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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전주시 중노송동 기자촌구역 주택재개발 부지내 유적발굴조사 현장을 찾았다. 후백제 관련단체 회원들과 함께 둘러본 현장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1100년 전, 전라도와 충청도, 경상도를 호령했던 웅혼한 기상은 간데 없었다. 주택 등을 깨끗이 밀어버린 14만1806㎡ 자리에 발굴조사를 위한 포크레인 자국만 남아 있었다. 너무 허탈했다. 이곳에서는 추정 궁성지 성벽과 건물지 3곳, 석축시설, 주공군 등이 발굴되었다. 석축시설은 폭 4m, 길이 40m 가량으로 당시 도로로 추정되고 있다. 후백제 도로가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발굴조사를 실시한 전주문화유산연구원 유철 원장과 자문교수로 참여한 군산대 곽장근 교수는 “이 일대는 궁성의 후원으로 보인다”며 “건물지는 후원의 정자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건물지에는 불 먹어 뻘겋게 산화된 기와들이 다량 수습되었다. 왕건의 고려군이 멸망한 후백제의 궁성에 불을 지른 것이다. 이때 견훤(진훤)왕이 경주에서 가져왔던 귀한 서적들도 함께 불타 버리지 않았나 싶다. 실학자 이덕무는 아정유고(雅亭遺稿)에서 이를 ‘3000년 이래 두 번의 큰 재앙(厄)’이라 애석해 했다. 후백제 궁성지는 여러 의견이 있으나 문화촌과 인봉리(기자촌) 일대로 좁혀지고 있다. 문헌과 유물, 유구 등으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 인봉리(기자촌)는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고, 물왕멀 일대는 이미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최근 국가유산청과 전주시는 발굴조사가 종료되자 재개발사업의 속개를 허용했다. 보존할 가치가 적어 기록으로만 보존하라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아직 종광대와 문화촌 일대가 건강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궁성지의 보존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전주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전주를 흔히 천년고도(千年古都)라 일컫는데 그것은 견훤(진훤)왕이 전주에 후백제를 세운데서 비롯된다. 또한 궁성지의 발굴과 보존은 국립후백제역사문화센터의 존립 근거다. 나아가 전주시가 목메고 있는 고도 지정에 있어서도 핵심요소다. 궁성지를 찾아야 전주가 후백제의 온전한 수도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전주시장의 의지다. 우범기 시장을 비롯한 역대 시장들은 개발에 중점을 뒀다. 한결같이 역사에 대한 인식이 천박했다. 특히 이들 지역에 대한 재개발 관리처분 인가를 내줌으로써 역사유적 훼손에 앞장선 꼴이 되었다. 우 시장은 지난해 4월 1조6058억원의 ‘왕의 궁원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궁원은 왕궁의 정원인데 정작 전주에는 궁원이 없다. 궁원으로 비정되는 기자촌을 아파트숲으로 만들면서 무슨 프로젝트를 하겠다는 것인가. 전주 지역구 국회의원인 정동영과 김윤덕 의원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나온 5선의 정 의원은 전주의 자긍심인 후백제의 궁성지 보존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니, 후백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최근 이성계 역사전당 건립에 앞장서는 것은 좋으나 일의 선후를 가릴줄 알아야 한다. 또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으로 이곳이 지역구인 김윤덕 의원 역시 궁성지 보존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자신이 국립후백제역사문화센터를 유치했다고 플래카드만 걸어 놓으면 될 일인가. 우 시장이 종합경기장과 대한방직터를 개발하는 것은 좋다. 20년 이상 정체된 전주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역사자원의 보존과 활용은 이들 못지않게 중요하다. 인구가 줄어드는 역사문화도시 전주의 정체성을 살리고 관광 산업화하는 게 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춘석 의원 : (2024년)업무보고 잘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수백개의 지방자치단체 이름이 다 나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전라북도와 기초단체 14개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전라북도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이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 죄송합니다. 짧은 보고서를 요약하다 보니까. △이 의원 : (책상을 꽝 치며)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장관님, 전라북도는 대한민국 국토 아닙니까? 버렸습니까? 지금 국토교통부가 구상하는 초광역권 권역별 추진계획에도 빠지고, 대광법(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도 빠지고, 초메가시티 계획에도 빠지고. 전라북도는 버린 자식입니까? 저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대한민국을 떠나야 합니까? 땅 파서… 아니. 지방자치도 꼴찌, GRDP(지역내 총생산)도 꼴찌, 니네는 다 꼴찌니까, 버린 자식이니까, 그대로 살아라! 우리(윤석열 정부)가 할 때는 니네는 어느 것에도 포함시켜 주지 않을 것이다. 제가 쪽 팔려서, 이런 얘기 안 할려고 했어요. 4선 의원이 돼 가지고 지역 애기하면. 그런데 해도 너무 하지 않아요. △박 장관 : 송구하다는 말씀드리구요.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챙기겠습니다. △이 의원 : 자,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전라북도에 무슨 사업을 하고 있고 앞으로 무슨 사업을 할 것인가, 그거에 대해 일주일내 정리해서 보고해 주십시오. △박 장관 :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의원 : 국토교통부가 국가균형발전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 아닙니까? 그러면 소외되고 어렵고 힘든 지역을 더 배려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앞으로 특정지역에 대해서 홀대한다면 저와 국토부장관님, 차관님, 실국장님들 계실 때, 저하고 만나는 2년 동안 서로 불편한 관계 유지할 것을 전제로 하시고. 뒤에 계신 실국장님도 명심해서 국토교통부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심사숙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지난 7월 10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춘석 의원(익산갑)과 박상우 장관 사이에 벌어진 일문일답이다. ‘국토교통부의 2024년 주요업무보고’에는 전북이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일주일 후 보고한 자료에는 전체 신규사업 2304억원 중 전북 예산은 19억8000만원으로 0.8%에 불과했다. 이러한 논란은 JTBC 유튜브에서 10일 현재 24만4000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 내용을 장황하게 늘어 놓은 것은 이례적으로 전북현안이 이슈화되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전북출신 국회의원이 장관을 불러놓고 전북에 대한 홀대를 꼼꼼히 따지며 호통치는 모습에,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이처럼 22대 국회 들어 전북의원들의 정치력이 살아나고 있어 고무적이다. 전북 정치는 그동안 인구 감소와 경제력 약화로 영향력이 해마다 뒷걸음쳐 왔다. 특히 초·재선 의원으로 구성된 지난 21대 국회는 최악이었다. 왕성한 패기를 기대했으나 무기력과 각자도생으로 일관했다. 다행히 이번 22대 국회는 5선의 정동영, 4선의 이춘석, 3선의 김윤덕·한병도·안호영 등 다선의원이 주축이 되고 재선의 이원택·윤준병, 초선의 이성윤·박희승 의원이 뒤를 받치고 있어 왕성한 의정활동이 기대된다. 여기에 조배숙 의원(국민의힘)이 5선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들이 원팀이 되어 과연 전북몫을 얼마나 찾아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2025년 국가예산을 챙기고 전북 홀대의 상징인 대광법부터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낙후와 퇴보만을 거듭해 온 전북에 희망과 활력의 에너지를 불어 넣었으면 한다.
장인께서 향년 92세로 지난주 세상을 뜨셨다. 평소 건강하셨는데 폐렴으로 병원 입원 3일만에 작고(作故)하신 것이다. 장례는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에서 치렀다. 처가에 아들이 없어 자연히 상주(喪主)는 내 몫이었다. 모든 절차는 급히 모인 친인척들과 장례식장에 소속된 장례지도사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결정해야 할 것도 있었다. 우선 몇일 장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게 문제였다. 금요일 밤 12시 직전에 돌아가셔서 삼일장은 좀 망설여졌다. 그러나 장례를 최대한 짧게 하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에 발인키로 한 것이다. 가능한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부고(訃告)도 최소화하기로 했다. 휴일인데다 여름 휴가철이고 장맛비가 쏟아져 나부터도 부고를 받으면 짜증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장지문제인데 다행히 장인께서 종중산에 당신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놓아 한시름 놓았다. 집에 영정 사진도 준비되어 있었다. 발인날은 비한테 들키지 않고 모든 일을 무사히 마쳤다. 5년 전 장모님은 병원 입원 이틀 후 심장 시술 중 돌아가셨다. 감기가 심해 병원에 갔는데 심장이 좋지 않다며 시술을 권해 입원한 것이다. 결국 의사의 말을 믿고 따랐는데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심정지로 사망에 이르렀다. 너무 황당해 화가 치밀었고 나 때문에 돌아가신 것 같아 심적 고통이 꽤 오래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이번 장인상을 치르면서 찾아온 지인의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두분 다 죽을 복을 타고 났다고. 후손들 고생 시키지 않으려고 일찍 가신 것이라고. 반드시 그럴까 하면서도 내심 고마웠다. 이제 나는 친가와 처가 부모님 네분이 모두 안 계신다. 미안한 표현이지만 홀가분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다.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닌가. 땡감이고 익은감이고 어느 게 먼저 떨어질지 모르지만 나도 순번을 탄 것이다. 정말 어떻게 죽어야 하나? 아직은 건강해 활동이 자유로우나 팔다리가 내 마음 같지 않고 치매 등이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흔히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게 시대적 흐름이다. 그러기 위해서 죽음도 준비가 필요하다. 미리 유언을 해두고 매장 또는 화장을 할 것인지, 선산 또는 추모관에 들어갈 것인지, 장기를 기증할 것인지 등 살아있는 동안 능동적으로 생각을 해둬야 한다. 지금 상황으로는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받다 고통없이 가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다. 나아가 우리나라는 아직 ‘조력존엄사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으나 안락사 또는 존엄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한편 한국노인들의 좋은 죽음에 대한 인식조사를 보면 흥미롭다. 2002년 조사(한나영 외)는 적절한 수명, 무병사, 자손이나 배우자보다 먼저 죽는 것, 자손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죽는 것, 가족들이 다 있는 앞에서 죽는 것, 자손들이 잘 사는 것을 보고 죽는 것, 수면사, 무통사 등 8가지를 꼽았다. 2013년 조사(이명숙·김윤정)는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죽음, 천수를 누리는 죽음, 내 집에서 맞이하는 죽음, 편안한 모습의 죽음, 준비된 죽음, 원하는 삶을 누리다 가는 죽음 등 6가지를 들었다. 그리고 2018년 조사(신향숙)는 준비된 죽음, 원하는 곳에서 맞이하는 죽음, 자연사 등이었다. 갈수록 죽음 준비와 장소를 강조하는 추세다. 무소유를 설법한 법정스님은 ‘미리 쓰는 유서’에서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고 했다. 나도 ‘네’할 준비를 해야겠다.
