이유는 민주당의 전국 정당화였다. 텃밭 호남지역 보다는 6개월 뒤 치러질 수도권 재보궐선거에 나서 달라는 요청이었다. 결국 정동영은 민주당을 탈당하고 신건과 함께 무소속 연대를 꾸려 당선되었다. 그 때 나온 구호가 유명한 어머니, 정동영입니다였다. 당선 이후 정동영은 민주당 복당을 신청했고 정세균은 9개월간 받아주지 않았다. 당시 정세균은 자신도 고향에서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지역구를 서울 종로로 옮겼다. 또 2010년 103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들은 다시 격돌하게 된다. KBS TV 토론에서 정세균 후보가 먼저 자신을 키워준 모태를 부정하는 정치를 통해 성장했다. 결국은 배신의 정치 아니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대해 정동영 후보는 정후보가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되받았다. 이들은 모두 전북이 낳은 걸출한 인물이다. 오랫동안 동지요 라이벌이지만 고비마다 우리 정치를 풍요롭게 해왔다. 그렇다면 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우선 정세균은 지난달 46대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국회의장 출신이 왜 행정부 2인자로 가느냐는 반론도 있었지만 실사구시형 성격답게 총리직을 수락했다. 앞으로 정세균은 대선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전 총리를 넘어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느냐가 관심사다. 그러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지금 창궐하고 있는 중국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수습에 탁월한 역량을 보이는 게 첫 시험대다. 그리고 정동영은 21대 총선에 당선되느냐 여부가 코앞에 닥친 과제다. 10년 동안 참모노릇을 했던 김성주와의 리턴매치에서 살아남느냐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들의 미래가 자못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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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04 16:34

전북 정치판을 갈아엎자

지난 가을, 노인 100여 명을 모시고 충청권으로 역사문화 탐방을 다녀왔다. 대전에 있는 뿌리공원과 족보박물관을 들른 후, 충북 청주의 청남대를 돌아오는 코스였다. 이 가운데 인상적인 곳이 청남대였다. 청남대는 1983년부터 20년 동안 대통령의 공식별장으로 이용되다 노무현 대통령 때 일반에 공개되었다. 대청호를 낀 55만평의 부지에는 11만 그루의 조경수와 35만 본의 야생화, 각종 철새 등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돼 따뜻한 남쪽의 궁궐다웠다. 문화해설사에 따르면 1983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인근을 지나가다 이곳에 별장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장세동 경호실장이 6개월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독재자의 유물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기막힌 경치와 산책길이 너무도 환상적이었다. 때마침 국화축제까지 열려 엄청난 인파가 몰렸으나 모두를 넉넉한 품으로 안아주는 듯했다. 지금은 관리주체가 충북도여서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후세들이 관광자원으로 훌륭하게 활용하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서울에서 청주까지 곧 지하철이 연결되면 인근의 첨단과학단지와 함께 축복받은 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또 얼마 전에는 밤바다로 뜨고 있는 전남 여수와 정원박람회를 치렀던 순천 일대를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오래 전에 가본 예전의 그곳이 아니었다. 천지개벽하듯 변해있었고 관광객도 넘쳐나 활력이 돌았다. 그러고 보면 전북만 외로운 섬이 아닌가 싶어 머쓱했다. 실제로 전북은 오랫동안 축소지향의 길을 걸어왔다. 1896년 전북이라는 행정구역이 탄생한 이래 두 차례에 걸쳐 2개 군을 잃었다. 전남 구례군과 충남 금산군이 그러하다. 또 1947년부터 1953년까지 군산에 있던 한국해양대학은 부산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전북은 과거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1948년 제헌국회가 닻을 올렸을 때만해도 전국 200석 중 전북이 22석이었고, 9개의 상임위원장 자리 가운데 4개를 전북출신이 차지할 정도였다. 1949년의 경우 인구가 204만 명으로 남한 전체의 10.2%였다 그런데 이제는 전국 대비 3% 인구에, 2% 경제로 추락하고 말았다. 왜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나? 첫째는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경부축 중심의 불균형 성장정책이요, 둘째는 전북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의 잘못 때문이다. 특히 정치지도자들의 무능이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찌해야 하나? 정치지도자의 교체를 통한 전면적인 물갈이, 아니 판갈이가 필요하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경우 10명 전체를 바꾼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특히 여야를 떠나 4선의 정동영, 3선의 유성엽 조배숙 이춘석 등에게는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들은 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새로운 보수당, 대안신당, 무소속 등으로 사분오열 된데다 서발막대 휘둘러도 거미줄만 걸리는 가난한 집안에서 서로 남 탓 공방만 벌였다. 탄소소재법과 공공의료대학원법 등의 국회통과 무산이나 제3 금융중심지 지정 보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지연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썩은 고목에 또 다시 꽃을 피우겠다고 선거판을 기웃거리는 이강래 김춘진 등 올드보이들에게는 매서운 채찍이 약이다. 혹자는 중진을 키워야 한다거나 새로운 인물, 즉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새 봄에 싹을 틔우고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거두기위해서는 깊이갈이(深耕)가 절실하다. 깊이갈이를 통해 그동안 마발이 노릇을 하며 땅심만 소진시킨 정치인들을 퇴출시켜야 한다. 설령 새로운 인물이 미흡하다해도 한번 맡겨보자. 이대로 가면 전북에는 미래가 없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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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07 19:12

오래 살고, 오래 일하자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오래 살고, 오래 일하자(Live Longer, Work Longer). 이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5년 개최한 고령화와 고용에 관한 정책포럼의 보고서 제목이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의 고령화 현상과 고용정책을 검토해 고령화 현상을 과제가 아닌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도쿄도 고령사회 교과서) 이에 동의하나?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평생현역으로 사는 게 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100세 시대라는 말을 귀찮을 만큼 들어왔다. 실제로 이것은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이다.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8년 평균수명은 83.1세(남자 80.5, 여자 85.7)다. 정부가 수립되던 1948년 46.8세에 비해, 70년 사이에 36.3세가 늘었다. 2년마다 1살이 늘어난 셈이다. 앞으로도 인간의 수명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미 모나코 여성의 평균수명은 93세를 넘겼다. 그렇다면 평생현역은 무엇인가. 세계 최고령 장수국가 일본에서는 생애현역(Age Free)이라는 말이 20여 년 전부터 사용되었다. 최근 들어 부쩍 더 거론된다. 올해 일본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28.4%(우리나라 15%), 70세 이상은 21.5%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일본사회가 느끼는 위기감은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우리에게 밉상인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9월 초고령사회에 대비한 평생현역시대 정책을 발표했다. 정년을 연장해 70세까지 일하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에 대해 국가에서 연금을 주기 어려우니까 전 국민이 죽을 때까지 일하라고 한다며 냉소적인 시각이 없지 않다. 반면 더 오래 일하는 것을 희망하는 사람도 많다. 일본 내각부 여론조사에서 6569세 고령자의 65%가 일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정리하자면 이제 100세 시대는 좋든 싫든 필연이고, 고령에도 일을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왕 이럴 바엔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이와 관련, 고령자에 관한 오해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999년 발표한 반드시 없애야 할 6가지 인식이 그것이다. △대부분 고령자는 선진국에 산다 △고령자는 모두 같다 △남성과 여성 모두 같은 방식으로 나이가 든다 △고령자는 허약하다 △고령자는 아무런 공헌도 할 수 없다 △고령자는 사회에 경제적 부담이 된다 등이다. WHO는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없애고 고령자가 사회에 유용한 자원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일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노년의 일은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까지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다. 가능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파트타임(가령 하루 34시간씩)으로 하는 것이다. 100세 철학자인 김형석 교수(1920년생)가 롤모델이다. 100세인데도 해마다 150회 이상의 강연을 다니고 한 해 23권의 책을 내고 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건강과 젊음의 비결은 일이라고 확언했다. 건강해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하니 건강하다는 것이다. 일자리가 없다고 하지 말고 내가 일을 찾고 만들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또 하나는 봉사도 일이라는 점이다. 특히 일과 봉사가 결합된 사회공헌 활동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길어진 인생, 이제 오래 살면서 오래 일하자. 개인도 사회도 이러한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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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26 17:29

