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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경비원은 고달프다

경비업무 외에 주변청소, 잡초제거, 택배관리, 주차관리, 층간소음, 나무전지, 대형 폐기물 처리 등 모든 잡일은 우리가 다 한다고 보면 돼요. 아무래도 경비는 반(半) 노가다잖아요.새벽 23시 한참 꽂잠 자고 있을 때 택배 찾는다고 와서 시비 걸고 찾아가시는 분도 있어요. 주민들은, 24시간 근무가 안자고 근무하는 것 아니냐, 그렇게 생각한다고요.별도로 (휴게 공간이) 있어야 쉬는 것인디, 없으니 경비실 안에서 쉴 수밖에 없죠.사실은 위탁관리회사가 큰 소리 못 쳐요. 왜냐면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가 갑이니까요. 소장도 말 한마디 잘못하면 모가지에요.공제 전 금액이 175만원, 세금 등 9만원 떼고 165만원 받아요. 우리가 중간이라 더라고요.내가 있는 아파트는 젊은 부부들이 많아요. 인사도 잘하고 좋아요. 저녁에 순찰을 돌 때 보면 박카스를 주기도 하고, 택배 운반해 주면 과일 같은 것 몇 개씩 주고 그래요.이상은 전주시내 아파트에 근무하는 경비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다.우리나라 노인일자리는 단순노무직이 대부분이다. 박사도 CEO출신도 노인이 되면 어쩔 수 없다. 그 중에 60대 남성이 가장 선호하는 자리가 경비원이다. 급여가 다른 직종에 비해 괜찮은 편이고 노동 강도가 심하지 않는 감시(監視)단속(斷續)적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60대의 나이에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한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이와 관련,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는 지난 6월 우리나라의 대표적 거주 형태로 자리 잡은 아파트 경비원의 근무실태에 대해 질적 연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아파트 경비원의 고충을 심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두 가지만 들여다보자.하나는 고용상태가 불안하다는 점이다. 정년이 65세로, 계약기간은 대개 1년이다. 65세가 넘으면 6개월 단위로 연장하고 최근에는 3개월 단위로 쪼개서 계약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또 위탁(용역) 회사가 바뀔 때 고용승계 여부도 불안요인이다. 입주자대표회의, 특히 자치회장에게 밉보일 경우 다음 계약시 해고될 수 있다. 최근에는 최저임금 시행으로 인건비가 많이 오르자 신규 또는 대규모 아파트에서는 아예 경비원을 없애고 무인경비시스템을 활용하는 추세도 한 몫 거든다. 을의 위치에 있는 경비원들은 속수무책으로 갑의 처분만을 바라는 처지다.또 하나는 근무여건이 열악하다는 점이다. 경비원들은 대개 24시간 맞교대(격일제) 근무로, 본연의 업무인 경비와 방범은 물론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잡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취침시간이나 식사시간 등 휴게시간을 늘려 잡아 실질적으로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를 받고 있다. 연구 참여자들은 휴게시간이 7시간 30분에서 11시간까지 다양했다. 이를 근무시간에서 제외하는 바람에 한 근무자는 월급이 140만 원대에 불과했다. 이와 함께 좁은 경비실 안에서 휴식과 취침, 식사 등을 모두 해결하는 것도 고통이다. 일부 작은 규모의 아파트 경비원은 음식물 쓰레기통을 닦거나 재활용품 분리수거까지 맡아서 하고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위탁회사나 주민들로부터 인권 차원의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아파트의 8090%를 차지하는 위탁관리를 자치관리로 유도하는 게 어떨까 한다. 정부도 올해부터 자치관리를 하는 아파트에 대해 관리운영비 부가가치세 감면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휴게시간 조정을 통해 최저임금 하한선을 넘기는 편법을 바로 잡아야 한다.더불어 하루 3교대 근무와 70세 정년의 법제화 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아파트 경비원도 우리의 이웃이요 한 집안의 가장이다. 나아가 지금 40, 50대 남성의 미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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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02 23:02

"대통령의 명령이다. 새만금을 완성하라!"

지난 9일, 취업 어르신 30분을 모시고 광양과 여수일대를 다녀왔다. 사기 진작 차원의 산업현장 시찰이 목적이었다. 동행한 분들은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에서 취업을 알선한 경비와 청소 종사자들로, 모두 6070대였다. 이들 중 경비분야는 24시간 맞교대(격일제)여서 대체근무가 쉽지 않았다. 또 청소는 남들이 출근하기 전에 청소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새벽에 출근하는 분들이다. 모처럼 귀한 시간을 낸 탓인지 모두들 약간 들떠 있었다. 여성 어르신들은 나이를 잊은 듯 멋진 스카프에 선글라스를 낀 분들이 많았다.광양제철은 포항제철에 이어 1985년 456만평의 광양만을 메워 건립했다. 매년 1500여만 톤의 철강제품을 생산해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정규직원만 6200여명. 82만평의 주거지에는 사택과 초중고교가 들어서 있고 조경이 잘 돼, 마치 공원 속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전기의 75%를 자체생산하고 25%를 한전으로부터 받는데 하루 전기료가 7억7000만원이라는 안내자의 설명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제철소 견학 후, 우리는 여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일대를 둘러봤다. 이순신대교와 돌산대교 등 풍광이 아름다웠고 바다 위를 지나는 케이블카도 멋져보였다.군산시 인구와 비슷한 여수는 2012년 세계박람회를 발판으로 모든 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듯 했다. 우리가 들른 꽃돌게장 식당은 가격에 비해 서비스가 1등급이었다. 아름답다는 여수 밤바다 풍경은 아쉽게 후일을 기약해야 했다.불과 10시간의 짧은 일정이었으나 이곳을 돌아보며 잠자고 있는 전북의 현실을 생각했다. 광양제철만한 기간산업체가 새만금에 들어섰다면? 세계박람회가 군산에서 열렸다면? 아마 전북은 달라졌을 것이다. 특히 일자리가 크게 늘어났을 것이다.광양과 여수만이 아니다. 삼성전자가 있는 수원과 화성, 평택, LG필립스가 들어선 파주, 청주인근 오송오창 첨단의료복합단지 등은 지금 활력이 넘치고 있다. 그에 비해 전북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일자리가 없어 청년들의 엑소더스가 줄을 잇는다. 지난 4월 전북연구원이 실시한 전북지역 청년종합실태조사에서 20대의 46.4%, 30대의 37.5%가 타지역 이주를 고려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유는 일자리가 없어서였다. 실질 지역내총생산(GRDP) 증가율 또한 전국에서 유일하게 0%였다.이 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방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새만금사업을 비롯해 금융중심도시를 꿈꾸는 혁신도시 시즌2, 탄소산업, 식품클러스터, 전주 한옥마을 등 잠재력은 어느 곳 못지않다. 다만 역대 정권의 예산 홀대에 더하여 내부적 발전 역량이 미흡했던 게 원인이다.도민들이 전북발전의 신앙처럼 여겼던 새만금의 경우 정부 공식문서에 등장한지 30년, 기공식을 가진지 26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절반 이상이 매립되지 못한 채 바닷물만 출렁거린다. 그 동안 6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이들은 선거 때면 찾아와 달콤한 말로 개발약속을 했고 립 서비스에 그쳤다. 다행히 문 대통령은 당선되자 약속대로 청와대에 전담부서를 설치했다. 또 지난 31일 전북을 방문해 속도감 있는 새만금 개발을 위해 공공주도 매립으로 전환하고 신항만도로 등 핵심 SOC를 확충하겠다.고 밝혔다.실제로 새만금사업은 내부개발을 비롯해 국제공항 등 갈 길이 멀다. 이제 정치 환경이 바뀌어 예전보다 여건이 좋다. 이런 때일수록 탄탄한 논리와 공세적 자세가 필요하다.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서울 용산소방서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주택가 화재 당시 부상으로 최근에야 결혼식을 올린 소방관에게 이렇게 말했다.대통령으로서 명령이다. 적절한 시기에 신혼여행을 다녀와라국민들은 이를 보며 감동의 눈물을 훔쳤다. 그 동안 낙후와 피로감에 지쳐있는 전북도민들은 문 대통령의 한마디를 원한다. 대통령의 명령이다. 새만금을 완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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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21 23:02

대선과 전북 몫 찾기?