사람은 누구나 돌봄을 필요로 한다. 태어나서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와 늙고 병들게 되면 특히 그러하다. 이러한 육아와 노후 돌봄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예전에는 아이를 돌보거나 노인을 간병하는 일은 대부분 여성들의 몫이었다. 그것도 가정에서 무보수나 저임금에 의존했다. 하지만 핵가족화와 1인 가구 증가, 도시화·산업화 등 후기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점차 어렵게 되었다. ‘돌봄의 위기’ 현상에 직면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돌봄은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니다. 소위 사회적 돌봄(social care)이나 돌봄의 사회화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를 노후 돌봄서비스에 국한해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2025년에 고령화율이 20.3%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올 들어 이미 65세 이상 노인 1000만 명 시대가 도래했다. 노인인구 1000만명 시대에 국가가 고민해야 할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돌봄서비스다. 노인 간병은 어둠의 긴 터널과 같다. 대개 죽어야 끝나는 힘겹고 오랜 싸움이다.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老老)간병이나 젊은 자식이 노부모를 간병하는 영 케어러(Young Carer)를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본다. 노인대국 일본은 간병파산, 간병살인이 사회 이슈화된지 오래다. 기대수명이 높아지면서 간병살인을 저지르고 스스로 자살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간병기간이 길어지면 살인의 유혹을 떨칠 수 없다. 이제 간병은 치매나 암처럼 국가 사회가 함께 책임을 분담해야 마땅하다. 그러면 대책은 뭘까. 우리나라는 돌봄과 관련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돌봄서비스의 인력난 문제요, 또 하나는 공공성 확보 문제다. 먼저 돌봄서비스의 인력난은 갈수록 심각해 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 이슈노트를 통해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현재 간병 및 육아와 관련된 돌봄서비스 부문의 인력난은 일반 가구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높은 비용 부담과 그에 따른 각종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향후 고령화에 따라 노인 돌봄을 중심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월평균 간병비는 370만원으로 65세 이상 고령가구 중위소득의 1.7배 수준이다. 또 돌봄서비스직(육아 돌봄 포함) 노동공급 부족도 심각하다. 부족 규모는 2022년 19만명 →2032년 38만∼71만명 → 2042년 61만∼155만명으로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이로 인한 가족 간병의 증가는 2042년 GDP의 2.1∼3.6%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인력난을 완화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되, 비용 부담을 낮추는 방안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또 하나는 돌봄서비스의 공공성 확보다. 보건복지부에 의하면 노인요양서비스 제공기관은 2022년 말 현재 전국적으로 2만7484곳이다. 전북에는 방문요양, 방문목욕, 주야간보호 등 재가급여 1198곳, 노인요양시설 등 시설급여 252곳 등 모두 1450곳에 2만2521명이 서비스를 받고 있다. 이 가운데 국공립기관은 1% 미만에 불과하다. 더욱이 국공립기관 중 지자체가 만든 공립시설의 실제 운영은 민간위탁으로 이루어진다.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업체들은 정부수가와 지원금에서 인건비를 줄여 수익을 취하는 등 부조리가 잇달고 있다. 결국 요양보호사의 처우는 나빠지고 이용자들은 질 낮은 서비스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누구나 겪어야 하는 노후돌봄, 내가 나이들면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나?
“나 없을 때나 간호원이 한 눈 파는 사이에 그냥 도망치세요.” 환자 중에 입원비가 없어 고민하는 눈치라도 보이면 슬며시 다가와 환자 귓전에 대고 한 말이다. 지금은 믿기 어려운 일화지만 사실이다. 주인공은 30여 년전까지 전주에서 의원을 운영했던 황의섭 원장. 황 원장은 일제 강점기인 1942년 전주시 다가동 계골목 입구에 회산(檜山)병원을 열고, 이곳에서 48년간 환자들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평안남도 광동군 출신인 황 원장은 1937년 경성의전(서울대 의대 전신)을 마치고 전라북도립 전주의원(전북대병원 전신) 외과과장으로 발령받아 전북과 인연을 맺었다. 이곳에서 5년간 청년의사로 봉직하다 개인병원을 차린 것이다. 당시 전주의 인구는 4만2530명이었고 5∼6개의 개업의가 있었다. 그의 호를 딴 회산병원은 1958년 전문의제도가 시행되면서 황외과로 바꿨다. 병원은 대지 180평에 25평 규모의 목조 단층건물로 온돌식 입원실 10여칸이 있었다. 마치 시골여관 같았다. 그가 1990년 폐업할 때까지 돌본 환자는 50만명에 이르며 약하고 어려운 환자들에 많은 애정을 쏟았다. 매일 진료가 끝나면 환자들 방에 직접 장작을 때고 식사도 꼼꼼히 챙겼다. 특히 외과 수술 후에는 개고기가 좋다며 병원 공터에서 심심치 않게 개고기를 삶아 환자들에게 먹였다. 배고프고 영양실조가 많던 시절 얘기다. 이와 비슷한 일화를 최근 넷플릭스를 보고 알았다. ‘어른 김장하’. MBC 경남이 제작한 이 영화는 진주에서 60년간 한약방을 운영했던 김장하 선생(80)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렸다.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김주완 기자가 뒤를 좇아 취재하는데, 주인공이 인터뷰에 응하지 않아 주변 인물들을 취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김 선생은 20살에 한약방을 열어 1000명이 넘는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사업을 펼쳤다. 40살에는 고등학교를 세워 학교를 반석 위에 올린 뒤 48살에 국가에 헌납했다. 또 지역언론이나 형평운동기념사업회 등 각종 단체에 아낌없이 후원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흔한 자동차도 없이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변변한 아파트도 갖지 않았다.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인 셈이다. 그가 기부한 돈이 줄잡아 200억원이 넘지만 기부보다 더 감동적인 건 그의 철학이다. 그는 “돈은 똥과 같아서 모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된다”거나 “(한약업을 하며)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기에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되겠다.”고 말한다. 요즘 세상에 어떤 의료인이 아픈 사람을 상대로 돈을 벌었다고 그 돈을 사회에 돌려주는가. 이들 선한 의료인을 보면서 12년전 일이 떠올랐다. 2012년 1월 김제출신 서울대 임정기 연구부총장을 인터뷰할 때였다. 서울대 의대 학장을 두 번 역임한 그에게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들려줄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대뜸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얘기를 꺼냈다. 이 총장은 한국인 최초로 국제기구 수장을 맡아 세계 질병퇴치운동에 헌신하다 순직한 인물이다. 의과대학생을 위한 특강에 초청했는데 이런 말을 들려줬다는 것이다. “의사는 먹고 살만한 수입이 주어진다. 돈 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라.” 실제로 그 자리에 있던 의대생 중 여러 명이 국제보건 관련 기구로 진출했다. 요즘 의대 2000명 증원을 둘러싼 의료파업으로 국민들은 불안하다. 증원을 군사작전하듯 밀어부치는 정부도 문제지만 직업적 특권을 지키려는 의사집단의 이기적 동기가 더 문제다. 국민들이 불안해 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이다. 1000쪽이 넘는 이 작품의 주인공 안나는 부러울 것 없는 기혼여성이지만 잘 생긴 청년장교 브론스키를 만나 불륜에 빠지게 되고, 끝내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인간 군상이 나오는데 첫 문장처럼 불행한 사람들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한 이유를 갖고 있다. 설 명절 연휴 내내 못살고 점차 더 초라해지는 전북을 보면서 이 문장이 떠올랐다. 전북도 전북 나름의 이유로 못살기 때문이 아닐까 해서다. 전북이 처한 현주소를 보자. 우선 전북이라는 공동체가 소멸하지 않고 유지·발전하기 위해서는 전주·완주 통합과 새만금권 통합이 필수적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축소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더군다나 서울이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면서 지방은 뼈만 앙상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생활권이 같은 자치단체의 통합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다. 마산·창원·진해가 통합한 창원특례시와 청주·청원이 통합한 청주시 등이 좋은 예다. 최근에는 경북 군위군이 자진해서 대구광역시와 통합했고 충남 금산군이 대전광역시와 통합을 위해 군수와 군의회가 발벗고 나섰다. 전북은 전주·완주 통합의 경우 30년 동안 세차례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올 들어 민간단체가 나서 네차례 통합을 시도하고 있으나 유희태 군수와 군의회뿐 아니라 전주의 일부 유사단체까지 나서 통합에 훼방을 놓고 있다. 공동체보다는 정치꾼들의 개인 욕심이 앞선 탓이다. 또 전주상공회의소 회장 자리를 둘러싸고 윤방섭 회장과 김정태 수석부회장이 벌이는 쟁투는 얼마나 민망한가. 3년 전 선거 여파가 그대로 재연돼 진흙탕 싸움이 되고 있다. 당시 회원사 모집이 법정공방으로 비화되면서 소송취하와 임기 보장을 조건으로 합의문을 작성했다. 