나는 내 집에서 살다 죽고 싶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90살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마지막을 요양병원에 계셨다. 서울에서 1년, 정읍에서 5년 가까이 지내셨다. 정읍에서는 고향 분 몇몇이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어 그리 심심치 않은 듯 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면서 그분들이 하나 둘 떠나고, 말년에는 아는 사람 없이 어머니만 남으셨다. 몸이 수척해지고 나중에는 거동도 거의 하지 못하셨다. 나는 병원에 자주 들르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주말마다 찾았다. 그런데 점점 늘어져 갔다. 몇 년이 지나서는 한 달에 한 번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돌아가실 무렵 집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몇 년째 비어 놓은 농촌 집에 가봐야 반길 사람 하나 없는데도. 몇 번은 동생이 차로 모시고 가려다 다시 돌아오곤 했다. 침대에 오랫동안 누워 계셔서 차가 흔들리면 온 몸이 아프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식사는 물론 대소변도 처리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었다. 나 역시 당신이 평생 지내시던 집이 아닌 병원에서 돌아가신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하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점점 나이 들면서 나도 노후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할 때가 있다. 최근 장모님마저 잃어 더욱 그러하다. 나도 결국은 어머니처럼 요양병원에서 삶을 마감해야 할까?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정신이 멀쩡할 때 자청해서 안락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식들에게 괴로움을 끼치지 않고, 고통 없이 갔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아마 죽음을 맞는 많은 이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세상은 탈(脫)시대다. 사회복지에서는 탈시설화탈가족화가, 철학에서는 탈인간화가 큰 흐름이다. 탈시설화는 말 그대로 시설에 수용하는 것에서 탈피해 자신의 집이나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필요한 서비스를 받는 것이다. 탈시설화의 세계적인 움직임은 1950년대부터 일기 시작해 1980년대에 활발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90년대까지도 노인이건 장애인이건 시설 보호방식이 대세였다. 이번 정부 들어 지역사회통합돌봄(Community Care)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반세기 넘게 이어져온 시설복지 패러다임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노인복지분야에서는 AIP(Aging In Place 살던 곳에서 나이 들기)가 핵심개념이다. 노인들이 아프고 불편하더라도 병원이나 시설보다 평소 살던 곳에서 지내다 삶을 마치는 것이다. 실제로 2017 노인 실태조사에서도 노인들의 절반 이상인 57.6%가 거동이 불편해도 살던 곳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자녀들은 부모와 같이 살려고 하지 않는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2008년 도입돼 가족과 자녀의 부양 부담이 줄어들었으나 아직은 공급자 중심인데다 혜택도 일부에 그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6월부터 전국 최초로 서비스를 시작한 전주시 통합돌봄 선도사업은 노인들에게 반가운 소식 중 하나다. 지역 실정에 맞는 돌봄모델을 발굴하기 위해 행정과 의사 약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 등 관련단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긴 하나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을 직접 찾아가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승수 시장은 지난 7일 민관협의체 회의에서 전주에 143층 랜드마크 건물도 종합경기장 개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편안하게 살다 삶을 마치는 것이라고 했다. 꽤 인상적인 말이다. 나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보다 내 집에서 살다 눈을 감았으면 한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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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29 17:51

장모님의 죽음과 지역병원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지난주 절에서 장모님의 49재를 지냈다. 극락왕생을 빌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곳에 태어나길 기원했다. 스님의 염불에 맞춰 두 시간 넘게 천수경 등을 따라 하고, 법문(法文)을 외웠다. 장모님이 평소 입던 옷가지도 태웠다. 하늘 높이 훨훨 타올라가는 불길을 보며 천상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안하길 마음 속 깊이 빌었다. 올해 84세인 장모님은 너무나 갑자기 돌아가셨다. 대학병원에서 심장혈관 스텐트시술 중 심정지(心停止)가 와서 돌아가신 것이다. 시술 받으러 들어간 지 3시간이 못돼 그렇게 되었다. 기가 막히고 허망했다. 발을 허공에 디딘 것처럼 한동안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장모님은 우리 가족에겐 특별한 분이셨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모두 키워주셨다. 큰 아이가 유치원 들어갈 때 일이다. 당시 유치원은 경쟁률이 높아 원생을 선착순으로 뽑았다. 2월이던가, 꽤 춥던 날 새벽부터 10시간 넘게 밖에서 줄을 서 계셨다. 손자들 일이라면 지극 정성이었다. 당초 장모님은 수술이나 시술은 생각지도 않았다. 얼마 전부터 숨이 차긴 했으나 감기정도로 여겼다. 유일한 혈육인 딸이 병원에 가자고 하니 익산에서 치료 받아도 되는데 왜 전주까지 가느냐고 못마땅해 하셨다. 의료진은 혈관이 좁아져 있고 판막도 좋지 않아 이대로 두면 1년밖에 못 사신다며 수술보다 안전한 시술을 권했다. 시술을 하고 나면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너무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았으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세 번째 혈관을 뚫다 혈액 부스러기가 혈관을 막아버린 것이다. 중환자실로 옮긴지 30분이 안 돼 또다시 심정지가 왔고,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셨다. 전후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쉬움이 너무 컸다. 우선 환자의 건강상태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설사 등으로 체력이 최악인 상태에서 혈관 3개를 한꺼번에 시술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또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무심했다. 심장 쇼크 후 보인 의료진의 태도는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아마 그들에게 환자의 죽음은 늘 대하는 일상사여서 너무 익숙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환자는 본인이나 가족에게 전 세계요 우주다. 환자의 죽음과 함께 가족의 상당부분도 함께 죽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의료진이 일부러 사고를 냈으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장모님의 죽음을 보며 지역에 좋은 의료진과 의료시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히 느꼈다. 주변에서 병이 나면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때마다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느 병원이나 오진이 있고 의료사고가 있게 마련인데 너무 호들갑을 떤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지방에 산다는 것이 우수한 보건의료 혜택에서 소외된다는 걸 의미해선 안 된다. 지금 전주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사업(Community Care) 역시 마찬가지다. 나이 들어 자신이 살던 곳에서 돌봄을 받다 생은 마치는 것이 기본개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양질의 의료진과 의료시설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믿을 만한 의료시설이 없다면 출발부터 도로아미타불이다. 8월의 무더위에 휴일까지 겹쳤는데도 많은 분들이 위로해 주셨다. 그분들 중 고인(故人)이 딸과 사위를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서둘러 가신 것 같다는 말에 목이 더 멘다. 중국 시인 두보는 관을 덮고서 일이 정해진다.고 했다. 가신 뒤 고마움의 그림자가 더 긴듯하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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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01 18:19

아파트 노동자의 눈물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아파트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거주하는 가장 보편적인 공간이다. 통계청의 2017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0.6%가 아파트에 산다. 도시만을 놓고 보면 거의 80%에 육박한다. 또 이곳에서 일하는 경비청소직은 가장 대표적인 노인 일자리다. 사실 경비청소직은 고된 노동강도와 불안한 고용계약으로 만족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진입경쟁이 치열한 다른 노동시장과 달리 그나마 수요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노인일자리 중 하나다. 우리는 아파트의 그늘에서 묵묵히 일하며 눈물 흘리는 고령노동자의 삶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 지난 28일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에서 2019 아파트 경비원청소원의 근로환경, 길을 찾는다!는 심포지엄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이날 심포지엄은 전주시 소재 의무관리대상 아파트(150가구 이상) 318개 단지 중 212개 단지에 근무하는 경비원(관리원) 244명과 청소원 140명 등 384명을 상대로 면접조사를 벌인 것을 바탕으로 했다. 특히 법학교수 등 전문가 뿐 아니라 입주자대표회의, 용역업체, 경비원과 청소원 등이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전북에서는 물론 전국에서 처음 시도하는 일이다. 설문조사 결과, 경비원과 청소원들이 얼마나 열악한 근무환경에 처해 있는지 여실히 밝혀졌다. 이들의 90%가 60대 이상이었으며 70대 이상도 18.4%와 23.6%를 차지했다. 또 이들의 90%가 계약직임시직이고 경비는 24시간 맞교대, 청소는 46시간 근무가 일반적이었다. 월평균 임금은 184만7천원과 130만8천원이었다. 경비원의 경우 근로기준법 예외 직종으로 구분돼 평균 8.1 시간의 휴게시간을 제하고 임금을 받는다. 또 휴게공간이 따로 없어 72.8%가 경비실에서 새우잠을 잔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 청소원은 땀을 흘리는데도 85.5%가 샤워실이 없다. 가장 어려운 점으로 경비원은 고용불안을, 청소원은 낮은 임금을 꼽았다. 사용자로부터 욕설 무시 구타 등 부당한 상황을 경험한 경우가 50% 이상이었으며 입주민의 인권 침해도 20%에 달했다. 이날 현장의 목소리를 토대로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경비원의 경우 24시간 맞교대에서 평일 23교대 근무로 유도해야 한다. 고령노동자가 24시간을 꼬박 근무하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또 90%에 이르는 비정규직을 점차 정규직화 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면 한다. 둘째, 정년(고용기간)을 연장하든지 없앴으면 한다. 아파트 경비원의 정년은 65세로, 대개 1년 단위로 계약한다. 하지만 정년을 넘긴 후는 6개월 또는 3개월 단위로 쪼개기 계약을 한다. 셋째,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고용불안을 해소했으면 한다. 위탁관리가 80% 안팎인데 용역업체가 바뀌면 승계의무가 없어 사실상 해고 위험에 놓이게 된다. 또 가능하면 위탁보다는 직접고용(자치관리)을 장려했으면 한다. 넷째,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사용자의 갑질이나 최저임금 위반, 임금체불 등을 못하도록 상시감독이 필요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청소원을 줄이고 이 일을 경비원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다. 또 휴게시간을 늘려 임금을 적게 주는 편법이 횡행한다. 다섯째, 아파트 관리 업무를 준공영제로 운영하는 방안이다. 대다수가 거주하는 생활공간을 사적영역에만 맡길 게 아니라 자치단체가 준공영제로 운영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날 행사에서 한 분리수거 청소원은 365일 쉬는 날이 없다 면서 장모님이 돌아가신 날도 얼굴만 비추고 근무했다고 밝혔다. 민과 관, 지역사회가 지혜를 모아 아파트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줬으면 한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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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02 17:04

