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문턱에서도 우리 역사 사랑한 ‘직지 대모’
그리고 30일 오후, 한국에 도착한 고인의 유골은 국가적 공로를 인정받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옮겨져 안장됐다. 지난 1955년 프랑스 1호 유학생으로 한국을 떠난 지 56년 만이다.
고(故) 박병선 박사의 사촌 여동생 박병숙 여사(76·고 전병우 전북 부지사 부인)는“언니가 외롭게 계신다는 느낌이 컸는데, 이렇게나마 국립묘지에 안장돼 마음이 편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그는“언니가 유학비자 1호로 유학을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랑스러워 했던 기억이 나요.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지만 어린 시절에는 바로 건너 집에 살아 항상 함께 였어요. 저도 그렇지만 친가 쪽은 모두 전주가 고향이거든요”이라고 덧붙였다.
박 여사의 말대로 고인의 뿌리는 전주였다.
고인의 부친은 9대 전북지사를 역임한 고 박정근 지사다. 박 지사는 1899년 전북 전주시 금암동에서 태어났으며, 전주부 읍장과 농림위원장, 자유당 전주시당 위원장을 지냈다. 그리고 1950년에는 무소속으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3대 때는 자유당에 입당해 진안군에서 1958년까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1959년부터 1960년 5월까지 전북지사를 지냈다.
고인은 유독 우리 역사를 사랑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여성의 몸이지만 역사를 위해서라면 강철처럼 강했다.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할 당시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그는 직지심체요절이 1455년판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빠른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직지 대모’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1979년에는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도 발견해 반환 운동에 불을 지폈다.
특히 그의 열정은 병마에도 식지 않았다. 지난해 1월, 한국에 들어와 직장암 수술을 받은 뒤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10개월 만에 파리로 돌아가 병인양요 관련 저술 준비 작업을 계속했다.
유족들은 “고인이 유언으로‘그동안 작업해 온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 - 2편’의 저술을 마무리 지어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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