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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최윤경 일곱번째 시집 '파도'

"통곡하고 싶었어요. 매일매일 뜻하지 않는 일들이 나를 몰아댈 때 한풀이 하는 맘을 담았습니다. 하얀 거품을 내품은 이야기들이 시가 됐죠."최윤경씨는 미용업에 종사한 지 40여년 된 베테랑. 시집 「파도」(신아출판사)는 쉼없는 그의 열정이 반영된 일곱 번째 시선이다.'마지막 떨어지는 저 노을을 향해 / 나 막힌 가슴 토해낸다 / 목이 아파도 몸이 몹시 아파도 토해낸다'('파도' 중에서)파도소리에 귀 기울이며, 깊은 신심으로 일상의 파편들을 쏟았다. 한꺼번에 밀려왔다가 공허로 밀려오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삶의 시가 한송이로 피어난다. 그래서 파도를 소재로 쓴 시가 많다.이번 시집은'이국정서''사랑''시조신앙''역사의 이광' 총 4편으로 구성돼 있다.전세계 25여개국을 돌며 여행의 감흥을 시로 승화시켰는가 하면, '잠언'을 통해 참된 사랑을 주문하는 그가 보인다. 가톨릭 신앙은 삶의 풍파에서도 스러지지 않고, 그가 숨쉬게 할 수 있게 하는 버팀목. 신을 통해 갈무리된 시심의 씨알들은 설움에 겨운 삶 속에서 정수다."서정시를 위주로 한 시는 계속 쓰겠지만, 정말 쓰고 싶은 것은 따로 있습니다. 제 본업이 미용이다 보니까, 미용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시를 쓰고 싶죠."하지만 아직 실현은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매달, 매년 보육원과 비응도 등으로 봉사활동까지 나서는라 몸이 열개여도 모자란 상태. 따뜻한 사랑을 위해 몸으로 마음으로 시를 닦고 있는 그다.최씨는 익산시 문인협회 시분과장,가톨릭 문인협회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시집「촛불을 밝혀오리」「노래여 날개여」 「복사꽃 피는 길」 등을 펴낸 바 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11.18 23:02

[문학] 신정일씨 '옛 길을 걷다' 시리즈 '관동대로' 출간

걷고 걷고 또 걷는다. 끝이 없다. 보통 역마살이 아니다. 매울 신자를 쓰는 성(姓)만큼이나 신정일씨(辛正一)의 걷기 여정은 뜨겁고 맵지만, 그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다. 하나밖에 없는 길의 역사를 찾는, 그 곡진한 길위의 사람들을 찾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다."걷는 이유요?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을 온전히 느껴보고, 느림의 가치에 주목하고 싶어서죠. 지금 세대들에게 느림을 통해 재생과 복원의 가치를 전달해주고 싶습니다."그가 펴낸「관동대로」 (휴머니스트)는 조선시대 주요 9대 간선도로를 살핀 '옛길을 걷다' (휴머니스트)시리즈 중 하나. 대표적인 줄기는 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 관서대로, 북관대로다. 영남·삼남·관동 대로는 남녘에 있고, 관서·북관대로는 북녘에 있으니, '옛길을 걷다' 시리즈 「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 는 아직 '절반의 완성'인 셈이다.'관동대로'는 수도 한양과 경기지방 동부와 강원도를 이어주는 길이다. 길이만 구백이십 리이고, 걷는 데만 열사흘이 걸리는 코스.서울에서 횡성까지 닷새간이 관동대로의 첫 구간이다. 남한강 두물머리와 원주 치악산을 만나는 지점.평창에서 강릉까지 나흘간 두번째 구간에선 두메산골과 대관령, 관동별곡의 고장 강릉을 거쳐간다.마지막 세 번째 구간 동해에서 평해까지 나흘간에 걸친 코스는 동해안을 끼고 삼척과 울진을 따라 종착지 평해에 이른다.대관령 넘어 영동 지방은 관동팔경과 금강산·설악산·두타산 등 산내음과 강바람으로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이승휴, 이곡, 김시습, 허균, 허난설헌, 허목 등 수많은 문객들이 답사하고, 그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름난 유배지로 뿌리깊은 애환도 서려 있다.현재 그는 사단법인 '우리땅걷기모임' 대표로 전국의 사라져버린 길을 찾아 대장정에 나서고 있다. 글의 배경이 된 '관동대로'기행엔 이곳 20명의 길벗들과 함께 동행했다.그의 다음 목표는 '동해 트레일'(해운대에서 두만강까지의 길)과 대동강, 압록강, 두만강 등 북한의 강.쉼없이 걸어야만 하는 그의 운명은 이제 강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11.18 23:02

