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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평의 행복

쌈채소·오이 등 수확하고 땀 흘리고 먹는 밥맛 최고 / 텃밭가꾸는 재미가 '쏠쏠'

▲ 객원 논설위원

요즘 휴일이면 텃밭으로 달려간다. ‘달려간다’는 말이 과장됐다면 휴일에는 반드시 텃밭에 들린다고 해 두자. 사실은 집사람의 성화에 못 이긴 것이긴 하지만.

 

엊그제는 쌈 채소를 뽑은 자리에 오이와 호박 모종을 심었다. 지주목도 세웠다. 제철이 아니라지만 비트 씨도 뿌렸다. 샐러리, 치커리 등 쌈 채소가 처음에는 씩씩하게 자라더니, 두어 번 수확한 후부터 비실비실해졌다. 찬찬히 보니 진딧물의 공세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설탕물을 진하게 탄 천연농약을 뿌렸다. 다음 날, 잎의 숨구멍이 막힐 것 같아 물을 뿌려 씻어 주었다.

 

그런데 웬걸, 흐물흐물하기는 마찬가지. 할 수 없이 두 이랑을 뒤집어엎고 비닐멀칭을 다시 씌웠던 것이다. 그 옆에는 이미 가지, 오이, 고추, 방울토마토, 감자가 실하게 자라고 있다. 벌써 오이 등을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해는 생강, 토란도 심었다. 모두 잘 자라 주었다. 물을 줄 때마다 손바닥 보다 넓은 토란잎에 물방울이 뒹구는 모습이 신기했다. 또 텃밭 귀퉁이 빈 땅을 더 일궜다. 그곳에 대파와 고구마를 심었다. 줄기로 심는 고구마는 처음에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해 누렇게 죽어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 거짓말처럼 살아났다. 생명력이 놀라웠다.

 

8월말에는 관리자의 권유에 따라 그 동안 심었던 채소들을 거두고 땅을 다시 뒤엎었다. 김장배추와 무를 갈기 위해서다. 지난겨울에는 텃밭에서 수확한 보라색 배추를 여러 사람에게 나눠 주었다. 색깔이 예쁜데다 항암 배추라고 알려져 인기가 좋았다.

 

말을 하다 보니 농사를 거창하게 짓는 것 같아 겸연쩍다. 기껏해야 전북대에서 분양한 캠퍼스텃밭 4평을 짓는 건데.

 

어쨌든 도시농부 2년차다 보니 생각지 않은 일이 일어나곤 한다. 지난달쯤 오이 모를 사다 심었을 때 일이다. 토요일에 분명히 5개를 심었는데 다음 날 와 보니 2개만 남아있는 게 아닌가. 나머지 3개는 줄기 중간이 뎅강 끊어져 버린 것이다. 이를 보고 집사람과 논쟁이 벌어졌다. 집사람은 “땅속의 벌레가 먹었을 테니 토양살충제를 뿌리고 다시 심자”고 했다. 나는 “무슨 소리냐?”며 “아마 고양이나 개가 지나가면서 밟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얼마 전 해 어스름에 고양이를 본 생각이 나서였다. 하지만 둘 다 아니었다. 그 날 거세게 분 강풍이 주범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오이 모는 튼실해 보이지만 속이 비어 있어 약했던 것이다.

 

또 지난해 가을에는 배추벌레 잡는 게 일이었다. 해가 뜨기 전에 잡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배추 속 깊이 박혀버렸다. 꼭 연한 속깡만 먹어치웠다. 심하면 앙꼬 없는 찐빵이 돼, 결국 버려야 했다. 나는 어렸을 적 농촌에서 자랐다. 하지만 텃밭농사는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 논농사나 밭농사는 거름을 주고 농약도 치고 피나 풀을 뽑아야 하지만 집 안팎 텃밭에서 나는 오이나 호박은 대충 하는 것으로 알았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별 힘들이지 않고 잘 가꾸셨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식물은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실감한다. 자주 가서 정성을 들인 만큼 윤기가 난다.

 

그리고 과외의 소득이 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먹는 식사 맛이 그만이다. 일을 마치고 집사람과 같이 콩나물국집이나 순댓국집을 순례한다. 콩나물국집 주인은 “오늘도 텃밭 갔다 오세요?”가 인사가 되었다.

 

지금은 도시농업이 대세라고 한다. 주말농장은 물론 주택가 빈터, 아파트 베란다, 건물 옥상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농림부 통계에 따르면 2015년말 참여자가 130만 명을 넘었다. 아마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람도 꽤 될 것이다.

 

요즘 우리 주변엔 생목숨을 무단시 죽이는가 하면 성폭력이 횡행한다. 죽음과 분노, 불안이 일상화된 셈이다. 이런 때일수록 도시농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초록생명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안정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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