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용의 기행에세이] ①경계에 대하여-옥정호 붕어섬
▲ 지도를 본다는 것누군가 '내 인생의 책'을 딱 한 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사회과 부도"를 꼽을 것 같다.초등학교 시절 처음 대했던 "사회과 부도"를 처음 접했을 때 황홀한 긴장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오대양육대주 속에서 '한반도'를 처음 짚었을 때 느꼈던 왜소함에 대한 당혹, 선사 시대 유적도 속에 내 고향이 포함되지 않은 걸 보고 느꼈던 묘한 섭섭함…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내게 있어 '모래알보다 더 작은 존재'와 '무한한 시공'에 대한 인식이 처음 이루어진 순간은 바로 '사회과 부도'를 펼친 그 때였다.그리고 또 깨달았다, 여행이란 공간적 이동만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간 속, 책 속으로도 얼마든지 여행은 가능하단 것을… 지도를 본다는 것은 '그 지도를 바라보는 나 자신'을 찾아보는 행위라는 것 또한…우리는 지도를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 가서 보지 않고도 세계 곳곳에 대해 '그곳이 있다, 어떤 사람들이 산다'고 틀림없이 믿는 이유는 우리가 지도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았어도 분명히 나와 다른 누군가 여기 살았고, 저기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놀라운 힘이 지도 속에는 숨어 있다. 세계가 지도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지도가 세계를 정의하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지도가 가진 이같은 힘은 순수 추상과 인간 경험의 오랜 교직에서 나온다.세계전도를 보라, 세계를 정밀하게 균할 분등하고 있는 위도와 경도, 시간 변경선과 같은 것은 실재하지 않지만, 그 선은 실재 이상 우리 삶을 규정한다. 2008년 현재, 동경 127.10 북위 35.47 어름에 내 삶은 위치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시계는 GMT+9에 맞춰져 있다.신경준의 "산경표"나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또 어떤가. 그 지도 속을 도도히 흐르는 역사적 시공의 맥락은 오직 그들이 온 몸으로 산과 들과 물을 만나 체득함으로써 지도 위에 옮겨지게 된 것들이다.이런 점에서, 지도를 본다는 것은 그 맥락 속으로 뛰어들어 내가 '알고 있는 세상'과 내가 '아직 모르는 세상'을 연결해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침묵하던 선과 약호들은 지도를 펼치는 순간, 강렬한 빛의 입자가 되어 당신의 가슴팍에 뛰어든다.하여… 숨 막히는 침묵, 참기 힘든 호기심, 기지(旣知)와 미지(未知) 사이에 흐르는 일말의 안도감과 불안, 그리고 내 삶의 좌표가 이 지도 속에 틀림없이 숨어 있을 것만 같은 기대까지 지도를 분할하는 빗금 사이로 터져 나온다면… 당신 또한 틀림없이 지도에 붙들린 사람, 좌표 너머를 동경하는 영혼, 길에 나선 여행자이다.▲ 전북의 동서남북에 대하여최근 충북에서 도계를 모두 도보로 여행할 수 있게 '청풍명월 길'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그 뉴스를 접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실제로 그 길을 걷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것이었다. '산티아고 트레일'이나 '잉카 트레일', '바쇼의 길'과 같은 도보 코스들은 단기간 인위적으로 조성된 것이 아니다.하지만, 원래 경계란 외부보다 내부를 겨냥하는 것. 금줄이 쳐지면 안팎의 경계는 엄연해진다. 여기서 여기까지가 우리가 사는 강역이라고 스스로 규정해보는 일은, 우리가 집을 지으며 담을 쌓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하여, 새삼스럽게 우리 전북의 동서남북의 경계는 어디인지에 생각이 미쳤다.