100세 시대, 노인 나이를 세분화하자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국립공원 속리산으로 유명한 충북 보은군에는 80세 이상 노인만 이용할 수 있는 경로당이 있다. 이름하여 산수(傘壽) 어르신 쉼터 상수(上壽) 사랑방. 80세를 뜻하는 산수와 100세를 뜻하는 상수에서 따왔다. 2011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지만, 위아래가 엄격한 시골마을에서 자식뻘 되는 새까만 후배와 함께 경로당을 이용하기가 불편한 고령 노인을 위해 개설한 것이다. 이 경로당은 큰 호응을 얻어 2013년 탄부면에 2호, 2019년 1월 마로면에 3호를 개설했다. 3호의 경우 문을 열자마자 8093세의 노인 50여 명이 회원으로 등록했다. 이제 경로당도 젊은 노인과 늙은 노인으로 구분하는 시대가 되었다. 실제로 일반 경로당에도 70세 정도는 어린애 취급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면 노인나이 기준을 어떻게 봐야 할까. 올해 1월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노인나이 기준을 변경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워크숍에서 (우리나라가) 사회적 인식보다 노인연령이 너무 낮게 설정된 상태라면서 노인연령 기준을 적극적으로 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현행 65세를 올려 달라고 주문한 셈이다. 이러한 요구는 몇 년 전에도 있었다. 2015년 대한노인회가 노인기준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높이자고 제안했다. 정부가 옆구리를 찔러 나온 것이긴 하지만 이후 노인연령 기준 상향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노인연령 기준이 65세가 된 것은 130년 전이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1889년 세계 최초로 연금보험을 도입하면서 지급대상 연령을 65세 이상으로 잡았다. 유엔도 1950년 고령지표를 내면서 비스마르크 연금을 참고해 노인 기준을 65세로 정했다. 우리나라 역시 1981년 노인복지법을 제정하면서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지금과 당시의 수명을 비교하면 맞지 않는 옷이다. 1889년 당시 독일인 평균수명은 49세, 1981년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66.1세였다. 올해 기대수명은 82.6세다. 지난해 서울시노인실태조사에서도 65세 이상 노인이 생각하는 노인 기준 연령은 평균 72.5세였다. 다른 나라의 기준을 어떨까. 노인대국 일본은 노인을 전기고령자(6574세)와 후기고령자(75세 이상)로 나눈다. 75세가 기준인 것은 1987년부터 20여 년간 조사한 결과 약 80%가 70대 후반부터 서서히 쇠약해지기 시작해 도움이 필요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의료 등 복지 정책이 다르게 적용된다. 미국 또한 노인을 구분한다. 젊은 노인(young old 6574세), 중간노인(middle old 7584), 늙은 노인(very old 또는 old old 85세 이상)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고령화가 급격히 이루어지자 유엔은 2015년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다. 미성년자(017세), 청년(1865세), 중년(6679세), 노년(8099세), 장수노인(100세 이상)으로 구분한 것이다. 문제는 노인 연령 기준이 복지혜택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정부 복지포털 복지로에 따르면 노인 연령과 관련된 복지서비스는 199종에 이른다. 기초연금, 장기요양보험,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 독감백신 무료접종, 지하철 무료 이용 등 대부분이 65세가 기준이다. 가뜩이나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세계 1위인데 노인연령을 올려 혜택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100세 시대의 급행열차를 타고 있는데 손을 놓을 수도 없다. 보은의 경로당처럼 노인 나이를 세분화하고, 복지서비스 종류에 따라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안을 모색했으면 싶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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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21 16:52

최명재·홍성대·정문술 〉 김승환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요즘 전북교육계는 상산고의 자사고(자율형사립고) 재평가를 앞두고 논란이 뜨겁다. 전북교육청만 기준점을 다른 곳보다 10점 높은 80점으로 올린 게 불씨가 됐다. 이에 대해 상산고는 자사고 폐지 수순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러한 논란을 보면서 교육의 본질과 교육에 바친 전북출신 인물들의 헌신과 희생을 떠올려 본다. 정치 경제적인 역량이 계속 쪼그라드는 현실에서 얼마 전까지 전북은 교육입국(敎育立國)을 위해 온 몸을 던진 인물들이 많았다. 그들 중 현재 살아있는 대표적 인물 3명만 소개할까 한다. 먼저 강원도 횡성에 민족사관고를 세운 최명재 회장(92). 김제출신인 최 회장은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전주고와 서울 상대를 졸업하고 1953년부터 은행원으로 일하다 택시운전사로 전업했다. 1974년 이란에 진출, 운송업으로 큰돈을 번 후 강원도에 목장을 차리고 1987년 파스퇴르유업을 세웠다. 여기서 번 돈 1000억 원을 1996년 민사고를 세우는데 쏟아 부었다. 민사고의 젖줄인 파스퇴르 유업은 학교에 대한 과도한 투자로 2004년 한국야쿠르트에 매각됐다. 영재교육과 민족주체성교육, 지도자 양성을 내세운 이 학교는 세계 명문 20대 고교에 들어갈 정도로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최 회장은 회고록에서 내가 번 돈은 사회가 잠깐 내게 맡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둘째는 상산고를 세운 홍성대 이사장(82). 수학의 정석으로 널리 알려진 홍 이사장은 남성고와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올해 발행 53주년을 맞는 이 책은 한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 정읍이 고향으로 어린시절 14번 이사를 다닐 정도로 어려웠다고 한다. 이후 학원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홍 이사장은 1981년 전주에 상산고를 세우고 2002년 자사고로 전환했다. 책에서 번 돈 1000억 원을 투자했으며 학교 명칭은 고향 태인의 상두산(象頭山)에서 따왔다. 또 이 학교 부지에는 전북의 정치거목 이철승 신민당 대표의 뜻도 담겨 있다. 이 대표는 살아생전 학교를 설립하려다 홍 이사장이 상산고를 세우겠다고 하자 선뜻 1만평을 내놓고 자신의 뜻을 접었다. 홍 이사장은 고향에 명봉도서관, 서울대에 상산수리과학관을 지어 기증했다. 그는 상산고는 25% 이상을 전북지역 인재로 선발한다면서 내 고민은 교육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살리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셋째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전 재산을 기부해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을 세운 정문술 회장(81). 임실에서 태어난 정 회장은 원광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정보부에 특채돼 18년을 근무하다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쫓겨났다. 1983년 미래산업을 창업,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반도체산업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두었다. 2001년과 2014년 515억 원을 쾌척, 바이오와 뇌과학, 인공지능 등을 연구토록 했다. 그는 정의로운 기업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겼다. 자사고 문제는 교육의 수월성과 평등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김승환 교육감은 평등에 방점을 찍고 상산고는 수월성을 중시한다. 평등은 중요한 가치이나 다양성을 무시한 획일로 흘러서는 안 된다. 특히 모든 게 빠져나가는 전북에 인재를 유입시키는 상산고는 이미 전북의 자랑으로 자리 잡았다. 김 교육감은 전북교육청을 청렴하게 만든 공이 크다. 하지만 불통과 독불장군이라는 평이 따른다. 임기가 3년 남은 교육감이 교육철학이 다르다 해서, 앞으로도 영원해야 할 학교의 명줄을 끊어서야 되겠는가. 인재 양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이들의 숭고한 뜻을 저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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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02 20:25