19대 대선이 코앞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5월로 앞당겨진 탓이다. 연일 후보 간 TV 토론 공방이 뜨거운 가운데 전북에도 대선 후보들의 발길이 잦다. 또 전북도를 비롯해 전북상공회의소협의회 등 각급단체에서 지역관련 공약의 반영을 요구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게 전북 몫 찾기가 아닐까 한다.전북도에서 추진하는 이 계획에는 전라도 1000년 프로젝트, 2020년 전북 대도약 프로젝트, 독자권역 설정, 대선공약 발굴(8개 분야 45개 과제), 정부 균형인사, 공공특별행정기관 설치, 국가예산 반영 등 전북의 현안이 총망라돼 있다.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얼마나 홀대 당했으면 이때 지역 몫을 찾아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겠는가.우선 전북 몫은 얼마나 될까 궁금해진다. 행정구역은 땅과 인구가 기본 구성요소이기 때문에 이를 살펴보자. 전북이라는 행정구역은 1896년(조선 고종 33년) 전국을 8도에서 13도로 개편하면서 태어났다. 121년 전 일이다. 이후 전북은 계속 뒷걸음질 쳐왔다. 땅의 경우 전북은 1906년 구례군을 전남에 떼어주고 전남 영광군에 속했던 무장면과 흥덕면을 받았다. 또 516 쿠데타 직후인 1963년 금산군과 익산면 황하면을 충남에 주고 전남 영광군 위도면을 받았다. 두 번에 걸쳐 땅을 뺏긴 셈이다. 그 결과 지금 면적은 8067㎢로 남한의 8.1%다.인구를 보면, 정부수립 다음 해인 1949년 204만 명으로 남한 전체의 10.2%를 차지했다. 1966년에는 252만 명으로 피크를 이루었는데 그 당시 남한인구의 8.6%였다. 지금은 186만 명으로 전국 인구의 3.6%에 불과하다.국회의원 의석수를 봐도 전북의 축소 경향은 확연하다. 제헌의회 당시 전국 200석 중 전북은 22석(11%)을 차지했다. 지난 해 413 총선에서 도내 의석수는 10석이었다. 다행히 출향인사가 대거 당선돼 이들 25석을 합치면 11.6%다. 대충 이를 헤아려 보면 전북 몫은 전국의 10% 안팎이 아닐까 싶다.문제는 대통령 당선자가 전북 몫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까 하는 점이다. 전북은 그 동안 3중고의 차별을 겪어 왔다. 수도권과 지방, 영남과 호남, 그리고 광주전남에 의한 차별이 그것이다. 특히 정부 인사에서 전북은 찬밥신세였다. 지난 2월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리더십연구센터가 정부수립 이래 차관급 이상 인사 3213명의 신상정보를 분석해 발표했다. 그 결과 호남은 늘 인사 소외의 서러움을 당해 왔다. 1948년 이후 69년 동안 대접을 받은 건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이었다. 그것도 전북은 곁불만 쬐는 처지였다.그렇다면 극복 방안은 뭘까. 고육지책이 전북 몫 찾기 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두 가지 방향에서 그렇다. 하나는 관(官) 주도라는 점이다. 이 같은 운동은 민간이 주도하고 관이 지원하는 형태여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다만 전북에는 이를 추진할만한 민간기구가 없다는 게 한계다. 전북애향운동본부는 이미 기능이 정지된 경로당이 되었고 상공회의소 역시 이를 떠맡을 역량이 의문이다. 그렇다고 강현욱, 김완주 지사 때처럼 무슨 협의회나 운동본부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또 하나는 자칫 송하진 지사의 선거운동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전북 몫 찾기는 송 지사 입장에서 내년 613 지방선거를 겨냥해 꽃놀이패가 될 수 있다.이번 대선에서 전북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성 싶다. 유력한 후보인 문재인 안철수 캠프의 지역공약에 예산배분이 불투명한데다 영향력 있는 참모가 많지 않아서다. 나아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호남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한 립 서비스를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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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26 23:02

'일자리 전쟁'에 목숨 거는 지도자를…

숨 가쁘게 달려온 탄핵열차가 거의 종착역에 이르렀다. 곧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이 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대선이다. 벌써부터 민주당은 경선에 돌입했고 다른 주자들도 분주하다.이번 대선의 화두는 두 가지로 집약되는 듯하다. 일자리와 안보가 그것이다. 안보분야에선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미국의 사드(THAAD) 배치로 인한 중국과의 갈등이 한반도에 먹구름을 불러오고 있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먹고사는 문제, 즉 일자리다. 대선주자들은 진작부터 일자리 공약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공공부문 고용확대를 통해 81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여기에는 소방관, 경찰, 복지 등 17만4000개 공무원 일자리가 포함돼 있다. 이를 두고 다른 주자들은, 일자리 주체는 민간기업이며 공공분야 일자리는 좋은 게 아니라고 날을 세운다.어느 진영의 논리가 맞든 일자리 만들기는 쉽지 않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최우선 과제로 삼고 매달려도 될까 말까할 난제다. 가히 일자리 전쟁이라 할만하다. 미국 등의 사례가 그러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대량 실직한 앵그리 화이트(Angry White)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막말에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것 같아도 그의 취임사는 퍽 인상적이다. 지금 미국 도심의 엄마와 아이들은 가난에 갇혀 있고, 녹슨 공장은 나라 곳곳에 묘비처럼 흩어져 있다. 이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우리는 단순한 두 가지 규칙을 지킬 것이다. 미국 제품을 사게 할 것이고, 미국인을 고용할 것이다.영국의 브렉시트(EU탈퇴)도 사실은 일자리 문제가 핵심이다. 일본의 아베노믹스 역시 논란이 없지 않으나, 일자리의 경우 잃어버린 20년을 완전히 극복했다. 오히려 베이비부머의 대량 은퇴로 구인난에 직면해 있다. 부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트럼프와 아베의 특징은 욕을 먹어도 일자리 정책만큼은 뚝심 있게 밀고 가는 공통점이 있다.그러면 우리는 어떤가. 박근혜 정부는 국정마비로 일자리 창출은 커녕 뒷걸음을 쳐왔다. 이전 정부도 일자리 정책은 소리만 요란한 빈수레였다. 더구나 인공지능(AI)과 로봇 등의 발달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그러나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다. 네트워크로 연결해 미스매치와 사각지대를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다. 노인 취업 현장에서 느끼는 몇 가지를 제안하겠다.첫째, 65세 이상 노인들에 대한 구인-구직 양방향 DB 구축이 시급하다. 현재 고용노동부에서 일자리 정보 제공을 위해 워크넷(work.go.kr)을 운영하고 있으나 노인들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인들의 일자리는 경비, 청소 등 대부분 단순노무직이다. 워크넷에 올리지 않고 그때그때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구인업체는 물론 구직자의 희망직종을 연결해 줄 필요가 있다. 주민센터나 지역의 노인일자리 수행기관이 전국을 일정 구역으로 나눠 등록을 분담토록하면 된다.둘째, 파트타임 일을 정착시키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우리는 전일제 근무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노인들은 하루 8시간 근무가 버거운 경우가 많다. 8시간을 4시간으로 쪼개면 일자리가 배로 늘어난다. 노인들은 젊은이와 달리 노후생계비를 벌거나 일 자체를 원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베이비부머의 경우 68.9%가 파트타임 잡을 원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다만 CEO들의 사고전환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셋째, 실버대학(앙코르 캠퍼스) 설립이 필요하다. 절반 이상의 노인들이 준비 없이 노후를 맞는다. 이들의 직업훈련과 소양 함양을 위해 3, 6개월, 또는 1, 2년 과정의 정규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학생이 줄어드는 대학을 활용하거나 폴리텍 대학과의 연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이번 대선에서 일자리 전쟁에 목숨 거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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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08 23:02

내 안의 박근혜, 내 안의 최순실

새해 첫머리가 밝았어도 나라는 여전히 어둡다. 매일 감당해야 할 놀람과 충격은 조금 누그러졌으나 여전히 진행형이다. 2016년 한 해, 우리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이 하나씩 알몸을 드러내면서 일상은 올 스톱 되는 듯 했다. 눈과 귀가 온통 TV 생중계에 머물렀고 국민들의 분노는 1000만 촛불의 기적으로 나타났다.나도 집에서 TV 앞에 있기가 너무 미안했다. 광화문까지 나가기는 무리여서 전주 객사 쪽을 택했다. 전국적으로 헌정사상 최대라는 232만 명이 운집한 지난 12월 3일이었다. 당시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제3차 담화에 단단히 뿔이 나 있었다. 단 한 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는 주장이 더 큰 반발을 산 것이다.그 날 전주에만 2만 명이 모였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객사-세이브 존-시청-오거리-풍남문으로 행진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새누리당 해체하라 재벌도 공범이다가 주요 구호였다. 그리고 마지막 행사로 풍남문 옆 광장에서 만민공동회가 열렸다. 대부분 중고생들이 나와 현 시국을 성토했다. 공부와 시험에 매몰된 줄 알았는데 유머와 풍자를 곁들여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펼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은 국가권력의 사유화다. 그것도 공익의 최고 컨트롤 타워인 대통령이 한갓 강남 아줌마인 최순실과 한 몸이 되었으니 말해 무엇 하랴.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그리고 재벌기업 오너들까지 입만 열면 거짓말을 쏟아냈다. 국회 청문회는 그것을 여실히 드러냈다.2300년 전, 맹자는 제자 공손추가 묻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피사( 辭 공정하지 못하고 편파적인 말) 음사(淫辭 음란한 말) 사사(邪辭 사악한 말) 둔사(遁辭 책임을 회피하려고 억지로 꾸며서 하는 말)가 위정자의 마음에서 생겨날 때는 반드시 그것이 말에 그치지 아니하고, 그 나라의 모든 사업에 해악을 끼친다. 이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한 마디로 정치가의 위선과 거짓은 나라를 망친다는 뜻이다. 지금 시국에 딱 맞는 말이 아닌가.그러나 10차례에 걸쳐 1000만 명이 촛불을 들어도 아직 나아진 것은 없다. 청년들이 말하는 헬조선은 계속되고 있다. 생활 속에 터 잡은 힘 있는 자들의 특권과 반칙, 부패가 여전하기 때문이다.그러면 처방은 무엇일까. 특권의식과 부패를 뿌리 뽑기 위해선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제도개선과 개인적 자각이 그것이다. 정경유착, 뇌물스캔들 등 제도적 부패(systemic corruption)는 검찰개혁이나 공수처 신설 등이 논의될 수 있다. 김영란 법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이 보다 중요한 건 개인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여는 자각이 아닐까 싶다. 특히 우리 사회에 소금이 되어야 할 언론계 종교계 교육계가 그렇다. 이들 가운데 내가 오랫동안 몸 담았던 언론계의 경우 남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깨끗해야 가능하다. 그런데 주변에는 말이나 글과 행동이 다른 경우를 많이 본다. 남의 허물을 들추고 칼날을 들이 대면서 정작 자신들은 인사 청탁, 이권 개입을 당연시 하는 경우가 흔하다. 나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마이클 샌델은 정의로운 사회는 강한 공동체의식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공동선(共同善) 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정의라는 것이다. 또한 심리학자 아들러는 타자(他者) 공헌을 강조한다. 다른 사람이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채 자신만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가, 최순실이 수천 억 원을 빼돌려 호주머니가 두둑해졌다고 행복할까?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부정으로라도 입학해서 행복할까?이번 게이트가 스스로 촛불을 켜 내 안의 박근혜, 내 안의 최순실을 몰아내는 계기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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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04 23:02