[문학] 해방공간·한국전쟁 전후 '작은 기억 모음'

"우리가 무슨 사상이겠습니까. 인제 고등학교 1~2학년 때인데 신탁통치를 반대헌다 지지헌다 막 해가지고 좌우로 나눠가지고 공연히 학생들까지 물들어서 서로 싸운 거예요. 전부가 다 잘 산다고, 하니까 공산주의가 좋은가 보다 허고 말려들어간 사람들은 활동을 허고 그랬지. 긍게 사상이 뭐인지도 모르고 엉켜서 서로 싸우고 그랬어요." (손봉국, 1930년생, 전 전북교육위원)"해방 후 예향 전주에는 용모가 수려한 기생 3명이 있었어요. 금옥, 산옥, 연옥이 그들의 이름입니다. 이 세사람은 '삼옥' 또는 일본말로 '산다마'라고 일컬어졌어요. 이들은 경기전 옆에서 '운심각'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한식요리집을 경영하였습니다." (진기풍, 1925년생, 전 전북일보 사장)거대 담론적 거시적 한국사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지방사적 미시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주 지방을 중심으로 한 격변기의 지방사나 기록도 마찬가지. 일반 역사로부터 소외당했던 작은 기억들이 민중들의 입을 통해 되살아났다.전주문화재단이 펴낸 「전주의 8·15해방과 6·25전쟁 격동시대 구술실록」. 전주성곽이 훼손된 1907년부터 2006년까지를 100년으로 잡고 시작한 '전주의 전주 근대생활 조명 100년' 두번째 책으로, 1945년부터 1960년까지 전주의 8·15해방과 6·25전쟁을 중심으로 했다.'제1편 8·15해방과 정치 격돌' '제2편 6·25전쟁의 발발과 참상' '제3편 사회·문화' 등으로 구성된 이번 작업은 묻혀지고 잊혀져 가고 있는 지방사의 복원. 때문에 8·15 이후 좌우격돌, 인공치하의 가해자와 피해자, 수복 후 다시 뒤바뀐 입장, 빨치산으로 입산했던 사람들과 유격투쟁 과정, 빨치산의 보급투쟁을 빙자한 주민들의 피해와 빨치산 토벌에 동원됐던 군경, 전쟁이 끝난 후 사회적 변화 등 시대 흐름을 채록을 통해 적나라하게 기록하고자 했다.그러나 직접 집필과 편집을 맡은 장명수 전주문화재단 이사장은 "경직됐던 사회 분위기가 많이 풀렸다고 하더라도 체험 주인공이나 사건 현장 목격자들이 아직도 입을 굳데 닫고 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오늘의 채록 작업에서도 구술을 해줄 만한 주인공을 만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장이사장은 "역사 현장의 많은 당사자들이 이미 타계한 후이거나 구술 약속을 해놓고도 깊은 와병에 누워있는 경우가 많아 아쉬웠다"며 "무대는 전주를 중심으로 하되 연관된 사건은 전북 일원으로 확대하고, 체험 당사자나 목격자에게 듣는 것을 원칙으로 했지만 부족한 부분은 문헌을 찾아 보충했다"고 설명했다.한편, 이미 배포가 끝난 제1권 「일제의 전주 침탈과 시민시대 구술실록(1907~1945)」의 정오표도 수록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11.18 23:02