전남에 면한 고창, 정읍, 순창, 남원…경상도와 연접한 무주, 장수… 충청도로 길이 트인 군산, 익산, 완주, 진안 그리고 서해를 마주하고 있는 김제와 부안… 그렇다면 임실은…?세로로 길쭉한 한반도의 지형 때문인지, 전북도민들은 남(전남)과 북(충남)에 대해 보다 예민하게 반응한다. 반면, 동단과 서단에 대한 인식은 좀 희박한 편인 듯 하다. 덕유산에서 지리산으로 흐르는 동쪽 경계, 바다에 의해 자연스럽게 막힌 서쪽 경계… 이와 같은 천연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삶이 오래토록 지속되었던 탓일 게다. 남쪽과 북쪽에 대해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전북'이란 호칭 이전에 '전라도'나 '호남'과 같은 역사적 명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명칭 속에서 '전북'의 현재 행정 구역은 큰 의미를 갖지 못 하고, 또 바로 그같은 이유 때문에 '전북'의 경계를 생각케 된다.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한때 전북에 속했던 금산, 논산 일부, 구례를 '빼앗겼다'고 통분해 하는 것이 그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 삶의 자연스러운 경계가 '전북'을 형성한 것은 아니지만, '전북'이란 행정적 경계는 우리 삶의 테두리에 대한 생각을 재조정한다. 경계를 뚜렷히 하고자 하는 욕망은 원래 그 경계가 흐린 탓 아니던가.▲ 용운리 붕어섬 가는 길전북에만 한정해 가장 깊은 곳을 찾는다면, 나는 그곳이 임실군 그중에서도 옥정호 근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임실은 전북 14개 시군의 가장 깊은 내륙에 해당한다. 완주에 둘러싸인 전주를 제외하면, 모든 시군은 어떤 육로나 바닷길이 열려 있지만 임실군만이 전북의 내부에만 자리한 채, 완주?남원?순창?진안?장수?정읍과 소통한다. 임실은 섬진강이 구비치는 곳이고, 또한 그 물길을 잡아둔 다목적댐이 들어선 곳이다. 1965년 완공된 섬진강댐 공사의 결과, 전북의 지도는 새로 그려지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계화도 간척 사업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이 댐 공사에 의해 이 지역의 물은 물론 사람들도 '물이 막혀 수몰된' 고향을 떠나 이제 막 '물을 가둬 매립된' 새 땅으로 흘러가게 되었다.임실군 운암면 용운리 '외앗날'(혹은 '외얏날'), 속칭 '붕어섬'이라고 불리는 내륙의 섬.어느 곳에서 보든 이 섬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지도'라 할 수 있다. 물이 들고 남에 따라 맨살을 드러내는 옆구리에는 지구의 전생애와 함께 최근 침식의 흔적까지 역력하다. 하지만 그같은 상처의 노출로 인하여, 여느 평범한 마을과 마찬가지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을 이 곳 용운리는 물안개 자욱한 일출?일몰의 명소로 떠올랐다.임실은, 산지 면적 70%라고 하는 한반도의 전형적인 지형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그야말로 올망졸망한 능선들이 길과 함께, 달려간다. 특히, 운암 지역의 경우에는 어디 마땅한 들판을 찾기 힘든 산야 지역이다. 그러한 산야의 한 가운데, 어느날 갑자기 총저수량 4억 3천만 톤, 유역 면적 768㎢의 옥정호가 그득하니 출렁이고 섬까지 생긴 것이다. '외앗말(자두가 많이 나는 날망)' 혹은 '외얏말(바깥 들판 맨 가장자리)'은 이제 더 이상 산이나 들판이 아니다. 타율적 의지에 의해 갑자기 섬이 된 그곳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운명의 섭리나 고독과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언덕'과 '섬' 사이… 그 차이는 단지 표기나 동음이어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물이 빠져 산언덕처럼 보이는 옥정호의 기슭에 낚시배 한 척이 정박해 있다. 뭍으로 올라온 배의 이질적인 풍경이 우리 삶의 다사다난함을 대변하는 듯 하다. 우리의 삶이 나날이 변화하듯 지도도 변하고, 경계는 언제나 확정적이지 않다. 요동치는 삶, 요동치는 경계…그 경계 속으로 이제 떠나고자 한다. 꿈은 지도 위로 확장되고, 삶은 늘 경계에서 경계 그 너머를 꿈꾼다./김병용(소설가)