노인일자리, 어떻게 만들 것인가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얼마 전 흥미로운 통계가 발표되었다. 통계청이 국민이전계정(National Transfer Accounts)이라는 국가통계를 개발해 발표한 것이다. 이것은 민간소득과 정부재정 등이 085세 이상 각 연령대 사이에서 어떻게 이전 및 배분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정책을 개발할 때 근거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올해 처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태어나서 28세까지 적자인생으로 살다가 29세부터 흑자인생으로 돌아선다. 이어 43세 때 정점을 찍고 58세부터 다시 적자인생으로 돌아간다. 즉 2957세의 29년 동안 뼈 빠지게 벌어서 유년과 노년을 먹고 사는 구조다. 크게 보면 부모가 교육비를 대주는 초반 30년을 빼고 중반 30년을 벌어서 중후반 60년을 사는 셈이다. 100세 시대의 라이프 사이클과 거의 일치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주된 일자리의 평균퇴직 연령이 53세라는 점이다. 그 이후를 어떻게 할 것인가. 대다수는 생계를 위해서든 건강을 위해서든 일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주민등록상 인구는 2018년 12월 말 현재 76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4.8%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2018년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5579세 사이의 64.1%가 일자리 갖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고용률은 40%를 밑돌고 있고 그나마도 건물청소원, 아파트 경비원, 주차관리, 운전, 요양원 등 단순노무직이 대부분이다. 올해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일자리는 61만개다. 지난해보다 10만 개가 늘었다. 이 중 취약계층 지원, 꽃밭가꾸기 등 공공시설봉사, 노노(老老)케어, 청소년 선도 등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에게 제공하는 공익형 일자리가 72.1%인 44만개로 가장 많다. 한 달에 30시간 일하고 27만원을 받는다. 이 같은 공익활동은 취업이라 하지 않고 사회활동지원사업이라 부른다. 취업에 해당하는 노인일자리는 시장형, 인력파견형, 시니어인턴십, 고령자친화기업, 기업연계형 등으로 정부 보조금이 지원된다. 올해 특기할만한 것은 사회서비스형 2만 자리가 신설된 것이다. 지역아동센터나 청소년장애인노인시설, 방과후 학교 안전돌봄 등에서 한 달 60시간을 일하면 70만원 안팎(주휴수당 등 포함)이 주어진다. 이들 민간일자리는 모두 합해 17만 자리에 불과하다. 일자리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나라 노인일자리의 문제점과 맞닿아 있다. 노인일자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자리 개발과 상담 및 컨설팅, 데이터베이스 관리, 교육훈련, 수행기관, 사후관리가 각각 분절(分節)돼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따로 따로 놀고 있어 원스톱(one-stop) 서비스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일자리 자체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긴 하나, 현재 있거나 나눌 수 있는 자리의 미스매치도 아주 심하다. 구직자와 구인처, 교육훈련과 취창업간의 연계가 원활치 않고 구직자의 경력관리 등 DB도 엉성하다. 한 마디로 콘트롤타워를 중심으로 수요와 공급이 물 흐르듯 연결되는 방향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통합형 노인일자리센터가 광역자치단체별로 들어서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더불어 복지와 고용의 중간 성격 일자리, 직업 중심보다는 직무 중심의 일자리로의 전환도 필요하다. 100세 시대를 맞아 노인일자리도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이 시급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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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12 19:34

꼰대-노인-어르신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얼마 전, 2박3일 간의 워크숍에 다녀왔다. 전국에서 노인 일자리 종사자 40여 명이 모인 전문과정 프로그램이었다. 모처럼 쉴 겸 편한 마음으로 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몇 개 조로 나눠 조장을 뽑고 조별 발표과제가 주어졌다. 3040대 중간관리자가 대부분인지라 60대인 내게 조장이 맡겨졌다. 마지막 날에는 조별로 PT발표를 해야 했다. 모두가 서로 눈치를 보며 뒤로 빠지려 했다. 자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몇몇 조원들이 (사무실에서) 나이 든 관장이나 센터장들은 밑에 있는 사람만 시키려 한다는 말이 귀에 꽂혔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10분가량의 발표가 끝나고 평가를 하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메모지에 장단점을 써서 제출한 뒤 그것을 강사가 읽어주었다.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중후하다 경험이 많은 것 같다는 평에 이어 전형적인 아저씨 모습(꼰대)라고 하지 않은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꼰대라니? 면전에서 처음 듣는 얘기였다. 웃고 넘어갔지만 내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 후 그 말은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었다. 또 올해 들어 노인에 관한 글을 쓸 기회가 있었다. 우리사회에서 노인 또는 지역관련 단체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분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리액션을 보면서 어른답지 못한 노인이 많구나!하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특히 내가 (중책을) 맡고 싶어서 맡은 게 아니라 할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봉사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15년 동안 감투를 쓰면서 단체를 지리멸렬하게 만들어 놓고도 아직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노인을 이르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다. 꼰대, 영감(令監), 늙은이, 노인, 어르신 등이 그것이다. 이 중 꼰대는 청소년들이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키는 은어였다. 지금은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직장 상사나 노인을 이른다. 영감은 당초 높은 관직에 오른 남자를 가리켰다. 후세에 내려오면서 사회적인 명사나 나이 많은 노인의 존칭 또는 부인이 자기 남편을 존대하는 말로 쓰였다. 그리고 어른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4) 한 집안이나 마을 따위의 집단에서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 이 가운데 3)을 제외하면 동의할 만하다. 하지만 1970년대 전까지만 해도 늙은이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현실언어에서 이 말은 비하의 뜻으로 인식되었다. 대신 노인이 가치중립적인 말로 쓰이게 된 것이다. 그러다 1997년 노인의 날 제정을 계기로 어르신으로 부르자는 제안이 있었다. 어른의 높임말로 노인공경의 분위기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원래 어르신은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한자로는 춘부장(春府丈) 춘당(春堂)이다. 요즘에는 노인(늙은이)과 어르신(어른)을 구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는 것 없이 받기만 좋아하면 노인이고, 대가없이 베풀기를 좋아하면 어르신이다. 더 이상 배울게 없다고 생각하면 노인, 그 반대면 어르신이다. 또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면 어르신이다.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귀와 주머니를 열어야 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결론은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에서 주름살과 함께 품위가 갖추어지면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고 한 말이 딱 맞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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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1 19:58

전북애향운동본부, 발전적으로 해체하라

애향(愛鄕), 얼마나 정겨운 말인가. 굳이 수구초심을 들먹이지 않아도 고향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다. 그 애향이라는 깃발을 들고 태어난 단체가 전북애향운동본부다. 1977년 일어난 익산역 폭발사고를 계기로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전북지부장과 언론인, 상공인, 학계 등이 뜻을 모아 발족한 것이다. 당시 전북대 심종섭 총장을 초대 총재로, 이듬해 4월 사회단체로 등록함으로써 출범의 닻을 올렸다. 슬로건은 내 고장 사랑으로 낙후의 때를 벗자였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일이다. 하지만 내심은 호남 푸대접에 대해 자조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침체된 전북을 일깨우자는 뜻이 숨어 있었다. 비록 관변단체로 출발했으나 뜻은 가상했고 활동은 창대(?)했다. 전북과 관련된 큰 이슈가 있을 때마다 구심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북애향운동본부가 초창기 벌인 활동은 크게 3가지였다. 지역개발촉진사업과 인재육성, 향토문화예술진흥이 그것이다. 그 중 인재육성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핵심사업이다. 낙후를 벗기 위해 도민 1인 1구좌(5000원)갖기 운동을 통해 성금을 모으고 전북도와 시군의 지원으로 1981년 전북애향장학재단을 설립한 것이다. 여기에 1992년부터 전북은행이 매년 5천만 원씩 보태 지금은 기금이 30억 원에 이른다. 이후에도 전북애향운동본부는 IMF 환란극복, 향토기업 육성, 새만금 개발, LH유치 등 고비마다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도민을 대변하는 소리는 사라지고 노쇠한 경로당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러는 사이 전북의 형편은 창립 당시보다 더 어려워졌다. 전북 몫을 찾자는 진짜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럼 전북의 형편을 살펴보자. 전북은 지금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해 있다. 밖으로는 역점사업들에 브레이크가 걸려있다. 새만금신공항이 그렇고, 혁신도시 제3 금융중심지사업이 그러하다. 새만금신공항은 지역구를 의식한 여당 실세인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청주공항)와 이낙연 국무총리(무안공항)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2023년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를 공항 없이 치를 판이다. 세계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제3 금융중심지는 부산상공회의소의 반대 성명에 이어 야당 정치권의 공세가 거세다. 자칫 타당성 검토 용역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물 건너갈 소지가 크다. 또 안으로 전북은 소멸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초저출산과 인구절벽으로 전북 자체가 존립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전북의 인구는 1966년 252만명에서 올해 184만명으로 주저앉았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지방소멸 2018 보고서에 따르면 14개 시군 중 전주 군산 익산 완주를 제외한 10개 시군이 소멸위험지역이다. 그렇지 않아도 전북은 오래 전부터 전주의 구심력 약화로 상당수 시군이 광주권과 대전권으로 빨려 들어간 형세였다. 자, 그렇다면 전북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럴 때일수록 원로들이 나서 솔선수범하며 응집력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 전북애향운동본부는? 김삼룡 총재 15년, 현 임병찬 총재 15년의 장기집권으로 피로감이 만만치 않다. 존재감 자체가 희미해졌다. 일부에서는 애향이 아니라 해향(害鄕)운동본부라고 할 정도다. 김 총재 시대에는 그래도 언로라도 틔었으나 지금은 그마저도 힘들다고 한다. 헤진 갓끈을 부여잡고 놓으려 하지 않는 것은 노욕이요, 노추(老醜)다. 나이 들수록 베풀면서 귀를 열어야 한다지 않던가. 전북애향운동본부가 발전적 해체를 통해 이 지역 어른들의 단체로 거듭 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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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23 19:20