[전북문화의 발견] ①소극장, 문화예술이 꽃 피는 공간

소극장은 냉정하다.무대와 객석은 단 몇 발자국 거리. 아무 것도 숨길 수가 없다.관객들은 공연자의 단 한 번 실수에도 차갑게 돌아서지만, 무대 위 거친 숨소리와 퀴퀴한 땀냄새에서 가슴 뛰는 흥분을 맛보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소극장 공연의 진실성.손 내밀면 닿을 듯한 이 좁은 공간에 무한한 예술의 세계가 담기는 것이다.▲ 소극장, 저항의지를 담은 대안 공간공연예술은 비로소 소극장에서 꽃을 피운다.보통 소극장은 객석 규모가 300석 미만인 소규모 극장을 의미하는데, 개념상으로는 '상업연극'과 대응된다. 소극장이 관습과 전통으로 굳어져 버린 기성문화에 대한 도전과 실험정신으로 생겨났기 때문. 현대에 와서는 작은 극장에서 하는 작은 규모의 공연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소극장 공연을 단순히 공연의 크고 작음만을 기준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소극장은 기존의 것에 대한 반발의식과 새로운 것에 대한 연극인들과 관객들의 요구에 의해 탄생됐다. 극장의 크기가 크고 객석 수가 많으면 관객을 대량으로 동원할 수 있는 오락이나 흥미 위주의 상업성 짙은 작품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관객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고급스러워지면서 흥행의 내용이나 방식에 있어 혁신이 필요했고, 그 결과 작은 공간에서 적은 수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소극장 공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한국에서는 기록상 1920년대 소극장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지만, 1931년 극예술연구회가 소극장운동을 벌이면서 소극장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60년대 본격적인 소극장운동이 일어났으며, 80년대 이후에는 소극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서울의 삼일로창고극장, 실험소극장, 민예소극장, 까페 테아트르 추 등에서는 실험적 형식을 지닌 공연들이 많이 올라갔다.소극장이 연극이란 장르에서 비롯된 만큼 연극에 있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는 전북은 시기적으로 중앙에 비해 약간 늦지만 비슷한 양상의 소극장 역사를 가지고 있다. 60년대부터 문화공간이 등장하기 시작해, 연극 전용 소극장인 '전북문예소극장'이 문을 연 80년대부터 8개의 소극장이 운영되고 있는 현재까지 소극장이 지역 공연예술 분야의 자양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연극에서 시작된 소극장운동은 이후 무용이나 오페라 등 다른 무대공연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전북에서도 연극이 아닌, 다른 장르를 위한 소극장이 생겨나기도 했다.▲ 소극장도 무한경쟁시대가난했던 시절, 소극장은 문화예술인들의 버팀목이 돼주었다. 언제라도 공연을 올릴 수 있는 무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기 때문이다. '죽어도 지원은 받지 않겠다'는 생각에 '거마비(교통비)'만을 받고 움직이던 예술인들에게 소극장은 무대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연습공간이었고 때로는 그들만의 아지트가 되기도 했다.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예술이 각광받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는 객석이 500석 이상인 중극장이나 2000석을 훌쩍 넘는 대극장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소극장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술인들이 스스로 호주머니를 털어 소극장을 마련했던 과거와 달리 관이나 기업 등의 지원이 생겨나면서 소극장이 증가했고 일부 예술인들은 소극장 보다는 대극장 무대을 꿈꾸기도 한다.이처럼 소극장이 양적으로 팽창하게 되면서 소극장도 무한경쟁 체제로 돌입하게 됐다. 소극장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서울은 최근 들어 '예술성 확립과 새로운 연극창조를 위한 실험' '기성연극 또는 상업주의 연극에 대한 도전' 등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소극장을 채우는 공연들이 '성인용'이거나 '개그콘서트용'으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 물론, '성인용'이나 '개그콘서트용'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으며, 이 또한 소극장을 부흥시키는 또다른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서울 대학로 소극장들의 초기 정신이나 순수예술로서 연극의 가치를 떠올린다면 분명 씁쓸한 대목이다.현재 8곳이 운영 중인 전북 역시 인구나 경제력 등 객관적인 수치만을 놓고 생각한다면 소극장 포화상태라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 대학로와 같은 현상은 보이지 않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전북 역시 소극장의 양적 성장만큼이나 질적 성장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소극장, 도시의 문화예술을 일구다중극장이나 대극장에서 열리는 화려한 공연도 중요하지만, 소극장이 몇 개가 운영되고 있으며 얼마나 쉬지않고 가동되느냐는 그 지역의 문화예술이 얼마나 다양하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또한 지역 문화예술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때문에 문화판에서 일정한 시점을 두고 소극장운동이 반복돼 벌어지는 것은 주목해야 할 문화현상이다.소극장은 그동안 도시의 문화예술을 일궈왔다. '도시의 문화, 소극장'은 중앙이 아닌, 지역에 위치한 소극장의 역사와 현재 활동을 점검해 소극장이 지역의 문화예술을 건강하게 창출해 나갈 수 있도록 방향성을 찾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전북의 소극장 문화를 주도해 온 전북 연극의 역사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 문화일반
  • 도휘정·이화정·최기우·문신
  • 2008.11.18 23:02

햄스터가게 꼬마 사장 유요찬군 "키울 수 있는지 허락 받아야 팔아요"

