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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이슬 내리는 개울가갯버들 가지 꺾어 물컵에 꼭꼭 심어 다졌습니다가지 끝 어린 꽃눈부스스 눈 뜨는가 싶더니 달짝지근한 소망 품고하늘로 하늘로 품을 열어갑니다보송보송 간질거리는 솜털 사이에서보일 듯 움트는 작은 생명단단한 껍질을 벗어버리고세상을 여는 갯버들산자락 휘돌아 찾아오는 꽃소식으로그리운 것들은 그리 눈 뜨고 슬며시 다가옵니다△산자락 휘돌아 찾아오는 꽃소식은 내 마음 그리움도 꽃피운다. 어머니는 이불 홑청을 벗겨 빨래하면서 봄 마중을 했었다. 어머니의 한을 빨랫방망이는 알았으리라. 맑고 슬픈 그 소리가 그립다. 빨랫감을 차닥거리는 소리에 놀라 갯버들이 실눈 뜨던 옛 그리움이 다가옵니다. /시인 이소애
건지산 검은 나뭇가지 사이동이 트고산까치가 파득 눈을 떴다샛길을 타고 나가천변을 감아 돌던 바람은 새벽 야채 장수의 트럭 위에서 흔들렸다아내는 천 원어치의 봄을 샀다달래, 취, 돌나물과 냉이봄을 씹는 이른 밥상머리에여린 햇빛들이 때굴거렸다사랑에 빠졌던 날한평생 서럽게 찬연한 봄이강물처럼 일렁이는 아침 일곱 시△봄맛, 향기로 스며드는 봄나물이 겨울과 봄 사이에서 맛으로 다가온다. 산까치의 날갯짓에 봄이 강물처럼 일렁인다. 천변을 감아 돌던 바람도 태양을 따뜻하게 품더니, 봄나물이 얼른 밥상에 오른다. 밥상머리에서 나눌 사랑을 위하여 봄맛은 온 몸을 휘더듬는다. /시인 이소애
산수유나무 가지 끝에콕콕 쪼아놓은 부리 자국이 나 있다연이틀 내리던 비 그치자졸졸졸 개울물 소리가 가려운지버들개지도 귀이개를 부풀린다촐랑대는 검둥개를 앞세워어머니는 뒤꼍 무구덩이를 헤치고겨우내 마른기침이 잦던 텃밭의 늙은 아버지모처럼 환하다자가웃 소낙눈에 발목 잡혔다는 대관령 너머로 고춧대 콩대 호박넝쿨 그러모아, 한나절봉홧불을 피워 올린다바람 편에 들은 아랫녘 꽃사태를 전한다논두렁 검불 속에서 어머니한 움큼 냉이를 캔다△시가 봄을 초대한다. 아직 꽃사태를 전하는 봄바람은 아니어도 목을 감싸던 털목도리를 잊고 외출한다. 콕콕 쪼아놓은 부리 자국에서 연둣빛 생명이 바깥세상을 염탐하는 걸 보니 산수유나무가 일을 낼 것 같다.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도 봄꽃이다. 작품 감상=이소애 시인
금방 전 화려했던너의 모습 어디 가고왜 이리 굴해졌나뒹굴며 우는 저 꼴사는 게 힘들었더냐그 몰골이 흉칙하다세상을 주름 잡고 날뛰던 하루살이호화도 잠시였군 좋을 때 잘 지킬 걸목청은 요란도 하다 실속 없는 천둥소리△김숙 시인은 월간 〈한국시〉 시조 부문, 〈서울문학인〉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저서로 〈하늘에서 내려준 꽃〉, 〈그 곳에 있고 싶어서〉, 〈접해야 정이 든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갯지렁이 같은 뿌리로세상을 짚어갈 때마다한 뼘씩 마디가 생살아가는 동안마디와 마디 사이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잘 알지요평생 꽃 한번 피워내고사그라질 수 있다면꽃상여 뒤따르는 만장이어도 그리 슬프지 않으리△이문석 시인은 〈한국시〉로 등단, 김제문협과 한국문협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거친 손으로 뜯겨지는 월력月曆이 초라한 모습으로 내동댕이쳐질 때희멀건하게 바래져가는 나이테로바라보는 둥근달은 수만 년을 그대로인데우리들의 착시錯視로 반달이 되었다더라.머리끈 질끈 동여맨 채로 달려 온 비포장 길 이제는 속마음을 열어 싸여진 찌꺼기들을 뱉어내자.세상 누군들 슬픈 사연 없는 이 어디 있으랴만헐레벌떡 뜀박질한 세월을 뒤돌아보며편한 자세로 마주앉아 시원하게 쭉 들이키는 막걸리 잔에다 덩그런 보름달을 담아 마셔버리자.△김형중 수필가 겸 시인은 계간 <문예연구>로 등단, <허수아비들의 노래> 등 3권의 시집을 냈다.