이번에는 이 합의문을 이행하라며 한쪽이 들고 일어나 차기회장자리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이다. 마치 전주상공회의소 회장 자리가 두 사람의 개인 소유물인양 주고 받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추락하는 전북경제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 같아 한심하기 이를데 없다. 이와 함께 얼마 전에는 전북예총 회장 선거에서 함량미달의 인물들이 옥신각신 하더니 소송으로 번졌다. 갈등과 불협화음 사례는 이밖에도 부지기수다. 서거석 교육감과 천호성 후보·검찰 사이에 허위사실공표를 둘러싸고 벌이는 재판이 1년 반 넘게 진행되면서 전북교육은 뒷걸음질이다. 또 지난해 8월 새만금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파행 때는 관계자들의 책임 회피로 새만금SOC를 비롯해 전북예산이 감축폭탄을 맞고 도민 전체가 수모를 겪었다. 특히 공동조직위원장인 김윤덕 국회의원과 김관영 도지사는 끝까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 일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KCC 농구단의 부산 이전은 어떤가. 우범기 전주시장은 농구단 이전을 방관하다 뒤늦게 관변단체를 동원해 뒤꼭지에 대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러고도 기업 유치를 외칠 면목이 있는지 의아하다. 지금까지 언급한 사례들은 모두 전북지역 리더들의 행태다. 우리 속담에 ‘망둥이 제 동무 잡아 먹는다’, ‘한솥밥 먹고 송사한다’는 말이 있다. 또 미국의 정치가 밋 롬니는 ‘리더십은 변명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가까운 사람끼리 불화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않으려는 행태를 꼬집는 말이다. 전북의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수준이 이러니 전북이 제자리 걸음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전북이 못사는 저마다의 이유다.
오래 전에 전주가 세 왕조를 탄생시킨 곳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솔깃했으나 곧 잊어 버렸다. 그러다 최근 몇 년간 역사에 관심을 갖고 답사를 다니다보니 잊어버린 기억이 되살아났다. 전주와 전북이 역사에 있어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세 왕조는 견훤왕이 세운 후백제(당시 국호는 백제)와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을 일컫는다. 현재 진행형인 북한을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럽긴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에게서 성공과 실패의 리더십을 배울 수 있다. 또 풍성한 역사문화콘텐츠로 활용할 수도 있다. 먼저 견훤왕부터 보자. 경북 문경출신인 견훤왕은 900년 전주에서 후백제를 건국했다. 전주는 936년까지 37년간 왕도(王都)였다. 견훤왕은 남원 실상사 편운화상 승탑(국보)에서 보여주듯 정개(正開)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당시 통일신라는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농민반란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이들 민초들과 더불어 나라를 바르게 열기 위해 둔전(屯田)과 관개시설 확충, 승려선발 과거제에 해당하는 선불장(選佛場)을 실시하는 등 혁신적인 제도를 도입했다. 또 오월, 후당, 거란, 왜 등과 다변화된 외교를 펼쳤다. 다음으로 태조 이성계는 1392년 조선을 건국해 500년을 잇도록 했다. 알다시피 전주는 그의 6대조 이전까지 대대로 살던 곳이다. 조선왕조의 탯자리인 셈이다. 따라서 그와 관련된 유물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전주에는 태조 어진을 모신 경기전을 비롯해 조경묘, 조경단, 오목대, 이목대 등이 몰려 있다. 또 왜구를 물리쳐 조선 건국의 발판이 되었던 남원 황산대첩, 새 왕조 개창의 천명을 받은 임실 성수산 상이암, 금척을 받은 진안 마이산, 고추장 설화가 어린 순창 만일사 등도 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 김일성은 1945년 해방이후 80년 가까이 3대째 북한을 지배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시각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전주 모악산에는 그의 시조인 김태서 묘가 자리한다. 김태서는 고려 때인 1254년 경주 일대가 왜군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자 일족을 이끌고 전주군에 정착해 전주김씨의 시조가 된 인물이다. 김일성은 그의 32대 후손이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이를 어찌 볼지 모르겠으나 남북국시대로 부를 수도 있다. 어쨌든 한 지역이 왕도이고 왕조의 뿌리인 곳은 전주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후백제의 경우 그동안 철저히 외면하던 광주시가 자난 1일 ‘후백제 왕도 재조명’ 학술대회를 가졌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광주가 후백제의 첫수도(始都)라고 주장한 점이다. 고무적인 일이다. 광주뿐 아니라 견훤왕의 초기 활동지인 여수 순천 광양 나주 등도 함께 조명했으면 한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37년간 왕도였던 전주시는 이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어 답답하다. 또 지난 7일에는 ‘태조 이성계, 전북역사문화자산 어떻게 꽃피울 것인가’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전북에 널려있는 이성계 관련 유산을 활용하자는 취지이다. 진작 나섰어야 할 일이다. 여기서 유념할 게 있다. 조선왕조의 중심은 서울이라는 점이다. 비록 이성계의 관향(貫鄕)이 전주지만 거의 대부분의 유물유적이 서울에 집중돼 있다. 흔히 왕조의 성립을 애기할 때 왕도와 왕릉을 본다. 고대국가에선 왕찰까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후백제에 대한 관심을 한번 더 상기하고자 한다. 전북이 비록 산업발전에는 뒤졌으나 뛰어난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하면 수천억 원짜리 기업 유치보다 낫기 때문이다.
전북은 요즘 사면초가다. 정부로부터 소외받고 중앙 정치권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 삭발을 하고 릴레이 단식을 해도 소 닭보듯 한다. 힘이 약한 탓이다. 인구가 적고 경제력도 약한데다 단합도 되지 않는다. 딱 부러진 정치인 하나 찾기도 힘들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 이후 더욱 그렇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돌파구는 없을까? 외부 자원이나 힘을 동원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내부에서 동력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야 한다. 내발적 발전전략이다. 다음 3가지 통합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완전(완주·전주) 통합과 새만금지역 통합, 그리고 전북대·군산대·전주교대의 통합이 그것이다. 첫째, 완전(완주·전주) 통합부터 보자. 완전통합은 1997년 시도한 이래 26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세 번 실패했고 이번에 민간단체가 나서 네 번째 시도하고 있다. 완전통합이 중요한 이유는 구심점이 없는 전북 발전에 기폭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전국은 메가 열풍에 들떠 있다. 김포시가 서울로 편입하겠다고 나서면서다. 김포뿐 아니라 구리, 하남, 고양, 부천, 광명 등도 들썩인다. 경기도는 북부특별자치도를 추진하고 있다. 내년 4·10 총선 전략에서 나온 것이지만 전국이 다이나믹하게 움직인다. 다른 지역, 가령 경북 군위군은 자발적으로 올 7월 1일부터 대구광역시로 편입해 들어갔다. 그런데 전북은 어떤가. 정작 당사자인 우범기 전주시장과 유희태 완주군수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전주시장은 소극적이고 완주군수는 뒤에서 반대하고 다닌다. 다행인 것은 김관영 지사가 내년 1월 18일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전북특별자치도법 전부개정법률(안) 제189조에 들어있듯, 도지사의 의지가 중요하다. 둘째, 새만금지역 통합문제다. 매립된 새만금과 군산, 김제, 부안을 합쳐 하나의 자치단체로 만드는 일이다. 새만금이 어떤 사업인가. 1991년 착공돼 32년이 흐르는 동안 새만금은 전북도민의 한(恨)과 혼(魂), 아픔과 희망의 표상이 되었다. 대통령이 8명째 바뀌었으나 진척은 48%에 그치고 있다. 더욱이 잼버리 파행으로 기로에 서 있다. 이차전지 등 투자가 몰리다 SOC예산 대폭 삭감으로 주춤한 상태다. 특히 군산과 김제 부안의 관할권 다툼은 새만금 내부개발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국회나 새만금위원회 등에서는 “자기들끼리 맨날 싸우면서 무슨 예산타령이냐”고 비아냥이다. 관할권 다툼은 3개 시군의 자치단체장과 시군의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세우기 위한 싸움에 불과하다. 셋째, 전북대와 군산대, 전주교대의 통합이다. ‘전북1도1국립대’ 전략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의 혁신을 위해 시급한 과제 중 하나다. 지금 전국의 지방대학은 글로컬대학30에 목을 매고 있다. 정부가 전국 200여개 지방대학 중 30개 대학을 선정해 1000억원씩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들지 못한 나머지 대학은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 올해는 10개를 뽑는데 15개 대학이 예선을 통과했다. 전북에서는 전북대가 유일하다. 다음 주쯤 발표될 10개 대학에 들어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하지만 정부가 원하는 대학 간 통합이 없어 장담할 수 없다. 현재 강원대+강릉원주대, 부산대+부산교대, 충북대+한국교통대, 안동대+경북도립대 등 국공립대간 통합대학들이 유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종적으로 선정이 어떻게 되든 전북대와 군산대, 전주교대의 통합은 시급하다. 한발씩 물러나 대승적으로 결단해야 할 때다.