15일 동문사거리에서 아이들이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가져와 새주인을 찾아주는 장이 열렸다. 자리마다 구슬, 색연필, 책, 비디오, 딱지 등 다양한 물건으로 꽉메운'어린이 장터'. 가지고 나온 물건마다 사연도 가지각색. 아이들은 스스로 만든 플라카드로 선전하며 가지고 나온 물건에 대해 설명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햄스터를 팔기 위한 꼬마 사장님의 게다리 춤 서비스가 이어지자 손님들이 몰렸다. 어미 햄스터가 새끼를 낳으면서 햄스터를 키울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 아기 햄스터 아홉마리의 주인을 찾아주려고 나왔다는 유요찬군(6). 그냥 나눠줘도 되지만 햄스터들이 버려질 것이 걱정돼 한마리에 천원씩 판매하기로 했단다.이따금 엄마 햄스터를 선택하는 손님들에게는"엄마 햄스터는 안팔아요"라고 설명하는 요찬이의 솔직한 마음은 아기 햄스터들도 안 팔리면 좋겠다는 것. 아기 햄스터들이 팔리지 않으면 집에서도 키우지 못한다는 엄마의 말에 "햄스터 사세요"를 외치며 춤으로 손님들을 유혹(?)했다.관심을 가지는 손님들에게는 느리지만 또박또박하게 "엄마에게 키울 수 있는지 물어보고 꼭 허락을 받아야 살 수 있다"고 설명도 했다.요찬군은 햄스터를 사가는 누나와 형들에게 엄마의 허락을 받았는지 확인하고, 햄스터를 잘 키워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엄마의 도움으로 받아 만든 햄스터를 키우는 방법과 햄스터의 기분상태를 알 수있는 정보를 담은 설명서와 햄스터 먹이도 선물로 줬다. 이날 팔린 햄스터는 여섯마리. "서운하지만 주인을 찾아서 좋다"는 요찬이에게는 행복한 하루였다.

  • 문화일반
  • 윤나네
  • 2008.11.17 23:02

[일과 사람] 제7회 동문거리 축제 '나눔 장터'

"파격 세일! 단 돈 300원에 여러분을 모십니다. 원하시는 물건이 값싼 가격으로 준비 돼 있으니 마음껏 골라보세요."액세서리와 동화책, 잡지와 노트, 구두와 의류 등 집에서 쓰지 않는 헌 물건 등을 팔고 있는 사람들의 호객(?) 경쟁이 붙었다.전주 구도심 일대를 활성화하고 생활용품 및 재활용의류 등을 판매한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후원하는 취지로 열린 제7회 동문거리 축제가 지난 15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주시 경원동 동문거리 일대에서 열렸다. 동문거리축제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아름다운가게와 공공작업소 심심이 주관한 자리다.이 날 축제에서는 다양한 물건들을 값싼 가격으로 판매하는 나눔 장터가 시민들에게 인기를 얻었다.주부클럽소비자정보센터와 전주환경운동연합, 전주YWCA, 행복한 가게 등 10개 단체와 개인 70개팀이 참가해 재활용 의류 및 생활용품 등을 나눔 장터에서 판매했다."청바지 사이즈가 어떻게 돼요? 정말 500원 밖에 안 해요? 예쁘고 좋은 물건들이 참 많네요. 솔직히 의류나 책 등을 새로 구입하려면 적어도 몇 만원은 드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싸게 구입할 수 있으니 즐겁고 재미도 있네요." 나눔 장터에서 물건들을 구입하는 시민들의 얼굴이 한층 밝았다.한켠에 따로 개설된 어린이 나눔 장터도 인기. 이제는 작아져 못입게 된 옷장 속 옷과, 동화책 등 아이들이 자라면서 쓰지 못하고 집 안에 보관해 둔 각 종 헌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1000원 미만에 판매하는 물건이 대부분이지만 전혀 아깝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돈의 소중함과 아껴쓰는 방법 등을 체험 시키고, 쓰지 않는 물건들로 인해 집 안 한 켠을 차지했던 공간도 정리 할 수 있어 너무 좋네요."이 날 나눔 장터에 참여한 단체와 시민들은 판매한 수익금의 50%를 기부, 중·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소년소녀가장들의 교복을 구입하는 기금으로 쓴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11.17 23:02

