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마감된 민주당 권리당원 가입자가 전북에서만 10만여 명에 달했다. 전남 6만, 광주 5만 명보다도 훨씬 많다. 기존의 권리당원 5만여 명을 합치면 15만 명에 이른다. 전국적으론 80만 명이다. 역대 최고 수치다.
내년 총선의 경선 선거인단은 권리당원 50%, 안심번호 50% 비율이다. 매월 1000원 이상 6개월 동안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은 공천 후보를 뽑는 선거인단이 된다. 예비 후보들이 권리당원 확보에 사활을 걸고 ‘묻지마 가입’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총선은 정치권력을 재편하는 정치이벤트다. 새로운 인물이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창구 기능도 한다. 헌데 가공의 ‘동원된 선거용 권리당원’이 만들어 내는 권력재편, 그들이 선출하는 정치권력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
이런 공천 틀에서는 역량 있는 인사들이 정치 전면에 나설 수 없다. 전북의 민주당 예비후보들을 보면 선거 때마다 얼굴을 내민 단골 인물들이 주류다. 유권자 심판을 받고도 기득권을 갖고 하부구조를 횡적 종적으로 장악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권리당원 확보도 이들이 유리하다. 가산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경선 틀 역시 신인으로선 높은 장벽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drive out)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구조다. 전북에선 이런 현상이 수십년 반복돼 왔다. 이른바 ‘정치 적폐’다.
민주당이 일을 잘해 당원 폭주현상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전북은 지난 3년간 경제적 피폐의 연속이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 GM군산공장 폐쇄로 지역경제가 쑥대밭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인 제3 금융중심지 지정도 무산됐다. 모두 정치의 영역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존재감이 없었다.
종합경기장과 대한방직 부지 이용 등 굵직굵직한 갈등사안을 놓고도 민주당 도당은 수수방관했다. 도지사와 전주시장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갈등이 있고 지역현안이 꼬인다면 소속 정당이 조정자 역할을 해야 마땅하다. 이른바 상관조정의 기능이다. 나몰라라 하는 건 책임정당의 자세가 아니다.
민주당은 2016년 20대 총선 때 호남에서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다. 호남 28석 중 단 3석(전북 2석, 전남 1석)만 건졌다. 민주당 일당 독주의 피로감, 공천 잡음과 후유증, 국민의당 돌풍이 원인이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당연한 결과였다. 정치 적폐에 대한 심판이기도 했다.
촛불혁명 이후 민주당은 집권여당이 됐지만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국민이 발동을 건 촛불정신은 정치 앞에 가로막혀 멈춰섰다. 국회의원의 무노동 무임금, 국민소환제 같은 개혁의제들은 장롱에 쳐박혀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협치를 약속했지만 공염불이 됐다. 국회는 장기간 공전했고 법안은 낮잠을 자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제출된 법안(1만8607건) 처리율은 29% 밖에 안된다.
내년 총선은 2022년 대선 전초전이다. 국민의 마음을 사야 한다. 자신들의 이해가 얽힌 권리당원 모집에는 사활을 걸면서도 국민의 마음을 살 개혁과제에는 느슨하다. 20대 총선에서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바로 그 매너리즘과 정치 적폐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당지지율은 40%대다. 한번도 일등을 놓친 적이 없다. 이런 국민 지지율이라면 국민눈높이 개혁을 실행하고 성과를 내놓아야 맞다. 담대한 발상과 과감한 개혁, 미래에 대한 비전도 내놓지 않으면서 과연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있겠는가.
지지율은 신기루 같은 것이다. 지지율에 취했다간 본 게임에서 낭패를 볼 수 있다. 권리당원 폭주도 민주당에겐 독이 될 수 있다. 자만과 나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용도 없이 외형만 불어난 정당에서, 가공의 동원된 선거용 권리당원이 공천후보를 결정하고 전북의 권력을 재편하는 경이로움(?)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경재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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