‘문부산(蚊負山)’이란 말이 있다. 장자의 추수편(秋水編)에 나오는데 ‘모기가 산을 등에 졌다‘는 말이다. 어리석은 자가 산과 같이 크고 중한 일을 맡았다는 뜻이다. 또 논어 위령공편(衛靈公編)에는 ‘군자는 자기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소인은 남에게 추궁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일을 도모하다 그르치게 되면 군자는 자신을 질책하지만 소인은 ‘남 탓’으로 돌린다는 의미다. 요즘 전북정치권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모기와 소인배만 드글거리 것 같아 안타깝다. 전북은 지금 2011년 LH 사태 이후 최대 위기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키로 했던 한국토지공사를 주택공사와 통합해 경남 진주로 이전시켰다. 그러자 도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전주시내를 비롯해 도내 전지역이 이에 항의하는 현수막으로 뒤덮였다. 국회의원과 도의원이 삭발하고 김완주 도지사도 삭발투쟁에 동참했다. 그때 전북도지사가 삭발을 감행한 것은 2003년 강현욱 도지사가 새만금사업 지속 추진을 촉구하며 유철갑 도의장과 함께 삭발한 이래 두 번째였다. 지금 상황은 당시 못지않게 엄중하다. 지난 8월초 새만금에서 열린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실패로 사면초가에 몰려있다. 정부여당은 실패 책임을 전북도에 전가하면서 새만금 예산을 난도질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예산과 국가 공모사업, 전북특별자치도법 전부개정안의 국회 연내 통과도 어려울 전망이다. 이에 대해 도내 민주당 출신 국회의원과 도의원 등이 삭발과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도 비상대책회의를 출범시켰다. 여기에 22년 동안 전북을 연고로 했던 KCC 농구단이 부산으로 이전했다. 엎친데 덮친 격이다. 지금 도민들은 분노와 함께 허탈감에 빠져있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난국 타개책은 없을까. 이번 잼버리 실패에 대한 정부여당의 태도는 분명 폭거요 보복이다. 깡패나 하는 짓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전북의 책임은 없는가. 나는 지난 8월 8일자 칼럼(새만금 잼버리의 정치학)에서 잼버리 파행의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고 했다. 나아가 책임을 전 정권으로 돌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는 비겁하다고 질타한 바 있다. 하지만 분명 정부여당 못지 않게 전북의 책임도 크다. 처음부터 전북이 유치를 신청했고 전북 땅에서 벌어진 행사였다. 만일 성공했다면 김관영 도지사와 김윤덕 공동조직위원장은 ‘내 덕’이라고 홍보에 열을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행사가 실패로 끝나자 ‘내 탓’이라고 나서는 정치인이 하나도 없다. 이들 중 누구 하나라도 ‘내 탓이요’ 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면 상황은 이처럼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KCC농구단 사태도 마찬가지다. 10년동안 홈구장을 지어준다고 약속한 김승수·우범기 전주시장은 이를 실천했어야 옳다. 관변단체를 동원해 KCC 탓만 할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한발 더 나아가 뒷통수에 대고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데 앞으로 어느 기업이 전북을 찾겠는가. 문제는 지금부터다. 난국을 극복할 해법은 투쟁과 함께 내부 동력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선 시급한 3가지에 힘을 모았으면 한다. 첫째는 전주와 완주의 통합이다. 완전(완주·전주)통합을 통해 전북의 구심력을 키워야 한다. 둘째는 새만금과 군산 김제 부안의 통합이다. 이들 지자체의 땅따먹기 싸움은 새만금사업의 큰 걸림돌이다. 셋째는 전북대와 군산대, 전주교대의 통합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혁신을 위해 시급한 과제중 하나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책임은 자신에게 무겁게 지우고 남에게는 가볍게 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전북 정치권이 새겨야 할 말이다.
장관이었다. 2만2000개의 형형색색 소형 텐트들이 바다를 끼고 아스라이 펼쳐진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마치 고구려나 로마 군사들의 원정시, 수십만 명이 주둔한 군영을 보는듯한 상상이 일었다. 지난 7일 오후 부안 새만금 잼버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하지만 델타구역에서 신분증 확인을 받고 들어간 잼버리 현장은 뒤숭숭했다. 스웨덴, 독일, 멕시코 등 참가국 대표단 천막에는 지도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철수에 따른 후속대책을 논의하는 것처럼 보였다. 웰컴센터와 수도간, 화장실, 편의점, 넝쿨터널 등을 기웃거리며 1시간 남짓 시간을 보냈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파장이어서인지 볼 것도, 할 것도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36도를 넘나드는 폭염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8월 1∼12일로 계획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세계 158개국에서 4만3000명의 청소년(14∼17세)들이 각자의 꿈을 펼치기(Draw your Dream!) 위해 모였으나 초반부터 파행을 겪다 조기 철수하게 된 것이다. 정부나 조직위원회로서는 북상하는 태풍 ‘카눈’ 덕분에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 되었다. 사실 이번 잼버리 대회는 폭염 탓만 할수 없는 총체적 부실이었다. 올림픽과 월드컵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폭염대책은 물론 화장실·샤워실 등 위생 문제와 부실한 식사, 미흡한 의료시설 등 비난 받아 마땅한 수준이었다. 새만금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공항과 도로 등 SOC 확충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던 전북도의 당초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6년 동안 14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이고도 국제적인 망신만 자초했다. 어쨌든 이번 대회는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준비 부족에서부터 미숙한 진행, 다수의 컨트롤타워, 중앙과 지방의 역할 혼선, 방만한 운영 등 지적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대회가 끝난 뒤 이에 대한 엄정한 평가와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야 정치권은 서로 ‘네 탓’ 공방만 벌이는 꼴불견을 보여줬다. 이번 행사를 살펴보면 부끄러운 한국 정치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전 정권의 정책이나 행사는 깔아 뭉개고 지워버리기에 급급한 행태가 그것이다. 그동안 잼버리가 열리기까지 과정을 복기해 보면 바로 드러난다. 이번 대회는 2012년 박근혜 정부에서 유치 신청을 했고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유치했다. 그리고 2023년 윤석열 정부에서 치렀다.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5명 중 3명이 현 정부의 장관이다. 특히 여성가족부는 인수위 때부터 폐지 대상이었다. 그런 여성가족부에 주무부처를 맡겼으니 힘을 쓸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이번 사태의 제일 큰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잼버리 개영식에서 스카우트 최고의 예우를 표하는 장문례를 받으며 입장했다. 그러고도 집권한지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 전 정부 탓을 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적어도 문 정부 시절 지반 등 기초시설은 완벽히 닦아 놓았어야 했다. 민주당 김윤덕 의원은 줄곧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잼버리를 활용했는데 내년 총선에서 심판받아 마땅하다. 지방정부의 경우 김완주- 송하진- 김관영 지사로 이어졌다. 집행위원장인 김관영 지사는 이차전지 특화단지 유치 등 그동안 성과를 이번 잼버리 파행으로 한꺼번에 까먹었다. 본인이 유치하지 않은 탓인지 안일하게 대처하다 대회가 임박해서야 서둘렀다. 전 정부 지우기가 어떤 끔찍한 결과를 낳는가를 이번 대회에서 배운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달 25일 아침 일찍, 답사를 위해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로 향했다. 몇 번이나 미뤄왔던 터라 가슴이 설레었다. 답사 목적은 900년 전, 이곳을 다녀간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의 현장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고려도경은 1123년 중국 송(宋)나라 사신단으로 왔던 서긍(徐兢)이 기록한 것으로 동아시아 중세 자료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역작이다. 당시 중국 황제의 지시를 받고 작성한 고려에 대한 최고의 첩보보고서이자 국책보고서다. 예전에도 몇 번 이곳을 다녀가긴 했으나 건성이었다. 이번에는 2009년 군산도(현 선유도) 전월마을 주민의 제보로 이 일대 지표조사를 실시했던 군산대 곽장근 교수가 안내를 맡아 믿음이 갔다. 일행은 송화섭 전 중앙대 교수와 이춘구 전 국민연금 감사, 곽병선 전 군산대 총장 등 7명. 우리는 고군산진(古群山鎭)터가 있었던 남섬 쪽에서 망주봉으로 유명한 북섬을 바라보며 설명을 들었다. 이어 망주봉 일대를 둘러봤다. 당시 송나라가 보낸 사절단은 정사와 부사 그리고 뱃사람까지 합쳐 1000명이 넘는 대규모였다. 한중(韓中) 외교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동원된 행사였다. 이들은 길이 150m의 관선(官船) 2척과 객주(客舟 민간선박) 6척에 나눠 타고 중국 절강성 명주를 출발했다. 곧 이어 흑산도- 위도- 선유도- 태안 마도- 영종도- 강화도- 예성항 벽란도를 거쳐 고려의 수도인 개경에 입성했다. 그리고 다시 같은 길로 돌아가기까지 3개월의 대장정이었다. 