등대는 길을 내지 않습니다느린 배를 위하여옛 길에 빛을 열어 놓습니다어둠에 빠지지 말라고소원을 빌던 성황당 돌무더기처럼 빛을 쌓으며 살아갑니다등대는 빛을 자랑하지 않습니다길을 열어놓고그 바다에서 스러질 뿐항구로 들지 않습니다작은 바위에서 제 몸의 빛으로 살아갑니다.△정군수 시인은 계간 〈시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모르는 세상 밖으로 떠난다〉 〈풀은 깎으면 더욱 향기가 난다〉 〈봄날은 간다〉 〈늙은 느티나무에게〉 등이 있다.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수목원 돌계단온종일 놀다가는 태양아래 자주빛 치마 두르고노란 보퉁이 들려 세상에 던져진 할미꽃 한창이다등이 굽은 청춘이다꽃의 생은굽은 등 꾹꾹 눌러 펴가며 새 털 같은 가벼움으로 늙어가는 일바람 따라 소리 없이 날아오르는 일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일△김동옥 시인은 2014년 계간 〈지구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가톨릭전북문우회·늘푸른문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80이 넘은 할아버지가 무얼 생각하시는 지…그저, 뚜벅-뚜벅 걷고.70이 넘은 할머니가90도로 허리를 굽히고 할아버지 뒤에서 바지 끈을 붙잡고 갑니다.할아버지 무슨 생각 하실까힘들어 앞만 보고 걸으실까이마저, 행복해 저리도 태연히 걸으실까?시장에 가시는 길에도성당에 가시는 길에도 어김없이, 부부는 끈을 붙잡고 갑니다.식사를 할 때엔 연신, “이게 맛있어, 먹어-”“예, 이것이 맛이 좋네요. 잡수세요.”참, 아름다운 부부夫婦 사랑이 여기 있습니다.△김영후 시인은 고창 출신으로 정읍농공고 교장으로 퇴임했다. 지난 2011년 계간지 〈한국문학예술〉로 등단. 전북문인협회·전주문인협회·열린시문학회·가톨릭문우회 회원·한국미래문화 회원이다.
가는 해는 미련도 많고오는 해는 바람도 많다네.가고 오고는자연의 섭리인데그 누가 오고 가라고말할 수 있겠는가인생 80 90이면가지 말라 해도 가고 마는 것을!철부지 인간들은가지 못하도록 잡으려 한다네.가는 해는 붙잡지도 마소오는 해가 더 밝다네.가는 것은 과거사요오는 것은 현실인데그 누가 이 사실을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기에미래도 희망도 있는 것을!우매한 우리네는모르는지 지나치려 한다네.
금 간 노을술청에 아직 손님 이르고눈발은 더 분분한데늙은 홀어미와 젊은 과수댁아랫목 등 지지며 가물 가물 선잠 속고등어 가운데 토막 같은 호시절 더듬거릴때어데쯤 끊긴 길 위에눈이 멈추고 꽃이 핀다△시인 박철영 씨는 <우리문학>으로 등단해 시집 <불황시대>, <아름다운 감옥>, <낙타는 비를 기다리지 않는다> 등을 펴냈다. 현재 부안경찰서 경비교통과장이다.