기금운용본부를 서울로 옮기자고?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요즘 국민연금이 동네북이다. 너도 나도 한마디씩 걸친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한때 폐지론까지 올라왔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모든 국민이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5월말 현재 2183만 명이 가입해 있고 매달 수급자만 450만 명에 달한다. 더구나 피 같은 돈 문제이니 예민한 것은 당연하다. 지난 17일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와 제도발전위원회가 장기재정 전망과 개선방향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백화쟁명에 접어든 느낌이다. 정부는 개선안을 토대로 정부안을 만들고, 최종적으로 국회에서 3번째 개편안이 확정될 예정이다. 국민연금은 두 가지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연금안 개편문제요, 또 하나는 기금운용본부 이전 문제다. 먼저 국민연금 개편안을 보자. 많은 국민들은 국민연금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 미덥지 못하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가 기금의 고갈 문제다. 이번 재정추계위가 발표한 것처럼 현재 635조원에 이르는 기금이 2042년에 적자로 돌아섰다 2057년이면 바닥이 난다. 그러다 보면 지금 젊은 세대는 실컷 돈만 내고 나중에 못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가뜩이나 취업도 안돼 서러운데 낸 돈도 못 받아? 젊은 세대가 발끈할만하다. 사실 국민연금이 고갈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1988년 도입 당시 가입자는 평균소득의 3%(보험료율)를 내고, 소득의 70%(소득대체율)를 가져가도록 설계했다. 가입자가 무조건 이득을 보는 구조다. 지금은 9%를 내고 45%, 즉 한 달에 9만8천원을 내고 39만6천원을 받는다. 그것도 12.6년(평균 납부기간)을 내고 22년(60세 한국남성 기대여명) 동안 받는다. 엄청나게 남는 장사다. 반면 영국은 25.8%, 독일 18.7%, 일본 18.3%, 미국 13.0%를 낸다. 그러니 기금 고갈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젊은 세대가 연금을 못 받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바꿔 그때그때 걷은 돈에 세금을 보태 지급하게 된다. 독일을 비롯해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하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저출산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가 지게 될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연금은 덜 내고 더 받는 구조를 깨뜨려야 한다. 특히 그 동안 혜택 받은 세대는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내가 좀 편하자고 우리 아들딸들의 돈을 당겨 써야 되겠는가. 그것은 심하게 말하면 도둑질이나 다름없다. 그 악역을 누가 맡아야 할까. 가혹할지 몰라도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이 작업은 인기 없고 극히 위험한 일이다.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연금개혁을 단행한 지도자는 다음 선거에서 모조리 패배했다. 지금 러시아 연금개혁을 밀어붙이는 부틴에게 시위대는 푸틴은 도둑놈이라고 외친다. 무척 상징적이다. 다음은 기금운용본부의 서울 이전문제다. 보수언론과 일부 야당의원들이 집요하게 주장하고 있다. 마치 전주를 먼 아프리카 오지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기금운용본부 소재지가 있는 전북인으로서 참기 힘든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본부 이전이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서울사무소 개설을 요구한다.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9년 전 이전한 부산의 한국거래소를 보라. 지금 부산사람들은 한국거래소 본사가 부산인지 서울인지 모르겠다고 푸념한다. 이러한 주장이 나온 것은 전북에 힘과 응집력이 없어서다, 국민연금공단이 광주나 대구로 갔어도 그런 말이 나오겠는가. 전북출신 10명의 국회의원과 도지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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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28 18:13

'전주카페 꽃심방'과 국민연금공단

▲ 객원논설위원 커피의 본능은 유혹. 진한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널리 알려진 18세기 프랑스 정치가 탈레랑의 커피 예찬이다. 이러한 예찬이 아니라도 카피는 이제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누군가가 이렇게 물어왔다면 그것은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네요라는 의사 표시일 것이다. 말하자면 커피는 대화를 매개하는 커뮤니케이션 음료(김용범, 커피 치명적인 유혹)인 셈이다. 6세기 경 에티오피아 목동이 발견한 커피는 그 역사만큼이나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1732년 커피칸타타를 만들었다 그런데 평소 준엄한 교회음악을 작곡하던 그 답지 않게 재미있다. 당시 독일의 커피 광풍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또 악성(樂聖) 베토벤은 커피 한 컵에 정확히 원두 60개를,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커피 한 스푼에 각설탕 30개를 넣었다. 그런가 하면 매일 엄청난 양을 마신 커피마니아도 있다. 프랑스 작가 볼테르는 하루에 4050잔을, 미국 26대 대통령 시어도르 루스벨트는 하루에 3.8리터를 마셨다. 루스벨트의 아들은 머그잔을 욕조로 사용하는 게 더 자연스러웠을 듯하다고 했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에는 이 커피가 140년 전에 들어왔다. 그런데 지금 밥은 안 먹어도 커피는 마시는 커피공화국이 되었다. 점심 때 도심 곳곳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든 인파를 보면 실감난다. 2017년 말 기준, 국내 커피 시장규모는 11조8000억 원으로 10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커졌다. 국민 전체가 연간 265억 잔, 1인당 512잔(하루 1.4잔)을 마시는 꼴이다. 세계 커피 수입국 순위는 7위다. 이러한 커피와 국민연금공단이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에서 만났다. 국민연금공단이 사회공헌기금 2억8020만원을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정기탁, 바리스타 양성교육을 실시키로 한 것이다. 이미 10일 바리스타 교육장 개소식을 갖고 출범했다. 이름 하여 전주카페 꽃심방 바리스타 교육장. 여기서 꽃심은 최명희의 장편소설 혼불에서 따온 것으로 전주정신을 상징한다. 노인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의 일환이며 대상은 국민연금 수급자와 새터민 및 다문화가정 80명이다, 20명씩 4차례 이론 및 실기, 현장실습 등 7개월의 교육과정을 거쳐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60명을 최종 배출할 예정이다. 교육비는 무료며 교통비 식비 등도 제공된다. 교육을 마치면 취업과 창업의 기회도 가질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이 3년 전 전북혁신도시에 둥지를 튼 후 지역과의 상생 및 동반발전을 위해 마련한 첫 번째 결실이다. 대규모 공공기관이 지역에 정착하면 지역에 어떤 혜택과 변화가 일어나는지 손에 잡히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지금 전북혁신도시는 국민연금공단 이전으로 서울, 부산에 이어 제3금융허브를 꿈꾸고 있다. 가입자 2200만명, 수급자 450만명, 직원 7000명에 이르는 국민연금공단은 4월말 현재 국민의 노후자금 635조원을 운용하고 있다. 일본,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3대 연기금이다. 전북으로서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이전 무산의 아픈 상처를 딛고 찾아온 보배인 만큼 상생을 통해 소중히 키워야할 자산이다.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진한 커피향을 통해 도민들에게 널리 퍼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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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0 19:17