이중 주목되는 것은 군산도에서 20일 넘게 머문 일이다. 이들은 6월 6일(양력 7월 23일) 이곳에 도착했다. 고려는 이곳에서 국가 차원의 영접을 했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이 직접 내려와 이들 사절단을 맞았다. 맞은 장소는 군산도에 우뚝 선 망주봉 가운데 있는 군산정(群山亭). 이 책에는 사신을 맞은 장소와 절차, 예법, 음식, 참석자 등과 함께 주변 경관이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돼 있다. 기록에 따르면 망주봉 동쪽 기슭에 해양제사를 지내는 오룡묘와 자복사, 객관인 관아가 있었고 서쪽 산봉우리 남쪽으로 숭산행궁과 군산정이 있었다. 또 16세기까지만 해도 왕릉으로 추정되는 대형 무덤이 있었고 송방(松艕)이라는 선박이 건조되었다. 당시 군산도가 한·중·일 해상 교통의 기항지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이 같은 사실 이외에도 군산도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 후 12일 동안 머문 곳이다. 또 청자 등 해저유물의 보고다. 답사를 마치며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째, 망주봉 일대 유적의 발굴과 복원이 시급하다는 점이다. 이중 사신단을 맞았던 군산정의 복원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 또 이 일대는 횟집이 들어서는 등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어 정비가 필요하다. 둘째, 복원과 함께 이를 대중국 관광과 외교에 활용했으면 한다. 당시 국제관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조공(朝貢) 관계가 아니었다. 12세기 중국대륙은 송과 요(遼), 금(金)이 짱짱하게 국운을 걸고 다투는 시대였다. 따라서 송나라는 고려와의 유대가 절실했다. 그래서 황제의 칙서와 선물 보따리를 잔뜩 싣고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다. 고려 또한 실리적인 등거리 외교를 펼쳤다. 오늘날 윤석열 정부의 미일(美日)에 경도된 외교를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고려도경 900주년 행사를 마련해 경색된 한중관계에 물꼬를 터보면 어떨까 싶다. 새만금 관광의 화룡정점이자 한중외교를 지방에서부터 푸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차후에 남북한과 중국이 함께 참여한다면 더욱 의미가 클 것이다.
요즘 전북지역 지방자치단체장들의 행태를 보면 당선될 때의 초심을 잃은 것 같아 안타깝다. 지자체장을 1년 가까이 해보더니 마치 태양이 자신을 중심으로 도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이 보인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선 김관영 지사는 최근 새만금개발청에 대한 서운함이 폭발했다. 행정고시 동기인 김규현 청장이 이차전지 등의 기업유치 공을 가로채고 있다고 느낀 때문인 듯하다. 전북특별자치도법 관련 기자회견 자리에서 “새만금개발청은 임시조직이다. 새만금이 개발되면 새만금개발청의 권한을 전북특별자치도로 가져와야 한다”며 흥분했다. 그에 앞서 김 청장 역시 언론 기고문을 통해 자가발전에 열을 올려 화를 돋구었다. 중앙부처인 새만금개발청이 우위에 있다는 투로 지자체 공무원을 ‘뻥축구’에 비유했다. 그러나 어쨌든 전북도지사는 전북도가 요구해서 어렵게 만든 새만금개발청을 최대한 활용할 생각을 해야 한다. 더구나 새만금사업은 완공 연도가 2050년이므로 권한 이양이나 해체 문제는 20년 이상 후의 일이 아닌가. 다음은 완주·전주 통합 문제에 대한 태도다. 김 지사와 우범기 전주시장, 유희태 완주군수는 완주·전주 상생협약을 맺고 수소경제 중심도시 도약사업 등 협력사업을 발굴해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몇 차례 진행되고 있는 이들 사업은 통합으로 나가기에는 너무 미진하다. 김 지사는 민주당 경선 과정은 물론 취임 이후 완주·전주 통합을 주요 정책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취임 후 행보는 면피용에 가깝다. 문제는 우범기 시장과 유희태 군수에게도 있다. 우 시장은 전주시 제2청사 건립 문제를 들고나와 통합 의지에 의문부호를 남겼다. 현 청사가 비좁고 낡아 청사 옆 건물을 812억원에 매입해 2026년까지 제2청사를 신축하겠다는 것이다. 뜻은 좋다. 하지만 통합의 열쇠를 쥐고 있는 완주군민 입장에서 보면 통합에 대한 부정적 메시지로 비칠 수 있음을 생각했어야 한다. 통합 시청사는 완주군 지역으로 간다는 게 2013년 통합 시도 이후 공인된 합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희태 완주군수의 행보는 이해하기 어렵다. ‘군민의 뜻 존중’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통합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하는 듯하다. 전임 박성일 군수때 추진했던 완주군의 시 승격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 1일 명예군수로 완주군을 방문한 김 지사에게 느닷없이 전북특별자치도법에 특례규정으로 완주시 승격을 넣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완주군의 시 승격은 전주와 통합하면 더 빠르고 쉽게 될 일이다. 또 엊그제는 통합에 대한 관권 개입 문제까지 불거졌다. 예산지원을 무기로 통합운동에 참여하는 완주군 측 시민단체 대표를 회유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권 동원이 사실이라면 큰 문제다. 주민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막는,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행위다. 입장을 바꿔 자신의 선거에 공무원이 개입해서 나가지 말라고 했다고 생각해보라. 완주·전주 통합은 시대적 대세요 당위다. 물론 ‘작은 것이 아름답다’며 통합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지역은 메가시티로 가는데 전북만 소지역주의에 매몰될 수는 없다. 완주·전주 통합을 계기로 성장이 멈춰버린 전북을 다시 살리는 기폭제로 삼아야 한다. 더욱 문제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6년 통합시장과 시의원을 뽑기 위해서는 늦어도 내년 9-10월 중에 주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이제 속도를 내야 할 때다. 김 지사와 우 시장, 유 군수는 지난해 6월 선거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고문
김윤덕, 이상직, 김성주, 신영대, 김수홍, 한병도, 윤준병, 이용호, 이원택, 안호영. 이들은 지난 2020년 21대 총선에서 뽑힌 10명의 전북지역 국회의원들이다. 이중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그리고 이상직 의원(전주 완산을)은 지난해 5월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어, 현재 재선거가 진행 중이다. 이들은 3년 혹은 7년 동안 선량(選良)으로서 밥값을 제대로 했을까? 국회의원은 입법활동과 행정부 감시, 그리고 지역 현안을 챙기는 일이 주요 임무다. 특히 전북처럼 도세가 약하고 성장에서 뒤진 지역은 지역현안을 챙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이들은 얼마나 지역현안을 자신의 일처럼 챙겼을까? 이와 관련해 홍준표 대구시장의 말이 폐부를 찌른다. 국회의원 5선으로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홍 시장은 지난 1월 25일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TK(대구 경북) 지역에서는 인재를 키우지 못해 눈치만 늘어가는 정치인들이 양산되고 국회의원다운 국회의원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재선이상 TK 의원들은 다음 총선에서 모두 물갈이해야 한다.” 정치색을 떠나, 일리 있는 말이다. 전북지역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홍 시장은 한발 더 나가 일갈한다. “중앙정치에서 힘도 못쓰고 동네 국회의원이나 하려면 시의원, 구의원을 할 것이지 뭐 하려고 국회의원을 하냐.” 백번 옳은 말이다. 또 지난 2월 15일 전북도의회를 찾은 익산 출신 조수진 의원(서울 양천갑)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전북특별자치도법과 관련해 법사위에 전북출신 의원들이 두 분이나 계셨지만 여러 차례 회의에서 그분들은 (특별법 당위성 등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저는 그때 굉장히 서운했다.” 약간의 과장이 섞일 수 있으나 전북의원들의 무기력함을 엿볼 수 있다. 나름대로 전북의원들은 어려운 가운데 역할을 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도민들의 눈높이에서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전북의원들은 중앙당의 중요 당직에서 배제돼 존재감 자체가 미미하다. 뿐만 아니라 제3금융중심지 지정이나 공공의료대학원 설립 등 지역현안을 챙기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것은 전북특별자치도법과 같은 날 통과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다. 후백제 문화권을 여기에 집어넣어 고구려 백제 신라문화권 등과 함께 국고 지원을 받도록 한 것이다. 이 법안은 김성주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문화체육위 여야 간사인 김윤덕·이용호 의원이 힘을 보태 모처럼 밥값을 했다. 왕년의 전북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김성수 백관수 김병로 나용균 윤제술 소선규 조한백 유진산(금산) 양일동 이철승 등은 말할 것 없고 좌파의 김철수 백남운 등 기라성 같은 인물이 즐비했다 해방공간에서 정부수립의 주역이었고 공산당에서도 거물이었다. 제헌국회에서는 전국 200석 중 전북이 22석이었고 9개의 상임위원장 자리 가운데 전북출신이 4개를 차지했다. 그러던 전북정치가 너무나 난장이가 되었다. 지난 1월 뉴시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선관위 홈페이지 참조)에서는 호남권 응답자의 68.5%가 다음 총선에서 물갈이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현 의원이 재당선되는 게 좋다’는 응답은 21.8%에 불과했다. 혹자는 물길을 아는 중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현재처럼 ‘민주당 공천=당선’ 인 구조에서는 야성(野性)을 살릴 수가 없다. 싸우지 않고 얻어지는 지역현안은 아무 것도 없다. 전북은 투사형과 지략형 선량이 필요한 시기다. 무기력하고 각자도생하는 의원들은 싹 치워야 한다.
