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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법종 교수의 전라도 이야기] ⑧ 전라도 최고 통치 공간, 전라감영에서 근대 물품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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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소장 1872년 전주지도에 나타난 전라감영주변 모습. 포크 일행은 경기전 입구 전사청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나와 T자형 도로선(붉은 색) 왼쪽에 위치한 전라감영으로 가마타고 방문해 내삼문앞에서 내려 선화당으로 들어갔다.(파란 점선)

 

△동양의 신비로운 왕국같은 전라감영에 들어서다. 

1884년 11월 10일 오후 12시 10분경 포크는 전주에 도착하자 마자 남문옆 동쪽 끝에 위치한 낡은 관아건물(경기전 전사청?)로 안내되었다. 잠시 휴식후 포크일행은 가마를 타고 수백 명의 군졸들이 둘러싸고 있는 전라감영의 첫 번째문인 포정루문을 지나고 두 번째 중삼문을 지나 가마에서 내렸다. 그리고 길나장이들이 양쪽으로 줄을 선 돌이 깔린 진입도로를 지나 마지막 내삼문이 열렸다. 그리고 포크의 눈앞에는 거대한 관아(선화당)가 나타났다. 

“매끈한 기와를 올린 높은 지붕과 기둥은 높고 당당한 기운이 서려있었다. 본관에는 화려하게 옷을 입은 하급 관리들이 거대한 무리를 이뤄 서 있었다. 전체적으로 놀라운 풍광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조선에 있는 어떤 외국인도 보지 못했을 광경이었다. 동양의 오만스러움과 전제 권력의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맨 위 계단에서 모자를 벗고 화려한 예복을 치렁치렁 걸친 회색 수염의 나이든 관리에게서 정중한 환영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손을 흔들어 포크를 오른쪽으로 안내했다. 이 역할은 전라감영의 육방권속 중 가장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방(吏房)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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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전라감영 선화당(2020 복원) 유리원판 사진 (노출 3초 조리개1/3, 필자 촬영). 포크가 촬영한 사진 중 나주에서 물에 빠지며 손상되었을 사진을 포크 일기에 근거해 추정 촬영하였다.(선화당 현판이 달리기 전 모습)

 

△전라감영에서 자명종과 유리거울 등 근대물품들을 접하다.

포크는 선화당의 안쪽 방에 서 있는 전라감사와 마주하였다. 크고 검은 수염의 남자는 찬란하게 흘러내리는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모자에는 뒤쪽으로 기다란 빨간 술을 매달았고 앞쪽에는 공작 깃털을 꽂아 장식했다. 포크는 바깥문에서 고개를 깊숙이 숙여 인사하고 앞으로 나아가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포크는 깊은 산속 미지의 왕국 같은 이곳에서 화려한 스타일의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두 개의 유리거울과 시계 등 서구의 근대 문물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서구를 대표하는 자명종 시계와 화려한 거울은 신비한 왕국같은 전라감영과는 전혀 연결되지 않아 큰 놀라움을 표하였다.

  조선에 전해진 자명종은 <국조보감>에 의하면 1631년(인조 9) 7월 정두원이 명나라에서 포르투갈의 신부 육약한으로부터 천문학 서적, 천리경 등과 함께 얻어왔다고 하는 데 ‘한 시간마다 스스로 울린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자명종 전래에 대한 첫 기록이다. 또 대동법 시행으로 유명한 김육이 지은 <잠곡필담>에는 김육 자신도 중국에서 자명종을 가져왔는데 효종대(1650~1659 재위) 밀양 사람 유흥발이 일본 상인이 가지고 온 자명종을 연구한 끝에 그 구조를 깨달고 직접 만든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또 현종 10년(1669)에 이민철과 송이영은 서양식 자명종의 원리와 특징을 잘 살리되 동력을 물 대신 추로 돌게 개량하여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고 천체의 운행을 한 눈으로 알아볼 수 있는 조선 특유의 혼천시계를 제작하였다. 특히, 전주사람인 이민철은 나이 아홉 살 무렵에 자명종을 분해 조립해 지켜보던 이들 모두 경악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자명종이 처음 들어왔을 때, 동래 사람들이 왜인에게 태엽 감는 법을 배워 서울에 전했다. 그러나 자세하지 않아 시계가 있어도 쓸 줄 몰랐다.(중략) 내 숙부 이민철이 조용한 곳에 자명종을 들고 가 시계 축 도는 것을 응시하고는 나사를 모두 뽑아 분해했다. 보던 이들이 모두 경악했으나 이내 조립해 이전처럼 완성했다.”  이이명(1658~1722) <소재집(疎齋集)>