구암사와 석전기념관

나라가 온통 시끄럽다. 사교(邪敎)끼 있는 여인이 대통령을 꼭두각시 삼아 분탕질 치는 바람에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다행인 것은 지난 주말 100만 인파가 보여준 희망의 촛불이었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리더십이 원인이 아닐까 한다.100여 년 전 이 불통을 지적한 분이 있다. 석전 박한영(1870-1948)이 그다. 석전은 1913년 해동불교에서 치세의 근본이 인(仁)과 통(通)이라며 불인(不仁)과 불통(不通)을 제거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스님은 20세기 전후 우뚝 솟은 불교계의 큰 스승이요, 항일 운동가이자 시인이었다. 나아가 한국학의 대가요, 뛰어난 교육자였다. 얼마 전, 불교를 비롯한 한국 정신사의 큰 맥을 형성했던 구암사에서 석전기념관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감의 손뼉을 쳤다. 오히려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우선 석전의 행적부터 살펴보자. 그는 근세 한국불교의 3대 강백(講伯)으로서 불교를 바로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는데 헌신했다. 동국대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장을 지내며 청담(조계종 2대 종정), 만암(3대 종정), 경보 철운(조정래 작가 부친) 등 불제자는 물론 이광수, 최남선, 정인보, 이병기, 신석정, 조지훈, 서정주, 홍명희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과 문인을 길러냈다. 또한 일제가 조선불교를 일본불교에 종속시키려 하자 호남과 영남지역 승려들을 규합해 조선총독부의 압력을 차단하는 선두에 섰다. 31운동 직후 결성된 한성임시정부 수립에 전북대표로도 참여했다. 더불어 석전은 최남선에게 단군고사(檀君古史)와 동명고강(東明古疆)의 한겨레 강역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고 700여 수의 탁월한 한시를 남겼다.다음,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스님과 구암사의 관계를 보자. 구암사는 설파와 그의 제자 백파가 머물면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해 200년간 내노라하는 강백을 배출한 곳이다. 추사 김정희와 성리학자 기정진, 간재 전우는 구암사와 인연이 깊다. 조용헌은 구암사의 위상을 당시 불교계의 서울대학교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했다.1895년 구암사에서 설유(雪乳)로 부터 법계를 받고 강원을 연 석전은 1910년 만해 한용운과 진진응 등을 구암사로 불러 일본의 조선불교 통합에 반대하는 숙의를 했다. 이후 10여 년 동안 구암사 주지를 지냈다. 서울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도 수시로 구암사에 내려와 머물곤 했다.그러면 왜 구암사에 석전기념관을 설립해야 하는가. 첫째, 구암사는 한국불교 강맥의 본류인데다 석전의 승가 본향(출생은 완주군 초포)이기 때문이다. 625 한국전쟁 전 구암사 영각에는 백파와 석전의 영(影)이 있었고 석전이 아꼈던 추사의 족자 20폭과 여러 폭의 병풍, 옹방강의 달마도, 고희동과 김은호의 그림이 있었다. 또 석전의 장서 4만여 권 중 2만 권이 구암사에 있었다. 하지만 공비토벌이라는 명목으로 국군이 불을 질러 폐허가 되었다 최근 본래 모습을 상당부분 되찾았다.둘째, 구암사는 문학과 항일운동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문학적으로 고창의 미당문학관, 부안의 석정문학관이 건립되고 익산의 가람 생가가 복원되었다. 그들의 스승인 석전의 기념관을 순창에 짓는다면 문학 순례코스로 적절하다. 또한 조선불교를 지켜낸 불교계 3인 중 만해의 기념관이 경기도 남한산성에, 백용성 대사의 죽림정사가 장수에 건립되었는데 석전기념관만 없는 상태다. 특히 만해기념관은 2008년 스승과 제자-석전과 만해 특별기념전을 마련해 그들의 돈독한 관계를 조명했다.셋째, 구암사는 석전의 발자취가 묻어있는 내장사와 백양사의 중간에 위치해 그를 기리기에 적지(適地)다. 또 스토리텔링의 보고다. 내장사는 그가 입적한 곳이요, 백양사는 그가 배우고 가르쳤던 곳으로 문도들이 뜻을 잇고 있다. 지금은 전남북 3개 시군으로 나눠져 있으나 본시 같은 공동체였고 둘레길로도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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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16 23:02

전북 도제(道制) 120년…인물 살펴보니

올해는 도제(道制)가 실시된 지 120주년이 되는 해다. 1894년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고, 이어 1896년 갑오경장이 있었다. 이때 개혁조치로 조선 8도가 13도로 분화되었다. 즉 전라도가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로 분리된 것이다. 60갑자(甲子)가 두 번 바뀌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구한말을 거쳐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625 한국전쟁, 독재시대, 민주화시대 등 엄청난 변화의 물결을 건너왔다.이와 관련, 전주역사박물관에서 전북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전북의 정체성과 전주라는 시민강좌가 진행 중이다. 마침 인물에 대해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이 있어 전북에 관계된 인물을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이들을 보며 느낀 것은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시대를 이끈 인물이 많았다는 점이다.그러나 아쉬운 것은 갈수록 지역경제가 위축되고 인구가 줄면서 인물 빈곤에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 인삼으로 유명한 금산군을 516 쿠데타 직후인 1963년 충남으로 뺏긴 것도 아쉽다. 정치계의 거목 유진산과 중앙대를 설립한 임영신, 빨치산 대장 이현상이 금산출신이다.흥미로운 몇 가지 사항만을 들여다보겠다. 우선 매국노 이완용은 부자가 이곳 관찰사를 지낸 특이한 경우다. 그의 양부(養父) 이호준이 먼저 전라관찰사를 지냈고 전주 다가공원에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완용 역시 1897년 제2대 전북관찰사를 지냈고 그의 묘가 익산 낭산에 있었다. 그는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전동성당이나 서해안 간척과도 관계가 깊다.다음은 일제 때 무장활동을 벌인 인물이다. 최근 암살 밀정 등 영화가 대박을 치면서 관심이 높아졌다.백정기(부안) 이종희(김제) 김일두(순창) 정화암(김제) 등이 흑색공포단, 의열단, 광복군에서 활약했다. 백정기 의사는 중국 여순에서 1만5000톤급 일본 수송선을 폭파시키고 상해 홍구공원에서 주중(駐中)일본대사를 암살하려다 밀정의 밀고로 체포돼 옥사했다. 의열단장 김원봉이 신임했던 이종희 의사는 밀정을 처단하고 광복군 제1지대장을 지냈으나 1946년 귀국선에서 눈을 감았다.해방공간에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계열로 활동한 거물들도 엿보인다. 김철수(부안) 백남운(고창) 정창모(전주)가 그들이다.김철수는 일제 때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를 맡았고 해방 후에 이승만과 남로당 박헌영의 제휴를 위해 노력했다. 경성대학 교수를 역임했던 백남운은 좌파경제학의 대부로 해방후 월북했다. 북한에서 교육상과 과학원장, 막스레닌주의방송대학 총장,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냈다. 전주북중을 나온 화가 정창모는 북한예술가 최고의 영예인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다.또 초창기 의료계는 타지역 출신들이 주도했다. 일제 강점기에 농촌의료 봉사활동을 벌인 군산 개정병원의 이영춘(평남 용강) 김성환(경기 광주) 등이 대표적이다. 초대 전북의사회장을 지낸 명대혁(평남 대동군)과 황외과(회산병원)로 유명했던 황의섭(평남 광동군)은 평생 전주에서 인술을 펼쳤다. 그런가 하면 의료선교사로 파송되었던 설대위(미국 플로리다)는 30년 동안 예수병원에 헌신했다.더불어 제헌의원과 초대 전북지사를 지낸 신현돈(경북 안동), 서문교회 목사로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김인전(충남 서천)과 김가전 형제 그리고 배은희(대구 달성) 초대 고시위원장, 전주에서 활동했던 이용우(서울) 이응로(충남 홍성)화백, 군산에서 활동한 박래현 김기창 부부화백, 하반영(경북 김천) 등이 눈에 띠는 인물이다.익산에 둥지를 튼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전남 영광), 순창과 태인에서 의병활동을 벌인 최익현(경기 포천)도 뺄 수 없다.전북은 제헌의회 당시 전국 선거구 200개 가운데 22개를 점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이 땅에 살다간 다양한 삶의 편린들을 떠올리며 지금의 전북을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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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28 23:02