[문학] 위기의 시대, 문학을 다시 묻다

문학이란 무엇인가?새삼스러운 질문이지만 문학하는 사람도, 독자들도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계간 '창작과비평'은 겨울호(통권 142호)에서 이 새삼스러우면서도 본질적인 질문은 다시 들고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촛불집회, 미국발 금융위기와 경제위기로 이어진 '위기의 시대'를 맞아, 이런 때일수록 참된 문학적 감수성이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무하고 방향감각을 일깨울 수 있으며 그런 과제를 감당하려면 문학인들 스스로 발본적인 문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지난 촛불집회 때 문학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화두를 던졌다. 그는 "일반 독자들이 보기에, 도대체 문학이 뭐길래 수많은 평론가들이 자기네끼리만 읽히는 글쓰기로 자족하고 작가들조차 상당수가 그런 평론에 언급되기 위한 작품만 쓰는 듯한 인상을 주는가 하는 의문이 일곤 한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이어 30년 전 스스로 던졌던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지금도 유효하다며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민족문학론, 리얼리즘론의 현재적 재해석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그는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씨'부터 정지아의 '봄빛',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 김려령의 '완득이' 등까지 오늘날 한국문학의 대표적 성취들이 대체로 사실주의 전통에 뿌리는 뒀음에도 리얼리즘이 낡은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관점에서는 그는 윤영수의 '소설 쓰는 밤' 속에 나타나는 현실비판과 이야기의 공존, 박민규의 '핑퐁'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다음은 무엇?'에 대한 모색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백 교수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필연적으로 세상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지고 세상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물음이 된다는 친숙한 명제가 번번이 새로운 물음으로 진행될 수 있고 되어야 하는 것은 그 물음이 구체적인 작품의 창작과 수용을 통해서만 이행되는 물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한기욱 씨와 시인 진은영 씨는 '문학하는' 사람으로서 이 질문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한씨는 '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에서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론'에 대한 일부 평론가들의 입장과 강영숙, 정도상, 김사과, 황정은의 작품을 차례로 살펴봤다. 그는 "작금의 한국문학의 창의적 기운을 갖고 있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이럴 때 비평의 역할이 더없이 중요해지는데 초심으로 돌아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한씨는 "작품의 문양과 결을 세심하게 읽되 역사적 현실에 열려있는 비평은 정교한 이론의 적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평가의 맨몸으로 작품과 시대적 현실을 대면하는 과정이 요구되며, 이럴 때 이론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진씨는 '감각적인 것의 분배'에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미학과 감성론을 빌려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시가 어떤 의미에서 정치적인지를 밝힌다. 이와 함께 김상환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문학 본성을 둘러싼 논쟁을 '주역'의 미학을 통해 파헤치며, 호베르투 슈바르스 브라질 캄피나스대 교수는 브라질 문학이 근대문학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어떤 혼란을 겪으며 국민문학적 성취를 거뒀는지를 보여준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8.11.17 23:02

추억 넘친 예술 거리서 전주시민들 늦가을 추억

과거엔 동문(東門)이 있었고, 상업중심지였다. 이젠 예술의 거리를 꿈꾸는 전주 동문거리.동문거리축제위원회가 주최하고 공공작업소 심심·아름다운 가게·전주 나눔장터 실무협의회가 주관하는 '2008 제7회 동문거리축제'가 15일 열렸다. 동문거리 축제의 중심 무대는 선플러스∼ 조약국 일대.이제는 사라지고 네 곳만 남은 '태양서림' '한가서림' 등 추억의 헌책방, 세월을 간직한 빈점포에 알록달록 옷을 입힌 셔터 벽화, 옷핀을 단 이색적인 건물들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길놀이와 사자춤 등 개막 축하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동문축제의 번창을 기원하는 성업고사가 열리면서 축제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7.5cm 콘서트'는 무대와 청중과의 거리를 함축적으로 보여줬다. 동문거리 한복판에서 펼쳐진 '7.5cm 콘서트'에는 인디밴드인 '구남과 여라이딩스텔라'가 출연해 '카바레 사운드'를 선보였다.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음악에 대한 불만을 내지르는 스타일의 틀을 깨는 무대. 인디밴드 '캐비넷 싱얼롱즈'와 'CRYM'와 '달이앙상블'의 연주로 작지만 가까운 무대를 좋아하는 시민들에게 다채로운 울림을 선물했다.'갤러리 동문'엔 '추억의 박물관'과 함께 담배, 딱지 등 옛날 물건을 전시됐으며, 장근범 사진작가의 '동문 사진전'반질반질한 공장제품이 아닌 손맛이 나고 따뜻한 느낌이 살아있는 '할머니 공방'의 리폼 프로젝트도 주목을 모았다.이지연 박탱고 한숙 장근범 김은진 이가립 박준서 김미라 정소영 김용수 신가림씨 등 지역 작가들이 참여하는 '아트페어 마켓'은 새롭게 기획된 코너. 고가의 물건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공예품들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차 없는 동문에서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캐리커처 그려주기, 천연염색으로 손수건 만드는 체험도 가족단위 관람객들의 즐거운 체험으로 인기를 끌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11.17 23:02

"걸어온 100년 돌아보고 다가올 100년 준비할 때"