김관영 전북지사와 우범기 전주시장이 취임한지 7개월이 지났다. 임기 4년의 8분의 1 이상이 지난 셈이다. 짧게 보일지 몰라도 이 기간은 전북 도정과 전주 시정의 방향을 제시하고 기틀을 다지는 황금 같은 시기였다. 이들은 이 기간 동안 거침없이 질주했다. 선거공약을 새로 다듬고 첫 인사를 단행했다. 외부로부터 큰 충격이 없는 한 이들의 밑그림은 3년 반 동안 계속될 것이다. 이들은 두 가지 공통점을 지녔다. 하나는 관운이 좋다는 점이다. 김 지사나 우 시장 모두 자리를 줍다시피 했다. 김 지사는 송하진 전 지사, 우 시장은 임정엽 전 군수가 민주당 경선에서 컷오프 되는 등 행운이 따랐다. 짧은 기간에 어렵지 않게 오늘의 자리를 차지했다. 밑져야 본전이고 잘하면 돋보이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또 하나는 두 사람 모두 경제와 성장을 중요시하는 개발론자라는 점이다. 전북은 계속된 인구 격감과 경제적 낙후로 상실감이 큰 지역이다. 따라서 변화에 대한 욕구가 분출하면서 큰 표 차로 승리했다. 이러한 시대정신과 변화의 열망을 담아 기대감 속에 출범했다. 우선 김 지사부터 보자. 53세의 젊은 나이와 82.11%라는 압도적 지지에 걸맞게 순항하고 있다. 김 지사는 ‘오직 경제, 오직 민생’을 앞세운다. 또 여야 협치를 통해 ‘전북특별자치도법’을 통과시켰다. 지금은 여기에 담을 규제 철폐와 특례 발굴 등에 힘을 쏟고 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재가동, 기업 유치와 정부 공모사업, 새만금 개발 등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제부터 김 지사는 그의 공약인 5대 대기업 계열사 유치와 탄소·수소 등 에너지산업, 농생명산업, 문화관광산업 등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 구호가 아닌 도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윤석열 정부 들어 도지사에게 지역대학의 학과조정 등 대학지원 권한까지 주고 있어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반면 김 지사는 인수위 시절부터 매끄럽지 못한 인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정무 및 홍보라인에서 잡음이 나왔다. 민주당 현역 국회의원들이 도의원들을 앞세워 견제하는 측면도 없지 않으나 아직 그의 입지가 탄탄하지 못함을 엿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고시 3관왕’이라는 타이틀이다. 약(藥)보다는 독(毒)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대권 도전의 꿈은 스스로나 주변에서 거론하기 보다는 성공적인 지사로 우뚝 설 때 드러나는 게 자연스럽다. 대권에 가까이 가본 고시 3관왕이 있었던가를 반추해 보라. 다음으로 우 시장을 보자. 우 시장 역시 전주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강한 경제, 전라도의 수도로’를 내세우며 공격적인 투자 유치와 탄소·수소·드론 등 미래 먹거리,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 등에 앞장서고 있다.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던 대한방직 터와 종합경기장 개발에 첫걸음을 뗀 것은 그가 개발론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주역 명품환승센터 착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 시장은 설화(舌禍)가 잦은 편이다. 또한 그림을 너무 크게 그리는 경향이 있다. 취임 전부터 전주시의원에게 폭언을 하고 주사(酒邪)를 부려 구설수에 올랐다. 천안-전주간 KTX 직선노선, 1조원 규모의 ‘왕의 궁원 프로젝트’ 등은 시원한 사이다 정책 같으나 실행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어쨌든 두 사람의 행보는 전북의 미래를 위해 더 빨라져야 한다. 이들이 선두에 서서 성장을 멈춘 전주와 전북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면 좋겠다. 전북 성공시대의 쌍끌이선이기를 기대한다. /조상진 논설고문
세밑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세밑에는 한 해의 묵은 숙제를 털어버리는 게 우리의 오랜 풍습이다. 전북의 묵은 숙제는 무엇일까. 새만금? 전북특별자치도? 종합경기장 및 대한방직터 개발?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완전(완주전주) 통합도 이들 못지않다. 지체된 전북발전의 기폭제이기 때문이다. 완전통합은 1997년부터 시작됐으니 벌서 25년째다. 3차례나 통합의 강을 건너지 못했다. 통합이 됐다면 전북의 발전상은 꽤 달라졌을 것이다. 통합의 당위성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청주(청주·청원)나 3여(여수시·여천시·여천군), 마창진(마산·창원·진해) 통합 사례도 이미 많이 거론되었다. 이제는 해법을 찾을 때다. 완전통합의 키는 완주군민이 쥐고 있다. 세 번 모두 완주군민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그동안 완주군민이 왜 반대했는지를 살펴보자. 여기에는 3가지 반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공식적인 반대 이유다. 가장 두드러진 게 3대 폭탄이다. 세금 증가, 혐오시설, 부채폭탄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가짜뉴스다. 오히려 완주군 쓰레기는 전주권광역처리시설을 통해 소각 및 매립 처리되고 있고 세금 또한 통합된다고 더 내지 않는다. 농촌지역에 대한 소외와 공무원이나 지방의원이 줄어든다는 것도 꼽는다. 통합시가 도시행정 위주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13년의 경우 1000억원의 농업발전기금을 조성키로 한 바 있다. 이번에는 더 많은 기금이 조성돼 완주군 농가에 지원될 것이다. 둘째는 비공식적으로 제기하는 우려다. 완주교육청이 없어지므로 완주교육의 질이 떨어진다, 통합이 되면 경로당 지원 등 복지혜택이 줄어든다, 통합으로 자치능력이 무너진다 등이 그렇다. 물론 통합되면 완주군은 사라지고 통합시가 된다. 그러나 교육의 질은 오히려 높아지고 복지혜택도 달라지지 않는다. 땅이나 아파트 값부터 오를 것이다. 셋째는 감추어진 반대 이유다.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2013년 통합 무산 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했다. 국회의원 지역구가 바뀐다거나 군수 입후보자의 정치적 기회 박탈, 의장단 또는 상임위원장을 기대하는 군의원들의 조직적 반대가 큰 역할을 했다. 사회단체 지도자들의 불안도 한몫 거들었다. 이중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 최규성 국회의원의 반대였다. 군수와 군의원 공천권을 무기로 군의원들이 반대에 앞장서도록 몰아세웠다. 막판에 그것이 판세를 바꿔놓았다. 해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안호영 의원(더불어민주당 완주·무주·진안·장수)의 역할이 중요하다. 안 의원은 지난 도지사 선거에서 통합 반대를 천명했다. 그러나 전북을 위해 좀더 큰 정치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제2의 최규성이 될 것인가를 결단해야 한다. 물론 자신이 갈고 닦은 지역구가 바뀌는 것을 달가워할 정치인은 없다. 그렇다고 최규성의 말로를 닮아갈 것인가? 해법의 실마리는 2023년 말께로 예정된 선거구획정에 있다.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 상하한선은 13만9000~27만8000명이었다. 인구하한선에 미달되는 전북지역 선거구는 10월말 현재 남원·임실·순창지역구 13만1370명, 김제·부안 13만1422명이다. 또 익산의 경우 27만4317명으로 2개 선거구를 유지하기 어렵다. 반면 전주와 완주를 통합하면 74만4406명으로 현 3개에서 4개 선거구가 가능하다. 전북의 선거구는 전국 253개 가운데 10개인데 자칫 8~9개로 줄어들 수 있다.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전북의 선거구도 줄지 않고 안호영 의원도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지혜를 모았으면 싶다. /조상진 논설고문
지방선거 이후 전주에는 곳곳에 “전주 다시, 전라도의 수도로!”라는 슬로건이 눈에 띤다. 우범기 시장이 내세운 것이다. ‘전라도의 수도’라? 여기서 전라도의 수도는 전주에 전라감영이 있다는 의미일까. 아닐 것이다. 전남북과 제주를 관할하는 감영이 있다고 수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주가 한 나라의 수도였던 적이 있는가? 1100년 전 자랑스러운 나라 후백제가 바로 그거다. 전주를 천년고도(千年古都)라 하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익히 알려진 대로 후(後)백제는 견훤(진훤)왕이 서기 900~936년 전주에 세운 나라다. 당시 국호는 ‘백제’였다. 후백제는 역사가들이 전(前)백제와 구분하기 위해 편의상 붙인 것이다. 굳이 얘기하자면 완산백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주의 위상을 재평가하기 위한 토론회가 지난 28일 전주시의회에서 열렸다. 전주시의회 양영환·채영병 의원이 주최하고 전북역사문화교육원이 주관한 이날 토론회의 제목은 ‘전주의 꿈! 후백제 도읍을 찾아서’였다. 그렇다. 전주의 꿈인 후백제의 도읍을 찾아야 한다. 전주가 언제 한반도의 중심에 서서 전국을 호령한 적이 있었던가? 후백제가 유일했다. 전주를 조선왕조의 본향이라 하지만 조선왕조 600년의 중심은 한양(서울)이었다. 대부분의 유적도 서울에 있고 전주는 이 태조의 6대조가 살았던 곳일 뿐이다. 이제 후백제는 왕도복원 등 실천단계에 들어설 때가 되었다.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후백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오늘날 후백제사가 왜곡·폄하된 것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 비롯되었다. 고대사에 대한 사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삼국사기를 바이블처럼 인용하지만 적어도 후백제에 관한한 편향된 시각을 보이고 있다. 단적인 증거가 견훤왕을 왕조사가 아닌 열전(列傳)에서 다루는데다 그것도 괴수, 원흉, 원수, 악독한 자라 표현한 것이다(송화섭 교수). 철저한 승자의 논리다. 