인생은 후반전이 훨씬 더 중요하다

나라가 온통 시끄럽다. 검찰과 법원 주변에서 시작된 악취가 청와대까지 진동한다. 또 얼마 전에는 재벌총수의 성매매 사건으로 충격을 주고 있다. 나라가 이대로 안녕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가뜩이나 무더위로 밤잠을 설치는데 불쾌지수까지 높다. 민간 자율까지 규제하는 김영란법이 오히려 시원한 물줄기처럼 느껴진다.최근의 비리 시리즈는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첫째는 소년등과(少年登科) 케이스다. 권력층 비리로 구속된 홍만표(57)진경준(49) 전 검사장, 우병우(49) 청와대 민정수석은 하나같이 소년등과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법조계 고위공직자 중 최고 부자라는 진 검사장은 게임회사 NXC(넥슨 지주사) 뒤를 봐주고 주식으로 126억원을 챙겼다. 그는 대학 3학년 때인 21살에 사법시험에, 22살에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수료했고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과정을 마쳤다. 검사 2년차 때 6000원에 산 기차표를 1만원에 판 회사원을 구속한 일화는 유명하다. 400억 대의 재산을 가진 우병우 민정수석은 수천억대의 골프장과 건설사를 가진 처가를 뒀다. 그 역시 20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검사시절 독종 기브스라는 별명을 들었다. 홍만표와 우병우는 2009년 갓끈 떨어진 노무현 대통령을 혹독하게 조사했던 장본인들이다. 또 얼마 전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으로 삭탈관직된 나향욱(47) 교육부 정책기획관 역시 23살에 행정고시에 붙었다.이들은 승승장구하다 보니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남은 봄바람처럼, 자신은 가을서리처럼 대하라(待人春風 持己秋霜)는 선인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던 것이다.둘째는 지금은 조용해진 조영남(71)과 같은 케이스다. 그는 가수로 크게 성공했다. 클래식한 목소리와 걸출한 입담으로 많은 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는 5년 전부터 무명의 대작화가에게 10만원씩 주고 주문한 화투그림에 살짝 덧칠한 후 서명해 팔았다. 장사가 꽤 잘됐다. 그러나 그는 유명세로 얻은 가짜 화가였을 뿐이었다. 더구나 미술계 관행이라는 변명이 불에 기름을 부었다. 결국 사기죄로 재판받는 신세가 되었다.셋째는 뉴스타파가 동영상과 함께 보도한 이건희 회장 케이스다. 이 회장의 성매매 사건은 차라리 국민들이 몰랐으면 좋았을 뉴스였다. 이 회장이 누구인가. 그는 금수저, 아니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나왔지만 한국사회에 공헌한 바가 컸다.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시켰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성공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뒤에서는 20~30대 여성 여러 명을 불러 성매매를 해 온 것이다. 이것은 한 개인의 배꼽 밑 이야기가 아니라 소수 특권층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보여준 단적인 예다. 어디 이 회장뿐이겠는가.이들은 모두 인생 후반부에 들어 망신살이 뻗친 경우다. 반면 오히려 후반전에 빛나는 인물도 있다. 미국의 39대 대통령 지미카터(92)와 우루과이 대통령 호세 무히카(81)가 대표적이다. 카터는 재임 중 국내 경제정책 실패로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없는 대통령이었다. 그런 그가 퇴임 뒤 세계 평화 전도사로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사랑의 집짓기 운동(해비타트) 등 왕성한 활동을 벌여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었던 호세 무히카는 젊은 시절 군부독재에 맞서 14년 동안 감옥에 갇히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그러나 대통령이 된 후 월급의 90%를 기부하고 대통령궁을 노숙자들에게 제공했다. 정치도 잘 해 우루과이의 빈곤율을 떨어뜨리고 소득을 증가시켰다. 5년의 임기를 마친 2015년 2월 퇴임시 영국의 BBC는 가장 이상적이고 정직한 대통령이 떠난다고 애석해 했다.이들을 보면서 인생은 축구나 야구경기처럼 후반전이 훨씬 더 중요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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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3 23:02

4평의 행복

요즘 휴일이면 텃밭으로 달려간다. 달려간다는 말이 과장됐다면 휴일에는 반드시 텃밭에 들린다고 해 두자. 사실은 집사람의 성화에 못 이긴 것이긴 하지만.엊그제는 쌈 채소를 뽑은 자리에 오이와 호박 모종을 심었다. 지주목도 세웠다. 제철이 아니라지만 비트 씨도 뿌렸다. 샐러리, 치커리 등 쌈 채소가 처음에는 씩씩하게 자라더니, 두어 번 수확한 후부터 비실비실해졌다. 찬찬히 보니 진딧물의 공세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설탕물을 진하게 탄 천연농약을 뿌렸다. 다음 날, 잎의 숨구멍이 막힐 것 같아 물을 뿌려 씻어 주었다.그런데 웬걸, 흐물흐물하기는 마찬가지. 할 수 없이 두 이랑을 뒤집어엎고 비닐멀칭을 다시 씌웠던 것이다. 그 옆에는 이미 가지, 오이, 고추, 방울토마토, 감자가 실하게 자라고 있다. 벌써 오이 등을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하다.지난해는 생강, 토란도 심었다. 모두 잘 자라 주었다. 물을 줄 때마다 손바닥 보다 넓은 토란잎에 물방울이 뒹구는 모습이 신기했다. 또 텃밭 귀퉁이 빈 땅을 더 일궜다. 그곳에 대파와 고구마를 심었다. 줄기로 심는 고구마는 처음에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해 누렇게 죽어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 거짓말처럼 살아났다. 생명력이 놀라웠다.8월말에는 관리자의 권유에 따라 그 동안 심었던 채소들을 거두고 땅을 다시 뒤엎었다. 김장배추와 무를 갈기 위해서다. 지난겨울에는 텃밭에서 수확한 보라색 배추를 여러 사람에게 나눠 주었다. 색깔이 예쁜데다 항암 배추라고 알려져 인기가 좋았다.말을 하다 보니 농사를 거창하게 짓는 것 같아 겸연쩍다. 기껏해야 전북대에서 분양한 캠퍼스텃밭 4평을 짓는 건데.어쨌든 도시농부 2년차다 보니 생각지 않은 일이 일어나곤 한다. 지난달쯤 오이 모를 사다 심었을 때 일이다. 토요일에 분명히 5개를 심었는데 다음 날 와 보니 2개만 남아있는 게 아닌가. 나머지 3개는 줄기 중간이 뎅강 끊어져 버린 것이다. 이를 보고 집사람과 논쟁이 벌어졌다. 집사람은 땅속의 벌레가 먹었을 테니 토양살충제를 뿌리고 다시 심자고 했다. 나는 무슨 소리냐?며 아마 고양이나 개가 지나가면서 밟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얼마 전 해 어스름에 고양이를 본 생각이 나서였다. 하지만 둘 다 아니었다. 그 날 거세게 분 강풍이 주범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오이 모는 튼실해 보이지만 속이 비어 있어 약했던 것이다.또 지난해 가을에는 배추벌레 잡는 게 일이었다. 해가 뜨기 전에 잡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배추 속 깊이 박혀버렸다. 꼭 연한 속깡만 먹어치웠다. 심하면 앙꼬 없는 찐빵이 돼, 결국 버려야 했다. 나는 어렸을 적 농촌에서 자랐다. 하지만 텃밭농사는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 논농사나 밭농사는 거름을 주고 농약도 치고 피나 풀을 뽑아야 하지만 집 안팎 텃밭에서 나는 오이나 호박은 대충 하는 것으로 알았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별 힘들이지 않고 잘 가꾸셨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식물은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실감한다. 자주 가서 정성을 들인 만큼 윤기가 난다.그리고 과외의 소득이 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먹는 식사 맛이 그만이다. 일을 마치고 집사람과 같이 콩나물국집이나 순댓국집을 순례한다. 콩나물국집 주인은 오늘도 텃밭 갔다 오세요?가 인사가 되었다.지금은 도시농업이 대세라고 한다. 주말농장은 물론 주택가 빈터, 아파트 베란다, 건물 옥상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농림부 통계에 따르면 2015년말 참여자가 130만 명을 넘었다. 아마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람도 꽤 될 것이다.요즘 우리 주변엔 생목숨을 무단시 죽이는가 하면 성폭력이 횡행한다. 죽음과 분노, 불안이 일상화된 셈이다. 이런 때일수록 도시농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초록생명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안정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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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15 23:02

노인공약, 4년 후 거짓인지 가려내자

놀라웠다. 그리고 신기했다. 선거가 이렇게 재미있고 드라마틱할 줄 몰랐다. 한편으론 무섭기까지 했다. 표의 심판이, 민심의 준엄함이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이번 20대 총선은 몇 가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첫째는 오만방자하고 독선적인 권력에 대한 경고였다. 16년 만에 재현된 여소야대가 그것을 웅변했다. 둘째는 지역주의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통쾌했다. 전남 이정현, 대구 김부겸, 부산 김영춘, 전북 정운천 등의 당선은 지역주의를 허무는 단비였다. 셋째는 호남의 경우 오랜만에 찾아온 경쟁구도가 반가웠다. 전북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평민당이 14개 지역구를 싹쓸이한 이후 28년 동안 일당 독식구조였다. 그러다 이번에 국민의당 출현으로 피 말리는 경쟁을 하다 보니 후보들이 유권자 무서운 줄 알게 된 선거였다. 넷째는 전북 출신 인재가 많은데 놀랐다. 이번 총선에서 도내 10명을 포함해 전북출신은 수도권 등 모두 31명이 선출되었다. 전국대비 인구가 4%에 불과한데 국회의원 수는 10%를 넘었다.그러나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다. 비전과 정책이 빛을 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늦은 선거구 획정과 진흙탕 공천싸움에 가려 정책경쟁은 아예 실종돼 버렸다. 정책 대신 땅바닥에 엎드려 용서를 비는 진풍경이 곳곳에서 벌어졌다.하지만 정책은 국민의 삶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꼭 챙겨야 할 사항이다. 국민은 주권자로서 정치권에 더 나은 삶을 요구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그러면 이번 선거에 제시된 공약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 중 주목할 만한 노인공약을 중앙당과 지역구별로 나눠 보고자 한다.새누리당은 일자리 창출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다. 해마다 노인 일자리 10만개를 만들어 2020년까지 78만7000개를 만들겠다고 했다. 노인 일자리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모든 시군구에 노인 일자리 전담기관 설치도 약속했다. 또 의료비 정액제 기준을 인상하고 치매노인에 안심팔찌 및 전용단말기 보급을 공약했다. 반면 노인복지청 신설 공약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더불어민주당은 기초연금 인상을 대표공약으로 내걸었다. 현재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월 20만원에서 단계적으로 30만원으로 올려 차등 없이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함께 노인 일자리를 100만개로 늘리고 수당을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불효자방지법 제정도 추진키로 했다. 국민의당은 노인 빈곤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를 폐지하고 노인일자리를 2배로 늘리는 한편 수당도 4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를 2배로 확대하고 본인부담금을 경감하겠다는 공약도 눈길을 끈다.다음은 전북지역 당선자 10명의 노인공약을 보자. △노인취업지원센터 및 주치의제도 도입(전주갑 김광수) △효자동 경로종합복지타운(500억)건립(전주을 정운천) △70세 이상 노인을 위한 무상실버버스 도입과 호성동, 조촌동동산동 노인복지회관 건립(전주병 정동영) △노인종합복지관 추가건립 및 노인체육관 재추진(군산 김관영) △함열읍 복지관 건립과 모현동 수영장 및 노인체육관 재추진(익산갑 이춘석) △농촌 9988쉼터설치 및 독거노인 친구맺어주기(익산을 조배숙) △국책연구기관급 노인병연구센터 설립(고창군) 기반조성(정읍 고창 유성엽) △노인무료버스 도입과 노령층 사회적 협동조합 지원(남원 임실 순창 이용호) △거동불편 노인 똑똑서비스와 3대 효도가족 혜택법안 마련(김제 부안 김종회) △65세 이상 버스비 무료와 1000원 택시 및 이미용 복지혜택(완주 무주 진안 장수 안호영).하드웨어 중심의 졸속과 날림공약이 많다. 그럼에도 공약은 유권자와의 공적(公的) 약속이다. 4년 후 거짓 여부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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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20 23:02

