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이었다. 2만2000개의 형형색색 소형 텐트들이 바다를 끼고 아스라이 펼쳐진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마치 고구려나 로마 군사들의 원정시, 수십만 명이 주둔한 군영을 보는듯한 상상이 일었다. 지난 7일 오후 부안 새만금 잼버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하지만 델타구역에서 신분증 확인을 받고 들어간 잼버리 현장은 뒤숭숭했다. 스웨덴, 독일, 멕시코 등 참가국 대표단 천막에는 지도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철수에 따른 후속대책을 논의하는 것처럼 보였다. 웰컴센터와 수도간, 화장실, 편의점, 넝쿨터널 등을 기웃거리며 1시간 남짓 시간을 보냈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파장이어서인지 볼 것도, 할 것도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36도를 넘나드는 폭염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8월 1∼12일로 계획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세계 158개국에서 4만3000명의 청소년(14∼17세)들이 각자의 꿈을 펼치기(Draw your Dream!) 위해 모였으나 초반부터 파행을 겪다 조기 철수하게 된 것이다. 정부나 조직위원회로서는 북상하는 태풍 ‘카눈’ 덕분에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 되었다.
사실 이번 잼버리 대회는 폭염 탓만 할수 없는 총체적 부실이었다. 올림픽과 월드컵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폭염대책은 물론 화장실·샤워실 등 위생 문제와 부실한 식사, 미흡한 의료시설 등 비난 받아 마땅한 수준이었다. 새만금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공항과 도로 등 SOC 확충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던 전북도의 당초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6년 동안 14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이고도 국제적인 망신만 자초했다.
어쨌든 이번 대회는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준비 부족에서부터 미숙한 진행, 다수의 컨트롤타워, 중앙과 지방의 역할 혼선, 방만한 운영 등 지적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대회가 끝난 뒤 이에 대한 엄정한 평가와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야 정치권은 서로 ‘네 탓’ 공방만 벌이는 꼴불견을 보여줬다.
이번 행사를 살펴보면 부끄러운 한국 정치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전 정권의 정책이나 행사는 깔아 뭉개고 지워버리기에 급급한 행태가 그것이다. 그동안 잼버리가 열리기까지 과정을 복기해 보면 바로 드러난다. 이번 대회는 2012년 박근혜 정부에서 유치 신청을 했고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유치했다. 그리고 2023년 윤석열 정부에서 치렀다.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5명 중 3명이 현 정부의 장관이다. 특히 여성가족부는 인수위 때부터 폐지 대상이었다. 그런 여성가족부에 주무부처를 맡겼으니 힘을 쓸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이번 사태의 제일 큰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잼버리 개영식에서 스카우트 최고의 예우를 표하는 장문례를 받으며 입장했다. 그러고도 집권한지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 전 정부 탓을 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적어도 문 정부 시절 지반 등 기초시설은 완벽히 닦아 놓았어야 했다. 민주당 김윤덕 의원은 줄곧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잼버리를 활용했는데 내년 총선에서 심판받아 마땅하다. 지방정부의 경우 김완주- 송하진- 김관영 지사로 이어졌다. 집행위원장인 김관영 지사는 이차전지 특화단지 유치 등 그동안 성과를 이번 잼버리 파행으로 한꺼번에 까먹었다. 본인이 유치하지 않은 탓인지 안일하게 대처하다 대회가 임박해서야 서둘렀다. 전 정부 지우기가 어떤 끔찍한 결과를 낳는가를 이번 대회에서 배운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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