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자세를 고쳐 앉아야 했다. 대한민국 사회의 ‘맨 얼굴’을 마주하는 불편함, 부끄러움, 안타까움 등 복합적인 심정이 작용했으리라.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속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한국의 레드 콤플렉스 등 사회의 단면을 낱낱이 드러냈다. 혼란스러운 시국만큼 관객의 관심도도 증가했다. 영화감독과 진행하는 ‘관객과의 대화’는 다음 영화 상영 관계로 중단할 만큼 호응도가 높았다.
△미스 프레지던트 "영화 속 박사모는 풍자 대상 아냐"
〈미스 프레지던트〉는 5년 전 관객과의 대화에서 출발했다. 대통령이 현직일 때 영화를 만들어 개봉하겠다는 약속. 그 약속은 〈미스 프레지던트〉의 주인공이 전직 대통령이 되면서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박정희·박근혜 부녀가 대를 이어 대한민국을 통치할 수 있었던 대중 신화의 토대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영화는 박정희·박근혜 부녀를 거의 신처럼 떠받드는 한 노인과 부부의 일상을 꾸준히 따라간다. 촛불 시위 반대편, 박정희·박근혜 부녀 신화를 향해 카메라를 비췄다. 이들의 ‘존재’를 생각하게 하는 것만으로 김재환 감독은 ‘약속의 목적’을 달성했을지 모른다.
김재환 감독은 영화 〈MB의 추억〉에 비해 강도가 약하다(?)는 질문에 대해 “영화 〈쿼바디스〉는 풍자 함량이 높고, 〈미스 프레지던트〉는 다큐 함량이 높다. 풍자의 원칙은 풍자 대상이 힘이 있어야 하고, 아무도 안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스 프레지던트〉 속 박사모 회원은 풍자 대상이 아니다. 이들을 풍자하면 조롱이 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박사모를 숫자 ‘제로(0)’로 비유했다. 제로(0)는 어떤 수를 곱해도 제로(0)이기 때문이다.
그는 “유교적 왕조국가에서 충과 효를 중요한 가치로 교육받은 사람이 민주공화국에 사는 사람으로 느끼는 감정은 혼란스러움”이라며 “태극기 시위의 연단 위와 아래를 구분 짓고, 연단 아래에 선 이들과 어떻게 대화할 지 고민할 때”라고 밝혔다.
△파란나비효과 "사드배치, 한국의 총체적인 참사"
보수적인 경상도 성주에서 들불처럼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이 일어났다. 그 투쟁 운동의 중심에는 평범한 엄마들이 있었다. 이들은 사드 전자파로 아이들이 입을 피해가 걱정돼 투쟁을 시작했지만, 점차 더 넓은 공동체의 평화를 노래하기에 이른다.
박문칠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파란나비 효과〉는 일상적 삶의 감각에 밀착해 정치 투쟁을 벌이는 젊은 주부들의 모습을 따라간다. 정치의식이 전무했던 사람들이 개인적인 영역에서 공동체적인 영역으로 관심을 옮기게 되는 과정이 드러난다.
박 감독은 “뉴스에 드러나지 않지만, 여성들이 파란 리본이나 현수막 제작 등으로 투쟁에 임하는 모습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사드 배치가 국방, 외교 안보 등 한국의 총체적인 참사라고 생각해 스토리 펀딩 이름을 ‘사드 배치는 또 다른 세월호’로 지었다”고 밝혔다. 이어 “새 정부의 첫 과제는 특별검사(특검)나 국정조사 등을 통해 사드 배치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라며 “영화가 물리적으로 사드 배치를 막거나 철거하지 못해도, 여론을 형성하는 데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특히 〈파란나비 효과〉 관객과의 대화는 다큐멘터리 속 배정하·배은하·이수미·배미영·김정숙 씨가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배미영 씨는 연대가 절실하다며 “무장한 경찰이 성주 소성리 주민들을 막고, 미군이 미소 지은 채 동영상을 찍을 때 이곳이 대한민국인지 대한 ‘미국’인지 알 수 없었다”며 “이제는 한반도 평화가 아닌 세계 평화를 외치겠다”고 말했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이분법적·엄숙주의 팽배한 나라"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무자비한 음악 소리와 괴성, 물건 부수는 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스크린 화면에 가사를 띄워야만 하는 밴드 밤섬해적단. ‘당신의 불편함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은유하려는 영화적 시도’. 화면 가득 채우는 글자는 난해한 이들의 행위를 명료하게 시각화한다.
정윤석 감독은 말했다. “2011년 초에 처음 밤섬해적단 공연을 봤는데, 가사를 보니 청년세대의 문제, 한국사회의 권위주의 등을 북한을 빌려 표현하더라고요. 우리의 이야기인데, 발현되는 방식이 소음으로 계속되니까 대중은 등을 돌려버리죠. 듣는 음악보다 읽는 음악에 가까운 이들의 활동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화 전반부는 서울 명동의 재개발 반대 현장,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했던 제주도 강정마을 등에서 외친 투쟁에 가까운 공연을 기록한다면, 후반부는 레드 콤플렉스(극단적인 반공주의)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촬영 중 ‘밤섬해적단’의 제작자 박정근이 금기를 유희적으로 다루고자 북한 온라인 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게시글을 SNS에 올리면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기 때문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영화 전개도 변화해 후반부에는 한국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를 크게 내세우긴 했어요. 결국 영화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하고 싶은 걸 하다가 망한 이야기가 됐죠. 그것도 국가가 통제해 어쩔수 없이 망하게 된 슬픈 결말. 박정근 씨 사건으로 결말을 맺으면서 한국이 얼마나 이분법적이고 엄숙주의가 팽배하는지를 보여주게 됐어요.”
문민주·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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