"우리나라 문인이 1만2000명 정도 되는데, 그 중 우리 한국문협에 1만여명이 가입돼 있습니다. 또한 올해가 한국 현대문학 100주년인데, 한국문협의 역사와 전통이 50여년입니다. 비록 한국문학이 번역 문제로 노벨상은 타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문학의 우수성이 한국문협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한국 현대문학 100주년 기념 '한국문학 융성을 위한 세미나'를 주최한 한국문인협회 김년균 이사장(66). 김이사장은 "한국 현대문학 1세기를 맞는 지금, 우리가 걸어온 100년을 뒤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100년을 준비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한국 현대문학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이번 세미나는 한국문학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남원에서 열려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아나톨리 김과 함께해 특별한 자리라고 생각합니다."김이사장은 "이번 세미나가 한국문학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한국문협도 한국 현대문학 100주년을 기념해 심포지엄과 작고문인 재조명, 전국 문인 대표자 대회, 독자와의 만남 등 올 한해 동안 다양한 행사를 펼쳐왔습니다. 특히 지난 7일 열린 '문학헌장' 선포식은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으로 웅비하는 기점이 될 것입니다."김이사장은 "문학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지혜를 준다"며 "오늘의 한국문학을 점검하고 시대와 함께 가는 문학으로서 정체성을 다지고 이를 문학운동으로 전개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김이사장은 김제 출생으로 1972년 월간 「풀과별」과 「현대문학」을 통해 각각 시인과 수필가로 등단했다. 한국현대시인상, 한국예총 예술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11.17 23:02

"지역언론 제 역할 다할때 지역에 희망이 생깁니다"

"지역언론은 지역에 밀착해 주민의 눈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지역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역언론이 제 역할을 다할 때 지역에 희망이 생기고 지역이 사는 것입니다."13일 전북민언련이 연 제15기 언론학교에서 '지역 언론이 지역의 희망이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는 "많은 사람들이 지방지는 중앙지에 종속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서울지와 지역지로 나누는 것은 행정구역상의 구분일 뿐"이라며 "지역언론과 중앙언론이 다루는 취재의 대상은 엄연히 다르다"고 말했다.김 기자는 지역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며 "지역의 권력에 대항하는 신문사가 얼마나 있고 제 역할을 하는지가 중요하다"며 "창립 10년이 된 경남도민일보는 계도지를 비판하는 기획기사를 다뤄 계도지를 없애고 자치단체 기자실에서 원하는 시민 누구나 기자회견을 할 수 있게 바꿔냈다"고 설명했다.김 기자는 경남을 찾은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가 "경남지역 언론은 친 한나라당 위주의 편파보도만 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한나라당을 비판하고 민노당에 우호적인 신문이 많아 놀랐다"는 말을 했다고 설명하며 지역언론의 지역권력 감시 기능을 강조했다.김 기자는 "계도지 폐지와 기자실 개방 등 일련의 노력을 통해 친한나라당 신문 일색인 경남지역 언론환경이 바뀔 수 있었다"며 "지역권력을 제대로 비판하는 등 경남언론이 바로잡혔다는 점에서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김 기자는 이어 "최근에는 민노당이 분당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도해 민노당 측의 항의를 많이 받기도 했다"며 "지역의 문제를 올곧게 전달하고 비판하는 게 지역언론의 역할이다"고 말했다.김 기자는 "지역언론은 주민자치위, 아파트입주자회의 등 생활공동체에 주목하고 공공기관장 초도순시, 정치인의 재해현장 방문 등의 관행적 기사와는 거리를 둬야 한다"며 "지역 정치인의 각종 선거공약과 의정활동, 토호세력, 지역의 치안지수, 시장·군수의 관사와 관용차 등 주민의 실익을 위하고 주민이 관심을 갖는 부분을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 문화일반
  • 임상훈·윤나네
  • 2008.11.14 23:02