1723년(경종 3)에도 청나라에서 보내온 서양문진종(西洋問辰鐘)을 관상감에서 본떠 만들었다고하여 18세기부터는 관상감원들이 자명종을 제작했고 그것을 시간 측정에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이 정두원에 의해 조선으로 도입된 자명종은 단지 호기심의 대상인 신기한 기계로서가 아니라 조선 사회에서 개량, 활용되고 마침내 제작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전라감영에서 포크가 보고 놀란 시계가 조선에서 자체 생산한 시계인지 궁금하다. 그런데 1884년 6월 평안도 유생의 상소에 “또 자명종(自鳴鍾), 시표(時標:시계), 유리(琉璃) 등의 망가지기 쉬운 완호품에 대해서는 외국인이 시장에 들여오는 것을 허락하지 말도록 하소서”라는 내용이 나오고 있다. 이때는 이미 조선사회에 이들 물건이 수입되어 판매가 이뤄진 상황을 반영한 것이어서 전라감영의 시계가 과연 조선의 자체 제작품인지 수입되어 사용된 것인지는 명확치 않다. 그러나 이같은 근대 물품이 전라감영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사실이 포크기록을 통해 명확히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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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대 입식 자명종(습판 틴타입 사진 필자촬영) 전라감영에 있었던 시계의 모습은 알 수 없으나 1880년대 자명종 시계의 대표적인 모습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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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경(座鏡) 조선시대 19세기/높이17.0cmㅡ,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라감영의 거울은 이런 모습의 거울이거나 덮개와 물품을 넣는 문갑이 있는 경대(鏡臺) 형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1879년 2월 27일자 일본 <도쿄니치니치신문>의 ‘조선의 근황’에서 “전기, 철로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신기함을 의심하는 것 같다. ...조선인 가운데 유리 거울을 소유함은 이른바 상류층으로 하등 인민과 같은 이들은 이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자가 많다.”라고 보도한 내용에서 유리거울은 지위 높은 자들의 새로운 문물이었다. 그런데 유리거울이 전라감사 집무공간에 2개나 있었다는 점은 전라감영이 이 같은 근대 물건과 접하는 창구이자 근대 문물의 활용처였음을 보여준다.

거울은 우리 역사에서 청동기시대이래 쓰여진 종교적 정치적 신성성을 상징한 도구였다. 이때의 거울은 동경(銅鏡)으로 구리와 합금(구리+주석, 구리+아연)을 반사체로 하여 반듯한 면을 광내어 사용하였다. 조선 후기에 유리에 광물질인 은이나 수은을 입혀 반사되도록 한 거울이 유입되면서 상류계층에서나 쓸 수 있었던 동경은 유리거울의 보급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일상품이 되었다. 유리 거울은 일명 석경(石鏡) 이라고도 불렀다. 청나라 때 중국에 들어간 사신들은 베이징의 옥하관(玉河館)에 머물렀는데 바로 아라사(러시아) 사신들의 숙소와 이웃하고 있었다. 옥하관에서 사온 물품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이 바로 유리거울로, 이를 ‘어루쇠’라 했다. 지금도 거울이 어루쇠로 통하고 있는데, 그 어원을 순조28년(1828) 사행을 다녀온 기록인 『왕환일기(往還日記)』 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아라사는 중국 발음이 어라시(於羅澌 워루어스)이니,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석경(石鏡)을 어리쇠(於里衰)라고 부르는 것이 필시 아라사에서 생산되는 아주 두꺼운 유리로서 ...그러한 것이다.”   <왕환일기(往還日記)>, 무자년(1828) 6월.

현재 표준어로 거울을 지칭하는 ‘어루쇠’라고 하는 말이 19세기 초반에는 ‘어리쇠’라고도 발음한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에서 들여오는 유리 거울이 대부분 러시아제인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전라감영에서 포크는 자명종과 유리거울 등 서구 제품들이 사용되고 있는 모습을 통해 전라감영이 근대문화수용의 중심이었음을 확인하였다.

/조법종(우석대 교양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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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법종 우석대 교양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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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법종 #전라도 이야기 #전라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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