노인정치에 대한 변명

요즘 정치권에 복고풍이 불고 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올드 보이들이 복귀하면서 일고 있는 노인정치(gerontocracy)에 대한 논의가 그것이다. 실버파워가 그만큼 커졌다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듯하다. 노인하면 떠오르는 고집불통의 보수성과 함께 생산성과 활력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지금 더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김종인 대표(76)와 지난 1월 창당한 국민의당 한상진 위원장(71)은 65세가 넘었으니 당연히 노인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65)는 어린 편이다. 더불어 각 당의 총선 관리와 심사를 맡고 있는 후보자 공천관리위원장은 한결같이 70대다.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71), 더민주당 홍창선 전 카이스트 총장(72), 국민의 당 전윤철 전 감사원장(77)이 그렇다.노인정치는 과거 소련이나 중국 등 공산주의 국가나 로마 원로원 등에서 성행했다. 옛 소련은 1980년대 말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기 전까지 20년 넘게 70대가 공산당 정치국원 자리를 독점했다. 중국도 덩샤오핑이 국가 주석에서 물러날 때 85세였다. 종신직인 로마 원로원은 초창기 각 가문의 원로 100명으로 구성되었다.우리도 정치권이 급격히 고령화되는 추세다. 국무위원 중 3040대는 1명도 없다. 19대 국회의원도 300명 가운데 3040대가 42명뿐이다. 그러다 보니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이 대부분 노인 위주일 수밖에 없다. 머니투데이가 2012년 5월2015년 9월까지 발의된 법안 540개를 전수 조사한 결과, 노인이 혜택을 받는 법안이 319개로 청년의 86개에 비해 3.7배에 달했다.투표율도 노인층이 월등히 높다. 19대 총선에서 60세 이상 투표율은 68.6%였다. 이에 비해 2529세 청년층 투표율은 37.9%에 불과했다. 거의 두 배 수준이다. 결국 선거 때가 되면 각 정당들이 노인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후보들이 노인회와 경로당을 찾아 코가 땅에 닿게 큰절을 올리는 이유다.고령화는 세계적 물결이다. 이에 따라 노인정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나라를 봐도 1970년대 평균수명이 61.9세였다. 하지만 OECD가 지난해 발표한 2013년 평균수명은 81.9세였다. 45년 만에 20살이 늘어난 셈이다. 일본의 경우는 더하다. 고령자 조사가 시작된 1963년 100세 이상 인구는 153명이었다. 그런데 지난해는 6만 명을 넘었다. 그래서 노인의 날을 맞아 총리대신이 100세 노인에게 증정하던 은잔(銀杯)을 재정부담을 이유로 합금으로 바꿨다.의료전문가들은 20세기말 75세는 21세기초 6065세와 생리학적으로 비슷하다고 말한다. 섭생이 좋고 의학이 발달해 자기 나이에 0.7을 곱하는 게 맞다는 계산법도 있다.또 유엔은 2015년 인류의 평균수명이 늘어난 점을 고려해 생애주기를 새로 구분했다. 미성년자 017세, 청년 1865세, 중년 6679세, 노년 8099세, 장수노인 100세 이상으로 분류했다.문제는 이러한 생물학적 나이에 대한 분류보다 정신의 나이가 어떠냐가 아닐까 한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민주당 버니 샌더스(74)는 청년들이 열광하는 후보다. 자본주의 본산인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를 표방하며 40년 넘게 소수자의 권익을 위해 일관된 길을 걸어온 덕분이다.우리의 경우 김대중 대통령이 4번의 도전 끝에 74세에 대통령에 취임하는 영광을 안았다. 반면 전직 국회의장(78)이나 요즘 TV 먹방에서 뜨고 있는 백모씨의 부친(80)은 손녀 같은 캐디를 성추행해 망신을 당했다.최근 우리 선거에서 노인이 너무 과다 대표되고 있다고 한다. 옳은 측면이 없지 않다. 극심한 청년실업과 헬조선, 흙수저 등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나이 드는 것을 탓할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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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02 23:02

더 이상 호남을 볼모로 삼지 마라

요즘 정치권에선 호남이 화두다. 특히 야권에 지각변동이 일면서 걸핏하면 호남 민심을 들먹인다. 그러나 호남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 청와대나 여의도에서 계파간 흥정거리로 삼거나 정계의 안주거리가 아니라는 말이다.호남은 오랫동안 한반도를 지탱해온 지주목이었다. 1000년 이상 이 땅의 곡식창고였고, 이 나라가 어려울 때 민초들이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내놓았던 곳이다. 호남의 정신은 저항과 개혁, 풍류라 할 수 있다. 묻겠다. 김제만경의 끝없이 펼쳐진 너른 벌을 걸어 보았는가. 파도처럼 일렁이는 황금들녘을 보며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는가.조정래는 아리랑 첫 권에서 이곳을 걸어도 걸어도 끝도 한정도 없고,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고 묘사했다. 한반도 땅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 여기서 나는 곡식으로 이 땅의 목숨 7할이 먹고 살았던 곳이 호남을 상징하는 김제만경벌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만약 호남이 없다면 곧 국가가 없다(若無湖南 是無國家)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하지만 이러한 풍요는 오히려 호남인들에게 서러운 핍박과 착취를 가져왔다. 고려 말 왜구의 잦은 침탈이 그러했고, 조선시대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 또한 그러했다. 일제 강점기에 군산항과 목포항을 통한 쌀의 수탈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착취는 때로 혁명의 불길로 타올랐다. 동학농민혁명은 조선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 19세기 후반, 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높이 든 동아시아 최대의 근대화운동이었다. 농민과 도시민, 소상공인, 몰락양반들이 무장봉기해 전국을 휩쓸었고 3040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 그 희생자 대부분이 호남인이었다. 그 정신은 일제 때 광주학생의거,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이러한 희생을 치른 이 땅은, 그러나 정치적으로 항상 비주류 또는 야지(野地)로 남았다. 더욱이 박정희의 쿠데타 이후 경부축을 중심으로 한 불균형성장은 호남에 가난의 멍에를 씌웠다. 알다시피 80년대까지 공장이라는 공장은 몽땅 수도권과 영남에 몰려 있었다. 반면 한반도의 곡창이었던 호남은 60년대 후반 이후 진행된 농업의 급격한 해체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긋지긋한 상대적 가난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정치적으로 보면 1961년 이후 55년 동안 호남인이 정권을 잡은 건 김대중 정권, 딱 5년에 불과했다.이러한 호남에 정치인들의 구애가 또 다시 시작됐다. 413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호남발 정계 개편의 회오리가 불면서다.그러면 최근 정치지도자들이 호남에 대해 어떤 언급을 했는지 살펴보자. 나는 호남의 아들참여정부가 호남에 드린 서운함을 제가 사과드리겠다 정권교체를 통해 호남의 꿈을 되살릴 자신이 있다(문재인), (호남차별의) 한(恨)을 가지고 계신 분들, 반드시 풀겠다는 약속을 드린다(안철수), 이완구 국무총리가 경질되면 그 자리에 전라도 사람을 총리시켜 주길 부탁드린다(김무성), 호남 정치의 복원(정동영박지원천정배), 호남이 거부하는 야권주자는 있어 본 적도 없고, 있을 수도 없어(김한길), 호남의 눈물을 닦아주는 대통령이 되겠다(박근혜).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을 호남의 대변자인양 내세운다.그러나 그 결과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다르다. 호남의 꿈이 실현되었는가? 호남의 눈물을 닦아 주었는가? 호남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가? 아니, 그들은 호남을 표밭으로만 보았을 뿐이다. 나아가 자신이 정권을 잡는 매개체요 수단으로만 생각했다. 정치지도자들이 정권욕 때문에 호남을 볼모로 삼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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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06 23:02