[풍경과 사람] 전주 동산동 붕어빵 파는 총각 국승필씨

전주시 동산동에 가면 붕어빵 파는 총각이 있다. 올해 스물여섯살인 국승필씨. 얼마전까지만 해도 '잘 생긴 붕어빵 삼촌'으로 통했지만, 지난 10일 라디오 프로그램을 방청하러 갔다가 개그맨 컬투가 공식인정한 붕어빵이 되면서 '컬투붕어빵'으로 슬슬 알려지고 있다.붕어빵도 구리빛일 때가 섹시하다. 구리빛은 불의 세기를 잘 조절해야만 얻을 수 있는 색깔. 붕어빵의 맛을 결정한다. 너무 타서 새까맣거나 너무 안익혀서 물색이면 맛이 없다. 구리빛을 띄어아먄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식으면 식은 대로 맛이 있다.어묵 옆에는 간장 종지 대신에 간장 스프레이가 놓여있다. 어묵 꼬치를 하나 들고 스프레이로 '칙칙' 간장을 뿌려먹으면 된다. 세탁소 옷걸이를 구부려 만든 화장지 걸이나 음료수 피티병을 잘라 만든 종이컵 케이스를 봐도 이 총각 솜씨가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붕어빵 장사는 돈이 될 것 같아서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보통 3D 업종이 돈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이거야말로 정말 돈이 되는 것 같아요. 비결요? 없어요. 무조건 목이 좋아야 되요. 겨울을 노리고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여름부터 뛰어들었어요."국씨가 붕어빵 장사를 시작한 것은 올 8월부터. "남의 돈 먹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며 다니던 회사를 뛰쳐나온 이후였다. 원래 꿈은 가수. 전주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를 다니던 시절에는 춤을 췄고, 한 때는 기획사에 들어가 보컬 트레이닝을 받기도 했다. 대학에서는 사진 관련, 영상을 전공했지만 녹내장때문에 그만 뒀다.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컴퓨터 수리점을 하고는 있지만, "호스트바하고 때밀이 빼고는 다 해봤다"는 일 좋아하고 부지런한 천성 탓에 가만 있지 못하고 붕어빵 가게를 차렸다. '투 잡(two job)'인 셈이다.붕어빵을 처음 시작할 때 든 비용은 30만원. 기계 임대료도 월 단위로 계산하기 때문에 다른 업종에 비해 금방 본전을 뽑는다. 영업시간은 낮 1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이것저것 잔손질이 많아 다 준비하고 나면 2시에서야 영업을 시작할 수 있다. 월 매출은 300만원 정도.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마리 수의 붕어빵을 구워내고, 200개가 넘는 어묵을 꼬치에 끼운다.아파트를 끼고 있는 국씨의 붕어빵 가게는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이 주 고객이다. 가장 바쁜 시간도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어린이집과 초등학교가 끝나는 시간부터 저녁 식사 전까지다. 국씨는 "어린 학생들을 주로 상대하다 보니 위생에 가장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며 "그래서 간장 스프레이도 생각해 낸 것"이라고 말했다."젊은 사람이 붕어빵 장사한다고 하니까 대단하게 생각하시기도 하고 안스럽게 봐주시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제가 왜 주목받는 지 모르겠어요. 시내 한복판에서 '타임 세일' 한다고 소리도 질러보고 해서인지, 이 일이 전혀 창피하지 않아요. 오히려 연세 드신 분들이 하기에 체력적으로 힘든 일 같아요."붕어빵의 핵심은 불 조절. 요즘 유행하는 말로 '멍 때리지만 않으면' 붕어빵 태울 일은 없다. 불 구멍이 여러개여서 불의 세기를 조절하다 보면 조금씩 가스를 마시게 돼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에는 머리가 아파 꽤 고생했다. 항상 불을 끼고 하는 일이라 추운 날씨에도 긴소매 옷은 생각지도 못한다. 붕어빵 장사를 시작한 후로 줄곧 감기를 달고 산다. 국씨는 "옛날에는 붕어빵을 좋아했었는데, 장사를 시작한 후로는 굽느라 지쳐 솔직히 잘 안먹게 된다"고 했다."저 같은 경우는 붕어빵에 들어가는 팥 종류를 여러가지로 바꿔요. 계절이나 날씨 따라서 사람들 입맛도 조금씩 달라지니까요. 어묵 국물 내는 데도 저만의 비법이 있어요. 보통 멸치를 많이 넣는데, 조금 비싸더라도 북어를 넣죠. 국물 드시는 걸 보면, 저 손님이 어제 술을 마셨는지 안마셨는지까지 다 맞출 수 있어요."요즘에는 가스비 뿐만 아니라 물가가 전부 오르면서 순익이 조금 떨어졌다. 하지만 이 청년, "남자가 깡다구 없으면 안된다"며 자신만만하게 웃어보였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11.14 23:02

