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전북 음식의 현주소 - '족보'없는 전통식 고집…'그 나물에 그 밥상' 전락
전주시가 유네스코 공인 '맛의 도시'가 됐다. 유네스코가 인정한'맛의 도시'는 콜롬비아의 포파얀(2005), 중국의 청두(2010), 스웨덴의 외스테르순드(2010)로 전주는 네 번째로 선정됐다. 하지만 최근'전북은 음식의 고장'이라는 평판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특별한 맛에 대한 기대를 잔뜩 안고 온 관광객들의 기대 수준을 만족시키지 못해서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을까. '명품 음식, 지역 식재료의 재발견'에서는 지역 식재료의 중요성을 간과한 전북 음식의 현주소를 짚고, 국내외 사례를 통해 음식 부문으로 선정된 유네스코 창의도시 가능성을 엿보고자 한다.△ 전주비빔밥 비싸다? 근데 맛은 왜 비슷해가격이 비싸다고 비난을 받은 전주 비빕밥을 예로 들어보자. 비빔밥 업체들은 "반찬이 거의 필요 없는 값싼 비빔밥 보다는 한 상 푸짐하게 내놓는 전주 비빔밥상을 원하는 손님들이 많다"고 하소연하고, 일부 소비자들은 "열 가지가 넘는 반찬을 곁들인 비빔밥 정식으로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려 받는 꼼수"라고 맞받아친다. 이 같은 논란의 불씨는 일부 업체들이 내놓는 비빔밥 정식에서 비롯됐으나, 사실 전주비빔밥 맛이 다른 지역의 비빔밥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오랜 불만에서 나온 것이다. 계절별 지역 식재료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은 제쳐두더라도 같은 식재료라 하더라도 누가, 언제, 어디서 만들었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져야 하지만 비슷비슷한 맛이라는 것은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라면 쉽게 수긍하는 바다.이 같은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전주비빔밥을 옛 것 그대로 지켜온 장인들과 이미 다국적 음식을 접해본 현대인의 입맛 사이에서 충돌하게 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역사적 근거는 불분명하지만 오랫동안 내려온 전통 비빔밥을 만드는 장인들과 그런 비빔밥이 오히려 음식을 박제화하고 있다는 반론이 공존해서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전주비빔밥 맛이 다 똑같다. 비빔밥의 고장이라고 하면, 집집마다 서로 다른 비빔밥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계절에 따른 식재료로 사용해 비빔을 내놓는 집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 음식의 정체성 핵심은 지역의 제철 식재료2000년대 들어 한국 음식의 세계화가 화두가 되고 있다. 한국의 음식문화를 세계인이 즐기도록 해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고자 하는 정부의 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한국 음식의 정의와 범위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한국음식은 전 세계의 식재료, 각양각색의 조리법이 동원될 수 있다. 세대에 따라 정갈한 조선 사대부 상차림부터 불판에 지글지글 삼겹살 굽고 소주를 곁들이는 왁자지껄한 판까지 포함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음식, 더 나아가 전라도 음식의 정체성을 어떻게 찾을까. 음식문화가 발달한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미식가가 많기로 유명한 프랑스일본 음식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핵심은 그 음식을 이루고 있는 그 나라의 식재료다. 지난 9월 '제3회 문화소통포럼'에서 한국 음식의 경쟁력을 이야기한 프랑스 요리 인간문화재 에리크 트로숑은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로카보(locavore) 운동'을 언급했다. '로카보 운동'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운송하는 식재료 대신 신선한 지역 재료로 요리한 음식을 먹자는 운동. 결국 프랑스 음식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핵심은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란 뜻이다. 전라도 음식 역시 마찬가지다. 주강현 우리문화연구소 소장(제주대 석좌교수)이 2009년 전주시의 '전주 음식 스토리 개발사업'의 연구물로 펴낸 '전주 음식'(전주 음식의 DNA와 한브랜드 전략)은 슬로푸드로 간주한 전주 음식의 주된 재료인 콩을 재발견한 선례. 