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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복지에 품은 열정, 의료봉사로 이어나갈 터"

전북한의사회 신임 회장에 선출된 안철호 원장

 

"생명, 인본, 나눔의 미덕을 바탕으로 시대의 변화를 주체적으로 이끌어 갈 겁니다."

 

전북한의사회 23대 회장으로 선출된 안철호씨(전주 나비한의원장). 15년간 '시골 한의사'생활을 해온 안 회장은 군산에서 태어나 4살 때부터 서울로 이사해 청년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서울사람'이 다 됐던 그의 마음은 언제나 농촌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민주화의 격랑을 겪었던 80년대에 대학 생활을 하면서 농민들의 삶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당시 우리사회는 아직 신분과 계급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었죠. 이에 따라 사회변혁운동 차원의 일환으로 농민들의 복지를 위해 일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안 회장은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맹모삼천지교'가 안 부러울 만큼 열정을 쏟았다.

 

대전에서 한의대를 졸업한 그는 지난 1991년 '열정'을 실현할 첫 번째 장소로 김제시를 선택했다. 당시 전국 쌀 생산량의 9%를 차지 할 정도로 농민이 많았던 김제는 그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는 이곳에서 한의원을 열고 농민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펼치는 등의 활동으로 '열정'의 기반을 다졌다.

 

3년 동안 김제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활동의 폭을 '농촌'에서 '산촌'으로 옮겼다. 순창의료원 한방진료소에 들어가게 된 것.

 

"순창의 상황은 김제보다 훨씬 열악했어요. 하지만 이런 상황이 오히려 저에게 더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그의 '열정'을 농민들이 금세 알아챈 덕에 진료실에는 고추와 감자 등 농산물이 가득한 '사랑방'이 됐다.

 

순창에 온지 2년여가 지날 때 쯤 '사랑방'에 위기가 찾아왔다. 순창군이 의료원 직원들의 월급을 차등인상하는 방안을 두고 안 회장이 항의의 표시로 사표를 쓰게 된 것.

 

"월급을 인상의 원칙은 '상박하대'라고 생각했어요. 나만 많이 올려준다는 것에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행동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군 고위층은 결국 다른 한의사를 데려왔고 그는 2년간의 순창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하지만 시련은 그를 더욱 강하게 했다. 그는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완주군 용진면에 '농민 한의원'을 개설하고 '농촌질환 연구소'도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농민들이 농약 등으로 앓고 있는 만성질환에 대해 연구를 하고 논문을 내는 등 보다 왕성한 활동을 재개했다.

 

그렇게 10여년이 지난 사이 그의 자녀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한 가정의 책임을 져야했던 그는 15년간의 '시골 한의사' 생활을 마감하고 지난 2006년 전주에 나와 개업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다. 그는 한의사회장으로서 청년시절 가졌던 '열정'을 그대로 이어나갈 요량이다.

 

그는 "현대사회는 변화무쌍합니다.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면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한의사회가 의료, 봉사활동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 나가는 아젠다를 제시할 것입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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