홀로 남겨져 술잔과 나누시던당신의 그 처절한 외로움을 그땐 정말 몰랐습니다깊은 한숨마저도 몰래 깨물어 삼키시던숭고한 아픔 그 무한 사랑을 그땐 정말 몰랐습니다.△박얼서 시인(본명 박종기)은 전주 출신으로 200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2009년 한울문학 작가상과 문예춘추 릴케문학상을 받았다. 저서로 시집 〈그해 겨울, 내가 만난 아버지는 다시 나였다〉, 〈예순 여행〉과 수필집 〈협죽도(夾竹桃)를 만나다〉 등이 있다.
수북하게 쌓인 눈 위에 당신의 얼굴을 그립니다하얀 눈은 그리움의 포말처럼 내 가슴에서 녹습니다또 눈이 송이송이 내립니다.당신의 순백의 그림자와 주마등처럼그리움이 하얗게 천사되어 내립니다세월이 물레처럼 흘러가고기다리는 것은기다리는 것은, 눈 속에 그리워하는 것은첫 눈 같은 당신의 순수호수에 빠진 당신의 눈망울을 기다립니다.△최상섭 시인은 김제 출신으로, 2001년 〈한국시〉로 등단했다. 시집 〈깐치밥〉 〈까치집〉 〈까치의 풀꽃노래〉 〈까치의 유리구두〉 〈신털미산을 나르는 까치〉가 있다.
해질녘 강물에 다정한 오리 한 쌍반가움에 두어 발짝 다가서니불청객에 깜짝 놀라 날아가 버리네저나 나나 나그네이긴 마찬가지어쩌다 훼방꾼 된 게 민망한데강물엔 내 그림자만 길게 드러눕네시린 그림자 곁으로 낮달 살며시 들어서니억새 숲 사이에 졸던 실바람심술부려 잔물결로 흩어버리네허전함에 망설이다 돌아서는데날아드는 철새들 강물 빙그레 반겨 안고노을에 안긴 억새꽃 백발이 찬란하네.△시인 조춘식 씨는 계간 〈한국작가〉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한국작가동인회 회원으로 현재 전주한일고 교사다.
쪼그라진 양푼에 다슬기가 수북수북섬진강 물소리를 품고 있다.담방담방 물수제비뜨던 조약돌과 움푹 팬 모래 발자국 그림자가 녹슬었다.다슬기는 강물의 푸른빛을혀끝에서 풀어내고짭조름한 입술을 물고기처럼 내밀고쪽쪽 빨았다.울퉁불퉁한 양푼처럼 구겨졌지만 익숙한사랑 체험을 해본 비밀스런 섬진강이다.△이소애 시인(70)은 정읍 출신으로 지난 1994년 월간 〈한맥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침묵으로 하는 말〉, 〈쪽빛 징검다리〉, 〈시간에 물들다〉와 수상집 〈보랏빛 연가〉를 냈다. 전북여류문학상, 한국미래문학상, 허난설헌문학상, 중산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푸른 하늘을 한 번에 넘는 것은 청설모의 재주, 요구르트 한 병을 던져주자 나무 아래로 쪼르르 내려와 두 손으로 받는다 작은 이빨로 꽉 물고 두 다리로 버티고 나무 꼭대기 새끼가 있는 집으로 기어올라야만 하는, 하루치의 종종걸음을 놓는 헙수룩한 아비 마개가 열린 병 안의 단물은 인력사무소 소개비로 몇 방울 내어 주고, 혼자 사는 아버지 막걸리 한 잔 받아드리고, 떨어진 운동화 꿰매고, 면장갑 사고 솔래솔래 다 새고, 아픈 이는 치료도 못하고, 종일 날다가 비뚤어진 허리도 그대로 두고밑바닥 두어 방울 일당을 들고 나무비탈을 오르는 애비의 하루가 참 짧고도 길다△김영 시인은 1995년〈자유문학〉으로 등단. 〈다시 길눈 뜨다〉 〈잘가요 어리광〉 등의 시집이 있다.