교육감·지방의원·소수정당에 관심을

▲ 객원논설위원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총성이 울렸다. 지난 2425일 이틀 동안 후보자 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선거운동 레이스에 돌입한 것이다. 전북에서는 도지사와 교육감, 시장군수, 광역 및 기초의원 등 252명의 지역일꾼을 뽑는 이번 선거에 580명이 등록해 2.30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방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워낙 큰 이슈들이 잇달아 터지면서 지방선거가 묻혀버린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등이 반전을 거듭하면서 온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버렸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아 중앙정치만 보이지 지방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지방선거는 2순위(second-order)선거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처럼 중요한 직위에 오를 인물을 뽑는 선거가 아니어서 유권자의 흥미가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누가 내 삶과 더 가까운지를. 지역민의 생활에 가장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는 곳이 도청과 시군청, 교육청이 아닌가. 집 밖에 내놓은 쓰레기 처리부터 상하수도, 도로 건설, 아파트 고도제한, 병원 설립, 학교의 설립과 이전 등이 모두 도지사와 교육감, 시장군수의 권한이다. 그러니 계속 중앙만을 바라보는 해바리기일 수는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주목도가 떨어지지만 눈여겨봐야 할 세 가지를 살펴보겠다. 첫째, 교육감 선거. 교육감 선거는 도지사와 시장군수 선거에 비해 관심이 저조하다. 지방교육자치법상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므로 정당의 공천이 없어 경선 등을 거치지 않는다. 또 기호 없이 맨 마지막 7번째 투표용지 위에 이름만 나열된다. 그러나 교육감은 미래의 주역인 유아에서 초중등학생, 평생교육까지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다. 전북의 경우 3조3000억 원이 넘는 예산과 3만 명 가까운 교직원의 인사권, 학교 인허가권 등의 권한을 쥐고 있다. 이번 교육감 선거는 3선에 도전하는 김승환 교육감에게 또 다시 전북 교육의 수장(首長)자리를 맡길 것이냐에 모아진다. 그는 8년 간 도내 교육계에 비교적 청렴한 풍토를 조성했다. 반면 불통과 아집의 아이콘으로 비쳐온 게 사실이다. 사안마다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바람에 재정적 불이익을 받았고, 학력저하와 교권보호에 소홀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둘째, 지방의원 선거. 지방의회는 자치단체와 함께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끄는 수레바퀴의 한 축인데도 누가 나왔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원이 많은 데다 인지도도 덜하다. 도내의 경우 도의원 39명(비례 4명), 시군의원 197명(비례 25명) 등 236명에 이른다. 하지만 지방의회는 자치단체를 감시하는 역할은 물론 조례제정, 예결산 심사, 행정사무감사 등의 권한을 갖는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지역민의 삶과 밀접하다. 특히 도내 지방의회는 청렴도가 낮아 감시가 필요하다. 국민권익위가 발표한 2017년도 청렴도 측정 결과 전북도의회는 전국 17개 광역의회 중 꼴찌에서 두 번째, 전주시의회는 전국 50만 명 이상 기초의회 30 곳 가운데 꼴찌를 차지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재량사업비를 특정업체에게 몰아주고 뇌물을 받았다. 또한 부정청탁과 인사 개입은 일상화가 되었다. 셋째, 소수정당. 전국적인 정당구도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양당체제지만 전북은 민주당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다. 2년 전 총선 당시 민주당과 경쟁관계에 있었던 국민의당이 분화되면서 30년 동안의 민주당 독식구조가 되살아났다. 그러나 민주당의 공천 과정을 보면 민주적 절차와는 거리가 멀고 오만하기 이를 데 없다. 중앙정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더라도 지방정치는 단체장과 지방의회를 싹쓸이하게 놓아둬서는 안 된다. 적어도 지방의원과 비례대표는 야당에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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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29 20:33

"주군(主君)을 위하여!"

▲ 객원논설위원 벌써 6년 전 일이다. 처음으로 청와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기자생활 30년 동안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거나 식사를 한 경우가 몇 차례 있었으나 재직시절 청와대에서 만난 분은 이명박 대통령이 유일했다. 그러니까 2012년 6월 중순쯤이었다. 낮 동안의 더위가 한풀 꺾인 저녁 무렵, 잔디가 깔려있는 녹지원은 온통 푸른빛이었다. 권력과 지근거리에 있거나 격려차 필요해 초대된 사람들이 밟았을 잔디 위에는 큼지막한 원탁 10여 개가 놓여 있었다. 이날 초대된 사람들은 대부분 이 대통령의 선거운동 지원자들이었고 원탁마다 15명가량이 둘러앉았다. 퇴임을 앞두고, 대선 때 도와줬던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이날 행사는 참석자들의 덕담과 대통령의 소회, 기념사진 촬영, 저녁식사로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이날의 백미는 테이블마다 대표 1명씩 일어나 덕담을 건네고 건배를 하는 순서였다. 맨 먼저 이 대통령의 임기 초반에 장관으로 추천되었다 낙마한 분이 일어나 용비어천가를 읊더니 우리들의 주군(主君)을 위하여!하고 건배를 제의했다. 모두가 감회가 깊은 듯 이에 따랐고, 테이블마다 칭송과 퇴임 후 건강을 빌며 한결같이 주군을 위하여!를 외쳤다. 나는 잠깐 몸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따라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고, 그 난처함이란. 아니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주군이란 말인가. 아, 선거라는 게 이런 거구나. 왕조시대에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더니, 선거(권력)에 미치면 이러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난달 이 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될 때 주변에는 이들의 그림자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주군이란 뭘까. 그리고 오늘날 민주화 시대의 주군은 누구일까. 주군은 군주국가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우두머리, 즉 왕(임금)을 이른다. 주군을 섬기다, 주군을 지키다,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다는 게 용례다. 예전 주군의 죽음은 천붕(天崩)이라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에 비유했다. 최근에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MB)의 구속은 주군의 복수를 위해 정치 보복하는 것이라고 말해 공분을 샀다. 이와 관련해 제왕학의 고전이라는 한비자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제나라 재상 관중(管仲)이 병이 들어 임종이 가까워오자 임금인 환공(桓公)이 문병을 갔다. 관중은 춘추시대에 환공을 보좌해 그가 나라를 세우는 데 공헌한 인물이다. 그는 주군에게 가까이 있는 충신 3명을 피하라고 조언했다. 그 중 역아(易牙)는 환공이 사람고기를 먹어보지 않았다고 하니까 자신의 맏자식을 쪄서 진상했고, 수조는 질투심이 많은 환공이 궁녀를 좋아하자 스스로 거세(去勢)했다. 또 개방(開方)은 주군의 환심을 사기 위해 15년 동안 가까운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찾지 않았다. 관중은 이들이 출세를 위해 처신한 위험한 인물로 보고 내치라고 고언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믿지 않은 환공은 수조를 재상에 임명했고 2년여 만에 모반을 당했다. 그의 시신은 벌레가 들끓도록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한비자는 이 고사를 통해 주군과 신하의 관계를 신의가 아닌 이익여부로 보았다. 이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5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기 저기 선거사무소가 차려지고 후보를 알리는 문자와 카톡소리가 요란하다. 이번 선거는 전국적으로 4016명, 전북에서는 252명을 뽑는다. 지금 후보들은 내가 적임자요, 주민을 주군으로 섬기겠다며 입에 거품을 문다. 하지만 시커먼 뱃속에 사리사욕만 가득한 인물들이 득실거린다. 누가 역아와 수조, 개방인지 밝은 눈으로 가려야 할 때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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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7 19:40

대한노인회 이중근 회장은 물러나야 옳다

▲ 객원논설위원 우리 사회에서 어른다운 노인 존경받는 노인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해 한 책을 읽다가 이 같은 모습을 발견하고 한동안 고압선을 만진 듯 전율을 느낀 적이 있다. 다름아닌 올해 우리 나이로 99세 되신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의 백년을 살아보니에 소개된 얘기였다. 흔히 이 책의 핵심으로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 사이라는 구절을 꼽는다. 기름기를 뺀 담백한 문장 속에 오랜 경륜이 묻어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100세 시대를 맞아 노인들도 활력 넘치게 살라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 문장도 좋지만 나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손기정 옹이 세무사를 찾은 이유라는 대목에 눈길이 꽂혔다. 내용을 옮기면 이렇다. 『나는 일이 있어 종로에 있는 한 세무사 사무실을 방문했다. 나를 만난 세무사는 오다가 혹시 손기정 옹을 뵈었느냐고 물었다. 못 보았다고 했더니 그 분도 이제 많이 늙으셔서 지팡이를 짚고 방금 다녀가셨다고 했다. 그 어른께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최 선생, 바쁘지 않으면 나를 좀 도와 줄 수 있겠어? 내가 요사이 어디서 상금을 받은 것이 있는데 세금을 먼저 내고 쓰려고. 세무사가 선생님은 연세도 높고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신고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더니 그럴 수는 없지. 세금을 먼저 내야지. 내가 이제 나라를 위해 도움을 줄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아?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도와드리겠다고 하고 계산해서 보여드렸더니 고것 밖에 안 되나? 그렇게 적은 돈이면 내나 마나지. 좀 더 많이 내는 방법으로 바꿀 수는 없나?라고 요청했다. 세무사가 다시 가장 많이 내는 방법으로 계산해 드렸더니 그제야 만족하면서 됐어. 그만큼은 내야지. 그래야 마음이 편하지라면서 돌아가셨다.』 이 대목을 읽고 그래, 어른은 이래야지!하는 감동이 밀려왔다. 굳이 이 글을 길게 옮긴 것은 우리나라 노인 대표단체인 대한노인회 이중근 회장의 행태와 너무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선거를 통해 당선된 이 회장은 지금 구속 중이다. 탈세와 4300억 원 상당의 횡령배임 등 죄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때는 70억 원을 주고 세무조사를 무마하려 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올해 77세인 이 회장은 두 얼굴을 가졌다. 부도덕한 기업경영과 자선가의 얼굴이 그것이다. 이 회장은 임대아파트 건설업체인 부영그룹을 창업해 재계 16위까지 키웠다. 취약계층의 주거안정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또한 기부왕으로 불릴 만큼 국내외에서 많은 봉사활동을 해왔다. 반면 정부가 조성한 택지를 원가 이하로 공급받았음에도 곳곳에서 임대료 인상과 부실시공으로 원성이 높다. 그룹 계열사 24곳 중 1곳도 상장하지 않은 황제경영으로도 유명하다. 문제는 그가 대한노인회장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 노인회가 어떤 곳인가. 우리나라 700만 노인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16개 시도연합회와 244개 시군지회, 18개 해외지회에 6만5000개의 경로당을 관할한다. 회원만 300만 명이다. 그래서 대한노인회장을 경로당 권력 노인 대통령이라 일컫는다. 이 회장은 선거과정에서 금품을 뿌렸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노인회장 자리를 방패막이 삼으려 한다는 말이 돌았다. 투표권을 가진 지회장들에게 활동비로 매달 10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당선 후 4개월로 그쳤다. 우리는 사회의 어른으로서 로 시작하는 대한노인회 노인강령의 첫 번째 실천요강은 우리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존경받는 노인이 되도록 노력한다로 되어 있다. 이 강령이 휴지조각이 아닌지 돌아봤으면 한다. 차제에 대한노인회도 혁신의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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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06 21:04