이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역사에 정통한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교수 캐머론 허스트3세의 논문은 이를 엄혹하게 비판한다. 삼국사기, 고려사 등은 고려왕조 창건과정에서 왕건을 선인(善人), 견훤을 악인(惡人), 궁예를 추인(醜人)으로 설정하는 등 고의적인 조작과 선택적 편집을 했다는 것이다(이도학 교수). 학계가 나서 바로 잡을 일이다. 둘째, 후백제 왕도복원 프로젝트는 호남과 영남 충청을 아우르는 최상의 대형 프로젝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전주가 있다. 견훤왕은 경북 상주 문경출신으로 충남 논산에 묻혀있다. 그의 활동반경은 전북 전남 경기 충청 경북 경남에 걸쳐있다. 지금 상주와 문경에서는 해마다 견훤 관련 축제가 벌어지고 있고 논산에서는 왕릉제가 열린다. 그런데 정작 왕도였던 전주는 뭔가? 현재 전주 상주 논산 등 7개 시군이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호남 영남 충청이 화합하는 광역프로젝트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이들과 함께 역사문화권정비법과 고도 보존 및 육성법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셋째, 후백제에 관한 유물유적을 발굴하고 보존·활용해야 한다. 지금까지 후백제의 유적은 어느 정도 밝혀졌다. 이제부터는 한 단계 더 나가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게 왕궁터 발굴이다. 전주시 인봉리 일대로 비정(곽장근 교수)되는데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반드시 적법절차에 맞는 지표 및 발굴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더불어 도성, 왕릉, 사찰도 발굴해야 한다. 또한 표준어진 제작, 기념관, 조례 제정 등 갈 길이 멀다. /조상진 논설고문
행정통합 또는 메가시티는 지역이 살기 위해 뭉치는 생존전략이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고 잘 나갈 때는 독립해서 각자 살아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어려울 때는 합쳐서 힘을 모아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전북처럼 규모도 작고 외톨이가 된 자치단체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행정통합은 전북의 경우 3개 트랙으로 진행되고 있다. 광역의 전북새만금특별자치도, 기초의 새만금 메가시티와 완전(완주·전주) 통합문제가 그것이다. 첫째, 전북새만금특별자치도 설치는 정부가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추진하는 5극 2특을 5극 3특 체제로 하는 내용이다.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세종·대전·충청, 광주·전남, 수도권 등 5개 메가시티와 제주특별자치도, 강원특별자치도에 이어 전북새만금특별자치도를 여기에 넣는 것이다. 김관영 지사의 첫 번째 선거공약이기도 하다. 5극은 지방선거 이후 좌초 위기에 있으나 전북새만금특별자치도는 강원도가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과정에서 성공한 만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속빈 강정이 되지 않기 위해 재정특례를 넣을 수 있느냐 여부가 중요하다. 둘째, 새만금 메가시티문제다. 새로 매립된 새만금지역과 군산·김제·부안을 합쳐 메가시티를 조성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전북지역 1호 공약이다. 최근 3개 시군이 특별지자체 설치 합동추진단을 구성했으나 2010년부터 관할권 다툼으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들락거리고 있어 쉽지 않다. 아직 매립이 50% 안팎에 그치고 있어 시간은 있다. 셋째, 완주·전주 통합문제다. 이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전북발전의 동력이다. 하지만 1997년과 2009년, 2013년 등 3차례 실패한 바 있다. 모두 완주군민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러는 사이, 통합이 성사된 다른 지역의 발전상은 눈부시다. 울산·울진이 통합해 울산광역시로 승격했고, 마산·창원·진해가 창원특례시의 지위를 획득했다. 청주·청원 역시 통합에 성공해 충청권의 중심도시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전북은 어떠한가. 반드시 통합 실패 탓은 아니지만 호남에서도 변방으로 밀려났고 충청권과 광주·전남권 사이의 미운 오리새끼 신세가 되었다. 실패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리더십의 왜곡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2013년의 경우 완주·김제를 지역구로 둔 최규성 국회의원과 그의 공천권 하에 있던 지역정치인들의 반대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일정을 역산해 보면 2026년 7월 1일 통합시를 출범시켜야 하고, 2024년 4월 총선과 함께 주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앞으로 1년 6개월이 골든타임이다. 통합방식은 상향식(Bottom-up)과 하향식(Top-down)을 병행하는 게 최선이다. 민간단체가 결성된 만큼 이제 정치인이 호응해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7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고자 한다. 통합 당사자인 유희태 완주군수·우범기 전주시장과 김관영 전북지사가 나서야 한다. 또 이곳이 지역구인 안호영, 김윤덕, 김성주 의원이 참여하고 현재 비어있는 전주 완산을 몫은 내년 4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을 참여시키면 된다. 우선 6명이 모여 머리를 맞대라는 얘기다. 이것은 그들을 뽑아준 도민에 대한 의무요 책임이다. 여기에서 완주군을 중심에 놓고 군민들이 원하는 것을 추출하고 해법을 찾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완주전주가 통합돼도 인구가 75만에 그치기 때문에 특례시로 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통합시 인구 100만이 빠져나갈 경우 80만 남짓한 전북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등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전북 해체의 시간이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서거석 교육감과 김승환 전 교육감은 입지전적인 인물들이다. 서거석은 국립대 총장을 두 번 지낸데 이어 교육감에 당선되었고, 김승환은 교육감을 세 번 역임하는 영예를 안았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드문 일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연배가 비슷(1954년)하고 어렸을 때 무척 가난했다는 점이다. 또 열심히 학업에 매진해 법대 교수가 되었고, 선거에 뛰어들어 성공했다는 점이다. 다른 점은 서거석이 화합을 중시하고 친화력이 있는데 반해, 김승환은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점이다. 이들 사이는 퍽 불편한 관계지만, 오랫동안 전북 교육계를 이끌었거나 이끌고 있어 이들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한다. 우선 김승환 전 교육감부터 보자. 나는 30여년 전 김승환 당시 전북대 교수와 모임을 같이 한 적이 있다. 법조인으로 구성된 모임인데 김 교수는 처음부터 꽤 인상적이었다. 회칙을 만들 때 일이다. 한 회원이 만들어온 회칙을 10여 명의 회원들에게 돌리며 읽어보고 통과시키자고 하는데 김 교수가 제동을 걸었다. 한 조문씩 읽어가며 축조심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본인이 제1조부터 읽어나갔다. 그러자 다른 회원들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한 회원이 손을 들고 “무슨 헌법 만드는 것도 아니고 친목모임인데 한 번씩 읽어보고 이의 없으면 통과시키자”고 제의했다. 다른 회원들도 모두 이 말에 동의했다. 이때 김 교수가 ‘자의식이 강하고 꽤 깐깐하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 교수는 이후 인권운동 등을 하더니 2010년 교육감 선거에 뛰어 들었다. 범진보 단일화와 전교조의 지원, 그리고 보수진영의 분열로 신승했고 내리 3선에 성공했다. 당시 김 교육감은 부패한 전임 최규호 교육감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 반작용으로 김 교육감은 “껌 한통도 받아선 안된다”며 청렴을 내세웠고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러나 김 교육감은 독선과 불통의 아이콘이었다. 교육부와 도의회, 언론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걸핏하면 법을 내세워 소송으로 몰고 갔다. 교원평가제, 학교폭력 기재거부, 상산고 재지정 평가 등 사사건건 부딪쳤다. 자신의 뜻과 맞지 않으면 모두가 적이요, 공격 대상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물론 같은 진보진영의 문재인 정부와도 각을 세웠다. 그러면서도 인사개입과 학생감사자료 제출 거부지시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각각 1000만원과 700만원의 벌금선고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예산 배정 등에서 불이익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 도내 고교생을 부도덕한 삼성전자에 취업시키지 말라고 지시하고, 코로나에 마스크를 쓰지 말라는 말도 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학생들의 현저한 학력저하 현상이다. 이제 서거석 교육감이 그 바통을 이어 받았다. 지난 12년 동안 굳어진 김승환 체계에서 한동안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거석은 대교협 회장으로 교육부와 전국 대학총장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수완을 발휘한 바 있다. 