짙어가는 고령화 그늘

노령인구가 급속히 늘면서 고령화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이 경제협력기구(OECD)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은 물론, 노노간 양극화 심화와 노인의 가계 빚, 황혼이혼, 노인범죄, 노인학대 등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옛 부터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세 가지가 여유로워야 한다고 했다. 하루 중에는 저녁이, 일 년 중에는 겨울이, 일생에서는 노년이 여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삼여(三餘)다. 그런데 한국인은 노년으로 갈수록 여유는커녕 칼바람을 맞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를 어찌 행복한 나라라 할 것인가.몇 가지만 살펴보자. 지난 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고령층 가계부채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면 우리나라는 60대 이상 고령층의 소득 대비 가계대출 비율이 161%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연령대 평균 128%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이처럼 고령층의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나라는 미국과 독일 등 비교 대상 15개 국 중 유일했다. 심지어 부도 직전의 그리스보다도 못했다. 다른 나라는 나이 들수록 빚이 줄어드는데 비해 우리는 거꾸로 빚이 늘어나는 양상이다.더구나 베이비부머의 중심인 50대가 고령층에 진입하면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이들은 주택 구입과 자녀교육비, 결혼 지원에 매달리느라 빚을 줄이지 못했다. 이들의 퇴직과 은퇴가 본격화 되는 앞으로 10년은 고령층의 가계 빚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 원인 중 하나는 고령층의 소득 가운데 연금 및 이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서다. 결국 노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로 내몰리는 것이다.또 다른 고령화의 그늘은 노노간 소득의 양극화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상대적 빈곤율이 갈수록 심각해져, 여유 있는 노인과 궁핍한 노인 간의 신(新)양극화가 머지않아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2006년 52.3%였던 상대적 빈곤율은 지난 해 62.5%로 늘었다. 올해 기초수급자 중 65세 이상 노인은 사상 처음으로 30%를 넘었다. 더불어 실버범죄도 급증하는 추세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노인 범죄자는 2011년 6만8836명에서 지난 해 8만7583명으로 크게 늘었다. 노인인구가 12% 늘어날 때 노인 범죄는 27% 늘어난 것이다. 전체 범죄에서 절도사기범죄가 줄고 있는데 유독 노인들의 절도사기가 가파르게 늘어난 것은 노인들의 빈곤과 관련이 깊다.이러한 고령화의 그늘은 노인인구가 폭증하면서 더욱 짙어질 것이다. 통계청이 추계한 2040년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율은 32.4%다. 유엔이 정한 65세 이상 노인인구 20%인 초고령화를 넘어 극(極)고령화에 달하게 된다. 이럴 경우 세대 갈등과 더불어 경제 사회적 부담은 국가적으로 큰 압박이 될 것이다.이러한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선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우리나라 노인문제의 핵심은 가난이다. 가난을 완화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일자리 마련이 최선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심각한 청년실업이 반면교사라 할 수 있다.그 동안 노인 경제활동을 지원해온 대표적 사업은 정부가 2004년부터 추진해 온 노인일자리사업이다. 이 사업은 양적으로 대폭 확대되고 많은 긍정적 효과를 거뒀지만 한계에 이르렀다. 전체 사업의 85%를 차지하는 공공분야 일자리의 경우 급여수준이 20만 원 안팎에 그쳐 소득보장 기능이 크게 미흡한 편이다. 또한 민간사업장과 연계한 일자리 창출도 만만치 않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을 설립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으나 이것 역시 수월한 일이 아니다. 결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이 부단히 노인일자리 창출과 일자리 나누기 방안을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 노인들이 여유롭고 행복해야 진짜 복지국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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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25 23:02

전주를 활기찬 고령친화도시로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는 요양병원 보다는 당신이 평생 사셨던 내장산 넘어 시골집에 계시기를 원했다. 하지만 거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집에 모실 수가 없었다. 자식들이 모두 도시에 나가 생활하고 있는데다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처지여서 더욱 그랬다.그 전에, 어머니는 형님 집에 가까운 서울의 요양병원에 계셨다. 그러다 시골집에 가시고 싶다 해서 고향 인근의 요양병원으로 옮겨드렸다. 자식들이 자주 찾아뵙는다는 전제를 달았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허물어졌다.열흘 후면 어머니 가신지 1주기다. 지금도 내 이름을 부르며 집에 데려다 줘! 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구순까지 수(壽)를 누리셨지만 당시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 온다.노인들이 자신이 생활하던 곳에서 여생을 보내다 눈을 감을 수는 없을까. 나아가 주민 모두가 편안한 도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그것은 선진 복지국가들이 지향하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에서 찾을 수 있다. 복지 선진국들은 노인들이 요양시설에 가지 않고 노년을 지역사회에서 보내는 노인복지정책을 최우선 모토로 한다. 흔히 이들 나라가 요양시설 중심의 노인보호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미국만 해도 실제 요양시설에 입소하는 노인 인구는 3%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우리는 도시 외곽에 요양병원 등 노인요양시설을 대거 건설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세계적 추세와 동떨어진 셈이다.이에 맞는 도시개념이 고령친화도시(Age-Friendly Cities)다. UN산하 세계보건기구(WHO)가 주도하며, 2002년 스페인 마드리드 노인 강령에서 비롯되었다. WHO는 2007년, 전 세계적 인구 고령화와 도시화에 따른 파급효과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활기찬 노년(Active Aging)을 제시했다. 건강과 참여, 안전이 활기찬 노년의 3대 기둥이다. 이어 2009년 WHO 국제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미국 뉴욕시가 2010년 최초로 회원도시 가입 인증서를 받았으며 2015년 10월 현재 33개국 287개 도시가 네트워크에 가입했다.우리나라는 서울시가 2013년 유일하게 가입했고 부산과 인천, 수원, 제주 등이 2017년 가입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고령친화도시가 되기 위해선 건물과 교통, 주택, 사회 참여, 일자리 지원 등 8개 부문에 걸쳐 점검을 받아야 한다.그러면 전북, 그 중에서도 전주시는 어떠한가. 두 가지 방향에서 이에 대한 대응이 절실하다. 첫째, 인구고령화에 대한 선제적 대처 필요성이다.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이며 전북은 그 앞부분에 자리한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전남에 이어 18.5%로, 전국에서 2위로 높다. 도내에서 임실과 진안, 순창은 30%를 넘었다. 전주시는 아직 11.5%에 머물고 있어 낮은 편이다. 이러한 노인 비율은 2020년 20.6%, 2040년 37.5%에 달할 전망이다. 이처럼 급격한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북의 수부(首府)인 전주시가 먼저 나서야 한다.둘째, 복지 패러다임의 변화다. 지금까지 우리의 복지정책은 생활보장 중심이었다. 이것이 보건과 일자리, 사회참여 등 전분야로 확산되고, 개인과 공급자 중심에서 가족 등 통합적 수요자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베이비부머 및 중산층을 포함한 중장기적 정책 수립도 요구된다. 이러한 흐름에 앞서가기 위해선 고령친화도시 인증이 최선의 방책이다.지금 복지선진국들은 단순히 노인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아동과 여성 등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적 도시디자인(universal design)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장 뜨겁고 젊은 이미지의 도시 뉴욕이 가장 먼저 고령친화도시에 선정된 의미를 새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치단체장의 의지와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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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14 23:02

정년 퇴임식을 보며

대학교수 두 분의 정년퇴임식에 다녀왔다. 전북대 영문과 전병만 교수와 체육교육과 고영호 교수의 퇴임식이다. 평소 친분이 있는데다 나 자신도 정년을 앞둔 시점이어서 발길이 절로 옮겨졌다. 두 분은 학문 뿐 아니라 사회활동을 꽤 활발히 해서인지 퇴임식장은 성황을 이루었다.먼저 지난 20일 전주 르윈호텔에서 열렸던 전 교수 퇴임식.전 교수 퇴임식은 한국영어교육학회 정기학술대회를 방불케 했다. 역대 회장과 임원 등 영어교육 관련 교수들이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에서 모였다. 또 중국 대학에 자리 잡은 제자들도 함께했다.그리고 에베레스트 원정대장 출신답게 한국산악연맹 등 산 사나이들도 눈에 띄었다. 영어 출판사에서 프로그램을 주관한 탓인지 초등학생들의 잉글리시 콘서트도 이채로웠다. 재미있는 일화도 알게 됐다.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영어듣기평가가 처음 시작될 때 일이다. 당시 수능 출제위원장인 김임득 명예교수(한양대)에 따르면 현재 시행 중인 영어듣기평가시 대한민국 상공의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 금지 가 그 때 출제위원 중 한 사람이었던 전 교수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비행기 이착륙으로 인해 수험생 중 일부가 불이익을 받는 것을 우려해 전 교수가 제안했는데 처음에는 교육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청와대에 건의하게 되었고 이것이 채택돼 오늘날까지 시행되고 있다는 얘기다.다음으로 지난 27일 아름다운컨벤션웨딩에서 열린 고 교수 퇴임식. 고 교수 퇴임식은 체육계 인사들이 주류를 이뤘다. 오랫동안 체육학계에 몸담았고 한국올림픽위원회(KOC) 위원 등을 역임한 덕이다.이날 퇴임식에는 1990년대 중반 전북대에서 전국 대학생 5만여 명이 모인 한총련대회 당시 총학생회장이던 김진옥 전주 시의원의 인사말에 이어, 일본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딸이 가족대표로 애틋한 편지를 낭독해 눈길을 끌었다. 이 자리에서 장명수 전 총장(전북대우석대)은 축사를 통해 특유의 재담과 해박한 향토지식을 바탕으로 덕담을 건넸다.장 총장은 정년퇴임 중 정년은 인정하나 퇴임은 인정할 수 없다며 퇴임이 아니라 창생(創生)이라고 격려했다. 곧 인생2막을 새롭게 출발하라는 것이다. 고 교수는 신효근 치대교수 등 고교 동창을 소개하며 밥(술 포함)을 같이 먹어야 친구라는 의리의 사나이다운 지론도 폈다.이들은 평생 대학에 몸담아서인지 제자들이 주축이 돼 행사를 준비했다. 특히 박사학위를 지도한 제자들에 뜨거운 애정을 표했다. 예전의 논문 봉정식 대신 에세이와 강의 모음을 책으로 펴냈다. 지인 82명이 공동저자인 「더불어 함께 가는 길(사람학문산)」과 「운동으로 젊어지는 뇌」 등이다.이들은 행복한 사람이다. 또 이 지역의 한 역사를 기록한 사람들이다. 재임 중 총장과 교육감에 뜻을 두었다 접어야 하는 아픔도 없지 않았으나 이를 슬기롭게 이겨냈다.우리나라 직장인의 평균 퇴직 연령은 53세다. 정년까지 무사히 마치는 경우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 정부가 2016년부터(300인 이하는 2017년) 모든 사업장의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했지만 이로 인해 임금피크제 등 노동개혁이 논란이다.그에 비해 대학교수의 65세 정년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요즘은 대학교수도 고령화에 시달리고 있다. 신임교수의 평균나이가 40세를 넘었다.사실 정년이나 은퇴는 생물학이나 심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온당치 않은 개념이다. 일할 능력이 있는 인간에게 인위적으로 이 나이까지만 일하라는 것은 폭력이다. 인간 능력의 감퇴나 소멸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 아닌가.우리나라는 지금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업하겠다고 아우성이다. 청춘도 아프고 노인도 아프다. 정년퇴임을 축하하며 웬 궁상스런 생각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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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02 23:02