신노년을 위하여

노인을 보는 시각은 크게 엇갈린다. 한편에서는 존경과 지혜의 대상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어리석음과 경멸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은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사례다.반면 영감탱이, 늙은 마녀, 노슬아치, 꼰대, 틀딱(틀니를 딱딱거린다는 노인 비하), 노인충(老人蟲) 등의 호칭은 경멸의 예일 것이다.역사적으로 보면 존경보다는 경멸의 경우가 많았다. 동양에 비해 서양이 더 그랬다. 그리스 신화를 비롯해 많은 문헌들이 노인을 무기력하고 병든 어두운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젊음을 동경하고 생산과 효율을 중시하는 서구적 문화 탓이다. 그러나 이러한 존경과 경멸은 결국 개인의 성격이나 행동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어느 시대에나 존경받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밉상인 노인도 있으니까.이런 구분과 달리, 최근 급격한 고령화와 함께 중고령층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신노년의 등장이 그것이다. 준고령자, 예비노인, 액티브 시니어 등이 비슷한 부류다. 최고령국가 일본에서 주목받는 새로운 어른(新しい大人)도 같은 유형이다. 베이비 붐 세대를 포함하는 젊은 노인을 이른다.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1955-1963년생으로, 합계출산율이 3.0이상인 세대다. 일본 노년학회는 지난 해 65-74세를 준고령자로 할 것을 제안했다.기존의 노인이 힘없고 의존적이라면 신노년은 긍정적적극적이며 문화 친화적이다. 이들의 생물학적 나이는 노년에 이르렀으나 생각과 행동은 젊은이 못지않다. 청소년 시절 장발머리에 청바지와 미니스커트를 입고 포크송과 비틀즈 노래에 심취했다. 대개 학력이 높고 문화를 즐기며 경제력도 어느 정도 갖췄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 신노년의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행은발). 하나는 젊은 감각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며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 일본의 새로운 어른들이 은퇴 후 고급 바이크인 할리 데이비슨을 구입하고 비용이 1인당 500만원에 가까운 호화 크루즈 열차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게 좋은 예다.또 하나는 인생의 후반기를 새로운 시작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노년이 인생의 내리막길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을 갖는다. 악기나 어학을 새롭게 배우고 투자도 활발하다.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1946-1948) 사이에서는 은퇴 후 10만 시간 활용법이 주목받고 있다. 수면과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은퇴 후 25년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관심이다. 그 해답은 평생 현역이다. 일본 은퇴자들이 일하는 첫째 이유는 우리와 같이 생계를 위해서다. 하지만 넉넉한 은퇴자들도 무료함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 몸이 허락할 때까지 일하는 게 대세다. 영어와 중국어 등 외국어 학원 수강자 3명 중 1명이 60세 이상인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또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오토바이 강습과 승마 강습이 인기를 끌고 있다.이들 세대 역시 고민이 없지 않다. 노후 불안이 항상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지난 해 4월 발표한 한국의 60대, 5대 리스크라는 덫에 걸려 있다는 경고는 경청할 만하다. 황혼 이혼, 성인 자녀, 창업 실패, 중대 질병, 금융 사기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황혼 이혼과 성인 자녀가 가장 큰 타격이다. 황혼 이혼 리스크는 깊은 상처와 함께 1억2000만원의 재산 감소를 초래한다고 계산했다. 성인 자녀 리스크는 젊은이들의 취직과 결혼이 어려워 60대 부모가 절반이상의 성인자녀를 부양 또는 지원한다는 것이다.어쨌든 노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리스크 관리와 함께 건강, 사랑, 우정이라는 무형자산도 챙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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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24 23:02

갑작스런 늙음에 대하여

12월 중순의 추위가 맵다. 눈도 몇 차례 내렸다. 한 해를 돌아보며 옷깃을 여미는 계절이다.흔히 노년은 이맘때 같은 겨울에 비유된다. 춥고 쓸쓸하고 어둡다. 하지만 겨울은 여름날 우거진 숲에서 보이지 않던 게 드러나 보이는 때이기도 하다. 산등성이와 허리, 계곡의 구분이 뚜렷하고 나무의 거친 피부까지 눈에 들어온다. 인생의 겨울인 노년은 어떨까. 먼저 간 선현들이 늙음을 어떻게 보았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 있을 듯하다.2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로마의 웅변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노년이 비참해 보이는 이유로 4가지를 들었다. 첫째 노년은 우리를 활동할 수 없게 만들고, 둘째 노년은 우리 몸을 허약하게 하며, 셋째 노년은 우리에게서 거의 모든 쾌락을 앗아가며, 넷째 노년은 죽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키케로는 이런 이유들이 과연 타당한가고 묻는다. 결론은 포도주가 오래 되었다고 모두 시어지지 않듯, 늙는다고 모든 사람이 비참해지거나 황량해지는 것이 아님을 역설한다.이 땅, 한반도에서 살았던 선조들은 어떨까. 실학의 2조(二祖)였던 성호(星湖) 이익과 3조(三祖)였던 다산(茶山) 정약용의 시문을 보자. 성호는 300여 년 전 신체적 노화가 한 순간에 닥침을 깨달았다. 흰머리와 어두운 눈이 순식간에 도래(頭白眼暗須臾到)한다고 했다. 출셋길을 포기하고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성호는 고질병에다 말년에 귀까지 들리지 않았다. 그는 노인의 열 가지 좌절(老人十拗)에서 이렇게 말한다.대낮에는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으며, 곡(哭)할 때는 눈물이 없고 웃을 때는 눈물이 흐르며, 30년 전 일은 모두 기억되어도 눈앞의 일은 문득 잊어버리며, 고기를 먹으면 뱃속에 들어가는 것 없이 모두 이 사이(牙縫)에 끼며, 흰 얼굴은 도리어 검어지고 검은 머리는 도리어 희어진다고 했다. 성호의 제자 안정복은 갑자기 찾아오는 노화를 형세가 비탈을 내려가는 것과 같아서 돌이키기 어렵다고 표현했다.그러나 선현들에게 늙음이 꼭 슬프고 쓸쓸한 것만은 아니다. 압권이 조선 500년 최고의 학자로 꼽히는 다산의 노인일쾌사(老人一快事)다.(박혜숙, 다산 정약용의 노년시) 노인에게 한 가지 유쾌한 일이라는 이 시는 갑작스럽게 닥치는 노화에 대해 통쾌하게 반격을 가한다. 다산은 18년 간의 강진 유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71세에 이 시를 지었다. 그리고 4년 후에 작고했다. 앞서 다산은 58세에 수염과 머리가 서리처럼 희었다고 고백한다. 71세에는 거의 대머리가 되었고 치아도 남김없이 빠졌다. 외모만 변한 게 아니라 병도 잦아졌다. 근력이 약해져 발을 다치기도 하고 60대 후반에는 120일간이나 아파 누웠다. 그런 그가 6수로 이루어진 연작시를 통해 노인에게 유쾌한 일 6가지를 제시했다.노인이 되어 대머리가 된 것, 이가 모두 빠진 것, 눈이 어두운 것, 귀가 먹은 것, 마음 내키는 대로 미친 듯 시를 쓰는 것, 때로 벗들과 바둑을 두는 것이 그것이다. 대머리가 돼 머리를 감거나 빗질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고, 이가 모두 빠져 치통이 사라졌고, 눈이 어두워 책을 보거나 학문연구를 하지 않아도 되고, 귀먹어 세상의 온갖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늙음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온다. 실제는 천천히 진행되는 것이지만 적어도 자신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이때 충격으로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말처럼 늙음은 공평하다(白髮公道). 살아 있는 자 누구에게나 똑같이 온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젊음을 예찬하지만 늙음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영국시인 셀리의 서풍부(西風賦)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를 실없이 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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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2.13 23:02

