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용의 기행에세이] (15)정읍과 고창
▲1번 국도와 호남선이 지나는 길목전날 저녁 7시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하산을 한 우리를 산 입구까지 따뜻하게 마중나왔던 영화평론가 신귀백 선생 집에서 저녁 식사와 잠자리까지 신세를 졌는데, 황감하게도 다음날 고창?정읍 일원 안내를 자임하신다. 사람은 사람을 얼마나 따뜻하게 만들고 또 얼어붙게 하는가, 훈훈한 마음으로 길 위에 나선다.위로 익산에서 아래 고창까지, 김제? 부안?정읍 지역은 호남선과 1번 국도가 지난다. 아무런 효용 없이 이런 '신작로'들이 났을 리 없다. 옛길을 덮어나가는 것이 새 길이라면, 이 지역은 오랫동안 마을에서 마을로 서로 교통하며 지냈던 큰 마을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길에 나서 보면, 행정구역 같은 것에 묶여 너와 나를 경계지우는 일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지를 금세 알게 된다. 이 지역은 금만평야와 서해 사이에 내장산, 선운산, 내변산 등이 존재하는 천혜의 땅으로 사람살이의 오래 된 역사가 아주 뚜렷한 곳이다.국내 최대 규모라고 할 수 있는 고창의 고인돌군이나 백제적 노래로 알려진 <정읍사>의 망부석 이야기, 노래는 전하지 않지만 <선운산가>와 같은 노래만 봐도 이 지역은 오래 전부터 사람이 거주해온(그것도 상당히 북적거리는) 지역이었던 모양이다. 이 지역을 특징짓는 또 하나의 역사적 움직임이었던 '동학'이 '사람을 하늘처럼'이라고 외쳤던 것 또한 이 지역에 그만큼 많은 사람(핍박과 소외받는 사람)이 살았다는 역설적 증거 아니겠는가.▲우리 시대의 미감에 대하여어제 밤이 깊어 둘러보지 못한 내장사 경내를 아침에 둘러보고 동학혁명 기념 조형탑, 정읍사공원을 둘러본 뒤, 고창의 고인돌 공원과 미당 시문학관, 선운사로 이어지는 일정 내내 나는 우리 시대의 미감(美感)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였다.고인돌만이 그저 온전히 자신이 조형된 모습 그대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을 뿐, <정읍사>의 여성 화자를 망부석으로 조형한 것도, 19세기말 한반도 전역을 격랑처럼 휩쓸었던 동학의 기운과 여파를 조형물로 응집한 것도, 미당의 문학 세계가 공간성을 획득한 것도 모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시대의 해석과 우리의 미감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정읍사>를 읽고 먼 길을 나선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는 여성의 얼굴 표정이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나, 고민한 이가 우리와 동시대 사람이고, 전봉준과 김개남과 손화중 세 사람과 동학의 추상성과 역사성을 어떤 포즈로 이 자리에 세워둘 것인가, 고심 끝에 조형한 이나 그를 바라보는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시대적 미감 속에서 하나라는 생각… 물론, 더 젊은 여성의 모습이어야 한다거나 기념탑의 첨단이 더 날카로웠으면 좋겠다거나 하는 각개의 해석 또한 이 안에 포함된다. 우리는 망부상을 통해 과거의 미감을 더듬어 읽기도 하지만, 현대의 미감에 관한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고인돌의 침묵고창의 고인돌 군락은 왜 생긴 것일까, 이는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이다. 그래서, 답변은 무궁무진하다. 신귀백 선생과 함께 고창 지역 안내를 해준, 향토사학자 이진우씨가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요즘의 국립묘지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없는 이 지역의 정치?군사?문화 공동체의 애국열사릉과 같은 곳?…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순간, 그렇다면 이곳은 얼마나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는 것인가, 새삼 궁금해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큰 덮개돌을 움직였을까, 그 사람들은 힘든 노역을 이기기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말을 건넸을까… 오직 저 거무튀튀한 바위만이 가슴에 깊이 새기고 있을 선사의 기억…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우리를 더욱 흥미진진한 자문자답의 세계로 이끌고 들어간다. 