전북대 총장 때는 교수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연구 성과에 채찍질을 가해 전북대를 국립대 중 상위권에 끌어올렸다. 다만 서 교육감은 유아교육과 초중등교육에 대한 경험이 없어 현장에 대한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다. 지금 전북은 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경제력 쇠퇴 등 퇴로 없는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각급학교는 물론 자치단체 등과 협치를 통해 인재를 키우는 일이 급하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의 운명은 청년의 교육에 달려 있다”고 했다. 전북의 활로 역시 교육에 달려있고, 서 교육감이 그 선봉에 서야 할 때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8년 전인 2014년 6월 30일, 나는 「송하진 지사가 새겨야 할 3가지」라는 칼럼을 본란에 쓴 바 있다. 당시 나는 첫째 측근을 조심하라, 둘째 사표를 품고 다녀라, 셋째 전국적인 경쟁력을 가져라는 3가지를 주문했다. 그 칼럼이 나간 날 아침에 송 지사가 전화를 걸어와 “내가 잘 할테니 지켜봐 달라”고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송 전 지사는 행운아였다. 행정 관료로 출발해 전주시장 8년과 전북지사 8년을 했으니 꿈을 이룬 셈이다. 그는 전주시장 재직시 한옥마을을 본궤도에 올려놓았고 지사 때는 탄소산업과 수소산업, 그리고 새만금SOC에 힘을 쏟았다. 또 역사문화에 대한 조예가 깊어 전라감영 복원과 가야·후백제 역사 복원에도 성과를 거두었다. 재임 중 돈이나 여자문제 등 비리가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가 장고 끝에 내린 3선 출마는 과욕이었다. 도민들은 관료 출신 김완주 지사의 8년에 이어 송 지사가 8년을 더하면서 피로감이 꽤 높았다. 그동안 “해 놓은 게 뭐냐”, “너무 나이 들었고 이제 그만해먹어야 한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를 간파하고 과감하게 직을 내려놓았어야 했다. 송 지사는 퇴임 후 전주시내에 거처를 마련하고 도민들과 더불어 살겠다고 하니 퍽 다행이다. 그의 경륜이 전북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송 전 지사의 뒤를 이어 7월 1일 취임한 김관영 지사 역시 관운이 무척 좋은 사람이다. 생각지도 않게 송 전 지사가 민주당 경선에서 컷오프(경선 배제) 되는 바람에 지사자리를 줍다시피 했다. 출마 선언한지 불과 34일 만에 본선이나 다름없는 경선에서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하지만 ‘유능한 경제도지사’를 표방한 김 지사의 앞길은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의 침체를 벗고 성장과 발전에 목말라있는 도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야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쪼그라드는 전북을 일으켜 세울 무거운 짐이 그에게 주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 지사에게 몇 가지를 주문하고자 한다. 첫째, 유능함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김 지사는 52세의 젊음과 고시 3관왕, 여야를 넘나든 정치력 등이 큰 자산이다. 이를 활용해 우선 당장 전북의 현안인 전북·새만금특별자치도 설치와 제3금융 중심지 지정, 대기업 계열사 5개 유치 등에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 또 새만금에 디즈니랜드와 복합리조트를 유치하고 전주시와 협조를 통해 골머리를 앓던 전주종합경기장과 대한방직 개발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해야 한다. 둘째, 협치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김 지사가 속한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중앙권력을 국민의 힘에 뺏겼다.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이 엇박자다. 그런 상황에서 전북은 국가사업이나 재원조달이 힘들 수밖에 없다. 이를 협치의 정치력을 발휘해 돌파해야 한다. 셋째, 널리 인재를 구해야 한다. 김 지사는 재선의 국회 경험뿐 행정경험이 없다. 인사관리가 낯설 수 있다. 자칫 캠프출신 등 측근에 매몰될 소지도 없지 않다. 김 지사는 인수위원회와 혁신단 구성 등의 과정에서 흠결 많은 인물들과 군산출신 등 인사 편향으로 입질에 올랐다. 그만큼 인재풀이 좁고 관리가 허술하다는 방증이다. 넷째, 전국적인 경쟁력을 통해 차기 대선주자에 올랐으면 한다.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으나 멀리 보고 통 큰 정치를 했으면 한다. 중도 이미지가 강한 김 지사는 전국적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전제 조건이 있다. 전북에서 큰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도민들은 김 지사가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길을 개척할지 기대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전북에서 가장 작은 자치단체인 장수군. 이곳은 흔히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으로 불리는 두메산골(奧地) 중 하나다. 4월말 기준 인구 2만1624명으로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경북 울릉군과 영양군에 이어 전국에서 3번째로 작은 곳이다. 당연히 인구소멸 위험지역에 속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이곳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1500년 동안 숨겨져 있던 보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해 12월초부터 세 차례에 걸쳐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장인 곽장근 교수의 안내로 이곳 일대를 방문했다. 올해 4월에는 중앙대 송화섭·박경하 교수, 건국대 김기덕 교수 등이 동행했다. 이들과 함께 장수 천천면 삼고리 고분군에서 시작해 장수읍 동촌리 고분군(국가사적 552호), 장계면 난평마을 마을숲과 알봉이라 불리는 고분, 계남면 침령산성(전북도 기념물 141호), 장계면 삼봉리 고분군(전북도 기념물 128호), 반파국 왕궁터로 비정되는 탑동마을 등을 둘러봤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이들 지역과 더불어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국가사적 542호)도 가봤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 역사에 500여 년간 존재했던 가야국 중 일부로, 편의상 전북가야(장수가야와 운봉가야)로 불리는 곳이다. 영역은 금산과 완주, 무진장, 남원, 임실 등 300여리에 걸쳐 있다. 종전까지 가야는 영남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곽 교수의 땀 흘린 노고 덕분에 백두대간 서쪽인 전북동부에 존재했던 독자세력이 밝혀진 것이다. 논란이 없지 않으나 반파국(장수)과 기문국(남원)이 그것이다. 2010년대 이후 발굴된 유물과 유적, 문헌 등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 중 반파국은 장수지역을 중심으로 서기 300년대 후반에서 500년대 초반까지 150년 동안 존속했던 가야 소국이다. 반파국은 당시 반도체라 할 수 있는 철을 바탕으로 운봉가야를 흡수하고 섬진강 하구 다사진(하동)까지 진출했다. 한때 백제와 왜(倭)의 군대를 격파하고 신라의 촌락을 습격해 초토화시키기도 했다(이도학 교수). 그러다 521년 백제에 복속되면서 사라졌다. 또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은 영남지역 고분과 함께 다음 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장수가야의 의미는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거대한 고분군과 제철유적, 봉화망 등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유산을 남겼다는 점이다. 특히 제철유적과 봉화는 독보적이다. 둘째, 백제와 가야, 신라의 물고 물리는 각축장이었다는 점이다. 침령산성과 합미산성에 그 자취가 남아 있고 후백제가 리모델링해 활용했다. 셋째, 우리나라 고대의 철(iron road)과 도자기(china road) 전파의 루트를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제철기술과 도자기술을 가진 일단의 주민들이 새만금을 거쳐 전북혁신도시에 정착한 후 철광석 등이 있는 장수와 남원으로 이주해 꽃을 피운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동고산성을 발굴했던 전영래 교수는 일찍이 이러한 반파국을 수수께끼의 나라라고 했다. 어쨌든 장수가야는 보물단지인 셈이다. 이 같은 가야유적이 발굴되면서 장수는 크게 변화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사과, 한우와 함께 가야유적이 새로운 역사관광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 지방선가가 코앞이다. 도지사 후보 등은 대기업 유치를 외치고 있다. 물론 기업 유치도 중요하지만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찾아보면 도내 곳곳에는 보물이 산재해 있다. 이를 찾아내 어떻게 꿰는가가 관건이다. 눈 밝은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을 뽑아야 하는 이유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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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웹툰 작가이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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