민혜경 여사와 오경진 여사

노인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어르신들 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드물지 않다. 노인사회활동지원사업 발대식이나 노인의 날, 노인회 정기총회 등이 그러하다. 이들 행사는 1000명 안팎이 모이는데 다른 행사와 다른 특징이 있다.첫째는 정치인들이 많이 찾고, 행사 시간이 길다는 점이다. 식전행사에 이어 축하하러 찾아온 내외귀빈들을 일일이 소개하다 보면 시간이 늘어진다.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있는 해는 더하다. 여기에 한번 마이크를 잡으면 좀체 놓지 않으려는 어르신들의 특성도 한몫 거든다. 처음에는 지루해서 엉덩이가 들썩였으나 몇 번 참석하고부터는 으레 그러려니 한다.둘째는 칭찬과 박수가 많다는 점이다. 사회자가 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장의 업적 등에 대한 긴 멘트와 함께 박수를 유도하면 한참동안 박수가 쏟아진다. 상을 수상한 분들도 마찬가지다. 그때마다 박수를 치면 건강에 좋다는 양념도 빠지지 않는다.그리고 셋째는 두 분의 사모님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들이 누구일까. 오경진 여사와 민혜경 여사다.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송하진 도지사와 정동영 국회의원의 안사람들이다. 대개 행사 시작 전에 도착해 자리에 앉아있는 어르신들 사이를 누비며 인사를 건넨다. 그러다 행사 시작과 함께 내빈 소개가 끝날 무렵 사회자의 소개와 더불어 마이크를 받아 든다. 이들은 오늘 (남편이)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 관계로 서울에 갔다거나 외교단장을 맡아 미국에 가서 부득이 참석하지 못했다며 양해를 구한다. 이어 어르신들의 복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힌 뒤, 노인들의 건강을 기원한다. 공무에 바쁜 남편을 대신해 빈자리를 메꾸는 셈이다.이러한 행태에 대한 반응은 나쁘지 않다. 예전에는 부인들이 나서는 것을 마뜩찮게 생각했으나 요즘엔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오히려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은근히 누가 말을 더 잘하나 가늠해 보기도 한다.두 사모님의 남편은 전주고 동기동창이다. 송 지사는 전주시장을 두 번 역임했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도지사 재선을 노리고 있다. 정 의원은 집권당 의장에, 전북이 배출한 유일한 여당 대통령 후보였다. 말하자면 전북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다. 본인이 부인하긴 했으나 한때 정 의원의 지사 출마설이 나돌면서 라이벌로 비치기도 했다.한편 두 사모님은 1956년 생으로 동갑이다. 각각 광주와 전주가 고향이고 이화여대와 숙명여대를 나왔다. 하나같이 처음에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쑥스러워했다.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큰 선거를 연거푸 치르면서 정치인의 아내로 거듭났다.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부인 역할에 그치지 않고 1급 참모가 저리 가라할 정도다. 이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특히 복지시설이나 취약지역을 여성 특유의 따뜻함과 섬세함으로 보듬는다.이들의 그림자 내조는 칭찬할만하다. 그러나 염려도 없지 않다. 오래된 일이지만 1999년 임창렬 경기지사와 경기도의 힐러리로 불리던 부인 주혜란씨가 감옥에 갇혔을 때다. 당시 은행 퇴출을 막기 위해 경기은행장이 이들 부부에게 뇌물을 건넸다. 그런데 그 돈이 임 지사는 1억원, 주씨는 4억원이었다. 이를 두고 임 지사보다 부인의 힘이 4배 세다는 얘기가 회자되었다. 또 지난해에는 나주시 강인규 시장 부인에 대한 지나친 의전이 말썽이 되었다. 강 시장 부인은 2014년 여름부터 2015년 말까지 234회에 걸쳐 사회복지과 두 여성공무원을 수행원처럼 동행해 갑질 논란을 빚었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자치단체장 부인의 사적 행위에 대한 지자체 준수사항을 마련했다.군대에서 흔히 하는 말로 본인이 연대장이면 부인은 사단장이란 말이 있다. 7개월 앞으로 지방선거가 다가왔다. 이래저래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까 염려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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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01 23:02

전북을 제약·바이오산업 허브로 키우자

옛 부터 전북(호남)은 한반도의 식량창고였다. 김제만경의 끝없이 펼쳐진 넓은 평야가 그것을 증명한다. 조정래는 대하소설 아리랑 첫 권에서 한반도 땅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내고 있는 곳, 여기서 나는 곡식으로 이 땅의 목숨 7할이 먹고 살았던 곳이라 했다. 그래서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는 이곳에 발을 디딜 때마다 가이없이 넓은 벌에 무릎 꿇고 이마 대어 고마움의 절을 올렸다고 하지 않던가. 임진왜란 당시 백척간두에서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호남의 곡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만약 호남이 없다면 곧 국가가 없다(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했다.이처럼 전북은 오랫동안 농도(農道)였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이후 산업화를 거치며 쌀의 운명과 함께 낙후지역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제 농도 전북은 다시 슬슬 몸을 풀고 있다.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의 융복합이 각광을 받고, 농촌진흥청이 옮겨와 둥지를 틀면서 도약의 꿈을 가꾸고 있기 때문이다.우선 전북 발전의 동력을 살펴보자.단연 새만금사업을 들 수 있다. 이어 금융중심도시를 꿈꾸는 혁신도시 시즌2, 탄소산업, 식품클러스터, 그리고 전주 한옥마을 등이 있다.여기에 제약바이오산업을 넣어, 미래 먹거리로 삼으면 어떨까. 천연물 신약을 포함한 제약산업은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으로 꼽힌다. 전 세계 의약품 시장규모는 2020년 1조4000억 달러로 2007년 대비 50%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는 같은 기간 반도체 세계 시장규모 4500억 달러를 3배나 뛰어 넘는다. 더구나 제약산업은 영업이익률이 전체 산업평균보다 5배나 높고, 10조원 매출 증가시 13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만큼 고용유발효과가 크다.문재인 정부도 100대 국정과제 중 제약바이오산업을 34번째 고부가가치 창출 미래형 신산업으로 발굴육성키로 했다.전북은 이 같은 제약바이오산업의 적지다. 인프라가 어느 곳보다 잘 갖춰져 있어서다. 지리산 덕유산 변산반도 내장산 등 명산과 금강 섬진강 만경강 동진강 등이 키워온 풍부한 천연물과 서해안에서 건져 올린 해조류어패류가 풍성하다. 완주 로컬푸드, 진안 홍삼, 임실 치즈, 순창 고추장, 장수 사과, 부안 뽕, 고창 복분자 등도 유명하다.게다가 우리나라 농업기술을 세계 5위로 끌어올린 농촌진흥청이 자리잡고 있다. 혁신도시에 있는 농촌진흥청을 비롯한 산하기관에는1400명의 박사가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더불어 한국식품연구원이 있고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이 익산으로 옮겨왔다. 또 종자산업의 핵심인 김제 민간종자연구단지, 익산 식품클러스터, 정읍 방사성육종센터와 미생물가치평가센터가 있다. 나아가 광활한 새만금지구에는 대규모 농업용지가 조성돼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농생명 수도에 손색이 없다. 이를 바탕으로 개발하게 될 제약바이오산업은 전북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역할이 기대된다.이 같은 자원과 인프라를 활용해 제약바이오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인재육성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제약바이오산업은 기본적으로 농업과 약학의 융합이지만 공학과 의학 수의학 등도 필수적이다.결국 그 핵심에 약대가 깃발을 들고 인접학문이 유기적으로 돕는 구조여야 한다. 전북의 경우 원광대와 우석대 약대를 업그레이드 시키고 전북대에 약대를 신설하면 어떨까 싶다. 물론 신설 약대는 현행 왜곡된 약사 배출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해선 안 된다. 즉 약대 졸업 후 80% 가까이가 개업하는 형태가 아닌, 미국이나 일본처럼 연구 또는 산업약사를 주로 배출토록 해야 한다.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전북이 제약바이오산업을 통해 다시 한번 농생명의 르네상스를 펼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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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1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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