단순한 조리법 소개가 아닌 전주콩나물국밥과 전주 비빕밥에 쓰이는 식재료인 콩의 DNA를 분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전주 음식'의 필진으로 참여한 박경하 중앙대 교수는 당시 "미쉐린 별 세 개를 얻은 일본의 유명한 스시집 주인의 가장 관심사는 다름 아닌 쌀, 원료에 있었다. 찰진 쌀 그리고 그 쌀을 섞어주는 스시의 맛을 좌우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먹을거리의 주소 성명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전통 조리법에 갇힌 지역의 귀한 식재료 많아전북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색다른 식재료가 많다. 고창 보리와 보리싹(봄)복분자(여름), 군산 '울외'(가을넝쿨 식물로 절임 형태)박대(겨울), 김제 찐 쌀(가을), 남원 미꾸라지와 시래기(가을), 부안 조개류(봄)와 꾸지뽕(가을), 순창 도라지(가을), 완주 고종시(곶감 홍시가을), 익산 마와 무(겨울), 임실 고추고구마(가을), 정읍 양하(생강과 비슷한 채소여름)와 녹두(가을), 진안 뽕잎(봄)과 오디머루(가을) 등이다. 그러나 지역 식재료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보니, 일부 귀한 제철 식재료의 가치를 먼저 알고 싹쓸이하거나 그 종자를 가져가 자기들의 식재료로 만들어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대표적으로 남원에서 추어탕어죽 등에 넣어 매운 맛을 내는 초피나무 열매는 우리나라에선 고추가 대신하면서 잘 쓰이지 않게 됐으나 일본에서 일찌감치 가치를 알고 한국의 종자까지 가져가 재배하고 분말화해 전 세계에 팔고 있다. 후추의 매운 맛이 나면서 독특한 아로마 향을 지니고 있어 '동양의 신비한 후추'로 여겨지는 초피는 중국 사천요리에 가미 돼 '중국식 후추'(Chinese Pepper), 일본에서는 '일본식 후추'(Japanese pepper)라고 표기해 전 세계에 뿌려지고 있다. 최근 일본 외식업 관계자들이 전국의 음식 축제를 방문하는 이유가 한국에 직접 와서 식재료 생산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라는 이야기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고춧가루만 하더라도 산지별 고추의 특성, 고춧가루 분쇄 방법과 입자 크기에 맞는 맛과 향의 차이, 심지어 가짜 태양초 제조 방법까지 알 정도로 한국 식재료에 관한 정보를 꿰고 있는 업체까지 있다. △ 식재료 가치 파악정보화 콘텐츠화 필요 전북 음식의 맛이 다른 지역과 비슷하게 평준화가 된 것은 지역의 제철 식재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 식재료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현대인 입맛에 맞게 재탄생시키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점 때문이다. 다소 생소하다 싶을 만큼 각 지역에서 희귀하게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대부분 장아찌 등과 같은 반찬 정도에 머물러 있다 보니, 그에 맞는 조리법 개발이 전혀 없는 상황. 지역 식재료로 조리법을 개선한다면 대중화, 더 나아가 세계화까지도 가능하지만 이 같은 노력은 게을리 하고 있다.더욱 문제는 이 같은 식재료에 관한 정보가 정부와 지자체, 생산자단체 등이 조금씩 언급하고 있으나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연구한 자료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는 대목이다. 게다가 식재료에 관한 정보들이 음식업계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초피나무의 열매를 사다가 음식에 응용하고 싶어도 초피의 특징, 이와 비슷한 산초나무 열매와의 차이점, 산지별 생산시기와 가공법, 보관 방법, 가격, 구매처 등에 관한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지 않고 있다. 물론 이는 전북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전국 최초로 음식으로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된 전주시가 힘써야 할 것은 무엇일까. 결국 전북 음식의 정체성을 찾자면 전북에서만 구할 수 있고, 전북에서 나는 것이 제일 맛있는 식재료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음식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맞는 고유성을 응축시킨 것인 만큼 식재료를 통해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음식 브랜드화를 위한 스타일 개발이나 조리법 정리 보다는 한국 식재료에 대한 가치 파악, 정보화 및 콘텐츠화가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