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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아듀 루시 - 줄스 파스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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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스 파스킨, hermine in a blue hat/사진=ArtsDot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재주를 보였다. 이에 이미 17살의 나이에 독일의 짐플리치시무스(Simplizissimus, 1899-1944까지 발행된 뮌헨의 정치풍자 주간지)에서 그를 뮌헨으로 불러들였고, 20살에 이미 충분한 돈과 명예를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마약으로 뼈저린 후회를 부르기 시작했다. 

1905년, 파리에 왔으나 그 잡지사와의 관계는 계속되어 경제적으로는 아쉬운 것이 없었다. 향락에 싫증을 느낀 그는 젊은 장식미술가인 에르민 다비드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내를 모델 삼아 일과 사랑에 빠져 방랑은 잠시 멈춰졌다.

1914년, 줄스 파스킨은 영국을 향해 출발했다. 다시 미국으로 가서 뉴욕, 하바나, 뉴올리언스의 어두운 골목을 누비고 다니다가 튀니지를 거쳐 1920년 파리에 도착한 후 1930년 죽을 때까지 클리슈 가에서 어느 여가수가 경영하던 여관 옆에 화실을 얻어 술에 취해 살며 다시 환락을 찾아 희롱하는 광란의 시대를 보냈다.

돈은 끊임없이 잘 벌었어도 화실에는 볼품없는 긴 의자와 여행 가방, 약간의 화구와 욕조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어느 때를 막론하고 거리의 여자, 할렘 취미를 느끼게 하는 흑인 여자와 음흉하게 생긴 흑인 남자, 집시들, 속살이 비치는 속옷 바람의 통통한 여자들, 우울한 가난뱅이 가수들, 트럼펫을 부는 쿠바인, 유태인 등. 온갖 선정적인 여자들과 방탕한 남자들로 들끓었다.

그는 거의 매일 밤을 이중 10~15명의 손님과 저녁을 나누었고, 토요일은 일대에서 축제를 벌였다. 그 일당들은 모두 거리로 나와 몽파르나스에서 몽마르트르로 나중에는 브이 드 브로고냐에 있는 세느강 연안의 사창가로 긴 행열을 이었다.

1930년 6월 20일, 몽마르트르 술집에서 날을 지샌 다음 날 아침 그는 욕조 속에 앉아 동맥을 그었다. 그러고도 빨리 죽지 못해서 흰색의 긴 비단 목도리를 욕실의 문에 매달아 허망한 삶을 서둘러 마쳤다. 그리고 피가 떨어지는 손가락으로 벽에, 그 옛날 그의 환희였으며 고통이었던 여인에게 작별을 고했다.

아듀 루시, 바로 그 전날 밤 그는 자신에게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주는 계약을 맺었다. 베른하임 화랑은 그에게 성城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45살의 파스킨은 ‘산다’는 것에 너무 지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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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아듀 루시 #줄스 파스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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