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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칼럼] 전주가 노동운동의 볼모인가

지난 달 19일 전주종합경기장 일대에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각각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 노조원들은 까만 옷에 머리띠 등으로 중무장했고 각종 깃발과 피켓이 물결을 이뤘다. 다행히 두 단체간 충돌은 없었으나 노조원 등 5000여명이 전쟁터 출정식을 방불케 한 이날 행사로 이 일대 교통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에 앞서 민주노총은 2월 25일 종합경기장 백제로에서 노조원 등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이 일대 교통이 마비됐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시위는 규모만 작았지 4개월간 지속되었다.

 

이들 두 노조의 입장은 확연히 구분된다. 민노총측은 한노총측을 '어용노조'라 몰아 붙인다. 반면 한노총은 민노총에 대해 '복수노조 시대를 앞두고 조직을 확대하려는 명분없는 불법파업'이라고 맞받고 있다.

 

그 와중에서 전주시민들만 불편을 겪어야 했다. 특히 민노총 노조원들의 시가행진은 불편을 넘어 짜증의 대상이 되었다. 아마 전주시민 상당수가 그랬을 것이다. 한번은 출근시간에 시가행진으로 길이 막혔다. "오죽하면 저러겠느냐"며 참고 기다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기다리는 것도 한 두번이지 시가행진이 계속되면서 인내가 임계점에 달했다.

 

그래서 한번은 종합경기장 천막옆에 있던 노조원에게 물었다. "이제 시가행진은 그만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그러자 노조원의 말이 걸작이었다. "시민들이 불편한 줄은 알지만, 이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우리들의 권리입니다."라는 대답이었다. 그러면서 한술 더떠 "이게 다 전주시민을 위하는 것입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기가 막혔다. 말투도 이 지역 사람이 아닌듯 했다.

 

우리가 당신들 위해 투쟁하고 있으니 당신들은 불편을 감수하라? 여기에 동의하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노동운동은 시민들의 폭넓은 공감대를 얻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전주시민을 '땅깔로' 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시민들은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염증을 느끼고 '그들만의 파업'이 된지 오래다.

 

나아가 중앙본부 사람들이 내려와 지역을 죄지우지하는 것은 더욱 불쾌한 일이다. 산별노조의 상급단체로서 돕는 것까지는 좋으나 지역의 입장보다는 조직내 위상을 위해 전주시민을 볼모로 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그것이다. 실제로 최근 노사간 잠정합의안이 마련됐으나 서울 민노총 간부들이 이를 틀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지역노조가 식민통치를 받고 있는 셈이다. 자치역량 강화가 급선무다.

 

그렇다고 사업주의 무능과 부도덕성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파업의 발단은 사업주들이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주먹구구식 경영으로 노조원들의 불신을 자초했다. 이미 드러난 것이지만 운송수익금과 보조금 사용내역 등이 투명하지 못했다. 또 족벌운영으로 모럴해저드가 심각해 원성을 샀다. 특히 법원에서 민노총을 교섭대상으 인정하라고 했는데도 대법원까지 가겠다는 것은 용렬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전북도와 전주시 역시 개입시기를 실기했고 사업주에 질질 끌려 다닌다는 인상을 줬다. 엉터리 용역보고서는 코미디다.

 

이제 사상 유례없는 버스파업이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사실 전주의 경우 시내버스 분담율이 20% 미만인데다 버스운행률이 90%에 육박해 시민들은 파업 자체를 못느낄 정도가 되었다.

 

이번 파업을 통해 대중교통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버스 경영이 투명해지는 계기가 된다면 이러한 진통도 의미는 없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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