바위의 침묵이 쨍쨍한 가운데 우리들의 소란스러운 수다가 햇살과 마찬가지로 저 혼자 홀쭉한 소나무 가지에 걸린다.아무리 사람들이 새기고 남겨도 지워지는 일, 삶에서 삶으로 넘어오는 연대기는 참으로 헐렁하다. 그래서 오늘이 청량할 수도 있다는 생각… 여길 지나간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가 모두 이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 떠돈다면 여기는 얼마나 소란스러울 것인가…▲미당시문학관과 기억산업과 선운사요즘 기억산업(Memory Industry)란 말을 곧잘 듣는다. 한반도가 20세기가 겪은 격변의 세월이 많은 것을 휩쓸고 간 탓이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지난 시간과 지난 사람들에 대한 추억과 회고는 인간의 문화적 본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왜 여기 있는 알고픈 마음이 내가 어떻게 걸어왔는지 자꾸만 묻게 만드는 것… 흘러가버린 물과 같은 시간에 공간적 좌표가 결부되면 기억산업의 조건은 갖춰진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읍과 고창은 기억산업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신귀백 선생이 안내하는 내내 강조한 것처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만큼 정읍과 고창 지역에는 문화역사적 컨텐츠가 넘쳐난다.'미당시문학관'은 우리 시대 '기억산업'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미당이 자신의 미감을 체득하고 표현하기 시작한 고향 마을과, 미당의 시문학을 우리 시대의 조형 감각으로 해석한 문학관 전시 공간… 미당의 시를 기억하는 이들은 여기 와서 미당의 미감과 그에 관한 우리 시대의 해석의 다양한 면모를 살필 수 있다.개인적으로 나는 미당과 미당의 시에 관해 뜨겁고 차가운 것이 없는 사람이다. 관심 밖이라는 것인데…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미당의 시를 읽으면 가슴이 뛰고 서늘해지던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하지만, 당신의 죽음과 함께 내 가슴 속에서 미당과 그의 문학도 종적 없이 소멸되었다. 난 미당의 생애와 죽음을 보면서, 산 자의 '아우라'와 세월의 위력 같은 것을 새삼 실감했다.선운사 앞 도솔천(兜率川)은 검은 물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나뭇잎의 타닌 성분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지만, 놀라운 것은 아니다. 이미 미당이 <춘향유문>이란 시편을 통해 '검은 물…도솔천(兜率天)'을 이야기한 탓이다. 미당이 선점한 '도솔천 검은 물'… 언젠가는 다시 시적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오브제로 되살아날 것이다. 도솔암 마애불 배꼽을 먼저 열기 위한 각축이 있었다고 '동학'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전한다. 지금은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담담한 얼굴로 마애불을 살핀다. 역시 언젠가 도솔사 마애불에 관한 또다른 상상력이 도래할 것이다.공유(共有)하고 점유(占有)하는 대상을 홀로 전유(專有)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고인돌에 대한 해석도, 망부석이 된 여인의 얼굴도, 동학 기념 사업도, 미당에 대한 평가도 앞으로 또 바뀔 것이고 어떤 것들은 관심의 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 시대만의 미감을 여기 남길 수 있을 뿐…내가 좋아하는 선암산 촬영 포인트는 용문굴에서 천마봉 올라가는 사이 머릿바위쪽이다. 난 이 곳에서 내 생애에 만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운산을 언젠가 포착하기를 희망하며 이 산을 찾고 또 찾는다. 언젠가 한 번쯤, 내 생애 한 번쯤 '선운사 대웅전 앞 오월 붓꽃'이 가을 산정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줄 누가 알겠는가. /김병용(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