세상을 바꾸는 작은 분노

지난 주(7월 1618일) 비교적 큰 행사를 치렀다. 3일간 전북지역 고교생 1만 명가량이 한 곳에 모이는 진로진학 안내 프로그램이었다. 규모가 제법 큰 건물에 100개 가까운 학과부스를 설치하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전공에 대한 소개와 체험을 하는 것이다. 물론 입시상담도 곁들였다.이러한 행사는 아직 전공에 대해 심지가 굳게 박히지 못한 학생들이 대학의 학과를 폭넓게 선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할 수 있다. 특히 수도권에 비해 정보에 목말라 있는 우리 지역 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해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예정된 사업비 지원이 늦어졌다. 여기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대한 불안이 채 가시지 않아 준비가 수월치 않았다. 장맛비가 쏟아지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3년째 행사를 치르며 이번에 공익(公益)을 위한 분노에 대해 생각했다. 정당한 공익적 분노가 제도 개선과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1층과 2층으로 구분된 행사장은 7월 중순의 무더위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층은 그런대로 견딜만 했으나 2층은 그게 아니었다. 건물 에어컨을 최대한 가동하고, 이동식 에어컨 5대를 동원했으나 하루 3000명이 넘는 열기를 이기지 못했다. 더구나 2층 로비 구석에는 인문계 학생들이 많이 찾는 학과가 포진해 있어 학생들로 넘쳐났다.아니다 다를까 A학과 관계자가 운영본부로 찾아와 거칠게 항의했다. 1층과 2층 온도가 너무 차이가 난다. 이것은 형평에 어긋난 것이다. 똑 같은 조건으로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어떻게든 해결해 줘라는 요지였다.어린 친구가 항의하는 모양새가 비위에 거슬렸지만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밀리는 바람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업체 직원을 부르고 이동식 에어컨을 더 설치했다.그러자 과부하가 걸렸는지 전원이 나가 버렸다. 라인 전체에 전깃불마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기를 오후 내내 반복했다. 어쩔 수 없이 A학과가 속한 단과대 부스 전체를 새벽에 1층으로 옮겨야했다.그런데 마지막 날, 불똥이 또 다른 곳에서 튀었다. 2층 A학과 옆에 있던 다른 단과대학 B학과장이 보자고 해서 가봤더니 길길이 날뛰는 게 아닌가. 불같이 화가 난 이 여성 학과장은 속사포로 쏘아댔다. 왜 우리 학과를 푸대접하느냐? 우습게 보이느냐? 우리 학과가 우수학생 유치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느냐? 다른 학과는 이름만 들어도 학생들이 찾아오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부스를 옮기려면 우리까지 같이 옮겨줘야지 이게 뭐냐?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 학과장은 상대방이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그러면서 옆에 있던 같은 학과 관계자를 혼내기 시작했다. 너도 잘못이야. 이런 상황이면 우리도 옮겨 달라고 해야지 바보(?)같이 가만있어. 당장 부스를 철수해! 내년부터는 참가하지 말고.실컷 소리 지른 뒤 화가 조금 풀리자 B학과장은 겸연쩍은 듯 했다. 이 행사 책임자가 누구냐며 항의해야겠다고 내려갔다. 사실 B학과장은 초면이긴 하나, 전혀 인연이 없지 않았다. 지난 해 내가 맡았던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행사에 만족해서인지 관계자를 통해 병에 담긴 커피액을 보내왔던 것이다. 그 기억이 나자 조금 씁쓸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자신의 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르다는 점을 높이 사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불쾌했지만 무관심보다는 훨씬 나았다.이들의 항의 때문만은 아니나, 다음 행사는 형태를 달리하기로 했다.공익을 위한 분노(항의)는 개혁의 시발점이자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정의로운 참여의 다른 이름이라고나 할까. 정당한 분노,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에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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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22 23:02

염치없는 올드 보이들의 귀환

업무 차 충북과 전남을 들를 기회가 있었다. 평소 전주에서 생활하다 이들 지역을 보곤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북보다 낙후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충북 청주와 충주, 전남 여수 순천 목포 등은 예전과 달리 눈부시게 달라져 있었다. 청주의 경우 국제공항과 오송생명과학단지, 오창과학산업단지 등이 들어서 상전벽해가 따로 없었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마치 외국의 첨단도시에 온 기분이었다. 새로 조성된 첨단의료단지와 기업, 각종 연구기관들이 여유롭게 배치돼 보기에 좋았다. 솔직히 부러운 마음이었다. 인구도 2009년에 전주와 비슷한 64만 명이었으나 지난 해 청원군과의 통합으로 85만 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이제 충청도는 수도권과 한 몸인 수충권(首忠圈)이 되어가고 있었다. 수도권 전철이 청주공항까지 연결될 날도 멀지 않은 듯 했다.가장 못 사는 동네로 전락한 이유는전남 여수 또한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2012년 세계해양박람회를 치르면서 돌산공원에 케이블카가 놓이고 돌산대교 이순신대교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여수 밤바다’ 노래처럼 야경은 찬란했고 횟집들도 성시를 이뤘다. 북적이던 경남 통영의 미륵산 케이블카를 연상케 했다.이들을 보면서 전북만이 ‘외로운 섬’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러한 현실은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수치와 거의 일치했다. 2014년 한 해 동안 취업정보 사이트인 워크넷에 올라온 구인·구직 정보를 16개 광역 시도별로 분석한 결과, 전북은 취업자가 전국에서 가장 낮은 100명 중 28.9명(전국 평균 37.2명)에 불과했다. 반면 전남은 59.2명, 충남 55.7명, 충북 45.4명이었다. 또 전북은 100명 중 49.6명이 취업을 못해 두 번째로 일자리가 많이 부족했다.전북도민들은 꼴찌에 하도 이골이 나서 무감각하다. 그렇지만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전북이 가장 못 사는 동네로 전락한 이유는 뭘까. 왜 일자리가 없는 걸까.그것은 전북을 이끌어 온 리더들이 무능하고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노무현을 제외한 역대 정권이 수도권과 경부축 중심의 불균형 성장전략을 펴온 데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다른 자치단체들은 나름대로 도지사와 국회의원들이 나서 지역발전을 선도해 왔다. 그에 비해 전북의 리더들은 지역발전 전략도 짜지 못했고 중앙정부를 요리할 배짱도 없었다. 그런데도 요즘 내년 4월 13일 제20대 총선을 겨냥해 올드 보이들이 다시 나설 것이라고 한다. 유종근 김완주 정동영 장영달 등이 그들이다. 이들이 누구인가. 유종근과 김완주는 각각 7년과 8년, 모두 15년 동안 전북도정을 이끌었다. 특히 유종근은 금품수수로 도민들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 정동영은 전북의 유일한 여당 대권후보로 한때 전북의 빛나는 별이었다. 장영달은 전주에서 내리 4선 고지에 올랐다. 그들에게 공(功)도 없지 않으나 전북 낙후의 책임 또한 없지 않다. 아니, 가장 크다 할 것이다. 제 역할 못하고 있는 전북 정치인들그런데도 총선에 나서려는 것은 염치(廉恥)없는 일이다. 얼굴에 철판을 깐 것과 같다. 여기서 염(廉)은 청렴결백, 치(恥)는 부끄러움을 안다는 뜻이다. 관포지교 고사로 유명한 관자(管子)는 예의염치(禮義廉恥)를 국가의 4가지 기둥(維)으로 꼽았다. 이것이 없으면 나라가 멸망한다고 했다. 순자(荀子)는 염치없는 사람이 나서는 것을 ‘개나 돼지의 용기’에 비유했다. 문제는 이들이 컴백을 생각할 수 있는 전북정치권의 형편이다. 한 마디로 현재의 전북 정치인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국회의원 11명의 존재감이 미미하다. 특히 3선 의원들은 선수(選數)에 값하지 못하고 있다. 온 나라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의 공포에 뒤덮여 있어도 10개월 후로 다가 온 총선시계는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다. 올드 보이들은 염치를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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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15 23:02