[풍경과 사람] 호떡파는 장애인 부부 송재승·전순옥씨

어스름한 저녁 켜켜이 쌓인 하루의 고단함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목.입안을 달달하게 위로해 줄 무엇인가 생각나 이곳 저곳을 기웃거린다.빈 속에 객사 일대를 어슬렁거렸다면, 출출한 배를 잠재울 요깃거리도 필요하다.2평 남짓한 미니 트럭에 새어 나오는 환한 그림자.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끈한 김을 보니, 온기를 녹이러 가까이 다가가는 이들이 여럿 보인다.송재승(50) 전순옥(52)씨 부부의 '공갈 호떡' 미니 트럭엔 손짓 소리 '수화'가 하루의 긴 이야기를 대신하고 있다. 13년간 호떡에 환한 웃음도 담고, 슬픈 하소연도 쏟아왔다. 너무 많아 다 담을 수 없어 아예 속을 비워낸 '공갈 호떡'이다.이 호떡을 처음 전주에 들여온 것은 이들 부부. 6∼7년간 닭꼬치를 팔다가 이쪽으로 전업했다.아내 순옥씨가 서울에 새로운 호떡이 들어왔다며 장사가 잘 된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이곳 저곳 수소문했다. 아이들 학비도 마련해야 했고, 결혼 시키려면 밑천도 필요했다.'알아보니 처음에 기술 배우려면 돈이 많이 든대서 포기했었어요. 서울까지 가서 왔다 갔다 배우려면 왕복비만 해도 얼만데요. 그래서 아내가 꾀를 냈죠. 물어 물어 아는 사람들한테 가서 눈으로 보고 익혔어요. 눈으로 보고 익히는 건 빠르니까.'재승씨가 호떡을 팔기 전엔 제법 잘 나가는 목수로도 일을 했고, 재봉일도 했었다. 당시만 해도 농아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주로 직업교육으로 시켰던 것은 손으로 하는 작업(목수, 공장 기계 조립·제작)이 많았기 때문.하지만 둘 다 육체적으로 큰 부담이 됐다. 몸이 전 재산과도 같았던 이들은 다른 일을 찾아 보다 결국 호떡에 눈을 돌렸다.10여년 전부터 재승씨가 당뇨를 앓고 있어 그나마도 매일 영업할 수 있는 사정은 아니다.눈이 와도 비가 와도 하늘이 두 쪽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을 나가야 한다는 억척스런 순옥씨도 재승씨가 아프다면 말 없이 혼자 나간다. 그만큼 남편의 성실함을 믿고, 신뢰한다는 뜻이다.에바다농아교회에서 만난 이들은 연상-연하커플. 순옥씨가 재승씨에게 반해 따라다녔다. 호남형인 데다 적극적이고 성실해 주변에서도 인정을 받는 타입이었다.30여년이 가까이 함께 살을 부비고 살아 무덤덤한 존재가 될 법도 하건만, 순옥씨는 재승씨가 100점짜리 남편이라고 주장한다. 정말이냐고 되묻자 한치의 오차도 없는 답이라는 듯 순옥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약간 수줍어하며 발그레진 남편도 엄지손가락을 든다. 그 남편에 그 아내다.'공갈 호떡'의 장점은 기름기가 없고, 달지 않아 담백한 맛에 있다. 칼로리 때문에 군침만 삼키며 돌아서는 여성들을 위해 기름기를 빼 느끼하지 않다. 꿀도 많이 넣지 않아 맛이 깔끔하고, 바삭바삭한 호떡을 먹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아내가 굽는 것은 19송이 노오란 국화빵. 6개 1000원이면 약간 싸다 싶기도 한데, 한입 먹어봐도 되냐는 물음에 싫은 내색하지 않고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한 입에 '쏙' 넣기 좋은 국화꽃을 입안에 넣으면, 뜨끈뜨끈한 팥고물이 군침을 담금질한다.이들이 버는 금액은 하루 평균 10∼15만원. 주말에 되면 여유가 좀 더 있기도 하고, 아닐 때도 있다.특히 비오는 날엔 장사 나오는 게 쉽지 않다.한여름 땡볕에서 장사하긴 무리라 6∼9월 사이가 이들의 마침표를 찍는 시간.열심히 사는 덕분으로 이들을 응원해주는 친구들도 많다. 주말이나 바쁜 저녁에 이곳을 방문해 말동무가 돼 주기도 하고, 밀가루 반죽을 해온 것을 같이 치대며 호떡 굽는 걸 돕기도 한다."애써" "애써" 말로 다독여주는 시민들도 흔치 않게 만난다.순옥씨는 세 살 때 열병 때문에 말을 잃었고, 재승씨는 선천적으로 말을 잘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를 할 수 없어 답답함을 느낀 적은 없다. 수화가 있고, 눈맞춤이 소통이 된다.배고픈 이의 마음을 흡족히 채우는 호떡엔 시련을 밀치고 다가서는 따끈한 희망이 담겨 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8.11.14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