밤이 길다 마을 어귀에서별을 부르고 바람에 자신을 맡기며 늙어가는 한 그루 느티나무를 생각한다나에게 오는 것,내게 주어지는 것,내게서 나가는 것 모두 모아 뭉뚱그려도느티나무 작은 가지 하나 흔들지 못하리라시간은 견디는 자의 것이다외로움마저 달게 삼켰을 오래된 느티나무 그 숨을 쉬고 싶다, 길고 또 깊게△조경옥 시인은 지난 1997년 〈시와 산문〉으로 등단했다. 시집 〈그곳이 비어있다〉, 〈말랑말랑한 열쇠〉, 〈가벼운 착각〉이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와 전북문인협회 회원, 광화문시인회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늦가을 비바람에 떨어져 쌓이는 떨잎을 쓴다누리마당에 휘날린 떨잎 쓸어 낼 곳 참 많다찬바람 휘몰아쳐 구석구석 막고 있는 쓰레기쓰설이꾼 하루 내내 쓸고 또 쓸다가 끙끙 앓는다겹겹이 쌓이는 쓰레기 어찌 누리마당 뿐이랴잘 흐르다 막히는 핏줄 살 만큼 산 늙은이 망령게염불꽃 타오르는 머릿속 케케묵은 생각들들오랫동안 쓸고 쓴 대비 끗 시퍼런 날이 선다날선 대비로 꼭 쓸어낼 것 쓸지 못해 답답타.△김종선 시인은 1995년 〈문예사조〉로 등단했다. 시집 〈바다를 가슴에〉 〈가시바다〉 〈고추잠자리가 끌고 가는 황금마차〉 〈가슴에 섬 하나 올려놓고〉가 있다.
바람의 길목코스모스 가냘픈 몸짓이강물을 흔든다갈바람 속 일렁임으로물고기가 리듬을 탄다퍼덕이며 번쩍이며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음률햇빛 환하게 끌어안은 세상이 물너울 속에 잠긴다.△ 김은숙 시인은 2003년 〈지구문학〉으로 등단해 시집 〈세상의 모든 길〉이 있다. 새천년 한국문인상과 전북문학상, 제15회 전북시인상을 수상했다
가을 마른 가지끝에도 앉지않던 바람이소지(燒紙)를 올리듯 풍등을 띄우고지평선 너머너울너울 밤길을 간다어느만큼갈길을 가늠 못하지만결코 먼저가려 서두르지 않는다오늘처럼 가슴저린 가을밤엔그 누구의 염원인들 하늘 가까이 닿지않으리바람인듯 떠나은하인듯 흐르다가바람에 스며들듯 스러지는언젠가 꿈에 본내 혼불인 듯세월 흐르듯저렇게 무심히밤길 흐르다가 지치면탯줄 당기듯내게로 내려와 쉬려나△강신재 시인은 전주 출신으로 지난 1997년 시 '탑(塔)'으로 '한국시'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시집 〈바다로 간 부처〉, 〈샵(#)의 음계로〉, 〈견훤의 성〉을 출간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뜬봉샘·데미샘, 그리고 밤샘과 빈시암
트럼프 2기, 고금리에 대비해야
전주첨단벤처단지 수탁업체 선정 공정한가
전북 소멸위기, 생활인구에서 활로 모색을
겨울철 화재 안전, 작은 관심으로 지킬 수 있다
사실의 적시와 의견 표명
해상풍력발전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
길거리 ‘공공 쓰레기통’ 확대 설치 필요하다
[새 아침을 여는 시] 별-이병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