캠퍼스의 봄날은 간다

햇살이 화사한 봄날의 캠퍼스는 꽃 대궐이다. 새내기들의 재잘거림과 어울려 싱그럽다.캠퍼스는 3월 중순부터 노란 산수유를 시발로 갖가지 꽃들이 울긋불긋하다. 개나리 진달래와 함께 청순한 목련이 아이보리색 꽃망울을 터트리더니 금세 뚝하고 떨어져 버렸다. 4월 들어서는 벚꽃이 눈처럼 날렸다. 지금은 철쭉과 영산홍의 잔치판이다. 특히 영산홍은 넘치는 정념을 참지 못하고 붉다 못해 자지러지는 듯하다. 솜뭉치 같은 왕벚꽃들도 한창이다. 꽃들은 세월호 사고 1주년이나 성완종 게이트로 온 나라가 지진이 난 듯 요란해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잎의 도전도 볼만하다. 연록의 잎새들이 먼저 핀 꽃을 시샘하듯 말간 얼굴을 내밀더니 어느 새 짙어간다. 빨갛고 하얀 꽃들과 녹색의 나뭇잎이 조화를 이뤄 캠퍼스의 봄날은 축복 그 이상이다.정부 정책, 청년실업 해소에 한계하지만 캠퍼스의 봄날이 마냥 설레는 것만은 아니다. 푸르른 청춘들의 앞날이 갈수록 어둡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생으로 산다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다. 입학 때의 높은 꿈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일자리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다. 지난 2월말 연세대 졸업식장에는 연대 나오면 모(뭐)하냐백순데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심각한 청년 취업난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2월 청년실업률(1529세)은 11.1%였다. IMF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원으로 치면 48만 명이다. 그러나 이는 드러난 수치에 불과하다. 실업률에 잡히지 않는 인원이 너무 많아서다. 임시직 같은 불완전 취업자, 취업준비생, 구직 단념자를 포함한 청년체감실업률은 23%에 이른다. 100만 명을 훨씬 웃도는 셈이다. 여기에 아르바이트로 전전하거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대학원에 진학한 인원까지 합하면 300만 명을 넘는다. 이제 88만 원 세대 이태백 삼포세대 같은 말은 한물 가버렸다. 그리고 오포세대 청년실신 인구론 열정 페이 등의 신조어가 그 자리를 채웠다.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은 공무원과 대기업이다. 이를 반영하듯 9급 공무원 시험에 20만 명이 몰렸다. 삼성고시(SSAT)에도 역시 20만 명이 몰렸다. 해마다 치르는 대입 수능 응시인원 60만 명을 생각하면 대졸생의 2/3가 두 시험에 목을 맨 것이다.일자리는 단순히 돈을 벌기위한 수단이 아니다. 학업을 마친 젊은이가 사회관계망을 형성하고 가정을 꾸리는 첫걸음이다. 정부나 정치권이 이러한 절규를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이들이 내놓는 정책이라는 게 언 발에 오줌누기다. 더구나 정부의 인식과 현실의 격차는 너무 크다. 좋은 예가 박근혜 대통령의 얼마 전 언급이다. 해외순방 후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 보라.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에 갔다고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청년단체 회원들이 니가 가라, 중동에라는 야유를 보냈다. 아픈 청춘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결과가 되었다. 지금 같은 고용없는 저성장 으로는 해법이 보이질 않는다.경제회복과 함께 교육시스템 변화를문제는 좀 더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회복과 함께 고통스럽지만 교육시스템에 변화를 줘야 한다. 대학에 대한 환상이 걷히면서 2008년 83.8%까지 치솟았던 대학진학률이 2014년 70.9%로 낮아졌다. 이것도 아직 높다. 대학은 갈 사람만 가게 해야 한다. 본인의 적성에 따라 고교나 전문대에서 필요한 직업이나 산업교육을 받도록 하는 게 옳다. 9급 공무원은 예전 고졸 출신이 대부분 응시했다. 학력인플레가 너무 심한 편이다. 한 해 1만3000명을 배출하는 박사학위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눈물어린 구직난과 미스매치는 개인적 좌절과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진다.캠퍼스의 봄날은 화사하다. 하지만 청춘들의 미래는 그리 화사하지 않다. 그런 속에 속절없이 봄날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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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27 23:02

정년에 대하여

정년이라는 게 미리 경험할 수도 없는 거잖아. 인생의 반을 훌쩍 넘은 시점에 다들 처음으로 정년이라는 것을 맞는 셈이지.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가 최근에 내놓은 〈55세부터 헬로라이프〉에 나오는 대사다. 주인공은 중견가구점의 잘 나가는 세일즈맨이었다. 하지만 나이 들어 한직으로 밀려나자 58세에 조기퇴직을 신청한다. 어렵지 않게 재취업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웬걸, 세상은 녹록치 않았다. 직장생활 동안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거래처에 취직을 부탁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했다. 직함이 없는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지 한탄한다. 작가가 후기에서 말하듯 체력도 약해지고, 경제적으로도 만전을 기하지 못하고, 그리고 이따금 노쇠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맞딱뜨리는 불안한 초상이다.노후 준비 제대로 못하고 퇴직고령화문제에서 일본을 뒤따르는 우리의 현주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년퇴직은 오랜 노고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휴식의 월계관이 아니다. 경제적 불안정과 사회적 지위 하락이라는 형벌로 다가오는 것이다.요즘 내 주변에는 정년을 맞는 사람들이 꽤 많다. 어찌어찌 이모작에 성공한 사람도 있으나 대개는 백수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하지만 어쩐지 공허하다. 아직도 부모봉양이나 자녀교육취업결혼 등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그러니 자신의 노후준비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저승사자만큼 꺼리는 정년이 꼭 필요할까. 정년제도는 독일 비스마르크 재상이 1889년 공무원의 정년을 65세로 정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독일은 프랑스와의 전쟁을 위해 청년들을 동원했다. 전쟁이 끝나고 징집된 젊은이의 처리가 문제였다. 자그만치 100만 명이 넘었다. 이들은 대부분 가난했고 일자리를 주어야 했다. 그래서 도입된 게 나이든 사람을 내보내는 정년제도였다. 이후 영국이 1908년 이를 도입했다. 미국은 1929년 경제대공황을 맞아 실업에 허덕이던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되면서 정년제도가 공식 도입되었다. 그러다 197080년대 산업화와 IMF 외환위기를 넘기며 정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정년연장이나 폐지는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세계적 추세가 되었다. 미국은 1967년, 영국은 2011년 정년을 폐지했다. 일본은 2013년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했다. 우리나라도 2013년 4월 국회에서 60세 정년법이 통과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나아가 정부는 공무원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제3차 장년고용촉진기본계획)을 2017년부터 시범실시한 뒤, 2023년 본격 시행할 예정이다.그러나 이 같은 정년연장은 반발도 만만치 않다. 경제계와 청년세대들이 그러하다. 경제계는 장기불황에 짓눌린 기업들의 체력이 임금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볼멘소리다. 청년들 역시 일자리를 5060대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밥그릇을 둘러싼 세대갈등이다. 몇 년전 프랑스정부가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늦추려다 청년들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원상태로 돌린 것이 좋은 예다. 우리나라도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연애와 결혼, 출산 등을 미루는 5포 세대가 즐비하다. 하지만 정년연장과 청년 일자리는 관계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업종에 따라 다르긴 해도 청년실업은 경제상황과 IT 발달에 따른 고용없는 성장이 주원인이라는 것이다. 또 3040년 뒤에는 청년들도 정년연장의 혜택을 보게 된다는 긴 안목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나이 기준 정년제도 또 다른 차별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 정년폐지를 검토해야 한다. 그 전단계로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과 최소 정년제도(65세)를 도입해야 한다. 나이를 기준으로 정년을 가르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 게 죄는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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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16 23:02

대학입시에 실패한 청춘들에게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꽤 오래 전,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에게 이메일을 보낼 구상을 했었다. 같은 을미생(乙未生)끼리 동갑계(同甲契)를 하면 어떨까 해서다. 아무래도 동년배이다 보니 친근감이 느껴지고, 그들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관심이 더 갔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이러한 한국적 사고방식을 이해할 리 없고, 이에 응할 리도 없었을 터다. 결국 이메일을 보내지 못했고, 구상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올해 을미년 양띠 해를 맞아 던지는 신소리다.스티브 잡스가 더 큰 매력을 주는 까닭어쨌든 이들은 정보기술(IT)분야의 세계적인 천재요, 거인들이다. 이미 인류문명사에 한 획을 긋는 신화가 된 존재들이다. 아마 미국이 아직도 세계를 이끄는 초강대국으로 남아 있는 것도 이들의 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엄청난 재정적자와 인종문제, 빈부격차 등 사회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창의력이 탁월한 인재들이 계속해서 배출된 덕분이다. 아쉽게도 애플의 창업자 잡스는 2011년 먼저 세상을 떴다. 그리고 마이크로 소프트를 창업한 게이츠는 사업에서 손을 떼고 공익재단을 만들어 워렌 버핏과 함께 자선사업을 벌이고 있다.이들은 둘 다 지독한 일벌레였고, 엄청난 승부사 기질을 지닌 라이벌이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갑부 게이츠보다 잡스에게 더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왜 그럴까? 내 생각에 잡스가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둘은 태생적 환경부터 달랐다. 잡스는 사생아로 태어나 입양됐고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자주 빼먹는 비행소년이자 사고뭉치였다. 고등학교 땐 HP조립 아르바이트와 신문 배달, 재고품 정리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반면 게이츠의 아버지는 저명한 변호사, 어머니는 은행 이사였고 외할아버지는 미국 국립은행 부행장을 지낸 명문가였다. 그런 집안 분위기 탓에 게이츠는 상류층이 다니는 고교에 입학해 일찍부터 컴퓨터를 실컷 주무를 수 있었다. 말하자면 잡스가 밑바닥에서부터 정상에 올랐다면 게이츠는 유복한 집안에서 최고 엘리트 코스를 순탄하게 밟은 셈이다. 이들을 언급한 이유는 역경을 극복하는 삶이 높이 평가된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다.대학입시 시즌이 막바지다. 수시는 이미 지난 해 12월 초에, 정시는 올 1월에 대부분 끝났다. 이제 일부 추가합격자 발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은 합격의 기쁨에 환호하겠지만, 상당수는 대학입시에 실패해 실망에 빠져 있을 것이다. 이미 재수의 길에 들어선 학생도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 잡스의 얘기가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입시 현장에 있다 보면 여러 유형의 학생들을 보게 된다. 그 중에 눈길이 가는 학생들은 잠재능력과 발전 가능성이 높은 유형이다. 실제로 서류전형이나 면접 등에서도 그러한 학생을 높이 평가한다. 가령 성적만 보더라도 1학년 때보다 2,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성적이 향상된 학생이 평균적으로 잘 하는 학생보다 유리하다. 여기에 어려운 가정환경 등 역경을 극복했다면 금상첨화다. 이러한 기준은 취업 때도 마찬가지라고 들었다.인생에서 반전의 기회는 꼭 온다하나 더 보탤 게 있다. 100세 시대를 맞아 나도는 세간의 3대 실패에 관해서다. 첫째가 청년 출세(소년 급제), 둘째가 중년 상처(喪妻), 셋째가 노년 무전(無錢)이라고 한다. 너무 젊은 나이에 출세한다거나 중년에 부인 또는 남편을 잃거나, 말년에 너무 돈이 없으면 노후가 즐겁지 않다는 것이다.인생의 첫 번째 관문인 대학입시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해서 너무 쉽게 자신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 사회가 경직화되면서 비록 성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예전만 못해도 인생에 반전의 기회는 반드시 온다. 꽃이 비바람에 흔들리며 피듯, 인간 역시 시련과 좌절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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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2.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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