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권력의 짬짜미 적폐 / 공무원들 주체 열정 갖고 주민 기만성 예산 없애야
“의원들 몫의 주민숙원사업 예산을 아예 한푼도 편성하지 않았더니 의원들이 난리가 났다. 안달이 난 의원들이 “예산심의 때 두고 보자”는 등 별의별 궁리를 다했다. 그래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예결위원장이 찾아와 의원들의 예산을 세워 달라고 하소연하더라.”
어느 자치단체의 군수가 털어놓은 에피소드다. “의원 몫의 예산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정도도 아닐 뿐더러 군민을 속이는 짓이기 때문”이라는 게 당시 군수의 생각이었다(2011년 ‘이경재 칼럼’ 인용)
주민숙원사업은 공원이나 아파트단지 체육시설, 태양광 설치, 학교 음향시설, 마을 안길포장 및 하수구 정비, 선착장 조성,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신축 등 규모가 작은 사업을 이른다. 지방의원들의 생색내기 선심성 사업으로 딱 좋은 민원성 소규모 사업이다.
집행부는 이런 사업예산을 아예 지방의원 몫으로 편성해 왔다. 대개 단체장이 포괄적으로 활용하는 재량사업비에서 집행된다. 단체장 호주머니 돈으로 불리는 예산이다. 이 돈 일부를 지방의원들이 자기 몫으로 돌려 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행부는 의회와의 정치적 거래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다.
전북도는 도의원 몫으로 개인당 연간 5억 원 안팎을 책정해 왔다. 지방의회 부활 초기 5000만 원에서 10배 이상 불어났다. 전북교육청도 도의원 몫으로 개인당 1억 원씩 배정했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시군의회도 마찬가지다.
이 예산이 왜 문제가 되는가. 우선 집행부에 대한 지방의원 본연의 기능문제가 제기된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는 기관 대립형이다. 의회가 집행부를 감시 견제하는 구도다. 그런데 의원이 집행부에 예산을 구걸한다면 과연 집행부를 제대로 견제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생긴다. 단언컨대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지방의회의 월권문제다. 예산편성은 집행부, 심의는 의회의 고유권한이다. 의회는 편성된 예산을 제대로 심의하면 된다. 필요할 경우 수정예산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의원 자신들 몫의 예산을 편성하라고 닦달하는 건 명백한 월권이다.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고 해코지하는 건 공갈 협박이나 매한가지다.
또 하나는 비리의 문제다. 재량사업비가 대부분 수의계약인 데다 의원 몫의 사업비다 보니 쌈짓돈처럼 사용된다. 일부는 의원 개인이 직접 시공업체를 선정한 뒤 리베이트를 받기도 하고, 집행부 공무원이 시공업체를 선정해 의원에게 리베이트를 챙겨주는 경우도 있다. 브로커가 시공업체와 의원을 연결해 주고 리베이트를 알선하기도 한다.
최근 검찰수사 결과 전·현직 지방의원 7명과 업체 대표, 공무원, 브로커 등 21명이 재량사업비 비리로 기소됐다. 모두 대가성 뇌물 혐의다. 구조적 비리, 먹이사슬의 실상이 또 한번 여실히 드러났다. 지방의회는 비리가 발생할 때마다 재량사업비를 편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눈 가리고 아옹 하는 격이 됐다. 안타까운 건 예산편성권을 갖고 있는 집행부가 자신의 고유권한인 데도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북참여연대와 공무원노조 등이 재량사업비 폐지를 촉구했지만 단체장이나 자치단체 어느 곳도 반응하는 곳이 없다. 단체장 예산이 탈날까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들은 새로운 공직자상을 요구하게 됐다. 국민과 함께 깨어있는 공직자가 돼야지 정권의 뜻에 맞는,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마저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선 안 된다고 다그치고 있다.
지방의원 재량사업비는 지방권력의 짬짜미 적폐다. 구조적 비리의 담합 개연성이 큰 주민 기만성 예산이다. 없애야 마땅하다. 지방공무원들도 개혁의 구경꾼이 아니라 주체라는 열정을 갖고 지방권력의 적폐해소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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